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팅게임의 한 완성형을 보여준 그라디우스 5(그라디우스 V)
2004.10.22 15:02게임메카 송찬용
5년만의
후속작
게임에 대해 좀 안다고 자부하는 게이머라면 플레이는
해보지 않았더라도 최소한 「그라디우스」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라디우스」는 1985년에 코나미에서 제작한 횡스크롤 슈팅으로 「썬더포스」,
「R-TYPE」 시리즈 등과 더불어 오래 전부터 꾸준히 시리즈가 이어져온 명작 슈팅게임이다.
「그라디우스」에서 떠오르는 대표적인 것들이라면 옵션, 모아이, 세포, 촉수, 독특한
파워 업 시스템 등인데 당시 이런 독특한 분위기와 획기적인 게임 시스템, 멋진 BGM과
아름다운 영상 등에 힘입어 굉장한 인기를 구가했다. 「그라디우스」가 아케이드로
발매되고 나서 패미컴, MSX, PC88, X1, X68000, PC엔진, PS, SS, WIN95 등 굉장히
다양한 기종으로 이식된 것만 봐도 이 작품이 얼마나 인기가 있었는지 알 수 있으리라.
▲ 지금 보면 초라하지만 당시로서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
▲ 그라디우스!! 역시 모아이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
이후 그 인기에 더해 1986년에 외전격인 「사라만다」, 1987년에 「라이프 포스」가 제작되었으며 1988년 대부분의 사람들이 최고의 명작이라고 일컫는 「그라디우스 2 고퍼의 야망」이 등장했다. 그 다음 해인 1989년에 「그라디우스 3」가 등장했지만 그 이후로는 발매가 뜸해져 무려 10년이나 지난 1999년에 정식 후속작인 「그라디우스 4」가 등장했다(도중에 「사라만다2」나 PS판 오리지널인 「그라디우스 외전」이 등장하긴 했다). 아쉽게도 이미 90년대 들어 슈팅이라는 장르는 마이너로 전락했기에 제작사 측에서도 이 과거의 명작에 크게 신경을 쓰지 못한 것 같았고, 필자 역시 「그라디우스 4」에 대해서는 별 감흥이 없었다. 특히 최근 슈팅게임의 대세인 탄막 슈팅류와는 다르게 횡스크롤 슈팅은 대체로 암기가 주류를 이루기 때문에 더욱 경원시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2003년, 오랜 침묵을 지키고 있었던 「R-TYPE」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인 「R-TYPE FINAL」이 등장했다. 솔직히 「R-TYPE」 시리즈에는 별 관심이 없었던 필자였지만 우연한 계기로 인해 200시간 이상 플레이하며 아직 횡스크롤 슈팅의 혼이 죽지 않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재미있게 「R-TYPE FINAL」을 즐기다보니 당연히 2004년으로 발매예정이 잡혀있던 5년 만의 신작 「그라디우스 V」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예약까지 해가며 발매 당일 입수해 곧바로 플레이를 시작했다.
[그라디우스 5 보스 클리어 수퍼 플레이 영상 보러 가기]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는 화려한 그래픽
필자가 「그라디우스 V」를
플레이하며 처음 느꼈던 것은 바로 화려함이다. 지금까지 필자가 슈팅 역사상 최고의
그래픽이라고 칭송하던 「이카루가」의 그래픽에 절대 뒤지지 않는 화려하고 깔끔한
그래픽(하긴 둘 다 트레져에서 제작했으니 사실 두 게임의 그래픽이 비슷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다양하고 화려한 이펙트, 특히 항상 직선으로 나가던 레이저에서 탈피한
타입 2의 곡선 레이저 등 플레이하는 내내 눈이 즐거웠다.
▲ 화려하고 깔끔한 그래픽 |
▲ 타입 2의 디렉션 레이저. “가라 핀판넬!”의 기분을 느낄 수 있다 |
몇몇 분들은 예전의 그 아기자기한 맛이 사라진 것이 아니냐고 걱정할지도 모르지만, 사실 예전의 「그라디우스」 시리즈들도 발매 당시에는 아름다운 그래픽으로 유명했다. 이번 작품 역시 역대 최고의 그래픽을 보여주면서도 「그라디우스」특유의 느낌을 잃어버리지 않았다는 점에서 더욱 대단하다.
과거의
향수를 그대로
「그라디우스」를
대표하는 상징물들로 빅 바이퍼, 옵션, 레이저, 보스 러시, 고속 스크롤, 세포벽,
코어 등을 꼽을 수 있을 텐데 이번 작에서도 어김없이 위의 요소들이 모두 등장간다.
