스트리트 파이터 5, 없는 것은 스토리만이 아니었다
2016.02.19 16:08게임메카 흑산령
▲ '스트리트 파이터 5' 대표 이미지 (사진제공: 게임피아)
6년 만의 정식 넘버링 타이틀로 수많은 유저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등장한 ‘스트리트 파이터 5’가 2월 16일 PC와 PS4로 출시되었다. ‘길거리 싸움꾼’들의 5번째 이야기는 만화를 연상시키는 화려한 그래픽과 세세한 디테일을 그대로 이어받으며 전작의 인기를 이어가나 싶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있어야 할 것’이 없는 텅 빈 모습으로 오랜 시간 기다려온 팬들을 분노케 했다. 필자 역시 화려한 효과에 눈이 즐거웠지만 ‘속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출시된 지 하루 만에 ‘미완성’ 논란이 일며 도마에 오른 ‘스트리트 파이터 5’. 지금부터 파헤쳐 보자.
격투게임의 기본 중의 기본, 커맨드 변경도 없다고?
‘스트리트 파이터’는 경쟁작 ‘철권’과 달리 2D 그래픽에 만화처럼 캐릭터나 각종 효과를 그려 내는 ‘카툰 랜더링’을 이용한 특유의 스킬 효과가 돋보이는 게임이다. 이러한 강점은 ‘스트리트 파이터 5’에도 고스란히 계승됐다. 파동권, 승룡권 등 각종 스킬들이 터질 때 마다 감탄사가 절로 흘러나올 정도로 강렬한 시각효과는 합격점을 주기 충분했다.
또한 캐릭터들의 격투기술이 각국 성격을 잘 대변하고 있어 특유의 개성이 잘 살아났다. 여기에 필살기, 발차기 등 기본 동작에서도, 캐릭터 표정과 몸 동작이 역동적으로 바뀌어서 박진감이 넘치는 ‘한판승부’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실제로 시리즈의 주인공 격인 ‘류’의 필살기를 사용했을 때 그 격렬한 표정과 타격감에 놀랐다.
▲ 눈을 즐겁게 하는 세밀한 표현은 합격점이다
이처럼 디테일이 살아 있는 ‘한판’을 갖췄는데도 왜 ‘스트리트 파이터 5’에 많은 팬들과 필자는 분노한 것일까? 가장 먼저 살펴볼 부분은 ‘커맨드’다. ‘커맨드’란 격투게임에서 캐릭터가 특정 기술을 사용하기 위해 입력해야 하는 키의 조합을 말한다. 상, 하, 좌, 우, 주먹, 발차기 등 다양한 버튼을 각기 다른 종류와 순서, 횟수로 눌러 원하는 기술을 발동시키는 시스템이다.
상대와 ‘누가 더 잘 싸우는가’를 겨루는 격투게임에서 컨트롤을 관장하는 ‘커맨드’는 성패를 가르는 중요한 요인으로 손꼽힌다. 따라서 격투게임에는 유저들이 본인이 하기 가장 편하게 키를 바꿀 수 있는 ‘커맨드 변경’이 기본으로 지원된다. 그러나 ‘스트리트 파이터 5’ PC 버전의 경우 이 ‘커맨드 변경’이 지원되지 않는다. 즉, 손이 편하게 키를 바꿀 수 없다는 것이다. PS4 패드보다 기본적으로 더 많은 키가 있는 키보드를 씀에도 원하는 설정을 할 수 없다는 점이 아이러니하게 다가온다.
▲ 실제로 '스트리트 파이터 5'의 스팀 평가가 좋지 않다 (사진출처: 스팀)
그렇다면 PC가 아닌 PS4는 문제가 없을까? 필자의 결론은 ‘No’다. ‘커맨드’ 입력이 지나치게 불편한 것이다. 게임에 들어 있던 ‘커맨드’ 안내서를 보면 PS4나 PC를 사는 대다수의 유저가 사용하는 ‘패드’와 ‘키보드’가 아니라 오락실에서 많이 쓰는 ‘조이스틱’이나 전용 컨트롤러로 출시된 '파이터 패드' 위주로 만들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스트리트 파이터 5’의 공격버튼은 주먹 버튼 3개 발차기 버튼 3개다. PS4에서는 주먹은 네모, 세모, R1키, 발차기는 동그라미, 엑스, R2키다. 그리고 이 배치는 오른쪽 액션 버튼이 4개인 PS4 컨트롤러, '듀얼쇼크 4'에 최적화된 것이 아니다. 이는 ‘스트리트 파이터 4’에서부터 이어져온 전용 컨트롤러 ‘파이터 패드’ 키 배치를 넣어놓은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실제로 ‘파이터 패드’ 키 배열은 PS4의 ‘네모 세모 R1’이 상단에 일렬로, ‘엑스, 동그라미 R2버튼’이 하단에 일렬로 배치되어 사용하기 편하게 구성되어 있다. 즉, ‘파이터 패드’를 이용하면 편하지만 ‘듀얼쇼크 4’에는 2개 버튼이 분리되어 있어 손이 꼬이기 쉽다. 다시 말해, ‘듀얼쇼크 4’를 배려하지 못한 키 배치가 아쉬움으로 남는다.
