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틀필드 1, 1차 세계대전의 선택은 옳았다
2016.10.28 19:02게임메카 이찬중 기자
▲ '배틀필드 1'이 지난 21일 정식 발매됐다 (사진출처: 공식 웹사이트)
‘배틀필드’ 시리즈는 오랜 시간 대규모 전장을 내세워, 전쟁 FPS의 강자로 군림해왔다. 각각 다른 역할을 맡은 군인들이 하나의 분대를 이루고, 지휘에 따라 일사 분란하게 움직이며 거점을 점령해나가는 재미는 실제로 다른 현대전 FPS에서 경험할 수 없는 ‘배틀필드’만의 강점이다.
그러나 지난 10월 21일(금) 발매된 ‘배틀필드 1’은 기존에 고수하던 ‘배틀필드’의 이미지와는 완전히 다르다. 바로 기존에 선보인 현대전이 아닌 근대전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1차 세계대전’을 무대로 했기 때문이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이런 다이스의 역주행 시도는 성공이었다. 해외 게임 웹진들은 10점 만점에 9점이라는 점수를 주었으며, 영국에서의 첫 주 판매량은 ‘배틀필드 4’와 ‘배틀필드: 하드라인’를 합산한 판매량을 뛰어넘었다.
실제 게임을 해보니, 이토록 수많은 사람들이 열광한 이유가 납득이 갔다. 그래픽과 연출, 그리고 철저한 고증을 거친 무기와 장비는 플레이어에게 완벽한 ‘1차 세계대전’의 전장을 보여주는데 성공했다. 여기에 ‘아킬레스 건’이라고 불리던 싱글플레이에도 미려한 스토리를 담아내며 좋은 평가를 받았다. 물론, 아쉬운 점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여태까지 나온 작품과 비교하면 ‘배틀필드 1’이 가장 완벽한 전장을 구현했다는 점에는 반박의 여지가 없었다.
▲ '배틀필드 1' 공식 트레일러 (영상출처: 공식 유튜브 채널)
여기가 바로 진짜 ‘1차 세계대전’
‘배틀필드 1’에서는 어디 전쟁 영화에서나 볼법한 장면들이 너무나도 당연한 것처럼 그려진다. 프로스트바이트 엔진의 힘을 최대로 끌어올린 그래픽은 사실적이라는 표현을 넘어, 그야말로 현실과 구분 안되는 전장을 만들어내고, 투박한 맛이 살아있는 무기와 장비는 게이머를 전투에 푹 빠지게 만든다. 이미 백과사전이나, 검색된 정보로만 상상하던 ‘1차 세계대전’의 전장 그 이상이다.
실제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축축한 진흙으로 가득한 참호, 햇볕이 작열하는 사막, 비 내리는 산맥 등 다양한 전장을 체험하게 된다. 지상에서는 영국의 ‘마크’ 시리즈 전차가 육중한 소리를 내며 지나가고, 하늘에서는 나무와 캔버스천으로 이루어진 복엽기들의 공중전이 펼쳐진다. 여기에 눈 먼 포격이 사방에 떨어지고, 육안으로도 보이는 총알들이 그야말로 빗발친다. 무엇보다 그래픽이 주는 위화감이 없다보니, 이런 아비규환에 절로 몸이 움츠러들 정도다.
▲ 참호로 가득한 유럽의 격전지부터...
▲ 보기만해도 더운 사막까지, 모두 전장이다
직접적으로 눈에 보이는 부분뿐만 아니라, 세밀한 연출에도 상당한 공이 들어갔다. 전투기의 접근을 막기 위해 공중에 설치된 ‘방공 기구’부터, 저 멀리 보이는 검은 연기와 부숴진 건물들, 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점차 진흙 범벅으로 바뀌어가는 무기는 치열한 전장에 게이머를 더욱 몰입시킨다.
