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로 만나는 버닝 크루세이드의 세계!
2006.10.19 13:38게임메카 나민우 기자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확장팩 <버닝 크루세이드>의 클로우즈 베타가 시작됐습니다. 새로운 종족과 직업, 그리고 '아웃랜드'. 지금부터 언데드 마법사 '콜드피어'와 함께 '블러드 엘프'의 도시 '실버문'과 그 주변 지역을 살펴보면서 블러드 엘프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실바나스 여왕님의 호출을 받았다. 축축하고 어두운 연금술 연구소 한 구석에서 다른 연금술사들과 시약을 분배하던 나는 일손을 멈췄다. 말을 타고 왕궁으로 향하며 어떤 일로 호출을 받았을지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짚이는 것이 있었다. 얼마 전 ‘블러드 엘프’ 사절이 언더시티에 당도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런 생각을 하던 중 왕궁에 도착했고 나는 말에서 내려 왕궁 안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여왕께서 정사를 논하시는 중앙 홀로 들어섰다. 항상 승자의 편이라 자신하는 ‘박쥐’ ‘바리마트라스’는 여전히 역겨운 웃음을 띄고 있었다. 그 옆에는 그들의 명칭처럼 붉은의 색 옷으로 몸을 감싼 블러드 엘프 두 명이 더 있었다. 나의 예상이 분명해 짐을 느꼈다. 여왕께선 입을 열지 않으시고 나에게 다가오라고 손짓하셨다. 여왕께 다가가 정중히 무릎을 꿇자 여왕께선 얼굴이 얼어 붙은 것처럼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입술을 여셨다.
“그대를 부른 것은
실버문에 특사로 파견하기 위해서다. 수행할 준비가 되어있는가? 콜드피어”
“물론
입니다. 우리들의 여왕이시여”
그녀는 말을 마치고 봉인된 봉투 하나를 꺼냈다. 그런데 그 봉투를 보는 여왕님은 조금 이상했다. 눈빛에 한 순간 분노가 타오르는 듯하다가 이내 측은한 슬픈 눈으로 변하기를 반복했다. 여왕께서 이렇게 직접적으로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실버문이 자신의 ‘옛’ 고향이였기 때문일까? 여왕이 '살아있었던 시절의' 옛 고향이자 ‘순찰대장’으로 활약했던 실버문. 흥미라고 표현할 수 있는 감정이 솟아올랐다. 나는 조용히 봉투를 건내받았다. 곧바로 왕궁을 나와 순간이동마법사에게로 발걸음을 돌렸다.
블러드 엘프의 문화수준은 내 상상을 뛰어넘고 있었다. 블러드 엘프의 도시 실버문은 살이 썩어 추한 몰골이 된 나에게 자랑이라도 하듯, 신비함과 아름다움을 무한히 뿜어냈다. 붉은 색과 황금색, 흰색이 어우러진 그들의 건축물은 이 세상 것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이곳 저곳을 두리번거리는 내가 수상쩍었는지, 마법에 의해 움직이는 고렘 ‘비전 파수꾼’이 내 앞을 가로 막았다. 그 고렘은 나에게 몇 가지 주문을 시전한 뒤, 의심이 풀렸는지 ‘도시 내에선 질서를 지켜야 합니다’란 말을 남기고 다른 곳으로 육중한 몸을 움직였다. ‘피조물 주제에!’ 질퍽한 불쾌감이 느껴졌다. 문득 시체를 이어붙여 만든 언더시티의 ‘어보미네이션’들이 떠 올랐다. 이 비전 파수꾼들은 우리가 만들어낸 어보미네이션보다 훨씬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창조물이 마법을 시전할 정도라니!’ 분노라는 가면을 쓴 열등감이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끓어 올랐다.
실버문 ‘태양 궁정’ 광장에 도착해 근위병에게 용건을 이야기 한 뒤, 밴치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았다. 중앙에 새워진 세밀하고 섬세하게 조각된 분수는 말 그대로 아름다웠다. 세 명의 블러드 엘프 여인이 분수를 받치고 있는 모양이였는데, 아제로스 어느 곳을 가더라도 이렇게 아름다운 분수를 볼 수 없을 것이다. 문득 내 머리 속 사고의 세계가 나를 블러드 엘프의 역사 속으로 잡아 당겼다.
