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13, 장수 700명으로 소문난 '먹을 것 없는 잔치'
2016.06.21 19:33게임메카 김헌상 기자
▲ '삼국지 13' 3차 프로모션 영상 (영상출처: 공식 유튜브)
일본 코에이테크모를 대표하는 전략게임 ‘삼국지’ 시리즈 최신작, ‘삼국지 13’은 발매 전부터 큰 관심을 받아왔다. 전작 ‘삼국지 12’가 혹평에 시달린 와중에 시리즈 30주년 기념작으로 출시되었고, 국내에서는 오랜만에 정식 한국어화를 통해 발매되는 작품이라 더욱 큰 화제가 되었다.
또, ‘삼국지 13’은 ‘장수제’를 채택한 것으로도 주목받았다. ‘삼국지’ 시리즈는 플레이어가 직접 위, 촉, 오 등 세력을 선택해 천하통일을 노리는 ‘군주제’와 삼국지 속 인물을 선택해 군주, 문관, 무관 등 특정 역할을 수행하는 ‘장수제’로 나뉜다. 최근에는 군주제가 주류를 이뤘기 때문에, 장수제를 기다렸던 사람들은 이번 작에 더욱 기대감을 품었다.
그렇다면 ‘삼국지 13’은 그 기대감을 충족시켜줄 수 있을까? 미리 말하자면, 이번 작은 장수제를 표방하면서도 그 특징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 시리즈 최다에 달하는 700여 명 캐릭터에 가상의 장수를 생성까지 지원하며 ‘역대급’ 등장인물 숫자를 자랑하고, 한층 강화된 ‘인연’ 시스템을 통해 다양한 장수와 교류하는 요소까지 더했는데도 말이다.
▲ '삼국지 13' 대표 이미지 (사진제공: 디지털 터치)
그 많던 퀘스트와 이벤트는 어디로 갔을까
장수제 삼국지는 세력을 운영하는 시뮬레이션보다 플레이어가 특정 장수가 되어 활약하는 RPG적인 측면을 강조한다. 따라서 처음부터 쟁쟁한 군주를 택하는 것도 가능하고, 재야에서 수련을 통해 능력치를 올려 ‘삼고초려’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다. 이 밖에도 아무런 세력에 소속되지 않고 사병을 육성해 용병처럼 활동하는 등 다양한 롤플레이가 가능하다. 여기에 결혼과 육아, ‘명품 배달’, ‘영산 순례’ 등 다양한 이벤트와 퀘스트가 곁들여지며 시뮬레이션 게임으로서는 다소 부족할지라도 RPG 재미가 이를 보완했다.
▲ '삼국지 10'은 장수제 최고 작품으로 꼽혔다 (사진출처: 공식 홈페이지)
문제는 ‘삼국지 13’에서 이러한 요소가 대부분 삭제됐다는 점이다. 재야에서 할 수 있는 것은 특정 장소에서 일기토나 설전을 벌이는 자잘한 이벤트 외엔 거의 없고, 보상을 얻어도 재야 상태에선 쓸 곳이 마땅치 않다. 결국, 특정 세력에 소속되어 군주에게 내정이나 군사 임무를 제안하거나, 주어지는 명령을 수행하게 된다. 세력 내에서 공적을 쌓으면 태수나 도독에 임명되는데, 작게는 도시 하나부터 많게는 일부 지역까지 직접 관리하게 된다. 사실상 군주로 시작하는 것과 큰 차이가 없다. 다양한 롤플레이를 즐길 수 있는 자유도가 대폭 줄어든 것이다.
▲ 재야에서는 도시 사이를 오가며 심부름 하는 것이 전부
▲ 태수나 군주나 영토를 관리하는 건 매한가지
여기에 장수 간 교류를 핵심으로 내세운 인연 시스템도 아쉽게 느껴진다. 물론 장수와 대화해 호감도를 얻고 이벤트를 통해 감정 변화를 끌어내는 등, 교류 자체의 현실성은 훨씬 높아졌다. 또한 인연을 맺은 장수가 능력치나 전법을 전수해주거나 다른 장수에게 소개장을 써주기도 하며 중요성도 높아졌다.
▲ 인연의 힘으로 장수도 강해진다
반대로 호감도가 크게 낮아지면 돌이킬 수 없다. 기자는 초선을 선택해 게임 내 모든 여성 장수를 휘하에 두는 ‘아마조네스’ 플레이를 하려고 했다. 하지만 남편을 배신하게 만드는 과정이 생각보다 어려웠고, 결국 열심히 올려둔 호감도가 등용 시도 한 번에 마이너스로 떨어지는 낭패도 겪었다. 이처럼 시스템 자체는 시리즈 중 최고라고 할 수 있다.
▲ 배신 유도는 제갈량도 못한다
하지만 교류에 필수불가결한 대화 완성도가 부족하다. 게임을 조금만 진행해도 몇 가지 대사를 돌려쓰고 있다는 것이 느껴지는데, 이를 제외하더라도 영문을 알 수 없는 대화가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임무 중에 나를 찾아온 동료 장수는 뜬금없이 시스템 설명을 해주고, 아들과 대화하는 아버지가 깍듯이 존대하는 등 게임에 몰입하기 어려운 대화를 벌이는 모습이 자주 보여 금세 대화에 흥미를 잃게 된다. 그래서 단순히 선물 공세를 퍼붓는 기계적인 방식으로 호감도를 올리기 일쑤다. 좋은 시스템을 제대로 살려내지 못한 것이다.
▲ 동탁의 말투는 매우 겸손하고...
