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러 어드벤처!? 천만에, 이건 수퍼 히어로물 롤플레잉이야!(바이오 해저드 아웃브레이크)
2004.09.09 10:40게임메카 송찬용
「바이오 해저드」 시리즈의 첫 작품이 PS로 발매된 건 지금으로부터 8년 전이다. 당시에는 무서운 게임, 호러라는 장르가 거의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게임을 해보고 충격을 받은 사람이 많았다. 필자는 호러 영화를 봐도 그다지 무서움을 느끼지 않는 편이었는데, 「바이오 해저드」에 등장하는 좀비의 기궤한 움직임과 음산한 분위기에 가슴을 졸이면서 플레이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왜 영화보다 무섭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호러 영화의 등장인물이 좀비에게 공격을 받아도 어차피 화면 속에서 펼쳐지는 남의 얘기일 뿐. 창문을 부수며 뛰쳐나오는 괴물이 무서운 기세로 습격해오는 연출이 있다면 잠시 놀라겠지만, 이건 공포와는 다른 감정이다.
▲ 각 시나리오마다 서로 다른 장소에서 상황이 펼쳐진다 |
그러나 「바이오 해저드」는 영화와 달리 진짜 무섭다고 느꼈다. 내가 주인공을 조작하기 때문에 주인공이 살아남을 수 있는지 여부는 내 플레이 여부에 달려있다. 내가 잘 하지 못하면 그로 인해 주인공은 결국 죽어버린다. 주인공에 대해 완벽한 감정이입이 가능토록 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눈앞의 좀비는 더 이상 브라운관 속의 존재가 아니다. 좀비의 행동 하나하나가 바로 나 자신에 대한 위협이 된다. 그렇기에 호러 영화를 볼 때보다 공포감을 느끼는 것이 아닐까.
PS2와 게임큐브의 뛰어난 그래픽과 비교하면 PS용 「바이오 해저드」는 상당히 조악한 폴리곤 그래픽이다. 현재는 하드웨어의 성능도 향상되어 「바이오 해저드」 타입의 게임도 다수 발매됐다. 그러나 그 때 이상의 공포는 게임에서 느껴본 적이 없다. 이유는 물론 ‘익숙함’ 때문이다. 아무리 좀비의 겉모습과 움직임이 리얼하다고 해도 많은 호러 게임을 플레이해본 사람에게 있어 게임 중에 등장하는 많은 오브젝트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좀비는 게임 속에서 ‘비교적 약한 적’이라는 인식이 생겨나 헌터 등의 강적이 나타나는 게임 후반이 되면 좀비밖에 없는 장소에서는 오히려 안도감마저 느끼게 된다.
이런 인식은 「바이오 해저드」의 온라인 버전이라는 새로운 모습으로 주목을 모으고 있는 「바이오 해저드 아웃브레이크(이하 아웃브레이크)」에서도 당연히 찾아볼 수 있다. 더 이상 좀비는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의 슬라임과 같다. 「바이오 해저드」 시리즈를 처음 플레이하는 사람이라면 「아웃브레이크」에서도 공포를 느낄지 모른다. 그러나 「바이오 해저드」 시리즈의 대부분을 몇 번씩 플레이해 온 필자는 좀비를 봐도 게임 속 오브젝트로밖에 볼 수 없게 됐다. 9월 9일 발매된 「아웃브레이크」의 속편을 플레이한다 해도 「바이오 해저드」를 처음 접했을 때의 공포는 느낄 수 없을 것이다(아직 아웃브레이크 file 2는 플레이하지 못했다).
▲ 9월 9일 발매된 따끈따끈한 최신작 |
▲ 전작에 비해 액션 면에서 많이 강화됐다 |
그러나 이것 또한 나름대로 괜찮다고 생각한다. 「바이오 해저드」 시리즈의 등장인물로서 몇 번씩 등장하고 있는 크리스와 질도 이제는 좀비에게 익숙해졌을 것이다. 「3」나 「베로니카」에서 등장하는 그들은 더 이상 크리처에 겁먹는 신참들이 아니라 엄브렐러가 만들어 낸 크리처와 싸우는 수퍼 히어로라는 느낌마저 든다. 주인공에 감정을 이입시켜 플레이할 것이라면 공포를 느낄 필요가 없는 것이다. 「아웃브레이크」의 공식 장르 분류는 ‘호러/액션 어드벤처’지만 필자는 ‘히어로/액션 롤플레잉’으로 분류한다.
▲ 라쿤 시티에서 일하는 각양각색의 사람들. 이곳을 탈출하는 것이 목표다 |
주제가 조금 어긋났는데, 영화나 애니메이션의 히어로가 겪게 되는 당연(?)한 상황 중에 시민이나 연인을 인질로 잡히는 경우가 있다. 누군가를 지키면서 싸워야 한다면 적을 쉽게 쓰러뜨릴 수 없음은 당연한 사실. 왜 이런 얘기를 하나면 이런 상황이 「아웃브레이크」의 네트워크 플레이에서 자주 접해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여러 번 반복 플레이한 시나리오에서 게임 초보자와 함께 플레이한다고 하자. 싱글 플레이일 때는 언제나 무시했던 좀비들에게 초보자가 무모하게 빗자루 하나로 달려든다. 이대로 놔둘 것인가? 그냥 놔두면 간단히 죽어버릴 것이기 때문에 나 역시 싸움에 가세하게 된다. 좀비를 쓰러뜨린 후에는 대미지를 입은 초보자 캐릭터에게 허브를 조합해 주고 안전한 장소까지 안내해준다. 이렇게 플레이어는 라쿤 시티 시민을 구하는 수퍼 히어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역할을 플레이’함으로써 이제는 지긋지긋해진 좀비를 상대로도 여전히 재미있게 즐길 수 있다. 또한 온라인 게임이면서도 자유롭게 채팅을 할 수 없다는 시스템적 제약 덕분에 역할에 더 몰입해 플레이할 수 있다.
주인공에 완벽하게 감정을 이입시킨다. 「아웃브레이크」는 이를 가능토록 하는 몇 안 되는 게임 중 하나다.
▲ 좀비에게 공격당하는 동료를 구하는 모습 |
▲ 최대 4명까지 같이 즐길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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