둠 3 VS 하프라이프 2 믿거나 말거나.
2004.05.08 11:44PC Power Zine
# 장면 1 : Half-Life 2
알렙 PD : 에, 어려운 결정을 하셨습니다. 이제까지 블랙메사라는 존재가 있었다는 사실도 세상에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이런 용기를 내게 됐습니까?
바니 칼훈(B.Calhoun) : 뭐 용기랄 게 있나요. 잊고 싶은 기억이지만 무고하게 숨진 사람들을 생각하면 더 이상 침묵할 수 없었습니다. 늦었지만 그곳엣 겪을 일을 세상에 알려 다신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저를 이 자리에 설 수 있게 했다고 생각합니다.
알렙 PD : 구체적으로 블랙메사라는 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것입니까?
바니칼훈 : 정말 끔직한 일이었죠. 그러니깐 15년 전 저는 대학을 막 졸업하고 블랙메사의 경비로 출근했습니다. 청색 조(블루 쉬프트)로 편성 되서 5월 15일부터 8월 15일까지 에어리어 3/ 섹터 C의 안전을 책임지게 됐죠. 그곳에는 이상 물질 실험실이 있는데 위험수당이 가장 높았습니다. 블랙메사에 들어가기 전에는 사막처럼 황량한 그런 곳에 최첨단 장비와 박사들이 가득한 거대한 연구실이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몰랐습니다.
저는 에어리어 3으로 이동해 방탄복과 9mm 피스톨을 장비하고 두 박사님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있었는데 방송을 들어보니 이상 물질에 대한 실험이 이뤄지고 있더군요. 그런데 그때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폭음과 함께 정전이 되면서 엘리베이터가 요동치기 시작하더니 그만 아래로 추락했습니다. 저는 잠시 기절했고 깨어나니 다행히 몸은 크게 다치지 않았는데 눈앞에는 난생 처음 보는 이상한 생명체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살기 위해 싸우고 또 싸웠습니다.
알렙 PD : 그러니깐 외계인이 있었다는 말입니까?
바니 칼훈 : 뭐, 외계인이라고 할 수 있지만 외계 생명체라고도 부르는 게 더 적당할 듯합니다. 그런데 그들만 우리 블랙메사의 가족들을 위협하진 않았습니다.
알렙 PD :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외계인 말고 또 다른 존재들이 당신들의 목숨을 노렸다는 것인가요?
바니 칼훈: 예, 사고가 나고 얼마 있어 해병대가 도착했습니다. 처음에는 그들이 외계인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주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해병대가 외계인보다 무서운 존재였습니다. 그들은 블랙메사의 사람들이 보이는 대로 죽였습니다.
알렙 PD : 칼훈 씨가 감정이 격해진 듯하니 잠시 광고방송을 듣고 계속하겠습니다.
광고 : 다시 여러분을 화성으로 초대합니다. 존 카맥이 id만이 할 수 있는 최첨단 그래픽으로 무장한 <둠 3>에서 진정한 지옥의 고통을 맛보십시오. -액티비전
알렙 PD : 예, 광고 잘 보았습니다. 바니 씨, 정말 충격적인 이야기입니다. 당신은 그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 어떤 낌새라도 느끼지 못했습니까?
바니 칼훈 : 예, 그날 실험실 기계가 고장 났는데 원인이 애매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푸른색 정장에 검은 가방을 든 사내를 여러 번 목격했습니다. 그는 누군가를 지켜보는 것 같았는데 누군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알렙 PD : 당신이 유일한 생존자인가요?
바니 칼훈 : 아닌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몇 명 더 살아남았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용기가 나지 않아 찾아보지는 못했습니다.
알렙 PD : 경비이긴 하지만 많은 외계인과 해병대의 공격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입니까?
바니 칼훈 : 난이도를 이지(EASY)로 놓고 했기에 가능했습니다.