▲ 전용 컨트롤러 '파이터 패드'와 PS4 컨트롤러 '듀얼쇼크 4' 비교 사진
'파이터 패드'의 기본 버튼은 6개인데, 이를 액션 버튼이 4개인 '듀얼쇼크 4'에 우겨 넣은 모양
스토리도 아케이드 모드도 없다, 구멍 송송 뚫린 콘텐츠
‘스트리트 파이터 5’의 문제점은 ‘커맨드’만이 아니다. 바로 ‘약속된 콘텐츠’가 없는 상태로 게임이 출시되었다는 것이다. 가장 공백이 큰 부분은 ‘스토리 모드’다. 캐릭터 16명의 이야기가 각각 5분씩, 한 시간 반이면 끝나버린다. 내용 역시 다른 캐릭터와 4번 싸우는 것이 전부이며, 각 캐릭터에 얽힌 사연을 풀어내기에는 분량이 지나치게 부족하다. 특히 ‘스트리트 파이터 5’ 개발을 총괄한 오노 디렉터가 ‘스토리 모드’를 누누이 강조해온 것과 전혀 다른 결과물이 나온 점에 팬들의 실망감은 한층 더 상승했다.
없는 것은 ‘스토리 모드’만이 아니다. 원하는 캐릭터를 골라 마지막 보스까지 향하는 격투게임의 기본 모드 ‘아케이드 모드’도 없고, 특별 보스와 격돌하는 ‘엑스트라 배틀’도 찾아볼 수 없는 상황이다. 현재 ‘스트리트 파이터 5’에서 즐길 수 있는 것은 온라인 대전과 체력 회복 없이 계속 다른 캐릭터와 대전을 이어가는 싱글 플레이 콘텐츠 ‘서바이벌 모드’밖에 없다.
▲ 일러스트와 짧은 대사만으로 스토리가 끝나고 만다
여기에 게임 설정과 묘하게 다른 부분도 있다
▲ '스트리트 파이터 5' 메인 화면, 아직 잠긴 것이 많다
‘서바이벌 모드’ 자체는 매우 참신하다. 특히 다음 라운드로 넘어가도 체력이 회복되지 않기 때문에 얼마나 효율적으로 체력을 관리하며 라운드를 길게 이어가느냐가 관건으로 떠오른다. 한가지 변수는 라운드를 깰 때마다 획득한 포인트를 이용해 다음 라운드에서 체력회복이나 공격력 증가 등 전투에 도움이 되는 기능을 사용하는 ‘배틀 서포트’를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즉, 체력관리와 함께 최대한 많은 ‘포인트’를 모으는 것이 중요하게 떠오른다. 여기에 서바이벌 모드 점수 총합을 기준으로 한 랭킹 시스템이 지원되기 때문에 다른 유저와 순위경쟁을 벌이는 맛도 쏠쏠하다.
▲ 고난을 뚫어내는 '춘리'는 위대하다
그러나 정식 출시된 ‘스트리트 파이터 5’는 개발진이 약속했던 모든 것을 담아내지 못했다. 필자 역시 ‘서바이벌 모드’는 매우 만족스러웠으나 부족한 ‘스토리 모드’나 ‘아케이드 모드’ 부재로 인해 ‘데모 CD를 돈 주고 샀나’라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물론 캡콤이 유저를 상대로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다.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매월 새 캐릭터와 스테이지를 공개하고 6월에는 제대로 된 ‘스토리 모드’와 ‘아케이드 모드’를 업데이트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또한 3월에는 싱글플레이에서 다양한 도전과제를 수행하는 ‘챌린지 모드’도 추가하겠다고 전했다.
그렇다면 왜 캡콤은 ‘스트리트 파이터 5’를 모든 콘텐츠가 갖춰지지 않은 상태로 출시했을까? 이에 대한 공식 답변은 없지만 오는 7월에 열리는 국제 격투게임 대회 ‘EVO’의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기 위해 출시 시기를 앞당겨야 할 필요성이 높았다는 것이 지배적인 의견이다. 세계대회 일정을 고려해 발매일을 잡았다고쳐도 결국 유저들은 미완성 게임을 정가에 구매한 결과가 되어버렸다. 즉, 캡콤은 ‘스트리트 파이터 5’를 통해 유저들의 신뢰를 잃어버리는 결과를 얻은 셈이다.
▲ '스트리트 파이터 5'는 EVO 2016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다
(사진출처: 레드블 e스포츠 트위치)
유저를 조금만 더 생각했다면 완벽한 게임이 됐을 텐데…
‘스트리트 파이터 5’의 일본 광고 문구는 ‘스트리트 파이터는 문화이고 추억이며 스포츠’다. 많은 남성들이 어렸을 적 ‘스트리트 파이터’를 상징하는 ‘류’와 당시 인기로 쌍벽을 이뤘던 ‘킹 오브 파이터즈’의 ‘쿄’ 중 누가 강한가를 두고 서로 다투었을 정도로 어린 시절을 함께 한 게임으로 유명하다. 이만큼 오랜 시간 동안 사랑 받은 격투게임은 드물며, 경쟁작 ‘철권’보다 세계적인 인지도 역시 높은 편이다.
그러나 ‘스트리트 파이터 5’에서 캡콤이 보여준 모습은 ‘추억’을 떠올리며 게임을 구매하는 유저를 등돌리게 만들었다. 특히 약속했던 콘텐츠를 출시에서 보여주지 않는 정책은 여러 게임을 해오며 눈이 높아진 유저를 만족시킬 수 없는 부분이다. 게임만 재미있다고 모든 것이 용서되던 시대는 끝났다. 완성도와 함께 개발사에서 어떻게 유저를 대하는가가 게임의 가치를 결정하는 척도가 되었다.
이에 캡콤 역시 좀 더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줘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스트리트파이터 5’의 기본 완성도는 메타크리틱(게임을 비롯해 다양한 콘텐츠를 다루는 리뷰 사이트) 점수 80점 이상을 기록할만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유저와의 약속을 저버리는 일련의 문제가 이 게임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었다. 과연 ‘스토리 모드’ 등 각종 콘텐츠가 추가되는 6월에는 지금과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 좀 더 지켜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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