▲ 반대로 초선은 늠름하다, 사실 이 정도면 양반
전작보단 낫네, 간신히 지킨 30주년 자존심
이처럼 ‘삼국지 13’은 장수제를 채택한 것치고는 부족한 면모를 보인다. 그렇다면 적어도 시뮬레이션 재미라도 있어야 체면치레에 성공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삼국지 13’은 한숨 돌릴 수 있다. 무슨 뜻이냐 하면, 지금까지 나왔던 ‘삼국지’ 시리즈 기본은 충실하다는 것이다.
내정은 AI에게 맡기거나 조언을 구할 수 있어 상당히 간편하다. 또, 도시를 발전시킬수록 새로운 시설이 설치되는 등, 실제 도시의 외관이 변화하기 때문에 뿌듯함이 느껴진다. 전투 역시 창병, 기병, 궁병이 서로 물고 물리는 상성 관계가 명확해 부대를 편성하고 전장에서 어떻게 움직일지 고민하는 맛이 있다. 또, 사기를 떨어트리면 훨씬 적은 병력으로도 전세를 역전시킬 수 있어 별동대를 만들어 진을 공략하는 등 전술적인 선택지도 많아졌다. 아울러 전작에서 삭제됐던 수상전도 부활하며 시뮬레이션 측면으로는 예전의 명성을 되찾았다.
▲ 적 부대를 각개격파하면 사기가 떨어져 싸우기 수월하다
▲ 전작에서는 불가능했던 수상전까지!
여기에 새로운 게임 모드인 ‘영걸전’도 본편 못지않은 재미를 준다. ‘영걸전’은 삼국지연의 이야기를 즐길 수 있는 일종의 캠페인이다. 초반에는 장수 간 교류하는 법이나 전투, 외교, 내정 관리 등을 알 수 있는 튜토리얼이 진행되고, 이후 스스로 세력을 운영하며 목표를 달성하는 스테이지가 시작된다. 천하를 제패하라는 큰 목표만 주어지는 본편과 달리, 비교적 작은 단위의 임무를 달성하며 게임을 진행할 수 있어 초심자도 쉽게 즐길 수 있고, 적응하는 것도 더욱 편하다.
▲ 간단한 목표 위주라 부담없이 플레이할 수 있다
▲ 멋있는 일러스트를 볼 수 있는 컷신은 덤
예를 들자면, 손책이 죽은 뒤 오나라를 수습하는 손권이 되어 플레이하는 ‘손오단결’ 스테이지는 소유하고 있는 도시 번영도를 ‘높음’까지 올리는 것이 목표다. 내정에만 힘을 쏟으면 금세 해결할 것 같지만, 계속해서 도적이 출몰하며 번영도를 낮춘다. 때문에 군사력에도 신경 써서 도적을 물리쳐야 기한 내에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여기에 미려한 일러스트가 담긴 컷신으로 보는 맛도 더한다.
▲ 갑자기 반란도 일어난다
다만 ‘삼국지’ 시리즈 고질적인 문제점은 여전하다. 먼저 그래픽은 지형과 도시는 그럭저럭 멋지게 구현됐지만, 실제 전투를 벌이는 연출은 밋밋해서 박진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몇만의 대부대가 격전을 펼쳐도 초라해 보이기 일쑤다. 비슷한 전략게임인 ‘토탈 워’ 시리즈는 전장을 클로즈업하면 그럴싸한 전투 장면이 나오는데, ‘삼국지 13’에서는 초상화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광경을 보게 될 뿐이다. 같은 2016년 게임인데도 말이다.
▲ 장엄함은 둘째치고 전투 양상도 확인하기 어렵다
이외에도 본편에 얼마 없는 시나리오와 ‘영걸전’ 스테이지를 DLC로 보충하는 것도 여전하다. 특히 삼국지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적벽대전 시나리오가 DLC로 판매되고, ‘영걸전’은 15개 가량의 스테이지 중 튜토리얼과 플레이 불가능 스테이지를 제외한 메인 스테이지는 고작 3개에 불과하다. 유저 입장에서는 완성되지 않은 게임을 내놓았다는 인상을 받기 마련이다. 특히 삼국지연의 주인공인 유비 삼형제는 튜토리얼 이후, 자막으로만 등장해 허무하다.
▲ 아직 촉나라는 등장도 못했는데...
시리즈 30주년, 언제까지 이어질까
‘삼국지 13’에 거는 기대는 상당히 높았다. 시리즈 30주년, 그리고 10년 만에 돌아온 공식 한국어화에 보기 드문 장수제 도입까지... 아마 어린 시절 ‘삼국지’를 즐겼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두근거렸을 소식이다. 화려하게 돌아온 ‘삼국지 13’이 전작의 부진을 깔끔히 해소해 줄 것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전작에서 지적 받았던 단점은 대부분 수정되어 시뮬레이션 측면으로는 큰 문제가 없었지만, 11년 전 ‘삼국지 10’에서 즐길 수 있던 RPG 요소들이 대거 사라져 장수제 고유의 재미를 주지는 못했다. 기대감이 너무 컸던 탓인지 실망감도 크다.
다른 사람들은 ‘확장팩이 게임을 완성할 것’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삼국지’ 시리즈는 1994년 이후 매 시리즈마다 ‘파워업키트’라는 제목의 확장팩을 통해 새로운 시나리오, 시스템 개선 등 게임을 보완해왔다. 지금 ‘삼국지 13’은 ‘팬심’이 없다면 매력을 느끼기 어렵지만, 파워업키트가 추가되면 평가는 달라질 수도 있다. 그러나 처음부터 완성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30주년을 맞이한 장수 시리즈, ‘삼국지’가 팬들의 기대에 보답하는 방법 아닐까?
▲ 출시일은 달라도 게임성은 한결같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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