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전자상가 탐방기 아키하바라의 주인이 바뀌고 있다
2002.04.12 18:03벤치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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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까지도 썰렁하던 용산전자상가가 조금씩 활기를 띄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통로를 가득 메우거나 노점상이 즐비하게 늘어져 있는 등 한창 호황기였을 때의 용산 모습을 되찾은 것은 아니지만 DVD 전문점, 홈시어터 전문점 등에 사람들이 몰리고 있다. 모니터 매장이 쇠퇴한 대신 LCD 전문점이 인기몰이에 나섰다. 용산에서 부는 변화의 바람은 일본에서도 감지되고 있다. 과연 지금 일본의 전자상가에서는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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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서지역 최대의 전자상가 '덴덴타운'이 들어선 곳은 오사카의 중심지 난바다. 이곳 난바의 낮과 밤은 그 모습이 완전히 달라진다. 낮에는 도로변의 상점과 극장, 전자상가 등에 사람들이 몰리지만 밤에는 난바역 인근의 대형 건물 지하 매장이 북적거린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이렇게 된 가장 큰 원인은 난바 인근의 치안과 큰 연관이 있다. 난바역에서 걸어서 10분 정도만 가면 관서 최첨단 전자상가 '덴덴타운'이 있지만 그곳에서 다시 15분 정도만 걸어가면 일본에서 가장 많은 노숙자와 불법체류자, 야쿠자, 오카마(여장 남자)들이 모여 있는 '신이마미야'가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난바역 인근을 떠나지 않는 것이다. 신이마미야 주변은 악취가 심하게 풍겨 많은 사람들이 이 곳을 지나다니는 것을 꺼렸다. 이제는 이곳의 값싼 호텔(1박에 1천400엔 정도)을 찾아오는 외국인 관광객 덕분에 많이 깔끔해졌지만, 불과 5년 전만 해도 '핵폭발 이후 20××년…' 같은 내레이션에나 어울릴 정도로 삭막했다. 난카이 신이마미야역 인근은 저녁 8시만 넘어도 거리가 썰렁해진다. 새벽에는 쓰레기통을 뒤져 음식 찌꺼기를 주워 먹는 거지와 내다 팔만한 물건을 찾는 노숙자의 모습이 쉽게 눈에 띈다. 여기서 불과 15분만 걸어가면 관서지역 최대의 전자상가가 있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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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1년 전만 하더라도 '도쿄의 아키하바라, 오사카의 덴덴타운'은 사람들의 물결로 가득한 곳이었다. 하지만 기자가 찾은 최근의 덴덴타운은 1년 전과 너무나도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주말이나 다름없는 금요일 오후에 덴덴타운을 찾아오는 사람은 고사하고, 이곳을 지나가는 사람조차 찾아보기 힘들었다. 2001년 11월 29일이었던 이날은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 2'가 값을 3만9천800엔에서 2만9천800엔으로 값을 무려 1만 엔이나 낮추는 이벤트가 펼쳐졌다. 하지만 게임매장에도 사람들의 발길은 뜸했다. 1년 전만 해도 이런 파격적인 가격인하가 있는 날이면 새벽부터 매장 앞에 길게 줄을 섰지만 이제는 완전히 사정이 달라졌다. 경기 불황의 여파는 관동보다 관서지방에 먼저 찾아와 이 지역의 경제 상황이 전쟁 이후 최악의 상태를 맞았다. 이런 분위기 속에
밀어내기 식 덤핑경쟁까지 심해져 시장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게다가 2∼3년 사이 오타쿠 문화가 널리 퍼지면서 거대한 가전제품
매장은 동인지나 코스플레이 용품, 성인용 DVD를 파는 매장으로 변했다. 또 하나의 변화는 덴덴타운의 중심지가 지하철 동물원역 주변에서 난바역 쪽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빈민가와 맞닿아 있던 덴덴타운이
오사카 중심지인 난바와 점차 가까워졌다. 난바 근처의 새로 문을 연 매장들은 깨끗한 인테리어와 매장 특유의 오리지널 상품으로
