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에서 만날 수 있는 최고의 행복!(월드 사커 위닝 일레븐 8)
2004.08.12 15:48PC파워진 김재권
망할
녀석
거창한 수식어 따위는 사용하지 않겠다. 「월드 사커 위닝 일레븐(이하 위닝)」 시리즈만큼 축구 게임 마니아의 가슴에 불을 지르는 게임이 또 있을까? 이렇게 쉽게 지갑을 열도록 만드는 게임이 또 있을까? 일본어 버전이 발매되자마자 사고, 얼마 후에 발매되는 정식발매 버전을 또 사고, 인터내셔널 버전을 사고, 파이널 에볼루션 버전을 사고, 유럽에서 발매되는 PES 버전을 산다. '돈나미'라느니, '같은 시리즈를 11번 우려먹어야 진정한 위닝 일레븐'이라는 등 갖은 욕을 다 하면서도 결국 지갑을 열게 만드는 게임이 또 있을까?
망할 녀석!!!
어쨌거나 1년을 손꼽아 기다려온 「위닝 8」이 드디어 발매됐다. 아무리 열광적인 팬이라지만 리뷰를 쓰면서 게임에 현혹될 정도로 필자의 내공이 얕지는 않다. 지금부터 이 망할 녀석을 속속들이 해부해서 부위별로 까발려 보이겠다. 아, 잠깐잠깐…. 기합부터 한 번 넣고! 아자잣~!
※ 스포츠 게임, 특히 위닝 시리즈는 몇 달을 플레이해야만 제대로 평가할 수 있다. 특히 마스터리그의 교섭이나 선수들의 능력치 같은 부분은 최소 3개월은 플레이해야만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 필자는 게임을 받은 뒤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플레이했지만 그래 봤자 겨우 일주일이다. 겨우 일주일 만에 이 게임을 전부 파악했다는 오만을 부리지는 않겠다. 이 리뷰에서는 모션이나 밸런스 등 현재 시점에서 평가할 수 있는 부분만을 다루겠다. '스포츠 게임 전문'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기자로서 최소한의 양심이니 너그럽게 이해해주길 바란다. |
장족의
발전을 이룬 모션과 그래픽
말 그대로다. 지난 작품부터 개발에 참여하기 시작한 코나미 오사카(실황 시리즈를 만들어 온 팀)의 영향 때문인지, 선수들의 모션은 눈부실 정도로 발전했다. 7편까지는 어떤 선수에게 공이 가면 그냥 '그 선수가 볼을 받았다'라는 느낌이었다. 발로 받았는지, 정강이에 맞았는지, 무릎으로 튕겼는지는 문제가 되지 않고 그냥 받았을 뿐이었다. 하지만 8편에서는 바닥으로 깔려오는 공은 똑같이 발로 받지만 약간이라도 공이 뜨면 선수의 발도 함께 올라간다. 예를 들어 수비수의 입장에서 상대 공격수의 크로스가 가슴보다 약간 높게 다가오는 경우, 7편에서는 어설픈 스탠딩 헤딩으로 막아내야 했기 때문에 멀리 걷어내기 힘들었지만 8편에서는 점프를 하면서 발을 들어 마치 공의 따귀를 때리듯(?) 차낸다.
▲ 발을 들어서 따귀를 때리듯(^^) 클리어링 해낸다. 이러니 데이터가 많아질 수밖에… |
▲ 롱 패스 모션에서 세기에 따라 몸을 뒤로 젖히는 사실적인 모습 |
슬라이딩 태클을 당했을 때에도 전작에서는 앞으로 혹은 뒤로 넘어지는 등 4~5가지의 모션밖에 없었지만, 이번 시리즈에서는 상황에 따라서 옆으로 넘어지거나 앞으로 낙법을 하거나 공중에 붕 떴다가 떨어지는 등 매우 다양한 모션을 볼 수 있다. 또 스피드가 높은 드리블에서는 볼을 세우기 어려워졌고, 최고 속도까지 다다르기 위한 시간이 늘어났으며 상체 페인팅과 라보나 같은 개인기도 즐거운 추가요소.
▲ 드리블, 태클, 헤딩 등의 모션도 훨씬 사실적으로 묘사되었다 |
이런 모션의 발전은 드리블, 패스, 슈팅, 헤딩 등 어떤 상황에서도 확실하게 느껴질 정도여서 가히 '시리즈 최고의 모션'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다.
