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 6, 두 시간이 찰나 같은 '타임머신'의 마력
2016.10.11 21:00게임메카 이찬중 기자
▲ '문명 6'는 오는 10월 21일, 한국어화를 거쳐 정식 발매된다
(사진출처: 공식 웹사이트)
세상에 많고 많은 게임이 존재하지만, ‘악마’라고 부를 정도로 푹 빠질 게임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그 중에도 단연 눈에 띄는 게임은 ‘한 턴만’의 묘미를 앞세운 ‘시드 마이어의 문명(이하 문명)’ 시리즈다. 문명의 탄생과 발전, 현재와 미래를 고스란히 담아낸 ‘문명’은 시리즈 거듭할수록 더욱 세밀해진 시대 묘사와 다양한 시스템 추가로 나만의 역사를 만들어가는 재미를 선사한 바 있다. 여기에 “한 턴만, 한 턴만” 하다보면 밤을 새버리는 무서울 정도의 몰입감도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그리고 오는 10월 21일(금), 그 최신작 ‘문명 6’가 발매된다. 그렇다. 다시 한번 유저들을 “한 턴만!”을 외치게 만들 ‘악마의 게임’이 돌아온다. 더 악독하게도, 이번에는 탄탄한 기본기에 승리의 폭을 넓힌 새로운 요소로 알차게 채워, 플레이어를 도저히 놓아주지 않을 기세다.
행운인지, 아니면 불운인지... 이번 출시를 앞두고, 미리 게임을 체험해볼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모든 콘텐츠가 담긴 완전판은 아니었지만, 게임의 핵심을 살펴보기에는 충분했다. 과연 이번 신작도 리뷰를 쓰는 것을 잊을 정도로 재미있을까? 원활한 기사 작성을 위해, ‘알람’이라는 안전줄을 준비하고, ‘문명 6’에 뛰어들어봤다.
▲ '문명 6' 공식 트레일러 (영상출처: 공식 유튜브 채널)
도시 타일 채워가는 재미, 발전하는 묘미 담았다
‘문명 6’는 시리즈 진입장벽을 낮춰서 호평 받았던 ‘문명 5’의 기본기를 물려받았다. 원하는 문명을 고르고, 육각형 타일로 이루어진 맵에서 영토를 점점 넓혀가고, 문화, 정복 등 특정한 승리 조건을 달성하기 위해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나가는 재미를 이번 작에서도 고스란히 경험할 수 있다.
이런 탄탄한 기본기에 전에 없던 새로운 즐거움을 가져다 줄 ‘지구(District)’가 더해졌다. ‘문명 5’에서는 타일에 농장이나 광산을 설치해 자원을 수집하거나, 병력이 주둔하는 요새를 만드는 수준에 그쳤지만, 이번에는 타일 위에 원하는 시설을 설치할 수 있는 ‘지구’를 배치하거나, 문명에 보너스를 주는 ‘불가사의’를 건설할 수 있도록 쓰임새가 확장됐다. 따라서 필요한 ‘지구’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배치하느냐에 따라 도시 운영 향방이 갈린다.
▲ '지구'를 적절히 배정하는게 중요하다
▲ 이제는 '불가사의'도 타일에 배치하게 된다
설치할 수 있는 ‘지구’ 종류도 다양하다. 금화 수입을 늘려주는 ‘상업 구역’, 신앙과 종교에 영향을 주는 ‘성지’, 문화 수준을 높여주는 ‘극장가’ 등 모두 다른 역할을 맡는다. 여기에 설치된 ‘지구’ 위에는 전작에서는 도시에만 설치할 수 있었던 건축물들을 올릴 수 있기 때문에, 문명 발전을 위해서는 ‘지구’ 설치가 필수다.
어떤 의미로 도시 운영이 조금 복잡해졌지만, 단점만 있는 건 아니다. ‘지구’가 추가되면서, 바다에 인접하지 않은 도시도 항구를 보유할 수 있다. 또한, 인구 포화 문제도 ‘주택가’를 배치하면 곧바로 해소할 수 있다. 이 외에도, 다른 문명과의 전투에서는 ‘지구’를 약탈해, 도시 기능을 마비시킬 수도 있는 등, 전략적인 재미까지 맛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영토 활용도는 넓어지고, 전략적인 자유가 확장된 셈이다.
▲ 인접 '지구'에는 보너스가 제공되니, 잘 생각해야 한다
▲ '지구'가 약탈당하면, 타격이 크니... 영토 보호의 필요성도 늘어난 셈!
무시하고 넘겼던 정책, 이제는 ‘트리’와 ‘카드’로 편리하게!
기존에 있던 정책은 한층 세밀하게 바뀌었다. ‘문명 5’의 경우, 전통, 명예, 탐험 중 하나를 고르고, 그 안에서 세부 정책을 고르는 수준이라 선택지가 한정됐다. 그러나, 이번 6편에서는 정책을 '사회 제도 연구' 트리를 통해 습득하게 된다. 기존에도 있던 '과학 기술 연구'처럼 '사회 제도 연구'에도 테크 트리가 생긴 것이다.
