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블로 시리즈
2002.11.26 14:55윤주홍
1996년 당시 롤플레잉이라 함은 머리를 뜯어가며 끝없이 대화를 나누고 지도의 사방팔방을 찾아 떠나는 '레벨노가다' 게임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물론 울티마나 위저드리, 마이트앤매직과 같은 시리즈물과 일본형 게임이 롤플레잉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었지만 새로운
아이디어가 없이 점차 진부해져만 가는 게임에 많은 사람들은 ‘롤플레잉은 죽었다!’라고 외치며 비탄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어드벤처와 함께 저물어가는 롤플레잉' 등 각종 매체에서 걱정스러운 말이 떠돌고 있었을 무렵 그다지 이름이 크게 알려지지 않은 블리자드라는 개발사가 골방에서 개발하고 있던 게임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롤플레잉 게임이라는 장르에 부활의 불을 지폈던 '디아블로'였던 것이다.
나의 화려했던 과거를 돌려줘~!라고 울부짖고 있었던 롤플레잉 게임계에 혜성처럼 나타난 디아블로는 전 세계 많은 게이머들의 눈과 귀를 경악케 했고 지금은 블리자드를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의 게임개발사로 발돋움시킨 장본인으로 효자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기도 하다. 이번 시리즈물에서는 국제적인 폐인제조기로 그 명성을 날리고 있는 디아블로의 시작과 현재를 다뤄보기로 했다. 얼마 나오지도 않은 시리즈로 ‘왠 시리즈물이냐!!’라고 외칠 사람도 있겠지만 확장팩을 포함한 4개의 작품이 1996년부터 6년의 명맥을 이어온 점을 감안한다면 충분히 그럴만한 가치를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6년이 지난 아직도 판매순위에 다리를 걸치고 있는 문제의 작품이 바로 디아블로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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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8월 게임가에서는 뭔가 심상치 않은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디아블로의 알파버전을 접해본 베타테스터들이 경악의 소감을
이곳저곳에 흘리고 다니며 게이머들의 군침을 삼키게 한 탓이다. 급기야는 10월 중순 디아블로의 데모버전이 인터넷상에 공개되며 소문의
진상이 만천하에 공개돼 버리는데… 울티마 8 페이건과 같은 냄새가 나기도 하고 그 전에 큰 인기를 구가하던 크루세이더가 발전된 모습이
아닐까하는 말도 있었지만 어쨌든 1996년엔 찾아보기 힘들었던 멋드러진 그래픽과 마약과도 같은 중독성은 전 세계의 게이머들을 경악케
하기에 충분했다. 생소한 발상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디아블로의 충격적인 첫 인상의 첫 번째로는 ‘끝내주던’ 배경음악을 꼽고 싶다. 당시에 디아블로를 접해봤던 게이머라면 챕터 1 트리스트람 마을광장에서 들려오던 아련한 클래식 기타소리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기억 안난다고? 그럼 기억을 되살려봐야지… 지금 들어봐도 정말 아련한 음율이 아닌가? 디아블로 1을 처음 접했던 게이머들은 까마귀가 시체 눈을 파먹던 충격적인 오프닝에 한번 놀라고 트리스트람에서 들려오던 음악에 두 번째 놀라며 넋을 빼고 마을 한복판을 배회하곤 했다. 음악이 듣고 싶은 마음에서 말이다. 지금도 이 음악을 들으며 글을 쓰고 있지만 정말 전율이 느껴지는 곡이 아닐 수 없다. -_-;
음악이 게이머들의 혼을 빼놓은 첫 번째 유혹요소였다면 단순하고 액션성 넘치는 플레이 스타일은 게이머들이 앉은 의자를 아예 바닥에 붙여버리는 접착제 역할을 했다. 아직도 블리자드가 추구하고 있는 요소이긴 하지만 매뉴얼 한번 읽어볼 필요 없는 디아블로의 인터페이스는 컴맹조차 아무런 거부감 없이 게임에 빠져드는 요소가 됐다. 마법을 쓰기 위해 잠을 자며 마나를 채우고 복잡한 주문 공식을 외울 필요도 없었다. 손에 잡히는게 무기요 스크롤만 열면 튀어나가는게 마법이니 그 무슨 설명이 필요하랴? 이러한 단순한 요소가 디아블로를 자칫 단순무식한 액션게임으로 빠뜨려버릴 위험요소로 작용하기도 했지만 수많은 스킬트리와 뭔가 있어보이는(?) 스토리가 롤플레잉의 느낌을 충분히 살려내고 있었던 것이다.