또한 상당수의 보스들을 과거 시리즈에서 등장했던 녀석들을 차용했기에 향수를 더해준다.
특히 빅코어 mk-2, 빅코어 mk-3 같은 경우는 전작에서의 전용 BGM을 거의 그대로
가져다 썼는데, 그래픽이 일신되어 화려해진 과거의 보스들과 싸우며 예전 BGM을
들을 때의 그 기분이란 정말…. 이밖에도 「그라디우스 2」의 첫 번째 스테이지를
연상시키는 스테이지 1, 스테이지의 4의 세포벽 등 과거의 느낌을 그대로 살려놓으면서도
새로운 그래픽과 새로운 공략법으로 포장한 것은 온고지신이라는 말에 정말 딱 들어맞는다.
▲ 「그라디우스 3」에서 악명 높았던 빅코어 mk-3 |
▲ 「사라만다」의 제로스 포스 |
▲ 이번에도 어김없이 등장하는 고속 스크롤 지대 |
물론 이런 과거에 대한 향수는 「그라디우스 V」의 조미료, 팬 서비스에 지나지 않는다. 이 게임은 단순히 과거의 요소들을 대충 짜깁기 해 올드 게이머들에게 어필하려는 작품이 아닌 것이다.
적당한
밸런스의 난이도
비단 「그라디우스」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횡스크롤 슈팅게임들은 상당한 난이도로 악명이 높다. 그도 그럴 것이 횡스크롤의
특성상 적탄을 피하는 것이 아닌 지형 등을 이용한 일명 '모르면 죽어라'식의 암기가
주류를 이루기 때문이다(인간의 눈이 좌우로 붙어있는 이상 반사적으로 취해버리는
눈의 좌우 회피운동은 횡스크롤 슈팅에는 적합하지 않다). 게다가 「그라디우스」
시리즈는 독특한 파워 업 시스템을 채택하고 있어 풀 파워 업으로 진행을 하다가
한 번 죽어버리면 장비가 초기치로 돌아가 버리는 등 다시 파워 업을 하지 못하고
그대로 족족 죽어나가 버리는 경우가 많아서 '한 번 죽으면 끝'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하지만 '모르면 죽어라'라는 것을 반대로 해석해본다면 '알면 산다'는 것이다. 즉,
처음에는 몰라서 어쩔 수 없이 죽게 되더라도 한 번 죽고 나서 그 부분의 특성을
알게 된다면 그 다음부터는 충분히 안전하게 대처할 수 있다는 말이다. 물론 미칠
듯이 날아오는 엄청난 양의 탄환들 속을 헤집어 나가며 카타르시스를 느껴보는 것도
슈팅게임의 한 재미지만 본래 예전의 슈팅게임들은 이런 식으로 암기하며 진행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최근 대세를 이루는 탄막류 슈팅이 등장한 것은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다. 물론 「그라디우스」 시리즈도 그런 암기류의 대명사지만 이번 「그라디우스
V」에서는 그 암기와 애드립으로 인한 회피의 쾌감이 절묘한 밸런스를 이루고 있다.
우선 단순히 적탄을 보고 피하기만 해서는 진행할 수 없는 구성이 군데군데 보인다. 결정적으로 이번 작에서는 빅 바이퍼의 피탄 판정이 정말로 작다. 탄막 슈팅으로 유명한 「도돈파치」나 「사이바리아」에 절대로 뒤지지 않는 수준의 피탄 판정을 자랑하기 때문에 과거의 “살짝 스치기만 해도 죽어버리니 완벽히 외워서 안전한 장소를 찾아 움직여야 하는” 수준은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스테이지 3 보스나 스테이지의 4 세포벽 같은 곳은 기본적으로 암기를 해야 넘길 수 있겠지만 전반적으로 피탄 판정이 좋고 이쪽의 화력도 만만치 않기 때문에 최근의 대세인 “피하는 쾌감”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 스테이지 2의 닫히는 문. 미리 지나가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다 |
▲ 죽을 것처럼 보이지만 안 죽는다. 기가 막힌 피탄 판정 |
▲ 후반으로 가면 이런 상황도 나오지만 충분히 피할 수 있다 |
게다가 이번에는 한 번 죽더라도 일정 포인트에서 시작하지 않고 그 장소에서 곧바로 시작한다. 또 가지고 있던 옵션도 그대로 가지고 시작할 수 있기 때문에 예전에 비해 난이도도 훨씬 떨어졌다. 「R-TYPE FINAL」이 끝까지 일정 포인트 부활을 고집한 것과는 반대라고나 할까. 또한 이번에도 코나미 커맨드는 건재하기 때문에(상상하하좌우좌우R1R2를 누르면 기체가 풀 파워 업 된다. 이 커맨드는 「그라디우스」에서 처음으로 사용되었으며 그 이후 코나미 커맨드라는 이름으로 유명세를 타며 다른 게임에도 지속적으로 사용되었다) 여차하면 한 번 사용해줘서 상큼하게 게임을 진행할 수 있다. 이것은 스테이지 셀렉트로 연습을 할 때도 상당한 도움이 된다.