과거 스컬지가 창궐하기 전, ‘하이엘프(쿠엘도레이)’로 불렸던 ‘블러드 엘프(신도레이)’는 아제로스에서 가장 뛰어난 마법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지금의 ‘스트롬가드’에 번성했던 ‘소라딘 왕가’를 통해 인간에게 마법의 힘을 전해줬다. 오크가 ‘불타는 군단’의 꾀임에 넘어가 ‘어둠의 문’을 넘어 아제로스를 침공한 2차 대전쟁(워크래프트 2) 당시, 블러드 엘프는 오크와 트롤, 오우거들을 상대로 그 강력한 마법을 ‘얼라이언스’를 위해 사용했다. 당시만 해도 그들은 얼라이언스에게 큰 힘이 되어준 우방으로 극진한 대우를 받았었다.
하지만 전쟁에서 승리한 얼라이언스의 각 나라들은 ‘오크 수용소’ 비용 문제를 놓고 서로 대립하기 시작했다. 블러드 엘프 역시 이 논쟁에 휩쓸렸다. 그들은 인간들의 모순된 생각과 사상에 염증을 느끼기 시작했고 마침내 얼라이언스에서 탈퇴를 선언했다. 그리고 그들의 문을 굳게 닫은 채 얼라이언스에게서 점점 멀어져 갔다. 얼라이언스, 특히 인간에 대한 불신. 지금 생각해 보건데 블러드 엘프가 호드의 일원이 되게 된 근본적 이유가 거기에 있지 않을까? 물론 직접적인 이유를 제공한 이는 블러드 엘프의 왕족인 ‘켈타스’ 왕자였지만 말이다. 생각에 잠겨있던 나는 한 블러드 엘프 근위병에 의해 사고의 세계에서 물질의 세계로 끄러 내려졌다.
“알현해도 좋다는
명이 내려졌소. 테론님께 안내하겠소”
나는 신경질적인 눈으로 근위병을
흘겨본 뒤 묵묵히 그의 뒤를 따랐다.
태양 궁정 내부는 말 그대로 휘황찬란했다. 금으로 만들어진 난간, 마법의 의해 타오르는 푸른 조명기구, 자신들을 기리는 아름답고 섬세한 조각상들. 그 중 가장 눈에 띄었던 것은 마법에 의해서 작동하는 일하는 물건들이었다. 빗자루는 혼자서 청소를 하며, 약병들은 알아서 시약을 혼합하고 있었다. 그들의 마법문화는 아직도 아제로스 최고였다. 호드도 그것을 알기 때문에 순순히 동맹으로 인정했으리라. ‘과연 마법의 본고장답군’ 마음 속으로 감탄하며 자신이 이곳에서 마법을 배웠으면 어떤 능력을 가질 수 있을까 생각해봤다. ‘언데드인 내가?’ 마법사다운 우스운 상상이다.
거대한 직선통로를 지나 넓직한 홀에 도착했다. 홀 중앙에는 아웃랜드에 있는 ‘켈타스 선스트라이더’ 왕자를 대신해 아제로스(동부왕국)의 블러드 엘프를 다스리는 섭정 ‘로르테마론 테론’이 서 있었다. 내가 다가가자 그는 나를 한 번 훑어보고는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아마도 자신에게 무릎 꿇지 않는 것을 신경쓰는 듯했다. 왠지모르게 웃고 싶어졌다. 그런 나를 향해 이곳까지 안내해준 근위병이 언성을 높였다.
“예를 취하시오!”
“저희
포세이큰은 실바나스 여왕님 외에 다른 종족에게 무릎을 꿇는 것을 금하고 있습니다.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뭐라고?!”
근위병은 나의 말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얼굴을 찡그리며 한 번 더 언성을 높이려 했다. 하지만 그것은 테론의 손에 의해 저지당했다. 그는 차분한 어조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것은 실바나스
여왕의 지시인가?”
“그렇습니다. 테론님”
“하지만 이곳은 우리 신도레이(블러드
엘프)의
도시 실버문이네. 언더시티가 아니야. 이곳에 온 이상 그대는 우리의 예법을 따라줘야
할 의무가 있네”
“그럼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데스나이트 아서스가 이곳 실버문을
침공했을 당시 테론님께선 순찰대장이셨던 저희 실바나스 여왕님의 충직한 ‘부관’으로
활약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실바나스 여왕은 신도레이가
아니네. 그녀는 포세이큰일세”
“저희 실바나스 여왕께선 ‘옛 고향’이였던 실버문을 지키기 위해 아서스에게 죽임을 당하셨으며, 그로인해 아서스의 저주를 받아 언데드가 되셨습니다. 때문에 한 때 ‘동족이였던’ 블러드 엘프들에게 깊은 애정을 가지고 계십니다. 현재 실버문이 호드의 다른 종족들보다 저희 포세이큰과 더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부디 제가 저희 여왕님에게 불충을 저지르는 일을 시키지 말아주십시오.”
