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지 원츄~. 헤일로 2 원츄~(헤일로 2)
2004.11.15 10:01프리라이터 박세주
FPS
강화 계획
1인칭 슈팅게임(이하 FPS)이라는 완성된 형태의 게임 장르가 현재 얼마나 정체되어 있고 안정 지향적인지는 그 나물에 그 밥처럼 보이는 대부분의 FPS 게임을 보면 느낄 수 있다. 워낙 견고한 스타일을 자랑하는 까닭에 이 장르에서는 본질적인 게임 플레이 부분에 뭔가 새로운 가치를 부여한다는 시도 자체가 무리인지도 모르겠다.
‘주관 시점으로 게임을 진행하며 3차원 환경 속에서 각종 무기와 지형지물을 활용해 적과 싸운다’는 컨셉. 틀림없이 매력적이고 게임으로서 더할 나위 없이 멋진 스타일이지만 여기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이미 FPS라고는 불릴 수 없다. 툼 레이더의 라라 크로포트는 ‘3차원 환경 속에서 각종 무기와 지형지물을 활용하여 적과 싸우기’는 하지만 주관 시점이 아니라는 이유로 FPS가 아닌 액션 게임으로 분류되지 않는가. 그리고 놀랍게도 시점의 차이 하나 때문에 우리가 FPS라고 부르는 게임들과는 ‘전혀 비슷해 보이지도 않는’ 게임이 되어 버린다.
이처럼 FPS는 장르의 성격이 너무 명확하고 스타일이 확립되어 있어서 변형이나 발전의 여지가 좀처럼 보이질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인터플레이의 디센트 시리즈는 많은 게이머들에게 신선한 충격이었을 것이다. FPS의 까다로운 ‘필수 조건’을 모두 충족시키면서도 주인공을 ‘지면에서 떨어질 줄 모르는 인간’이 아니라 공간을 자유로이 활용할 수 있는 전투기로 설정한 것만으로 게임 플레이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오지 않았는가.
▲ 디센트는 걸음마에 만족하던 FPS에 날개를 달아 주었다 |
HALO의 미덕
그렇다면 최고의 콘솔용 FPS로 군림하고 있는 HALO의 미덕은 무엇이었는가? 그리고 그것을 ‘반드시 뛰어넘어야만 하는’ 운명을 지닌 속편 HALO 2의 미덕은 무엇인가? 도대체 어떤 새로운 게임 플레이를 창출해 냈기에 FPS라면 치를 떠는 사람들마저도 호기심에 기웃거리게 만드는 것일까?
대답은 실망스럽게도 ‘게임 플레이가 그다지 새롭지는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헤일로 시리즈를 통해 번지 소프트가 제시하는 재미의 벡터이기도 하다. FPS라는 잘 짜여진 틀을 일부러 깨려고 하지는 않지만, 그 속에서 소름끼칠 정도로 완성도를 높이는 것. 그게 바로 HALO 시리즈의 위대함이며 사람들이 그토록 이 게임에 열광하는 이유다. 그런 관점에서 HALO 2의 지상목표는 어찌 보면 ‘FPS 최종 강화 계획’인 것인지도 모르겠다.
▲ HALO 2는 ‘어디까지나 FPS'임을 강조하는 듯한 구성을 가지고 있다 |
압도적인 볼륨 속에 녹아있는 개발자들의
애정
영화든 게임이든 속편이 성공하려면 전작보다 크고, 멋지고, 자극적이어야 한다. 그러면 HALO 2는 전작보다 큰가? 확실히 그렇다. ‘장대하다’고 평가받은 전작보다 스토리가 더욱 넓고 깊어졌다. 다만 지구와 코버넌트, 그리고 제 3의 세력인 플러드 사이의 얽히고 설킨 관계가 풀리기는커녕 더욱 꼬여버린 느낌 때문에 어리둥절해 하는 유저들도 많을 것이다. 전작에서 살짝 선보였던 지구와 코버넌트의 공적(公敵) ‘플러드’가 HALO 2에서 완전히 정체를 드러내리라고 기대한 사람들은 또 다시 감질나는 티저 CF를 본 것 같은 기분에 가슴이 답답했을 지도 모르겠다. 개발자들도 이 매력적인 스토리를 조금씩 확장해 나가는 과정에서 그만 부려서는 안 될 욕심이 생긴 걸까. 어쨌든 이렇게 해서 HALO 시리즈는 적어도 3부작 이상의 볼륨을 가지게 될 것이 확실해졌다.
▲ 스토리는 여전히 감질난다. 3탄을 기대하세요~ |
코버넌트, 그 녀석들의 사정
HALO 2의 게임 진행상 가장 큰 특징이 있다면 인간과 코버넌트, 대립하는 두 세력의 시점을 넘나들며 플레이어의 경험을 확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게임 중에 등장하는 코버넌트 아비터와 주인공이 번갈아가면서 플레이어 캐릭터가 되는데, 이는 전작에서의 싸움이 코버넌트에게 평면적인 ‘악역’의 역할을 떠넘겼던 것에 반해 이번에는 코버넌트와 협력 관계를 맺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각 종족에게 그들 나름의 정의와 목표가 존재하는 것을 시사한다는 점에서 매우 인상적이다. 코버넌트인 아비터를 조작할 때는 특이한 무기 체계나 그들만의 기술 덕분에 진행이 수월해진다는 점 외에도 일부 코버넌트가 이 전쟁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도 짐작할 수 있어서 흥미롭다.