효과음도 이런 전장의 생생함에 한몫을 더한다. 별다른 배경음악은 없지만, 사방에서 들려오는 소리들은 전장을 더욱 생생하게 만들어준다. 가령 독가스탄이 날아오면 주위 캐릭터들이 모두 “가스, 가스, 가스”를 소리를 지르고, 누군가 총칼을 들고 돌격이라도 하면 엄청난 함성이 들려온다. 여기에 목표를 안내하는 ‘호루라기’ 소리와 적의 비명소리가 섞여, 마치 실제 전장에 서있는 것처럼 정신없이 고막을 두드린다.
▲ 그야말로 진짜 '전쟁'의 풍경을 보여준다
직접 싸워보니, 그때 그 전쟁... 이제야 알겠습니다
‘배틀필드 1’은 이처럼 눈과 귀만으로도 완벽한 전장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실제 게임성은 과연 어떨까? 일단 ‘배틀필드’ 시리즈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멀티플레이를 경험해본 결과, 그 재미는 그야말로 역대급이라는 말이 아깝지 않다.
우선, 게임이 보여주던 멀티플레이의 기본 틀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기존작처럼 최대 64명이 함께할 수 있는 대규모 전장과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소규모 전장 모두 경험할 수 있으며, 게임 모드도 새롭게 추가된 ‘오퍼레이션’과 ‘워 피존’ 외에는 고스란히 계승하고 있다. 여기에 역할이 구분된 ‘병과’와 팀 단위로 함께 활동하는 ‘분대’ 시스템도 여전하다.
▲ 기본 틀은 크게 다르지 않아, 한번이라도 해봤다면 금방 익숙해진다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역시 시대적 배경의 차이다. 영화로 많이 다뤄진 2차 세계대전이나, FPS 게임 단골 소재 중 하나인 현대전과 달리, 이번에 시대 배경으로 내건 ‘1차 세계대전’은 그야말로 게이머에게 생소한 전쟁이다. 실제로 게임에 나오는 무기와 장비들 중에서 군부대에서 많이 보던 ‘야삽’을 빼면, 모두 생판 처음 보는 것들이었다.
짧은 사거리에, 장전도 느리고, 심지어 위력마저도 낮다. 그야말로 불편의 온상. 그러나, 이런 부분은 ‘1차 세계대전’이라는 점 하나만으로도 모두 납득이 간다. 실제로 이런 불편함이야말로 어떤 의미로 이번 작품을 가장 신선하게 만들어주는 요소라고 볼 수 있다. 그 불편함을 극복하고 전장을 헤쳐나갔다는 사람이 있고, 당장 지금 그 기분을 느끼고 있다는 점은 곧 최고의 만족감인 셈이다.
▲ 그러니까... 이건 어떻게 쥐는거지?
▲ 가늠쇠 조준점도 모두 생김새가 천차만별 다르다
특히 무기로 인한 플레이스타일의 변화가 당장은 불편하게 다가올지 몰라도, 조금만 써보면 그 독특한 손맛과 타격감에 푹 빠지게 된다. 총알을 발사하고 철커덕 소리를 내며 장전하는 볼트 액션 소총은 들려오는 소리만으로도 짜릿함을 선사하고, 돌진해서 ‘야삽’으로 적을 무자비하게 마무리할 때는 쾌감마저 느껴질 정도다. 여기에 가끔 전장에 떨어진 ‘특수 장비’라도 주우면, 그야말로 영웅이라도 된 것처럼 화염방사기와 기관총을 난사할 수도 있다.
▲ '특수 장비'를 사용하는 군인의 위력은 상상 이상이다
탑승 장비에 올라타면, 또 다른 이야기가 펼쳐진다. 대부분 탑승 장비도 고증을 따르고 있다. 도시락 통처럼 생긴 전차, 나무와 천으로 이루어진 복엽기, 그리고 빠르게 전장을 활보하는 말까지... 기존작에 비해서는 포스가 약해 보일지 몰라도, 실제 게임에서는 이들은 등장과 함께 전장을 그야말로 휩쓸어버린다. 오죽하면 ‘전차’ 하나 잡자고, 수많은 분대가 희생될 정도다.
