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합의 감미로움으로 무장한 고품격 격투게임(데프잼 파이트 포 뉴욕)
2005.01.11 17:23게임메카 송찬용
필자에게 2004년 국내에 발매된 비디오게임 중에서 3가지만 추천하라고 한다면 반드시 그 안에 들어갈 타이틀이 ‘데프잼 파이트 포 뉴욕(이하 데프잼)’이다. 대전격투와 액션을 절묘하게 퓨전시킨 후 힙합이라는 향신료로 상긋하게 구미를 자극하는 게임이 바로 데프잼이다.
Def Jam이 뭐지?
우선 게임을 시작하기 전에, 이 글을 읽기 전에 Def Jam이 뭔지 알아야 한다. 뭐, 그렇다고 뼛속 깊숙이 단물까지 쪽쪽 빨아먹을 정도로 파고들 필요는 없고, 대략 무슨 말인지만 알아두면 OK.
간단히 말해 Def Jam은 상표다(-_-). 조금 더 덧붙여 설명하자면 한 음반회사에서 내놓는 힙합 장르에 붙이는 상표(lable)라고 할까? 우리나라에서 고품격 가전제품을 표방하며 각 회사들이 세탁기, 김치냉장고, 냉장고 등에 ‘하우젠’, ‘클라쎄’ 등의 상표를 붙이는 것처럼 힙합 음악에 붙이는 상표인 것이다. |
보통 레이블(label)이란 어떤 특정한 타입의 음악을 제작하는 회사의 한 부서를 말하는데, 다른 뜻으로 음악의 특성을 나타내기도 한다. 거대 음반 메이커 폴리그램의 경우 많은 레이블을 갖고 있어 랩과 힙합음악의 레이블이 데프잼(Def Jam), 재즈와 블루스가 버베(Verve), 록과 컨트리 음악이 A&M, 클래식이 머큐리(Mercury) 등이 대표적이다.
즉, Def Jam이라 하면 특정 가수나 그룹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Def Jam의 레이블을 달고 나오는 힙합 가수 또는 그룹을 통칭하는 것이라 생각하면 된다. 데프잼 파이트 포 뉴욕과 전작 데프잼 벤데타는 이들 Def Jam의 유명 뮤지션들이 등장하는 격투게임인 것이다.
▲ Def Jam 소속의 유명 뮤지션 LL cool J(왼쪽), SHAWNNA(오른쪽) |
|
▲ 실제 메써드 맨(왼쪽)과 존 버든(오른쪽) |
▲ 게임에서는 이렇게 등장한다 |
재미있는
데프잼
사람들은 흔히 그 게임의 장점을 말하라고 할 때 그래픽과 음악을 예로 든다. 그래픽이 좋으니까, 음악이 좋으니까…. 하지만 필자의 의견은 좀 다르다. 게임의 장점을 들어보라고 하면 필자는 언제나 재미를 꼽는다.
재미가 있어야 그래픽과 음악이 살아나는 것이지, 그래픽과 음악이 좋다고 게임에 재미가 생겨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의미에서 ‘데프잼 파이트 포 뉴욕’의 그래픽과 음악은 정말 작품을 잘 만난 듯 하다. 데프잼은 정말 재미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기술 조합과 간단한 조작
5종류의
파이팅 스타일 중에 한 가지를 골라 시작하게 되는 스토리 모드는 게임 진행에 따라
최대 3종류까지 스타일을 배울 수 있다. 각 스타일에는 펀치, 킥, 잡기, 잡은 후
펀치, 잡은 후 킥 등 다양한 기본 기술들이 있는데 그 기본 기술들은 스타일마다
각기 다르다. 그렇다면 5종류의 스타일이 있겠구나…하고 생각하면 오산! 5종류의
파이팅 스타일을 어떻게 조합했는지에 따라 기술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레슬링과 쿵푸를 배웠을 때와 레슬링과 서브미션을 배웠을 때의 기본기술이 다르다.
또한 레슬링, 쿵푸, 스트리트 파이터를 배웠을 때와 레슬링, 쿵푸, 서브미션을 배웠을
때의 기술이 다르다(물론 이것처럼 비슷한 스타일을 배웠다면 기술이 완전히 달라지는
건 아니고 몇 가지의 동작만이 달라진다. 하지만 어쨌거나 새롭게 창조된 하나의
스타일인 셈이다). 플레이어가 게임을 진행하면서 어떤 파이팅 스타일을 고르는지에
따라 캐릭터들의 기술이 달라지기 때문에 새로운 기술들을 찾아가며 질리지 않고
오랫동안 즐길 수 있다.