▲ 코버넌트가 단순한 ‘악’은 아니라는 사실이 좀 더 분명해진다 |
Xbox기에 가능한 그래픽
HALO 2는 전작보다 멋진가? 물론이다. HALO 2를 직접 플레이해 본 유저들이 가장 민감하게 의식하는 부분이 바로 발전된 그래픽일 것이다. 지구군 기지인 카이로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초반 장면에서는 전작과의 차이점을 발견하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게임을 진행할수록 광대한 공간감과 텍스처의 디테일, 아름다운 특수효과들이 눈을 즐겁게 해 줄 것이다. 반복되는 배경이 많던 전작과는 달리 HALO 2는 같은 실내 장면이라도 다양한 구조와 치밀한 레벨 디자인을 통해 현실감 넘치는 공간으로 구성해 냈다. 군더더기라곤 전혀 없다. 인물들의 모델링은 더욱 세밀해져서 이벤트 장면이 모두 리얼타임 폴리곤임에도 불구하고 헐리우드 배우 뺨치는 멋진 표정연기를 보여 준다. 물체의 질감 또한 확실히 표현되어 금속 바닥과 소파의 느낌이 틀리고 인간의 손등, 코버넌트 엘리트의 맨 얼굴이 마치 손에 만져질 듯 리얼하게 묘사되어 있다. 물론 각종 무기를 사용할 때의 플레어 및 착탄 효과, 폭발이나 충돌 시의 특수효과도 전작을 훨씬 상회하는 퀄리티를 보여준다.
▲ 아름다운 이벤트 씬도 전부 리얼타임 폴리곤 |
▲ 이 정도의 레벨 디자인에 이 정도의 그래픽… 더 이상 좋을 수는 없다! |
새로운
무기 체계와 이동 수단
그러면 HALO2는 전작보다 자극적인가? 여러 가지 면에서 그렇다. 양 손에 무기를 쥘 수 있는 시스템은 어떻게 조합해야 눈앞의 적을 가장 손쉽게, 효과적으로 상대할 수 있을 지 고민하게 만들 것이다. 전작에서도 코버넌트의 무기를 주워서 사용한다는 요소가 호평이었는데, HALO2는 이를 한층 더 발전시켜 손이 쉴 틈을 주지 않도록 만든 것이다. 덕분에 마스터 치프는 코버넌트의 에너지 실드를 플라즈마 피스톨로 날려버림과 동시에 라이플 사격을 가할 수 있는 것이다.
전작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인 각종 이동 수단 역시 대폭 강화되었다. 종류는 물론이고 각각의 세부적인 기능을 활용하도록 유도하는 연출 장치들이 게임의 적재적소에 사용되어 있다. 또한 이렇게 만족스러운 싱글 플레이에 더해서 Xbox Live를 이용한 세계인들과의 대전이 게이머를 기다리고 있다.
▲ 양손 사용의 도입으로 공략에는 약간의 전략성이… |
▲ 코버넌트와 스파르탄의 기술력의 차이를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있다 |
Xbox Live로 더욱 깊어지는 HALO의 세계
HALO 2는 Xbox Live를 통해 세계의 HALO쟁이들을 만나 대전할 수 있는 ‘만남의 장’을 제공한다. 멀티플레이 모드는 다양하며 그 모든 모드가 인간 대 인간의 싸움이기에 가능한 흥분을 극한까지 만끽하도록 해 준다. 누구나 마스터 치프가 될 수 있지만 승자는 오직 한 명뿐이다. 또한 플레이어들은 지구인 스파르탄 뿐 아니라 코버넌트 엘리트가 될 수도 있다. 이것은 코버넌트인 아비터를 사용할 수 있는 싱글 모드의 컨셉에 대응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 스파르탄 뿐만 아니라 코버넌트 엘리트도 사용할 수 있다 |
▲ ?화면 분할을 통한 멀티 게이밍 |
완벽한 한글화에는 뿌듯함마저 느낄 정도
한국의 게이머로서 HALO 2를 플레이하면서 가장 반갑고 기분 좋은 일이 있다면 뭐니뭐니해도 국내의 유명 성우진을 기용한 완벽한 목소리 더빙이 아닐까. 마스터 치프의 이정구 씨, 후드 제독의 박일 씨 등 한글화에 참여한 모든 성우들이 훌륭한 연기로 게임의 분위기를 더욱 돋워주고 있다. 또한 게임내의 메뉴나 각종 메시지에서부터 패키지에 동봉된 매뉴얼 류에 이르기까지 플레이어에게 게임에 관한 정보를 주는 것은 무엇이든 높은 수준의 한글화 작업을 통해 국내 게이머들이 HALO 2라는 빅 타이틀을 좀 더 편하게 플레이할 수 있도록 배려한 점은 콘솔 게임 한글화 작업의 훌륭한 귀감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HALO 3를 기다린다
HALO는 분명 강렬한 인상을 남긴 게임이었고 여운도 그만큼 많이 남았다. 이번에 발매된 HALO 2는 모든 면에서 전작을 압도하는 수준으로 이 게임을 기다려온 많은 게이머들의 기대를 그 충실한 내용으로 보답하고 있다. 하지만 스토리가 약간 무리하게 확장되어 종반으로 갈수록 집중력이 떨어지는 경향이 있어서 조금은 아쉬움이 남는다. 부디 ‘틀림없이 제작될’ 3편에서는 HALO 시리즈를 즐겨 온 모든 게이머들이 납득할 수 있는 깔끔한 마무리를 보여주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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