이렇다 보니, 전장을 조금만 뛰어보면 ‘1차 세계대전’에서 일반 병사가 살아남기 얼마나 힘든지 체감된다. 벽 뒤에 잠시 숨어도 전차가 그대로 뚫어서 받아버리고, 하늘에서는 쉴새 없이 폭격기가 폭탄을 떨어뜨린다. 여기에 전투 막바지에는 거대한 비행선이나 무장열차 형태의 ‘베히모스’가 등장해 긴박감을 최고조로 끌어올린다. 이런 위기들을 모두 뚫고 승리했을 때, 느껴지는 쾌감은 그 만족감에 평소 잘 쓰지 않는 채팅창에 ‘GG”라고 치게 만들 정도다.
▲ 공중전도 익숙해지면 정말 역대급 재미를 선사한다
▲ 거대 비행선이 떴다면...긴장하자!
영화와도 같은 스토리, 그러나 분량이 아쉽다
사실 ‘배틀필드’ 시리즈는 멀티플레이 전용 게임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싱글플레이에 대해서는 소홀한 편이었다. 매번 이런 부분을 극복하려는 노력을 보이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흡입력 있는 스토리를 보여주지 못했다. 실제로 이런 부분을 두고, 게이머들 사이에서는 스토리는 ‘콜 오브 듀티’, 멀티플레이는 ‘배틀필드’라고 평하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지, 이번 ‘배틀필드 1’에서는 스토리에 힘을 많이 쏟았다는 걸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싱글플레이에 준비된 에피소드는 프롤로그, 본편 5개, 에필로그 총 7개였는데, 각 에피소드는 ‘1차 세계대전’이라는 전쟁에서 한 축을 맡았던 군인의 시점으로 진행됐다. 특히 다양한 연출로 전쟁의 참혹함을 여과없이 보여줬을 뿐만 아니라, 게이머들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감동적인 스토리도 담아냈다.
▲ 각 에피소드마다, 전쟁에 참여한 군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 스토리는 영화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가장 인상 깊었던 스토리는 영국의 ‘MK. V’ 전차를 조종하던 운전수의 이야기다. 이 에피소드에서 플레이어는 본래 상류층 자동차를 운전하던 ‘에드워드’의 시점으로, 전장을 겪어나간다. 특히 여러 상황을 겪으면서, 변해가는 그의 심경 변화에서는 전쟁의 고됨이 묻어나올 지경이다. 실제로 여러 미션을 진행하면서, 자살 행위에 가까운 잠입 임무를 맡을 때는 어깨가 절로 움츠러들고, 전차를 모는 미션에서 적 전차를 파괴했을 때는 탄성을 지를 정도였다. 그만큼, 스토리가 보여주는 상황 몰입감이 어마어마했다.
▲ '에드워드'의 에피소드는 다양한 연출이 돋보였다
▲ 살아남으려면, 운전수도 얄쨜 없이 싸워야 한다
이처럼, 싱글플레이는 이번에야말로 ‘콜 오브 듀티’의 강렬한 스토리텔링에 비견할만한 수준까지 끌어올렸지만, 단 한 가지 문제점이 남았다. 바로 분량이다. 실제로 스토리 자체는 손색이 없을 정도로 완성도가 높았지만, 그 미션 분량은 많으면 5개, 적으면 2개 수준에 불과했다. 실제로 미션을 얼마 진행하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엔딩이 나오는 에피소드를 보고, “벌써 끝?”이라고 생각했 정도다. 안 그래도 잘한 부분인데, 조금 더 늘려 강조했으면 손색이 없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 이런 멋진 스토리가 이토록 짧다니...너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