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도 없고, 개념도 없고, 시간만 잡아먹고!(인스팅트)
2007.10.11 17:32게임메카 김시소 기자
일전에 북한군을 좀비로 묘사한 ‘인스팅트’란 FPS게임이 화제가 됐더랬다. 그 내용을 볼작시면 북한이 모처에서 약물을 이용한 인간전투병기를 개발하다 그만 폭발사고를 일으켜 바이러스가 유출, 일대의 사람들이 모두 좀비처럼 변한다. 그리고 이를 러시아와 미국의 특수부대원들이 용감무쌍하게 진압한다는 것이 큰 줄거리다. 한반도를 자기네 놀이터 즈음으로 생각하는 강대국들의 시선은 별로 새로울 것 없지만, 어쨌든 한국 사람입장에서는 썩 유쾌하지만은 않은 내용이다.
‘인스팅트’는 러시아의 개발사 디지털 스프레이 스튜디오가 개발하고 미국의 와일드헤어 엔터테인먼트가 발매한 게임으로 러시아에서는 지난 1월에, 미국에서는 지난 8월에 각각 출시됐다. 말하자면 러시아 개발, 미국 발매라는 좀 특이한 경로로 시장에 나온 게임인데, 냉전시대의 종말을 상징하듯 둘이 사이좋게 좀비로 변한 북한인을 척살해 나간다. 미국은 원래 그렇다치고 러시아까지 ‘세계평화’를 위해 북한을 제압한다고 나서는 꼴은 (비록 게임이지만) 좀 눈꼴시렵지 않은가.
어쨌든 이러저러한 이유로 이 게임이 화제가 됐고, 또 최근에는 플레이버전이 국내 공유 사이트를 통해 퍼지고 있다. 직업이 직업인지라 ‘북한’, ‘좀비’란 키워드를 가진 이 게임의 정확한 정체가 과연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직접 플레이 해 봤다.
▲ 정상회담만 두 번째인데 눈치도 별로 없는 것 같고..
먼저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최대한 객관적인 입장에서 게임을 평가하려 했다는 것을 밝혀둔다. ‘인스팅트’도 크게 보면 어차피 (한국에서 버젓이 유통되는) 사람을 쏴 죽이는 컨셉의 FPS게임이기 때문에 북한을 소재로 삼았다고 해서 굳이 냉혹한 잣대를 들이댈 필요는 없다. 어디까지나 게임은 게임. 한번 살펴보자.
의외로 사회풍자가 담겨있는 게임?
일단 인스팅트의 첫인상은 ‘조악스럽다’. 게임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없어 어떤 기술적 요소들이 게임 안에 들어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근래 플레이 해 본 게임들 중에 단연 돋보이는 ‘덜 떨어짐’을 자랑하고 있다.
일단 비주얼적인 부분에서는 세부묘사의 치밀함이 너무 부족하다. 특히 좀비로 나오는 북한인들은 앵글로 색슨계인지 우랄알타이계인지 라틴계인지 전혀 분간이 안 간다. (가끔 노랑머리의 정체불명 캐릭터도 튀어나온다) 게임에 대한 사전지식과 간간히 보이는 어색한 한국어가 없다면 배경이 북한인지도 알기 힘들 정도다. 게다가 가끔씩 등장하는 북한병사의 복장도 실제 북한군인들이 착용하는 전투복의 스타일과는 상당히 다르다. 오히려 남한의 그것과 더 닮아있다.
아마도 노스 코리아와 사우스 코리아를 구분하지 못하는 일부 개발진들의 무지 때문이 아닌가 한데, 이래서야 깡패국가의 좀비들을 처단하러 온 미국과 러시아의 용사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줄 수 밖에 없다. 세부묘사는 부실하지만 이 와중에 최신 트렌드를 반영하려고 한 노력도 보이긴 한다. ‘사체훼손’이 바로 그것. 사망한 시체에 총격을 가하면 사격 방향 대로 퉁퉁 튄다. 어차피 인간이 아닌 생체병기로 설정했기 때문에 죄책감도 덜하겠다 ‘냅다 갈기’라는 주문인가.
▲ 과감한 사지절단 |
일단 비주얼적인 면에서 ‘인스팅트’는 북한이라는 특수한 배경의 분위기를 전혀 느낄 수 없다는 점을 꼽고 넘어가자. 앞으로 북한을 소재로 한 게임을 만들려는 해외 개발자들은 필히 북한을 현장 답사해주기 바란다.
“저 북한인들이 좀비가 된다는 소재의 게임을 만들려고 하는데요. 어떻게 좀 구경시켜주시겠습니까?”