손님맞이에 여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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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부터 일본을 찾은 외국인이 반드시 찾아가는 곳으로 3군데가 꼽힌다. 오사카성과 도쿄타워, 그리고 아키하바라 전자상가다. 아키하바라는 카메라와 가전제품으로 무한한 경제발전을 이룬 일본을 단적으로 상징하는 한편 우리나라 보따리 장수들의 전초기지 역할을 해온 곳으로도 유명하다. 라디오 회관과 사토무센, 이시마루 전기 등으로 시작해 지금은 거대한 상점가로 발전한 아키하바라. 이곳은 지금 수십 년 동안 단 한번도 경험한 적 없는 큰 변화를 겪고 있다. 덴덴타운보다는 사정이 낫지만 아키하바라를 찾는 사람의 수가 1년 전에 비해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 많은 체인점이 문을 닫고 그 자리에는 중고품 매장이나 오타쿠 매장이 들어서는 형편이다. 아키하바라의 고통은 우리나라의 용산이 겪고 있는 문제와 닮은꼴이다. 불황을 가져온 가장 큰 원인은 오사카의 덴텐타운과 마찬가지로 경기불황과 미국 9.11테러, 은행의 천문학적인 적자 등이다. 하지만 소비자의 발길을 결정적으로 집으로 되돌리게 한 것은 ADSL과 양판점, 대형 체인점 등이다. ADSL의 급속한 보급과 함께 호황을 맞은 인터넷 쇼핑몰은 값과 상품의 다양성에서 아키하바라를 압도하며, 소비자가 원하는 날짜 원하는 시간에 배달까지 해주어 소비자의 입맛을 충족시키고 있다. 게다가 많은 가격비교 사이트가 등장해 매장마다 고유한 특징이 사라진 대신 대형 매장이나 싼값으로 승부하는 매장만이 살아남았다.
제품 하나 하나의 물건값을 보고 흥정할 수 있도록 제품이 전시되어 있는 아키하바라는 용산보다 더 큰 영향을 받는다. 주말에 아키하바라
상점가를 찾는 사람은 여전히 많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그들의 손에서 쇼핑백을 발견하기란 여간해서 어렵다.
아키하바라도 덴덴타운과 마찬가지로 가전제품 매장은 줄어들고 그 자리에는 오타쿠 상점이 들어서고 있다. 대형 체인점이던 '토미히사무센'이 문을 닫았는가 하면 가장 큰 가전제품 체인점이던 '로켓트'가 본점을 제외한 나머지 매장은 모두 문을 닫았다. 하지만 동인지, 캐릭터 상품, DVD, 성인만화 등을 파는 매장은 갈수록 늘고 있다. 아키하바라에서 3년 째 일하고 있는 한국인 유학생 K씨(이름 밝히면 안될까?)는 "이곳은 살아남기 위해 덩치가 큰 매장이 작은 매장을 흡수하고 있다. 장사가 너무 안되기 때문에 오히려 매장 수를 더 늘리고 있다. 내가 일하고 있는 이곳도 지난 1년 동안 직원은 그대로 둔 채 매장만 2배로 늘렸다"라고 밝힌다. 하지만 이런 변화를 무조건 나쁜 방향으로만 생각할 필요는 없다. 가전제품이나 완성형 PC 매장은 설자리를 잃었지만 PC 부품 전문매장과 DVD 매장, 디지털 카메라, 홈시어터 매장은 큰 호황을 맞고 있다. 새로운 유행이 아키하바라를 주도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이곳도 주인이 바뀔 뿐, 존재 그 자체가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또 낙후된 가전제품 매장이 문을 닫으면서 재개발이 예정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것도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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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하바라 매장들이 골머리를 앓는 가장 큰 고민은 작년부터 시작된 재개발과 2005년 아키하바라 한복판에 들어설 '요도바시 카메라' 매장이다. 아키하바라 전자상가가 만들어진지 수십 년이 지나면서 건물을 낡고 시설은 낙후되었다. 인테리어가 깨끗한 곳은 이제 10년 정도 지난 몇몇 건물뿐이다. 이런 상황에 대형 양판점마저 들어선다면 작은 매장은 살아남을 방법이 없다. 살기 위해서 더 큰 체인점에 합병되어 서로 덩치를 불리고 새로운 유행을 따라 업종변경이 붐을 이루고 있다. 봉건적인 점 조직을 이루던 상가는 점차 기업화 되어가고 있다. 불과 1년 사이에 일어난 일본 전자상가의 급박한 변화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들의 변화를 보고 우리의 전자상가는 어떤 변화를 준비해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해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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