▲ 상체 페인트 동작. 실용성은 별로지만… |
현장감은
좋지만 이 매트릭스 현상만은…
중간중간 삽입된 컷 신의 효과도 크다. 선수를 교체하거나 프리킥이나 골킥을 찰 때, 반칙이 일어났을 때 등 컷 신의 발생빈도와 활용이 대폭 늘었다. 물론 컷 신은 로딩을 유발하므로 게임의 집중력을 떨어뜨리는 단점이 되기도 하지만, 증가된 모션과 어우러져 '내가 경기장에서 게임을 직접 뛰고 있다'는 현장감에는 굉장한 도움을 주고 있다. 현장감이 부족하다는 평이 많았던 위닝 시리즈임을 생각해보면 단점보다는 장점이 많다.
▲ 부상을 당하면 이렇게 실려 나갔다가 심판의 허락을 받고 다시 들어온다 |
▲ 선수 교체 시에 보이는 컷 신. 옆에 예비심판이 번호판을 든 모습도 보인다 |
다만 문제는 이제 말기에 접어든 PS2라는 플랫폼의 성능이 이런 모션과 컷 신을 충분히 소화해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모션의 추가는 필수적으로 데이터 계산의 증가를 유발한다. 공을 차내는 모션을 다리 전체를 하나로 묶어 사용할 때의 계산과 발바닥, 발등, 발목, 정강이, 무릎, 허벅지로 나누어 사용하는 계산 중 어떤 것이 복잡한 지는 뻔한 일이다. 그 때문인지 「위닝 8」에서는 코너킥처럼 좁은 지역에 많은 선수가 몰리거나, 화면에 관중이 많이 노출되거나, 특정한 구장에서는 프레임이 툭툭 끊기는 '매트릭스 현상(슬로우 모션처럼 느려진다)'이 발생하거나 '2배속 보기'처럼 빨라지는 경우가 많다. 1초의 판단이 경기 전체를 좌우하는 스포츠 게임에서 이런 현상은 커다란 단점으로 지적된다.
▲ 7편부터 있었던 파울시의 다툼(?)도 한층 업그레이드 |
▲ 세레모니의 수도 대폭 증가했으며 선수 별로 세레모니를 지정해줄 수도 있다 |
장점과
단점이 동시에 드러난 패스
패스 부분에서는 역시 '서치 패스'의 추가가 눈에 띈다. 지금까지는 최후방 수비수가 최전방으로 패스를 하려면 볼을 띄우는 롱 패스밖에 방법이 없었지만, 이번 「위닝 8」에서는 땅으로 깔리는 패스도 ×나 △ 버튼을 길게 누르고 있으면 중간에 위치한 미드필더를 무시하고 보다 앞쪽의 공격수에게 직접 볼을 연결할 수 있다. 또한 땅으로 깔아 차는 스루 패스도 전작에서는 말도 안 되는 인공지능 수비력 때문에 번번이 막히기 일쑤였지만 「위닝 8」에서는 적당히 조절되어 높은 성공률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센터링 에어리어에서 롱패스 버튼을 두 번 누르면 낮고 빠른 크로스를 올릴 수 있는데, 이 패스가 굉장히 빠르고 정확해졌다. 전작에서 베컴이나 긱스처럼 롱패스 정확도가 90 이상인 선수들만이 보여주던 빠르고 정확한 크로스가 이번에는 대부분의 선수들이 구사할 수 있도록 하향조정(?)된 것이다.
▲ 이처럼 상대 수비수를 몸으로 밀어내면서 패스를 받는다 |
▲ 공을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어떤 상황에서도 몸싸움이 벌어진다 |
패스의 변화와 함께 중요한 것은 패스를 받는 선수의 움직임이다. 패스를 받기 전에 움직이는 방향이 다양하고 그 속도도 빠르다. 무엇보다 패스를 받으려고 움직이면서 상대와 거친 몸싸움을 벌이기 때문에(전작에서는 그냥 미끄러져 들어갔다) 굉장히 역동적인 패스가 가능해진 것. 이런 변화는 아주 중요한 '발전'을 하나 이끌어냈는데, 바로 '속도가 빠르지 않더라도 몸싸움 능력이 좋으면' 패스를 받기 쉽다는 것이다. 전작까지는 스루 패스는 대부분 스피드가 좋은 선수에게만 시도해야 했으며, 몸싸움에 능한 선수는 스루 패스를 자제하고 공중볼을 연결해야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패스를 받으려는 선수의 몸싸움 능력이 좋으면 상대 수비수를 힘으로 제치고(혹은 넘어뜨리면서) 공간으로 침투하기 때문에 스루 패스의 성공률도 높은 편이다. '대형 스트라이커도 침투 능력이 있다'고 생각해온 필자에게는 매우 즐거운 발전 사항이다.