테론은 눈썹을 꿈틀거렸다.
“그만. 이제 그대의 일을 행하라”
테론은 여전히 불쾌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테론의 눈길을 무시하고 정중히 허리를 굽혀 인사한 뒤 봉투를 건냈다. 봉투 안의 서신을 읽는 그의 눈에서 조금은 표정이 풀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조금의 시간이 흐른 후, 그는 입을 열었다.
“포세이큰 여왕의 뜻은 잘 알았소. 우리는 당신을 특사로 인정하며, 이 지역을 마음대로 둘려볼 수 있는 권한을 허락하겠소. 스컬지 세력에 대한 정보를 알고 싶다면 남쪽 ‘태양의 성소’에 있는 ‘아도니스’를 만나보시오.”
말을 마친 테론은 나가라는 손짓을 하고 홀에서 사라졌다. 왕궁 밖으로 나온 후, 나는 비로소 나의 임무를 알 수 있었다. 우리의 저주스러운 적, 그 썩어버린 살을 씹어먹어도 시원치 않을, 스컬지의 세력이 이 땅에 얼마나 뿌리내리고 있는지 알아보는 것이리라.
오늘 하루는 실버문 안을 돌아다녀보기로 했다. 개인적인 흥미, 특사로서의 임무. 양쪽 모두충족시킬 수 있는 소재니까 말이다. 어디부터 둘러봐야 할지 고민하던 중, 한 가지 궁금증이 생겼다. 얼마 전 호드에 합류한 블러드 엘프는 지금까지 호드에겐 없었던 새로운 힘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얼라이언스, 특히 인간과 드워프에게만 부여되는 성스러운 ‘나루’ 종족의 힘, ‘성기사’의 신성마법이였다. 블러드 엘프답게 자신들을 ‘혈기사’라고 칭하는 이들의 새로운 힘에 대해 알고 싶어졌다. 나는 즉시 몸을 돌려 도시 내에 새워진 표지판을 찾기 시작했다
표지판을 따라 혈기사들의 본부로 발걸음을 옮기려는 때였다. 저 멀리 특이한 일행이 보였다. 신기하게도 그 일행에는 여러 종족이 포함되 있었다. 오크, 트롤, 타우렌, 포세이큰, 그리고 블러드 엘프. 호드를 구성하는 모든 종족이 모여있었다. 아마도 나와는 다른 임무를 띄고 실버문에 온 각 종족의 사절단 인듯했다. 그러던 중 트롤 남성이 앞장서서 걷던 블러드 엘프를 멈추게 하고 말을 꺼냈다. 가까운 곳에 있었던 나는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당신 종족이 호드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나? 켈레마르 대사”
“우리 관계는 분명 그대들에게 이익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엄청난 힘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호드를 도우면 분명
여러분의 적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포세이큰 여성이 포세이큰 특유의 쉰 목소리로
‘켈레마르’라고 불린 블러드 엘프의 말을 거들며 나섰다.
“우리가 블러드 엘프와
맺은 협정은 정말 유익하다고 볼 수 있어요. 그보다 켈레마르 대사, 실버문의 장식들은
매우 흥미롭군요. 하지만 비전 마법을 이용해 이런 시시한 장식품을 만들다니 낭비
아닌가요?”
“환경이란 아름다움의 척도일 뿐만 아니라 사기를 올리는 역할도
합니다.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엄청난 힘이 우리에게 있다는 사실을 백성에게 보여주죠.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거의 모든 일을 해낼 수 있습니다.”
“하! 내가 이곳
책임자였다면 제일 먼저 저 짓거리를 멈췄을 걸.”
트롤남성이 하품을 하며 비웃듯 말하자 타우렌 여성이 아이를 타이르듯 점잖게 이를 말렸다..
“제발 그만둬요. 타타이. 우리는 여기 손님으로 온 거예요. 텔레마르 대사. 분명히 당신 종족은 장식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것 같군요. 솔직히 경망스럽긴 하지만….아, 제 말에 마음 상하지 마세요. 하지만, 사실 낭비 아닌가요?”
