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이 아니라 150년이 지나도 명작은 명작이다(스트리트 파이터 애니버서리 컬렉션)
2004.07.30 14:08게임메카 송찬용
스트리트 파이터(Street Fighter)…. 게임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겐 ‘길거리 싸움꾼’ 정도로 간단히 치부되어버릴 수 있는 단어지만 게임업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게이머라 자부하는 사람들에게 그 단어는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아니, 특별한 의미 정도가 아니라 ‘숭배(崇拜)’라고 해야 적절한 표현일까? 어쨌거나 필자 역시 수많은 게임 중에서 숭배할만한 게임을 고르라고 한다면 주저 없이 이 작품을 고를만큼 「스트리트 파이터(이하 스파)」가 갖는 의미는 각별하다.
▲ 시리즈의 변천만큼이나 캐릭터들의 모습도 많이 바뀌었다 |
「스파」가 갖는 의미
게임사에서 「스파」는 어떤 위치를 차지할까? 알기 쉽게 표현해 무협소설에 흔히 등장하는 구대문파 중 하나에 해당하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구대문파는 무협소설의 세계관에서 가장 흔히, 그러면서 동시에 가장 강대한 세력으로 등장한다. 「스파」 역시 무림에서 구대문파가 차지하는 위치처럼 게임사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담당하곤 있지 않을까?
그런 「스파」도 시리즈의 원점인 「스트리트 파이터」에서는 별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필살기의 사용이 너무 어려워 플레이어가 원하는 타이밍에 사용할 수 없었고, 대미지 조정 등 게임 밸런싱에도 문제가 많아 비록 획기적인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큰 주목을 받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그 후속작인 「스파 Ⅱ」는 전작의 문제점을 완벽히 해결하고 전작에 못지 않은 획기적인 시스템을 다수 도입해 폭발적인 인기를 구가했다.
6버튼을 이용해 강, 중, 약, 펀치, 킥 등 공격을 세분화시킨 점, 방향키와 버튼의 조합으로 필살기를 사용할 수 있게 만든 점, 캐릭터마다 구체적인 배경 스토리를 설정해 몰입감을 높인 점, 게임의 승패에 플레이어의 심리가 큰 영향을 주는 점 등 기존 게임과 차별되는 「스파 Ⅱ」만의 특징은 이후 수많은 대전격투게임을 탄생시키는 기폭제 역할을 했고, 제작사 캡콤의 이름을 세계에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됐다.
▲ 왼쪽부터 스파 Ⅱ, 스파 Ⅱ 대시, 스파 Ⅱ 대시 터보, 수퍼 스파 Ⅱ, 수퍼 스파 Ⅱ X의 순이다 |
▲ 이 화면을 기억하는가? 타이틀 화면의 임팩트 역시 대단했다 |
「스파
Ⅱ」와의 첫 만남
필자가 「스파 Ⅱ」를 처음 접한 건 고등학교 2학년에서 3학년으로 올라가던 시기로 기억한다. 필자는 머지않아 시작될 지옥 같은 고 3 생활의 심리적 중압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주 오락실을 찾곤 했다(그렇다고 필자가 공부를 소홀히했던 건 아니다. 공부도 게임도 열심히 했다 ← 믿거나 말거나 -_-). 그러다 발견한 것이 「스파 Ⅱ」였다.
당시 2인용 게임은 하나의 기계 앞에 두 명이 나란히 앉아 몸을 잔뜩 움츠린 채 플레이를 해야 했다. 그러나 「스파 Ⅱ」는 달랐다. 두 대의 기계가 나란히 붙어 있었고, 편하게 자리를 잡은 두 명의 플레이어가 기계를 한 대씩 차지하고 앉아 플레이에 집중하고 있었다. 두 화면에서 펼쳐지는 똑같은 장면들…. 서로 다른 기계에서 입력됐던 동작들이 어떻게 두 화면에서 펼쳐지는 것일까? 당시 AV에 대해 백치와 다름없었던 한 고등학생은 그 신기함과 새로움에 게임을 주목했고, 이윽고 동전을 투입구에 집어넣었다.
필자가 「스파 Ⅱ」에서 처음으로 플레이했던 캐릭터는 춘리였다. 유일한 여성 캐릭터였고, 무엇보다 가슴이 강조된 복장 덕분에 저절로 손이 갔던 것이다. ‘Here comes a new challenger!’라는 메시지와 함께 아무 조작법도 모르던 필자는 간 크게도 먼저 플레이하고 있던 사람에게 도전하고 말았다. 번갈아가며 버튼과 레버를 조작하던 필자는 우연히 춘리의 잡기를 성공시키고, 첫 스테이지를 승리로 장식했다. 잡기를 성공시켰을 때의 짜릿함! 승리했을 때 분비되던 아드레날린에 의한 정신적 고양감. ‘이런 게임도 있구나…’. 인베이더와 동키콩으로 시작했던 필자의 오락실 게임 역사는 10년 만에 새로운 한 획을 긋게 됐다. 비록 이후 두 스테이지를 연달아 패배해 첫 대전격투게임의 대전은 패배로 끝났지만, 그 때의 감동은 13년이 지난 지금도 뇌리에 생생하다.