알렙 PD : 아! 그렇군요. -_- 긴 시간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고맙습니다. 현재 사설 경비업체에서 일하고 있는 바니 칼훈 씨는 15년 전 있었던 끔직한 사건의 진상에 대해 조사해 줄 것을 정부에 정식으로 요청했습니다. 아직 정부의 입장발표가 없는 가운데 다음 이 시간에는 그가 이야기한 블랙메사가 정말 존재했는지 그 현장으로 가보겠습니다. 늦은 밤까지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장면 2 : Freeman & Alyx
여러분, 안녕하세요. PD 공책입니다. 외계인의 침공으로 전 세계에 긴급 상황이 발생한지 3일이 지났습니다. 생필품에 대한 보급이 원활하게 이뤄지고 있지 않아 전국적인 소요사태가 들불처럼 번지고 있지만 한편에선 외계인으로부터 가족과 시민들을 구하겠다고 나선 민간인들이 있어 희망을 갖게 합니다. 오늘은 예고와 다르게 외계인과의 침공에 맞선 민병대의 활약을 화면에 담았습니다.
알렙 PD : 예, 여기는 시티 17의 다운타운입니다. 제 뒤로는 현재 바리게이트를 두고 민병대가 거대한 세 발을 가지고 있는 괴물(스트라이더)에 맞서 싸우고 있습니다. 현재와 같은 상황이라면 희망이 없어 보이지만 그들은 결코 포기할 수 없다는 각오입니다. 잠시 총성이 멎었습니다. 저기 민병대들이 숨을 돌리며 대오를 다시 짜고 있습니다. 실례하겠습니다. 저는 PD 공책의 알렙 PD라고 합니다.
고든 프리먼(Gordon Freeman) : 지금 이렇게 당신과 노닥거릴 시간이 없습니다.
알렙 PD : 잠시만 부탁드립니다. 전투에는 어떻게 참여하게 됐습니까?
고든 프리먼 : 가 보라니까요. 아니지, 마침 사람도 모자랐는데 잘됐네. 이 총 받으세요.
알렙 PD : 어쩌나? ( 잠시 망설이다가) 큰 도움이 되지는 못하겠지만 작은 힘이나마 보태드리겠습니다.
알렙 PD : (장면이 바뀌고 방송사 스튜디오에서 다시 시작한다.) 그리고 저와 담당 카메라맨은 목숨을 걸고 전투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런데 카메라맨은 그날 전투를 마치고 돌아오다가 갑작스런 공격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저도 작은 부상을 입어 인근 학교에 마련된 임시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습니다. 프리먼이라고 밝힌 그 사나이는 전투가 끝나자 아까는 미안했다며 자신에 대해 이야기해줬습니다. 전직 물리학 박사로 연구실에서 일했다고 하는데 어떻게 전투의 최선에 서게 됐는지는 시원하게 밝히지 않았습니다. 그가 전투를 벌이는 목적이 무엇인지? 많은 사람들이 절망하고 있는데 계속 희망을 가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지? 그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아쉽지만 그날 있었던 처철한 전투상황을 전해 드리는 것으로 프리먼의 답변을 대신하겠습니다. 거대한 스트라이더는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다가왔습니다. 하늘에선 공충처럼 생긴 비행체가 공격해오고 지상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들이 하얀 마스크를 쓰고 우릴 공격했습니다.
그 뒤에는 거대한 스트라이더가 있었는데 바위에 달걀을 던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저흰 다가오는 스트라이더를 보고 어쩔 줄 몰라 우왕좌왕하는데 프리먼이 저희들에게 무엇을 해야 할지 신속하게 알려줬습니다.
그의 계획에 따르면 스트라이더는 공격력이 강하지만 한 번 공격하면 딜레이 시간이 길다며 그 사이에 총공격을 하자는 거였습니다. 무서웠지만 용기를 내어 그의 말대로 우린 스트라이더가 공격하길 기다렸다가 일제히 화력을 집중했습니다. 물론 처음 공격에 스트라이더는 끄덕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길 몇 번, 드디어 스트라이더가 쓰러졌습니다. 그리고 남은 하얀 마스크와 비행체를 제거하자 적막감만이 감돌았습니다. 바람소리만이 우리의 거친 숨소리를 숨겨줬습니다.