우선 당시엔 전무한 개념이었던 랜덤맵 시스템이 게이머들의 플레이타임을 무한반복 리와인드 시스템으로 돌려놓고 있었다. 던전에 들어갈 때마다 새롭게 생성되는 미로는(몇가지 규칙이 있긴 하지만) 게임을 다시 접할 때마다 새로운 스토리를 즐긴다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고작 마을이라고 있는게 트리스트람 하나뿐이고 던전이라고 해봐야 계단을 따라 교회지하 16층까지 계속 내려가는 수준이었지만 이 단순성을 중독성으로 바꾼 요소 중의 하나가 랜덤맵 시스템이기도 하다. 디아블로 출시 이후 1997년 초 블리자드는 배틀넷이라는 생소한 시스템을 세계에 공개한다. 당시 멀티플레이 게임이래봐야 통신 게시판에 “멀티합시다. 우리집 전화번호는 000-5858-5454”라고 적어놓고 전화가 올 때까지 코를 골며 기다리는 것이 고작이었지만 이 배틀넷 시스템은 인터넷을 이용하여 전 세계의 게이머를 한 곳에 모은다는 획기적인 개념이었다. 물론 Mplayer나 칼리라는 세계적인 온라인 게임 접속시스템이 존재하긴 했지만 사용이 불편해 디아블로 안에 자체적으로 포함된 배틀넷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인터넷이 대중화되기 이전의 시점이라 폭발적인 반응 정도까진 아니었지만 어쨌든 자신이 플레이하던 캐릭터가 다른 사람과 함께 던전을 다니며 렙업과 아이템 모으기를 할 수 있다는 자체가 신기할 따름이었다. 물론 장난기가 발동한 몇몇 게이머가 음침한 방으로 초보자를 끌고가 PK후 아이템을 강탈하는 장난을 치기도 했지만 대부분 사이좋게 정정당당한 승부를 펼치거나 함께 모험을 즐기는 경우가 더 많았다. 중독성이 강한 이유 중의 하나가 이 멀티플레이에서 자신이 뽐내고픈 유니크 아이템 수집과 죽을 때마다 느껴지는 강렬한 렙업의 의지였다. 그러나 디아블로 1의 배틀넷 시스템은 보바펫이라는 초강력 에디터가 등장하면서 점차 인기가 시들해져가기 시작했다. 물론 인기순위는 블리자드에서 출시한 스타크래프트라는 괴물게임이 등장할 때까지 유지됐긴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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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11월 25일 출시된 디아블로의 확장팩 헬파이어는 사실 블리자드가 제작한 작품이 아니었다. 시에라의 강력한 요구(?)에
따라 제작된 헬파이어는 단지 블리자드가 디아블로의 MOD 제작을 허락해줬을 뿐 자사가 어떤 참여도, 간섭도 하지 않은 작품일 뿐이었다.
그래서인지 배틀넷도 지원되지 않았을 뿐더러 뭔가 블리자드답지 않은 부실한 패키지 내용과 게임성에 많은 게이머들이 실망을 느낀 디아블로
계의 이단아였다. 나중에 배틀넷 접속이 가능한 패치가 등장하긴 했지만 기존의 캐릭터를 멀티플레이용으로 전환하는 과정도 복잡해 그냥
싱글 미션만 마치고 아쉬움 속에 창고로 헬파이어를 밀어 넣는 경우가 많았다. 말 그대로 헬파이어는 디아블로의 데이터를 이용하긴 했지만
별개의 게임으로 보는 편이 좋다는 뜻이다(그래서 시에라에서 나온 쓰론 오브 다크니스와도 모종의 관련이 있다).
어쨌든 헬파이어는 기존의 교회 16층 외에 8층으로 구성된 새로운 던전이 추가됐고 현재 2편에 새롭게 등장한 캐릭터들의 모태가 되기도 한 몽크라는 새로운 캐릭터가 등장하는 작품이었다. 나중엔 정체를 알 수 없는 패치를 통해 바드와 바바리안이라는 새로운 캐릭터가 추가되는 등 마치 변형된 스트리트 파이터처럼 인터넷 이곳저곳에 있는 패치를 설치할 때마다 다른 게임으로 변해버리곤 했던 헬파이어는 적어도 디아 골수팬들에겐 무료함을 달래줄 수 있는 동반자로 자리매김을 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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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기찬 출시연기 뉴스를 기다리며 디아블로 2를 처음 접해본 게이머들의 반응은 경악이었다. 메뉴화면에선 800 * 600 해상도를
보여주다가 1996년으로 되돌아간 듯 640 * 480 해상도로 실행되는 게임화면을 보며 사람들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640 * 480 해상도에 256 칼라냐!!!!!”라고 사람들은 비명을 질러댔지만 블리자드는 ‘모든 이가
공평한 속도와 환경에서 게임을 즐기기 위해서였다’라는 다소 황당한 문구로 변명을 반복하고 있었다.
어쨌든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임 자체는 정말이지 지뢰찾기나 테트리스보다 더한 무한의 중독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스타크래프트의 저그가 프로토스의 실험물이었다는 사실을 아직도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었던 것처럼 디아블로의 스토리는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게임의 부수적인 부분에 불과했다. 물론 스토리 자체는 왠만한 영화는 명함도 못 내밀정도의 치밀한 구성을 보여주고 있지만 말이다. 디아블로 2는 바바리안, 팔라딘, 소서리스, 네크로맨서, 아마존까지 5명의 캐릭터가 등장했으며 총 4개의 ACT가 존재했다. 디아블로 1과 비교하면 비약적인 발전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인터페이스 자체는 디아블로 1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것이었기 때문에 전편을 즐겼던 게이머들은 아무런 거부감 없이 2편을 플레이할 수 있었다. 게이머들이 다소 충격으로 받아들였던 부분은 마치 습관처럼 인벤토리에 넣을 공간이 부족해 아이템을 마을 바닥에 뿌려놨다가 사라진 장면이었다. 아이템 보관 장소가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게이머들은 전편에서 마을 사방에 돈과 아이템을 뿌리고 다니다가 사라져버린 사실을 알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는 웃지 못할 에피소드가 이어졌다.