뿌리처럼 뻗어나가는 테크 트리로 정책이 쉽게 정리되니, 게임 속에 있는 사회 제도와 정책이 어떠한 구조인지 좀 더 쉽고 명확하게 알 수 있다. 여기에 과학 기술과 마찬가지로 사회 제도 연구 트리는 중세, 근대와 같은 시대와 군사, 경제 같은 분야로 구분된다. 시대와 분야별로 테크 트리가 나뉘는 셈이다. 여기서 어떤 트리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정부 형태나 이후에 진행할 정책 방향도 정해지기 때문에 선택에 조금 더 신중을 기하게 된다.
▲ 이제는 따로 '사회 제도' 연구 트리가 생겼다
▲ 연구하는 사회 제도에 따라, 문명의 성향이 갈리게 된다
사회 제도 연구를 마쳤다고 활용이 끝나는 건 아니다. ‘문명 6’에서는 사회 제도 연구를 완료하면, 다양한 분야에 보너스 효과를 주는 '정책 카드'가 보상으로 제공된다. 정부 메뉴에서 '정책 카드'를 비어있는 슬롯에 장착하면 그 효과를 받을 수 있다. 카드는 크게 군사, 경제, 외교, 와일드카드 4종으로 나뉘며, 종류마다 다른 효과가 붙어 있다. 가령, 군사 카드 ‘조사’는 정찰 유닛이 얻는 경험치를 2배로 늘려주고, 경제 카드 ‘도시 계획’은 생산력을 높여준다. 추가로, 와일드카드는 위인을 뽑는데 보너스 점수를 부여한다.
▲ 나중에는 연구에 따라, 정부 형태까지 달라진다
여기에 정부 형태에 따라 각 카드에 배당되는 슬롯 수가 달라진다. 각 카드는 종류에 따라 장착하는 슬롯이 다르며, 어떠한 정부를 꾸렸느냐에 따라 슬롯 수에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전제군주제’는 군사 슬롯이 2개기 때문에 다른 정부보다 공격적인 면이 부각된다. 반면 ‘공화정’은 군사 슬롯이 없는 대신에 경제 슬롯이 더 많아서 큰 수익을 거둘 수 있다. 아울러, 속성에 관계 없이 원하는 카드를 장착할 수 있는 ‘와일드 카드’ 슬롯이 따로 있어 변칙적인 운용도 가능하다.
직접 플레이해보면, 초반부에는 연구할 수 있는 사회 제도도 적고, 정책 카드 효과도 단순해 활용도가 그리 높지 않다. 그러나 점차 정부 형태도 갖춰가고, 카드 수가 늘어나기 시작하면, 연구가 끝날 때마다 정책 결정을 두고 한참을 고민하게 만든다. 이런 부분에서는 이번 ‘문명 6’가 플레이어들이 게임에 깊게 빠져들 여지를 준다.
▲ 카드가 너무 많아...
무자비한 간디는 그만, 납득할만한 외교전
‘문명’ 시리즈를 논할 때, 꼭 빠지지 않고 회자되는 인물이 있다. 옥수수를 다이아몬드로 바꿔내는 인도의 지도자 ‘간디’다. 본래 알려진 인자한 성품과는 다르게, 게임에서 옥수수와 다이아몬드를 교환하자고 대뜸 요구하거나, 갑자기 코끼리 부대를 앞세워 전쟁을 선포하거나, 때로는 핵미사일까지 쏴버리는 소위 ‘패왕’으로 유명했다.
▲ 친절하면 왠지 불안해진다...
다행히 ‘문명 6’가 보여주는 외교전은 앞서 이야기한 '간디'와 달리 납득할 수준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번에 추가된 ‘안건’ 시스템 덕분이다. 상대 의중을 파악하기 어려웠던 전작과 달리, ‘안건’을 통해 각 문명이 집중하고 있는 부분, 원하는 자원, 그리고 원치 않는 행위를 손쉽게 파악할 수 있다. 덕분에 ‘안건’에서 하지 말라는 행동만 피하면, 쓸데없는 분쟁을 피하고 원만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런 ‘안건’은 게임이 새로 시작할 때마다 무작위로 정해지고, 숨겨진 ‘안건’도 존재해 외교전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숨겨진 ‘안건’은 보통 교역상을 통해 관련 소문을 수집하거나, 지도자끼리 직접 교류로 정보를 밝혀낼 수 있다. 여기에 숨겨진 ‘안건’을 잘만 활용한다면, 적대적인 문명과도 원만한 관계를 회복할 수도 있어 파고들 이유가 충분하다.
▲ 싫어하는 이유, 이제 제대로 알아보자
▲ 때로는 숨겨진 '안건'도 존재한다
물론, 이러한 외교가 실패할 수도 있다. 원하는 걸 얻기 위해서 전쟁을 피할 수 없는 상황! 이럴 때 전쟁을 일으킨 것에 대한 주변 문명의 맹비난이 두렵다면 이를 조금이나마 잠재울 수 있는 ‘전쟁 명분’이 존재한다. 단순히 선전포고하던 전작과 다르게 적절한 ‘전쟁 명분’을 내세운다면, 다른 문명의 비난을 받지 않고 넘길 수 있다.