기발한 아이디어와 구성
예약팍에 동봉된 DVD의 개발자 인터뷰에서도 등장하지만 「그라디우스
V」의 묘미, 핵심은 바로 옵션조작이다. 「R-TYPE」 시리즈의 묘미가 절대로 죽지
않는 무적의 포스라면 「그라디우스」의 묘미는 무적의 옵션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인데,
이번 「그라디우스 V」에서는 R1 버튼을 이용한 옵션조작이라는 요소를 첨가하여
그 재미를 한층 부각시켜주고 있다. 최근에야 슈팅에서 여러 기체들 가운데 하나를
골라서 진행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이전에는 기체는 오로지 한 대 밖에 없었으며,
이번 「그라디우스 V」에서도 역시 선택 가능한 기체는 빅 바이퍼 한 대뿐. 그러나
4 종류의 무장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수 있기 때문에 실제로는 4대의 기체가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타입 1은 R1 버튼을 누르면 기체를 따라오던 옵션이 그 자리에서 정지하기 때문에 옵션 사이의 간격을 늘린 후에 고정을 시켜 지형을 무시한 공격 등이 가능하다(이전에도 강제 스크롤을 이용해 지형을 넘어 공격이 가능했지만 이번에는 고정 옵션을 통해서 초보자도 쉽게 그런 테크닉을 구사할 수 있게 되었다).
타입 2는 R1 버튼을 누르고 있는 동안 기체는 움직일 수 없지만 옵션에서 나가는 레이저의 각도를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는데 덕분에 한 바퀴 돌리기만 하면 화면에 있는 적들이 모조리 사라져버리는 고성능 옵션이다(게다가 그 곡선이 이루어내는 아름다움이란…). 물론 그 동안은 기체를 조작할 수 없기 때문에 고도의 컨트롤이 요구되기는 하지만 단순히 레이저를 돌리고 있기만 해도 즐겁다고 할까?
타입 3은 기체를 중심으로 옵션이 위 아래로 강제 배치되는데 R1 버튼을 한 번 누를 때마다 옵션 사이의 간격이 위아래로 벌어지거나 좁혀지고, 타입 4는 R1 버튼을 누르고 있는 동안 옵션이 기체의 주위를 빙글빙글 돈다. 타입 3, 4 모두 궁극적인 성능은 1, 2에 비해 떨어져서 후반으로 갈수록 고생하게 되지만 이해하기 쉽고 편한 기능 덕분에 초보자들이 무리 없이 골라서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
▲ 4 가지 타입의 옵션을 선택할 수 있다 |
▲ 타입 1의 고정 옵션 |
▲ 빙글빙글 돌리기만 해도 재미있는 타입 2의 디렉션 |
▲ 옵션이 강제 배치되어 좀 힘들지만 초보자에게는 편할지도? |
▲ 화려한 로테이션 옵션 |
이렇게 다양하고 특색이 뚜렷한 옵션 타입이 준비되어 있으며, 지형 슈팅게임답게 스테이지 구성이 이곳저곳 벽으로 막혀있다든가 벽이 움직인다든가 하기 때문에 각 옵션의 특징에 맞춰 돌파해나가는 패턴을 만드는 것이 정말 재미있다. 특히 스테이지 6의 가스 지대는 정말 기발한 아이디어가 돋보인다고 밖에 할 수 없는 곳. 각 타입에 따라 돌파방법이 다르기 때문에 시간을 들여 이런저런 연구를 해볼 가치가 있다. 이런 기발한 아이디어는 그 외에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스테이지 5 보스의 경우 정말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재미있는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어 신선한 충격이었다. 얼핏 보기에는 과거 시리즈에서 볼 수 있었던 요소들을 모아놓은 것 같지만 실제로는 전혀 다르고 참신한 아이디어의 구성을 보여준 제작진들에게 박수~!