하지만 유난히 아웃 프런트(발의 바깥쪽)로 볼을 다루는 경우가 많다는 것은 아쉬운 부분. 물론 실제 축구에서도 아웃 프런트 킥은 자주 사용되지만, (인 프런트보다) 컨트롤이 어렵기 때문에 꼭 필요한 경우에만 사용하는 것이 정석이다. 하지만 「위닝 8」에서는 가까이 있는 선수에게 패스를 보낼 때도 아웃 프런트, 정면 중거리 슛을 날릴 때도 아웃 프런트, 수비 시 볼을 클리어링할 때도 아웃 프런트가 너무 자주 사용된다. 왜 아웃 프런트 킥의 발생빈도가 이처럼 높아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위닝의 세세한 모션을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굉장히 거슬리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 빠른 크로스를 발끝으로 차 넣거나, 슬라이딩 헤딩으로 처리하는 장면이 많다 |
▲ 심지어 힐 킥까지 아웃 프런트로…. 아웃 프런트에 환장했나!? |
골키퍼의
밸런스는 최악
다른 문제점들은 그냥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이지만 골키퍼의 밸런스는 최악이다. 축구 게임에서 패스의 성공률이 지나치게 높을 경우, 개발자는 대량득점을 막기 위해서 골키퍼의 방어능력을 함께 높이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번 「위닝 8」의 경우 패스의 성공률은 적당한 수준(사실 아주 약간 높다)인데 골키퍼의 방어능력을 지나치게 높여서 전체적인 밸런스까지 위협하고 있다. 특히 1:1 상황을 맞은 골키퍼는 모두 야신의 혼을 불러들였는지 분명히 막을 수 없는 타이밍과 각도까지도 모두 커버해낸다. 전작에서 1:1 상황에서의 골 성공률이 70% 정도였다면 이번에는 30% 정도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게다가 그런 주제에 공중볼에는 얼마나 서툰지 볼이 조금이라도 빠르게 날아오면 거의 잡아내질 못하고 펀칭을 해낸다. 물론 전작에서 골키퍼의 공중볼 캐칭 능력이 지나치게 높았기 때문에 조정이 필요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너무 조정을 한 듯 하다. 분명히 잡을 수 있는 각도인데도 포기해버리거나, 아래 사진처럼 마치 '나는 볼을 잡았어!'라고 외치는 듯 두 팔을 들고 멍하니 서있는 골키퍼를 보면 게임의 사실성이 대폭 하락하는 느낌이다. 앞으로 출시될 인터내셔널 버전이나 FE에서는 반드시 개선되길 바란다.
▲ 타이밍도, 각도도, 거리도…. 충분히 잡아낼 수 있는 볼인데 왜 저래!? |
▲ 골을 먹을 때까지 저러고 서 있었다. 허수아비냐? |
7편의 두근거림은 없지만
없다. 뭔가 획기적으로 변했다기보다는 밸런스 조정과 추가요소에 주력한 느낌이 강했다. 사실 「위닝 7」의 높은 완성도 때문에 많은 기대를 하고 있었던 필자로서는 「위닝 8」이라는 타이틀을 붙이기에 조금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 굳이 이름을 붙여보자면 「위닝 일레븐 7 슈퍼 파이널 베스트 에볼루션」이랄까? 하지만 그런 기대를 마음 속에 접어두고, 단지 하나의 게임으로서 바라보자면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작품이다. 다양한 컷 신의 도입과 모션의 증가로 그동안 부족하다고 평가 받던 현장감을 극대화했으며, 골키퍼를 제외하고는 밸런스도 적절하고 오리지널 팀으로 시작할 수 있는 마스터 리그도 현재로서는 매우 만족스럽다. 두근거림은 없지만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친구를 훨씬 멋진 모습으로 다시 만나는 느낌이랄까?
일본어를 거의 모르기 때문에 고되고 힘든 '영문화' 작업이 남아있지만, 중계까지 한글화된다는 인터내셔널을 기다리면서 내년 1월까지는 충분히 즐겁게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이번에는 몇 개나 되는 8편을 사게 될지 두렵기도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