타타이라 불린 트롤 남성 옆에서 조용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오크 여성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은 여러분의
환경과 조금 다를 뿐입니다. 우리가 가진 힘을 보여주는 것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우리도 우리가 가진 자원을 염두해 두고 있습니다.”
“잘 모르겠어요.
저에겐 그저… 낭비로 보이네요.”
타우렌 여성의 말을 끝으로 사절단으로 보이는 무리는 다른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호드의 종족들이 블러드 엘프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오크와 타우렌, 검은창 부족 트롤은 굳건한 믿음으로 뭉쳐진 호드의 중심 종족들이다. 2차 대전쟁(워크래프트 2)에서 패한 후, 수용소에서 비참한 인생을 살던 오크들은 지금의 대족장 ‘스랄’에 의해 구출되었다. 그 후 아제로스 이곳 저곳을 떠돌던 그들은 스컬지와 불타는 군단의 재침공을 알아차린 마지막 수호자 ‘메디브’에 의해 새로운 땅 ‘칼림도어’로 인도되었다(워크래프트 3). 스랄은 여행도중 트롤과 타우렌을 만나 혈맹보다 더 깊은 유대관계를 맺게 됐다고 한다.
오크들은 칼림도어로의 이주한 덕에 스컬지를 앞새운 불타는 군단의 아제로스 침공으로부터 시간을 벌 수 있었다. 아이러니 한 것은 아제로스 침공이 끝나고 칼림도어를 노리던 불타는 군단의 이인자 ‘아키몬드’를 지금의 얼라이언스와 호드가 힘을 합쳐 무찌른 일이다. 하지만 그곳에는 포세이큰과 블러드 엘프는 없었다. 호드의 중심이 되는 세 종족들은 알고 있을 것이다. 포세이큰과 블러드 엘프가 어떤 이유에서 호드의 동맹이 되었는 지를….
블러드 엘프는 자신감이 강한 종족이다. 아니, 그 자신감은 일반적인 그것을 뛰어넘어 ‘오만’이라고 불러도 충분할 정도다. 자신들의 오만함을 충족시키기 위해선 그들은 항상 강력한 힘을 추구한다. 3차 대전쟁(스컬지 침공 전쟁. 워크래프트 3)에서 지금은 ‘리치킹’이 되어버린 데스나이트 ‘아서스’에게 마법의 원천인 ‘태양샘’을 파괴당한 뒤, 그들이 자신들은 심각한 무력감에 빠졌다. 마법의 힘을 잃은 그들은 그저 빈 껍데기들에 지나지 않았다.
현재는 아웃랜드에 있는 켈타스 왕자의 노력으로 불안정하지만 어느 정도 마법의 힘을 복구 할 수 있었다고 한다. 태양샘이 파괴되 깊은 한탄과 절망이란 늪에서 스컬지에 대한 복수심이란 밧줄을 잡고 그들은 일어섰다. ‘하이엘프(쿠엘도레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블러드 엘프(신도레이)’라고 자칭했던 사실만 봐도 힘에 대한 집착과 스컬지에 대한 분노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다. 혈기사단 역시 이들의 이런 집착에 의해 탄생한 것이리라.
블러드 엘프가 얼라이언스의 성기사들이 사용하는 신성마법을 원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 생각하던 나는 어느새 혈기사단 본부가 있는 ‘파스트라이더 광장’에 도착해 있었다. 혈기사단 본부 정문 수호병에게 나의 용무를 이야기 한 뒤, 출입허가가 떨어지길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수호병은 돌아왔고 그에 의해 혈기사단의 군주 ‘리아드린’에게 안내되었다. 리아드린은 최초의 혈기사로 자신들이 신성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에 강한 자긍심을 가진 인물이다. 지하로 이어진 꽈배기 모양의 길로 내려가 어두운 통로를 지나자 넓은 공간이 눈앞에 펼쳐졌다.
나는 순간 몸을 움츠릴 수밖에 없었다. 중앙에 떠 올라있는 거대한 구조물 때문이였다. 마치 거대한 칼날을 거꾸로 세워둔 듯한 구조물은 용의 몸만큼 거대했으며, 붉은색과 자주색 형체의 에너지를 불타오르 듯 강렬하게 내뿜고 있었다. 그 주위에는 다섯 명의 블러드 엘프 마법사가 구조물을 제어하는 듯한 의식을 행하고 있었다. 그것을 보고 어안이 벙벙해진 나에게 혈기사단의 군주 리아드린으로 보이는 블러드 엘프 여성이 다가오며 말을 걸었다.