▲ 어린 마음에 이 모습이 얼마나 자극적이었는지… |
▲ 첫 던지기 공격을 성공시켰을 때의 감동이 지금도 생생하다 |
변치 않는 「스파 Ⅱ」 사랑
여름이 지나 학력고사 준비를 위해 모의고사를 치루던 9월에도 필자는 하교길에 오락실에 들려 친구들과 「스파 Ⅱ」를 즐겼다. 그리고 대학에 진학해 시간적 여유가 생긴 후에는 더욱 「스파 Ⅱ」에 매진했다. 「스파 Ⅱ 대시」, 「스파 Ⅱ 터보」 등 「스파 Ⅱ」의 새로운 버전이 국내에 들어왔다는 소문이 들려오면 필자는 서울의 온 오락실을 헤매가며 새로운 시리즈를 찾았고, 인컴 테스트를 실행 중인 오락실에서 인컴 테스트에 크게 공헌했다.
필자의 「스파 Ⅱ」 실력은 어땠을까? 당시에는 지금처럼 대전격투게임의 대회나 팀 시스템이 생겨나지 않았을 때라 정확한 비교는 어렵지만, 필자의 동네와 학교 주변의 오락실에서는 최고의 고수로 군림했을 정도라면 설명이 될까? 언젠가 한 번은 사가트로 플레이를 한 적이 있는데, 공교롭게도 계속 상대편이 도전을 해와 대전이 2시간 넘게 진행됐다(물론 상대편은 계속 바뀌었다). 당시 필자는 한창 필이 받아 59연승을 기록하고 있었고, 이윽고 가르치기로 했던 과외시간이 되어 자리를 떠나야만 했다. 하지만 대전 연승기록이 너무 아쉬웠던 필자는 주변에서 구경하고 있던 꼬마에게 최대한 시간을 끌며 대신 플레이해달라고 부탁한 후 재빨리 공중전화로 달려가 ‘오늘 사정이 생겨서 과외를 할 수 없게 됐다’며 양해를 구했다. 그리고 어떻게 했냐고? 물론 다시 자리로 돌아와 계속 대전을 했고, 결국 3시간 30분에 걸쳐 87연승까지 기록한 후 더 이상 도전자가 나타나지 않아 그냥 1P 플레이를 하다 엔딩을 보았다.
▲ 「스파 Ⅱ」의 8명, 「스파 Ⅱ 대시」의 12명, 「스파 Ⅱ 대시 터보」의 12명, 「수퍼 스파 Ⅱ」의 16명, 「수퍼 스파 Ⅱ X」의 17명 등 전작품 총 65명의 캐릭터 타입을 마음대로 고를 수 있다 |
▲ 「스파 Ⅱ」의 류와 「수퍼 스파 Ⅱ X」의 류. 91년과 94년, 3년의 시간 동안 류는 수행을 핑계대고 사람들의 눈을 피해 많은 수술(?)을 거친 듯 하다 |
되살아난
추억, 그리고 「스파 Ⅱ」
이후 아랑전설, 용호의 권, 사무라이 스피리츠, 버추어 파이터, 철권 등 수많은 대전격투게임이 등장했다. 필자는 새로운 대전격투게임이 나올 때마다 동전을 무더기로 쌓아놓고 게임을 파고들었지만, 「스파 Ⅱ」만큼 열중하고 재미를 느꼈던 게임은 이후 다시는 찾지 못했다. 많은 사람들이 극찬하는 「버추어 파이터」 시리즈마저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하나의 타이틀이 발매됐다. 「스트리트 파이터 애니버서리 컬렉션(이하 스파 애니버서리)」이라는, 「스파」 탄생 15주년을 기념하는 타이틀이 그것이다. 「스파」 시리즈의 최신작인 「스파 Ⅲ 서드 스트라이크」를 즐길 수 있는 「스파 애니버서리」였지만, 필자의 관심은 오히려 다른 곳에 있었다. 바로 「스파 Ⅱ」 시리즈의 모든 작품을 하나로 묶은 「하이퍼 스트리트 파이터 Ⅱ」가 「스파 애니버서리」에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 15주년 작품인 「스파 애니버서리」. 그러고 보니 벌써 15년이 지났다 |
필자가 청춘을 불사르며 파고들었던 게임, 필자의 가슴에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 준 바로 그 「스파 Ⅱ」의 모든 것이 들어 있는 「스파 애니버서리」는 그런 이유로 필자에게 더욱 특별한 타이틀이다. 현란하기까지 한 최근의 대전격투게임에 비해 기술도 단조롭고 그래픽도 단순하지만, 필자는 오랜만에 「스파 Ⅱ」를 하면서 기존의 대전격투게임에서 맛보지 못했던 즐거움을 다시금 느끼고 있다. 이전에 느꼈던 그 감동들을 다시금 되새기고 있다.
필자는 오늘도 회사에서 점심시간만을 기다리고 있다. 후딱 점심을 먹은 후 동료기자를 꼬셔 「스파 Ⅱ」 한판을 벌이기 위해서다. 물론 더운 여름에 걸맞는 아이스크림 내기로 말이다. PS2 컨트롤러로 실행이 어려운 승룡권 커맨드로 인해 투덜거리긴 하지만, 그래도 즐겁다. 내기에서 또 이겼기 때문이다.
▲ 초필살기 개념이 도입된 「수퍼 스파 Ⅱ X」. 점프 강공격 → 서서 강공격 → (캔슬) 필살기 → (캔슬) 수퍼콤보로 이어지는 공격력은 막강했다 |
여러 분들은 필자에게 있어 「스파 Ⅱ」처럼 추억과 감동을 생각나게 하는 게임이 있는가? 만약 있다면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과거 그 게임을 하면서 겪었던 에피소드들을 떠올려 보자. 따뜻함과 그리움이 새록새록 솟아날 것이다. 만약 없다면 서둘러 그런 게임을 찾기 바란다.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그런 게임이 하나도 없다면 너무 쓸쓸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