▲ 파이팅 스타일마다 특징이 명확히 구분되어 있다. 킥복싱의 경우 발차기 공격이, 스트리트 파이터의 경우 펀치 공격이 무척 강력하다 |
▲ 스토리 모드를 진행하면서 얻은 디벨럽 포인트를 통해 캐릭터의 기본능력치를 향상시킬 수도 있다 |
조작도 쉽기 때문에 금방 익숙해질 수 있다. 기술은 크게 △와 □ 버튼을 이용한 타격기 조합과 × 버튼을 이용한 잡기로 나뉜다. 잡기는 잡은 후 어떤 버튼을 눌렀는지에 따라 이어지는 기술이 달라지고, × 버튼으로 잡았느냐와 L1+× 버튼으로 잡았느냐에 따라서도 이후 파생되는 기술이 달라진다.
즉, 요약하면 그냥 때리느냐 잡고 때리느냐. 잡을 때는 그냥 잡느냐 L1 버튼을 누른 후 잡느냐에 따라 기술이 다양하게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시스템은 앞서 설명한 5종류의 파이팅 스타일이 어떻게 조합되느냐에 따라 또 달라지니 간단한 시스템으로 다양한 기술을 펼칠 수 있는 것. 이것이 바로 데프잼의 가장 큰 재미다.
▲ 조작법은 간단하지만 펼칠 수 있는 기술은 다양하다 |
▲ 총 82가지의 블레이징 기술(=피니시 기술)은 특정 캐릭터를 이길 때마다 새롭게 배우게 된다 |
게임에서만 가능한 폭력의 미학
뉴욕 뒷골목 주먹들의
거친 싸움을 그리는 작품이다 보니 데프잼에서는 잔혹하고도 과도한 폭력이 자주
노출된다. 쓰러진 상대의 얼굴을 발로 짓이기는 기술을 비롯해 쓰러진 상대의 머리를
잡고 벽에다 부딪히는 기술, 심지어 지나가는 지하철에다 상대를 던져버리는 기술
등 가혹한 장면이 게임 내에서 고스란히 묘사된다. 하지만 이런 폭력들은 이상하게도
눈을 감고 외면해버리는 폭력이 아닌 게임의 사실성을 높여주는 아드레날린 역할을
한다.
우리는 영화 속에서 폭력 장면을 자주 접한다. 그런데 이 폭력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무차별적으로 펼쳐지는 폭력이 아니라 이야기의 전개상, 캐릭터의 내면을 묘사하기 위한 폭력일 경우 별 무리 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물론, 영화에서의 폭력이라는 전제가 붙긴 하지만 말이다).
▲ 이 정도는 애교… |
데프잼 역시 마찬가지다. 흉기를 이용해 사람을 때리고 죽이는 게湛?어디 한둘이겠느냐마는 데프잼에서 표현되는 폭력은 (게임에서의 폭력이라는 전제를 두고 보면) 뉴욕 뒷골목을 배경으로 하는 게임의 스토리상, 한걸음 더 나아가 격투게임이라는 게임의 완성도를 높이는데 반드시 필요한 요소다. 생각해보자. 무법천지의 뒷골목 패거리들이 싸우는데 한두 번 주먹다짐만 하고 승패를 겨룰까? 때로는 피를 철철 흘리며 때로는 목숨을 잃는 싸움이 펼쳐질 것이다.
아직 우리나라에 등장하는 영상매체들에는 폭력에 대해 엄격한 잣대가 적용된다. 특히 게임에서는 사람들 간에 펼쳐지는 폭력을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데프잼이 묘사하는 뒷골목 인생들의 거친 싸움과 잔혹한 폭력은 그렇기에 더욱 존재가치가 높다.
▲ 특정기술을 사용하면 피가 튀기도 한다 |
▲ 황당할 정도로 화려한 블레이징 기술은 데프잼의 백미! |
나만의 개성을 추구하는 69-82-650
데프잼에서는 사실상
무한할 정도로 나만의 분신을 만들 수 있다. 게임에 등장하는 캐릭터의 수는 총 69명.
물론 이건 스토리 모드 플레이를 통해 만든 캐릭터를 초기 캐릭터에 포함시키지 않았을
경우고, 캐릭터 메이킹과 액세서리 조합을 통해 만들면 그 수는 실로 천문학적으로
바뀐다.