“혈기사단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콜드피어. 저는 이곳의 책임자 리아드린입니다.”
“만나뵙게
되서 영광입니다. 여군주 리아드린.”
리아드린은 생각보다 젊은 여성 블러드 엘프였다. 하지만 나보다 더 연배가 높을 것이다. 블러드 엘프는 몇 백년을 살 수 있는 장수 종족이니까.
“저는 실바나스 여왕님의
명에 따라 이곳에 왔습니다. 무지한 저에게 혈기사단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저희가
어떤 일을 꾸미고 있는지 감시하기 위해서 오신 것은 아니구요?”
인사를 나누며 웃고 있던 그녀의 얼굴이 순간 차가운 표정으로 변하며 날카로운 칼처럼 나를 찔러왔다. 하지만 이내 표정을 풀더니 점잔은 목소리로 웃으며 말을 이었다.
“농담이 지나쳤습니다. 당연히 말씀드려야죠.”
“….”
“저희가
얼라이언스의 성기사들과 같은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힘의 근원은 이 구조물을
조절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아웃랜드에 계신 블러드 엘프의 위대한 왕자
‘켈타스 선스트라이더’님께서 보내 주신 ‘나루’ 종족입니다.”
“이 구조물이
나루 종족이라구요?”
레아드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성스러운 힘을 가진 빛의 종족이자 얼라이언스 성기사들에게
신성마법의 힘을 내려주는 이계의 종족입니다. 그래서 인지 저희들과는 생김새가
많이 다르죠?”
“그 나루 종족을 켈타스 왕자께서
이곳 실버문으로 보내셨단 말씀입니까?”
“그렇습니다. 켈타스 왕자께서 아웃랜드의
‘폭풍우 요새’에 있던 나루 종족 중 한 명을 생포해 실버문으로 보내셨습니다.
저희 마술사와 학자들은 호송된 나루를 이용해 나루의 축복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빛의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수 개월 동안 연구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우리는 그것을
찾아냈습니다”
말을 마치자 그녀는 만면에 웃음을 띄며 허공에 있는 물건을 잡듯 주먹을 움켜쥐었다.
“저희는 나루 종족이 가지고 있는 빛의 에너지를 변형시켜 이 구조물을 만들었고, 이 구조물을 제어함으로써 얼라이언스 성기사와 같은 빛의 힘을 구사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렇게 저희 혈기사단은 블러드 엘프의 한 축을 이룰 수 있게 됐습니다.”
나는 그 때서야 이해할 수 있었다. 블러드 엘프가 호드에 동맹을 제의해 왔을 때 대족장 ‘스랄’과 타우렌의 지도자 ‘케른 블러드후프’가 고심했던 이유를.. 자연의 법칙을 숭배하고 따르는 오크와 타우렌에겐 이런 인위적이고 작위적인 방법은 못미덥게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현명한 지도자들이다. 얼라이언스의 성기사와 같은 힘. 그것이 호드에게 어떤 가치가 있는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리라. 나는 결국 블러드 엘프가 호드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던 이유는 혈기사에게 있었던 것이라 결론 내렸다.
레이드린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고 돌아서자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포세이큰의 여왕님께 전해주세요. 저희 혈기사단은 결코 호드를 실망시키지 않을 것임을….’ 혈기사단 본부를 나와보니 이미 밤이 되어있었다. 파스트라이더 광장에는 훈련 중인 수습 혈기사 몇 명이 눈에 띄었다. 블러드 엘프. 아릅답고 뛰어난 마법을 가진 위대한 종족. 하지만 결코 지혜롭지 못한 종족. 저주스러운 아서스에게 파괴당한 ‘태양샘’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것일까. 강력한 무언가에 의존한다는 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 오는지 그들을 아직 깨닫지 못한 듯했다. 내가 아직 인간이었던 시절 들었던 ‘사이렌’에 대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아름다운 노래로 선원을 유혹해 파멸에 이르게 하는 사이렌. 내게는 블러드 엘프들이 강력한 힘이란 사이렌의 노래에 현혹되어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파멸을 향해 걸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것도 그들 나름대로의 생존을 위한 투쟁일 것이다. 파멸을 향해 진군하는 행진곡. 전쟁은 그런 것이다. 나는 복잡한 생각을 털어버리고 내일 해야할 실버문 야외 지역 탐사를 떠 올렸다. 하지만 지금은 여관으로 발걸음을 옮겨야 할 시간이다. 그렇게 실버문에서의 첫 날이 지나갔다.
- 1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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