어쨌든 2편은 본격적인 퀘스트 시스템의 도입으로 단순살상과 아이템 수집의 반복으로 이루어졌던 전편의 아쉬운 점을 많이 보강했다. 그러나 이러한 부분은 부수적인 요소에 불과했을 뿐 사실상 단순살상과 아이템 수집은 2편이 더했으면 더했지 전편보다 못하지는 않았다. 바로 ‘레어 아이템’의 등장으로 아이템 수집광의 욕구에 불을 붙인 탓이었다. 또한 겜블이라는 일종의 도박시스템까지 도입, 아이템을 구할 때마다 줄기차게 겜블창에 넣고 돌리는 노가다를 반복하며 다른 사람이 구하지 못한 아이템을 만들어내기 위해 밤을 지새는 폐인족들이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사람들을 디아블로 2의 마력으로 끌어당기고 있었던 부분은 대량전투의 아찔한 쾌감을 불러일으키는 통쾌한 액션성이었다. 성장한 자신의 캐릭터가 멋진 무기를 들고 적진 한복판에 뛰어들어 휠윈드를 돌거나 파이어월을 때렸을 때 추풍낙엽처럼 쓰러지는 몬스터를 보고 있노라면 엊그제 잘못 먹은 점심이 소화될 정도로 상쾌한(?) 기분이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끝없이 반복되는 전투에도 불구하고 게이머가 모니터에서 눈을 뗄 수 없었던 이유는 바로 이런 곳에 있었던 것이다.
사실 디아블로 2편이 몰고 온 파장은 예상 밖의 놀라운 수준이었다. 추가 요금이 필요없는 배틀넷 시스템 탓인지 전국의 PC방에서는 너도나도 디아블로를 구입하기 시작했고 아직도 신설되는 PC방은 마치 운영체제처럼 디아블로 2를 구입해가고 있다. 비록 아이템을 구하기 위한 단순반복이 주를 이루는 내용이긴 했지만 디아블로 2에서만 느낄 수 있었던 통쾌한 액션과 오묘한 밸런스의 조화는 현재까지도 인기순위에 머물게 하는 위력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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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0 * 600 해상도 지원이라는 파격적인(?) 옵션과 함께 디아블로 2의 확장팩 파괴의 군주는 돌아왔다. 어쌔신과 드루이드라는
캐릭터가 추가되고 고작 하나의 ACT만 등장하는 수준이었지만 파괴의 군주의 인기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기 시작했다. 스타크래프트:
브루드워가 그랬던 것처럼 ‘옆사람도 하는데 난 고작 오리지날이냐…’라는 자괴감을 불러일으킬만한 블리자드의 상술은 정말이지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의 손길일 수밖에 없었다.
아이템 창고의 용량이 추가되고 ACT를 지날 때도 용병이 따라올 수 있다는 너무나도 당연한 업그레이드에도 사람들은 흥분했다. 한창 디아블로 2의 붐이 일어나고 있던 시기이기도 했지만 어쨌든 새로운 몬스터와 캐릭터 그리고 세계의 추가만으로도 확장팩의 위력은 빛을 발했다.
사실 아직도 높은 가격을 유지하고 있는 파괴의 군주는 확장팩으로서의 충실도는 떨어진다고도 할 수 있다. 시나리오의 연개성 부분도 조금은 미약하고 또 즐길 수 있는 범위 자체도 짧아 그 이전 스타크래프트: 브루드워에서 보여주었던 정도의 퀄리티는 못된다는 것이 지배적인 의견이다. 단순히 배틀넷에서 얻을 수 있는 레어 아이템의 추가와 퀘스트의 증가일 뿐 다른 롤플레잉 게임에서 보여주었던 충실성은 떨어지는 편이 아니었나 싶다. 물론 배틀넷에 중심이 실린 게임이긴 하지만 패치의 냄새가 짙은 이러한 확장팩은 충실하게 제작되었던 다른 롤플레잉 게임의 인식도까지 함께 낮추는 결과로 나타나게 됐다.
글을 마치며… 사실 디아블로가 롤플레잉 장르의 부흥에 이바지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액션 롤플레잉이라는 또 다른 주류를 형성했다는 것뿐이지만 그 존재는 다른 롤플레잉 게임의 부활을 이끌어낸 장본인으로서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단순히 아이템을 모으기 위한 게임 중의 하나로 전락해버린 신세가 아쉽긴 하지만 어쨌든 게임사에 획기적인 족적을 남긴 디아블로의 이야기는 끝없이 이어지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