▲ 정답은 없다. 플레이어가 원하는대로 고르자 |
상의 123개, 하의 57개, 신발 31개, 머리 액세서리 73개, 팔목 액세서리 13개, 글러브 7개, 선글래스 22개, 체인류 쥬얼리 48개, 브래슬릿류 쥬얼리 15개, 반지류 쥬얼리 14개, 시계류 쥬얼리 16개, 귀걸이류 쥬얼리 26개, 얼굴, 가슴, 왼쪽 어깨, 오른쪽 어깨, 왼쪽 팔, 오른쪽 팔, 왼쪽 다리, 오른쪽 다리, 등 문신이 각 10개, 수염 28개, 헤어스타일 41개, 머리색 24개 등 총 650개의 아이템들을 사용해 만들 수 있는 캐릭터의 가짓수는 무려 81,954,546,231,594,516,480,000,000,000개에 이르며 이 캐릭터가 5가지의 파이팅 스타일 중 1개 또는 2개 또는 3개를 조합할 경우의 수 85가지, 82개의 블레이징 기술 중 4개를 조합하는 경우의 수 '82C4'를 곱하면 그 수는 계산하기도 어려워진다.
물론 이게 끝이 아니다. 앞서 예로 든 경우의 수는 캐릭터 메이킹을 통해 완성된 주인공을 이런저런 아이템을 통해 조합한 숫자일뿐, 캐릭터 메이킹을 할 때의 경우의 수를 곱하면 더욱 많아진다(심심하신 분은 계산해서 그 과정과 결과를 필자에게 보내주기 바란다. 필자가 한 턱 쏘겠다).
이 다양한 조합을 모두 시험해보는 건 불가능하지만 그래도 플레이어의 개성을 게임에 최대한 근접하게 반영해주는 시스템 역시 데프잼의 재미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 골격은 같지만 꾸미기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이 될 수도 있다 |
눈과
귀가 즐거운 데프잼
앞서 설명한 데프잼의 장점들은 그래픽과 음악을 통해 우리의 눈과 귀를 더욱 즐겁게 한다. 플레이어만의 캐릭터를 만들 수 있는 캐릭터 메이? 시스템으로 천차만별로 달라지는 주인공의 얼굴, 다양한 복장과 액세서리를 통해 천변만화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풀폴리곤에 의한 깔끔한 그래픽과 어우러져 플레이어의 의욕을 배가시킨다. 뉴욕 뒷골목을 연상시키는 어둡고 음습한 톤의 배경처리 역시 GOOD! 매끄러운 그래픽을 구현하기 위해 게임의 로딩시간이 상당히 긴 편이지만, 이 정도는 감수해야 할 것 같다.
▲ 플레이어가 꾸민 그 모습 그대로 동영상에서 재생된다. 풀폴리곤의 위력! |
음악 역시 두말하면 잔소리일 것이다. 엘엘 쿨 제이와 릴킴 등 Def Jam 소속의 유명 뮤지션들이 직접 부르고 연주하는 힙합과 랩 음악들은 뉴욕이라는 무대적인 배경과 뒷골목 건달들의 치열한 생존경쟁이라는 상황적인 배경에 완벽하게 매치된다. 하긴 이런 배경을 두고 테크노나 컨트리, 유로비트 등의 음악이 나오는 것도 무척 쌩뚱맞은 일일 것이다.
힙합과 랩은 듣는 사람에 따라 호, 불호가 명확하게 갈리는 음악 장르다. 따라서 이 장르 음악에 반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게임과 완벽히 매치되어 녹아들 듯 흐르는 힙합 역시 마땅치 않을 것이다. 그러나 최소한 힙합과 랩에 대해 특별한 편견과 반감이 없다면 게임 속에 흐르는 음악들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짐을 인정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 전작 데프잼 벤데타에서는 따로 음악감상 모드가 없어 아쉬움이 많았지만 이번 파이트 포 뉴욕에는 ‘비트박스’란 메뉴를 통해 주옥같은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됐다. 따로 음반이 안나오나 아쉬울 정도 |
아까운 데프잼
아쉽게도 국내에 발매된 데프잼 파이트 포 뉴욕은 한글화가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래서 그런지 많은 사람들은 데프잼 파이트 포 뉴욕이 어떤 게임인지조차 알지 못한다. 이미 이 게임의 재미를 맛본 한 게이머로서,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게임을 권하는 의무를 지닌 기자로서 무척 안타까운 일이다. 혹시라도, 뒤늦게라도 이 게임을 모르고 있다가 이번 리뷰를 통해 관심이 생겼다면 없는 용돈 쪼개서라도 구입해서 즐겨보길 권한다. 2004년 국내에 발매된 비디오게임 3가지 중에서 왜 필자가 이걸 꼽았는지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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