인스팅트는 또 FPS로서 치명적인 단점을 하나 가지고 있는데, 바로 좀비를 과도하게 강조해 플레이를 지루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종류라도 다양하면 좋으련만 비슷한 좀비들이 항상 예측할 수 있는 곳에 튀어나온다. 여기에 ‘우어우어~’ 하면 달려는 좀비들의 일관성 없는 움직임은 끝내 게임을 하다 말고 ‘아! 이것은 북한의 획일적인 사회시스템을 풍자한 것이 아닌가?’란 고찰을 하게 만든다. (게임의 재미를 희생하면서까지 사회풍자를 한 개발진들이여! 브라보~)
좀비가 아닌 종종 등장하는 특수부대원 NPC도 이런 획일적인 움직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몇 번을 플레이 해도 정해진 방향으로 정해진 동작만 반복하며 움직인다. 상대하는 입장에서야 편하기 하지만 왠지 맥이 빠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이런 이유로 최근 발매된 ‘바이오쇼크’를 통해 좀비류 게임이 줄 수 있는 음산함과 기괴함, 의외성을 맛 본 이들이라면 웬만해선 플레이 하지 말 것을 권한다.
창의성, 몰입감, 긴장도 어떤 면에서도 좋은 점수를 받긴 힘들어
한편 맵의 구성은 게임진행에 따라 조금씩 달라진다. 게임 초반에는 아직 폭발이 일어나기 전 상황이기 때문에 비교적 정돈된 상태의 맵이 제공되고 중후반에는 폭발 후의 맵들이 등장한다. 때론 폭발 전의 맵이 폭발 한 후에 다시 등장하기도 하는데 이때는 구성이 좀 달라져 있긴 하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매우 단순하고 특징 없는 맵들이 계속 등장한다.
‘인스팅트’의 진행은 기본적으로 숨겨진 포인트를 찾아 닫힌 공간을 열고 들어가는 형태로 진행된다. 앞서 설명했듯이 맵 구성이 단순한 편이라 별로 어려울 것이 없다. 패키지 FPS에 익숙한 게이머라면 굳이 머리 쓸 필요 없이 수월하게 게임을 진행할 수 있다. 중간중간에 나오는 방해요소 (예를 들어 경보장치나 무인 방어장치)는 대부분 총으로 부시면 된다.
‘인스팅트’의 단순한 맵 구성과 진행방식은 ‘어렵지 않다’라는 점에서 평가해 줄 수 있지 모르겠지만, 창의성 면에서는 별로 좋은 점수를 줄 수 없다. 특히 특징 없는 맵에서 거의 같은 리듬으로 진행해야 하는 플레이는 게임의 몰입감을 점점 떨어뜨린다. 한마디로 말해 게임을 하면 할수록 ‘재미없다’라는 평가를 내리는데 주저함이 없어진다. 원고만 아니었으면 절대 중반이상 플레이 하지 않았을 텐데. 생각해보라, 문 열고, 좀비 쓸고, 어라 닫혔네? 키(KEY)찾아 문 열고, 좀비 쓰는 것이 전부인 게임을 누가 진득히 앉아서 플레이 하겠는가. (게임기자?) 기본적인 요소만 있고 한 발짝 창의력을 발휘하지 못한 게임에 베풀어줄 자비는 없다.
▲ 우리가 가는 길에 못 여는 문은 없다? |
사소한 부분이긴 하지만 하나 더 짚고 넘어가자. 총기의 밸런스는 좀 과장된 편이다. 주요 무기인 샷건의 타격범위는 매우 넓고, 또 멀리까지 설정되어 있으며, 권총은 심하게 안 맞는다. 북한군의 주력무기인 AK소총은 악명 높은 반동이 너무 충실하게 반영되어 있어 연사를 하면 나중에 쏜 탄은 좀 과장되게 말해 천장에 맞을 정도다.
전체적으로 보면 ‘인스팅트’는 소재로 주목 받은 것의 10분의 1도 게임 안에서 보여주지 못했다. 등장인물과 배경은 겉돌며 플레이는 지루하고 그렇다고 FPS로서 그 어떤 기술적인 참신함 혹은 안정성을 보여준 것도 아니다. 이쯤에서 알아보고 싶은 건 러시아에서도 회식비가 제작비에 포함되느냐는 점이다.
여하튼 쓰고 보니 악평만 늘어놓은 셈이 됐는데 실제로 그런걸 어떻게 하나. 한반도의 긴장을 소재로 선택했지만 정작 게임자체는 전혀 긴장하고 만들지 않다고 할까. ‘북한 사람들은 머리에 뿔이 달렸데’라는 유아적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한 그들의 안쓰러운 상상력이 게임자체에서도 여실히 증명됐다고 하면 너무 가혹한 평인가.
▲ 촌티 팍팍 나는 연출은 차라리 애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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