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의 공포를 소중히 간직하고 있었던 나는 군대시절 우연히 어둠속의 나홀로의 네번째 작품이 출시된다는 소식을
화장실에 찢어져있던 모 월간지를 통해 입수할 수 있었다. 비록 2편과 3편은 실망스러운 수준이었지만 7년간의
공백을 깨고 나타난 어둠 속의 나홀로 4편에 대한 소식은 한창 무료함에 시달리고 있던 나의 눈을 번쩍 띄워주기에
충분했다.
이후 난 군대에서 지급되는 소중한 월급(약 만원 -_-;)을 차곡차곡 모아 게임을 구입하기 위한 장기간 저축계획에
돌입했다(지금 가만히 생각해보면 죽도록(?) 할일이 없었던 말년병장의 객기가 아니였던가 하는 생각이 든다).
먹고 싶은 음식도 제대로 못 사먹는 뼈를 깎는 고통을 견뎌낸 후에 난 모은 돈으로 외박을 나온 차에 PC방에
들려 쇼핑몰에서 부대로 게임을 주문하는 자살 행위와도 같은 짓을 감행하게 된다. 이유가 뭐냐고...? 군대에선
외부의 프로그램을 들여오는 것 자체가 보안을 위반하는 행위로 걸리면 재수 좋아야 최하 영창 15일이다. 특히나
PC를 켜는 순간 전산실의 보안시스템이 작동될 정도로 보안에 대한 경비가 삼엄한 필자의 부대에서는 '미치지
않고서'는 디스켓 한 장조차 들여올 수 없었던 상태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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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작품, 어둠속의 나홀로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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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쨋든 난 전산실에 있던 동기녀석을 만두 세 봉지(-_-;)로 매수한지 오래였고
어둠 속에 나홀로 4를 즐기고 싶은 욕망은 이미 제어가 불가능한 수준에 이른 상태였다. 며칠 후 게임은 내무실에
도착하게 되었고 살얼음판과 같은 중대장의 눈을 피해 게임 CD를 빼내고 패키지는 갈기갈기 찢어 불에 태워버리는
완전범죄를 저지를 수 있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새벽시간을 틈타 부대 PC를 이용해 게임을 실행한 나. 그때의 분위기느니 불 꺼진 사무실에서
바깥에 비바람까지 세차게 부는 이른바 '공포게임 즐기기 완벽' 조건에 이른 상태였다. 하얀마음 백구를 실행해도
흰 옷을 입은 귀신이 떠오를 만큼 공포를 느낄만한 상황. 영화와 같은 오프닝이 지나가고 타이틀화면이 나타나자
나의 흥분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에 이르렀다.
그리고 난 게임을 플레이하기 시작했다. 치지직거리는 배경음이 귀에 거슬렸지만 '구닥다리 스피커 탓'이려니 하며
별 생각 없이 게임을 계속 진행했다. 마치 3류 영화에나 등장할 법한 몬스터 등장구도 역시 눈에 거슬렸지만
'나중에 한꺼번에 겁 줄려고 그러는거지??'라는 마음가짐으로 계속 게임을 진행했다.
한시간이 지나고 두 시간이 지나고... 난 모니터에 비춰진 (-_-;)과 같은 내 표정을 발견 할 수 있었다.
저택 끝에서 저택 끝까지 죽도록 뛰고 또 뛰는 지겨운 코스는 둘째치더라도 항상 같은 장소에서 '어흥'하며 나타나는
똑같은 괴물에는 혀가 내둘러지기 시작했다. 빨리 죽지도 않으면서 똑같은 자리에 계속 나타나는 몬스터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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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4시를 넘기도록 게임을 계속 진행하던 필자는 마우스를 잡은 손에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웬만한
게임은 재밌게 즐기는 나인데... 더군다나 문명의 이기(?)를 접할 수 없었던 군대에서 또 그토록 기다린 어둠
속의 나홀로인데도 말이다. 당장 게임을 지워버리고 따뜻한 내무실로 돌아가고픈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그래도 참았다.
'나중에 엄청 무서운 장면이 나올꺼야'라는 일망의 희망을 가지고 말이다.
그런데 왠 이상한 녀석(?)을 피해 구석의 방으로 도망가서 조각상을 올려놓으니 엔딩이 나와버리고 말았다. 순간
느껴지는 허망함. 밤을 꼬박 새우면서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한건가 싶은 허탈감.
당직 순찰장교가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에도 난 그 지겨운 몬스터가 또 다시 등장한 줄 알고 샷건을
꺼낼려는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_-; 지겨운 게임을 하고 지겹게 군장을 싸고 지겨운 연병장을 돌고 있을
땐 정말이지 게임시디를 입에 넣고 씹어 먹어버리고 싶은 충동을 자제할 수가 없었다.
그때 깨달았어야 했다. '어둠 속의 나홀로 4: 새로운 악몽'. 부제목이 바로 게임을 말해주는 것이다라는 사실을...-_-;;;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