‘전쟁 명분’ 종류도 다양하다. 우선, 동맹 도시가 점령당했을 경우에는 ‘해방 전쟁’을, 인접 도시가 보호를 필요로 하는 상황이라면 ‘보호전’을 선언할 수 았다. 이 외에도, 과학 기술 발전이 낮은 문명을 상대로 한 ‘식민 전쟁’과 도시가 다른 종교로 분란을 해결하기 위한 ‘성전’ 등 다양한 명분이 존재한다. 상황에 맞는 ‘전쟁 명분’을 대면 본래 받아야 할 페널티가 크게 감소한다. 이런 부분은 플레이어가 보다 능동적으로 전쟁 선포를 활용할 수 있게 한다.
▲ 타 문명의 비난, 전쟁을 일으킨 자의 피할 수 없는 숙명
▲ 적절한 관계 개선으로, 이제는 돕고 살자
모르는 사이에 게임 끝, 종교 승리를 조심하라
초반부에는 다양한 분란이 많을지 몰라도, 후반부로 갈수록 게임은 정적으로 바뀐다. 마치 현대 사회를 반영하는 것처럼 전쟁은 줄어들고 각 문명이 외교전과 기술 연구에 더욱 박차를 가하게 된다. 여기서 이번에 새롭게 추가된 ‘종교 승리’가 수면 위에 떠오르기 시작한다.
‘종교’는 본래 ‘문명 5’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것이다. 문명을 대표하는 종교를 만들고, 이를 주변국에 퍼트려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었다. 여기에 어떤 종교관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각기 다른 보너스도 주었다. 그러나, 그 이상의 이득은 없어 전작에서는 문명을 발전시키기 위한 부가 요소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종교’ 자체가 하나의 승리 조건으로 자리잡았다.
▲ '문명 6'에서도 종교의 골자는 크게 다르지 않다
조건은 그리 까다롭지 않다. 전 세계 도시 절반을 내 종교로 개종시키면 된다. 종교를 막 만들기 시작한 초기에는 문명 발전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해 선교 활동은 어림도 없는 소리겠지만, 어느 정도 발전을 이루고 전쟁이 없는 후반부에는 종교가 막강한 위력을 발휘한다.
실제로, 게임을 진행하다보면 플레이어 영토에 떼로 몰려와 본인의 종교를 신나게 퍼트리는 다른 문명을 볼 수 있다. 특히 영토를 개방한 상태라면 이들을 막아낼 방법도 없고, 선전포고를 하지 않더라도 종교를 퍼트리는 ‘선교사’끼리 서로 공격을 펼칠 수도 있어 미리 막지 않으면 허무하게 승리를 빼앗기는 경우도 벌어진다.
당했을 때는 난감하지만 새로운 ‘종교 승리’로 전반적인 플레이가 다채로워진 걸 체감할 수 있었다. 매번 반복하던 ‘정복 승리’와 ‘과학 승리’에 그치지 않고 승리 조건이 좀 더 다양해지며 각각 다른 강점으로 살아남은 국가들이 남긴 역사를 현실적으로 담아낸 느낌이다.
▲ 스페인: 오늘은 한번 힌두교 전파해보겠습니다
복잡함을 이해하는 순간 ‘타임머신’이 작동한다
사실 ‘문명 6’를 플레이하면서, 가장 우려된 부분은 복잡함이었다. 여러 기능이 새로 붙으면서, 본래 ‘문명’에 익숙하던 사람들에게는 조금 어려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메뉴만 보더라도, 머리가 어지러워질 지경이었고, 새로운 ‘지구’ 관리도 마구잡이로 배치했다가 낭패를 보기 십상이었다.
그러나, 바뀐 부분을 하나씩 이해하는 순간, ‘타임머신’이라는 별명이 부끄럽지 않을 몰입감을 선사한다는 걸 깨달았다. 메뉴는 이번 게임의 새로운 면을 플레이어가 이해하기 쉽게 풀어낸 것이었고, 새로운 ‘지구’도 점점 익숙해지니, 도시 관리를 즐겁게 해주는 요소로 작용했다. 여기에 변화한 외교, 정책, 종교는 보다 변칙적인 플레이를 가능하게 만들어, 몇 시간이고 고민하게 만드는 즐거움을 선사했다.
리뷰를 시작하면서, 마음 속으로 단단히 플레이 시간을 정해놨지만, 자리에서 일어나면 예상 시간보다 2시간이 훌쩍 지나버렸을 정도로 중독성 있는 재미는 전작에 꿀리지 않았다. 만약 ‘문명 6’를 집에서 할 생각이라면, 시간을 지켜줄 안전줄 단단히 챙기길 바란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밤을 샐지도 모르니 말이다.
▲ 내 문명의 야경을 바라보는 재미도 쏠쏠한 편...
▲ 내가 만들어갈 문명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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