▲ 지형 자체가 회전을 하며 바닥에 쌓여있던 가스들이 이리저리 떨어진다 |
▲ 운석이 적의 미사일을 막아주지만 운석에 부딪혀도
죽기 때문에 |
가정용
타이틀로는 조금 아쉽다
필자가 지금까지 적은 글을 보면 알겠지만
개인적으로 「그라디우스 V」는 슈팅게임의 명작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몇 가지 아쉬운 점이 없을 순 없다.
우선 이번 「그라디우스 V」가 아케이드의 이식작이 아닌 가정용 오리지널로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가정용으로만 즐길 수 있는 그 무엇인가가 부족하다는 것. 게임 자체는 굉장히 충실하기 때문에 슈팅 게임 마니아인 필자 같은 사람들은 꾸준히 플레이하며 재미를 느낄 수 있겠지만(현재 플레이 시간 90시간 돌파) 슈팅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은 일반 유저들에게는 그 외에도 관심을 끌 수 있을 부록 같은 것이 필요하다. 대표적으로 「R-TYPE FINAL」은 기체 101대 모으기라거나 다양한 수집요소, 스토리성이 강한 연출, AI 대전 등을 준비해둬서 많은 사람들이 오랜 시간 즐길 수가 있었지만 「그라디우스 V」에는 최종 스테이지까지 한 번 클리어하면 등장하는 웨폰 에딧을 제외하면 딱히 이렇다 할 만한 추가요소가 없다. 게임 도중에 등장하는 이벤트도 딱 두 번뿐이고 웨폰 에딧을 꺼낸다고 해도 몇 가지 무기를 취향에 맞춰 조합할 수 있는 정도의 수준이기 때문에 게임진행 자체에 빠져들지 않는 한 큰 메리트는 되지 못한다. 개인적으로는 스테이지 하나하나마다 이벤트나 대사 등을 준비해둬서 스토리성을 강조한다거나(새턴으로 이식되었던 트레져의 「레이디언트 실버건」의 경우 오리지널 새턴 모드에서 캐릭터들의 대사들이 심심찮게 등장했었고, 오리지널 보스들도 등장했는데…) 빅 바이퍼 개발사에 등장하는 빅토리 바이퍼를 출현시킨다거나 다양한 보스들의 설정메뉴 같은 것들을 준비해뒀다면 더욱 많은 사람들이 빠져들지 않았을까? 게임 그 자체를 재미있게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긴 하지만 가정용이라는 플랫폼의 특성을 생각해본다면 게임 클리어 이외의 목적성을 부여한다거나 집에서 편안하게 즐길 수 있을 만한 다양한 요소들을 준비하는 것도 역시 중요하지 않을까?
그리고 이것은 국내 발매판의 경우인데 게임 내의 대사들이 번역되어있지 않아 스토리 이해가 힘들다는 것과 일본판에 있는 스코어 어택 모드가 사라진 점도 아쉽다. 스코어 어택 모드란 코나미에서 실시한 「그라디우스 V」의 인터넷 랭킹을 말하는데, 이 스코어 어택 모드에서 게임을 플레이 하면 패스워드가 나오고 이 패스워드를 코나미 사이트에 입력해 순위를 겨루는 방식이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국내 발매판에서는 스코어 어택 모드가 사라져서 인터넷 랭킹에 참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코나미에서 한국 유저들은 인터넷 랭킹에 참여하지 못하게 하려고 한 건지 단순히 귀찮아서(사실 삭제하는 게 오히려 더 귀찮을 텐데…) 삭제를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R-TYPE FINAL」의 인터넷 랭킹에 참여해서 상품까지 발송 받은 필자로서는 매우 유감스러운 부분이다.
▲ 대사가 모두 일본어로 나온다 |
▲ 메뉴를 아무지 뒤져도 나오지 않는 스코어 어택 모드 |
뭐, 이런 사소한 불만점들이 있긴 하지만 「그라디우스 V」는 게임 그 자체만을 놓고 본다면 과거 정통 시리즈의 최신판에 해당하는 명작이다. 개개인의 취향에 따라 좋고 나쁨이 갈릴 수는 있겠지만 슈팅이라는 장르를 좋아하는 유저들이라면 반드시 한 번쯤은 플레이 해볼 가치가 있는 게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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