그렇게 첫 전투는 승리로 끝났습니다. 우린 부상자들을 데리고 인근 학교로 이동하는데 갑자기 6개의 다리를 가진 곤충처럼 생긴 생명체(사람들은 이걸 ‘앤트 라이언’이라고 부르더군요)가 뒤에서 공격해왔습니다. 당황한 우리는 엄폐물을 찾아 몸을 숨겼지만 빠르게 접근한 앤트 라이언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카메라맨은 앤트 라이언의 앞발에 허리가 잘려 쓰려졌습니다. 그는 피를 토했습니다. 몇 번의 경련이 이어지고 카메라를 쥐고 있던 왼손이 펴졌습니다. 저는 그 앤트 라이언에 위협사격을 가하고 그에게 다가가 카메라에서 테입을 꺼내 왼쪽 가슴 주머니에 넣었습니다.
그때 해병대가 나타났습니다. 바니 칼훈에 대한 인터뷰를 한지 얼마 되지 않아 오히려 긴장했는데 그들은 우리를 도와 앤트 라이언을 물리쳤습니다.
프리먼이 과일처럼 생긴 걸 던지니 앤트 라이언은 우리를 공격하려다가 일제히 그것으로 향했습니다. 그 사이에 해병대가 앤트 라이언을 하나씩 제거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해병대를 이끌고 있는 이는 30대 후반의 사나이로 애드리언 쉐퍼드(Adrian Shephard)라고 자신을 밝혔습니다.
그는 우리 팀을 이끌고 있는 프리먼을 알고 있는 눈치였으나 내색은 하지 않았습니다. 쉐퍼드는 또 볼일이 있을 거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고 자신의 부대와 함께 유유히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앨릭스(Alyx)를 처음 본 건 바로 프리먼의 스승이었다는 클라이너 박사의 연구실이었습니다. 프리먼에 따르면 그가 추천해서 들어간 직장에서 이보다 어려운 일을 경험했다고 하는데 그게 어디인지는 말하지 않고 빙긋 웃기만 하더군요. 하여튼 그 연구실이 마침 학교병원 옆에 있어 가는 길에 잠시 들렸다가 마주친 것입니다. 나중에 안일이지만 그녀는 블랙메사에서 살아남은 사람의 딸이었습니다. 다시 만났을 때 그녀에게 블랙메사에 대해 물어보니 자신은 잘 모른다며 아버지가 오면 연락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프리먼은 그녀와 함께 할 일이 있다며 다음날 저녁 폐허가 된 거리를 가로질러 갔습니다. 앨릭스는 아직 저에게 연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을 다시 볼 수 있으리라 기대를 가져보지만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되는 듯싶어 가슴이 아픕니다. 정녕 희망은 없는 것인지? 이러한 위기는 어떻게 해서 초래됐는지 의문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전 앨릭스와 프리먼이 어떤 위험 속에서도 무사했으면 좋겠습니다. 지구를 구하지 못하더라도 시티 17을 다시 찾지 못하더라도 말입니다.
# 장면 3 : Doom 3
그렇게 싸우는 와중에 나는 국회 도서관이 자료실에 들어갈 수 있었다. 외계인의 공격으로 건물의 일부가 무너져 내렸지만 자료실은 비교적 잘 보전되어 있었다. 비디오 자료실에서 ‘극비’라고 써있는 자료를 보고 너무 놀라 이렇게 기록으로 남긴다. -알렙 PD-
어떻게 이 자료가 이곳에 보관되고 있는지 알지 못하겠다. 다만 이 비디오자료에 찍힌 유니언 에어로스페이스 코포레이션(UCA)의 생존자는 너무 큰 충격으로 사회생활이 힘들어 현재 격리중이라는 사실을 추가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가 화성에서 경험한 일들은 마치 지옥에서 살아 돌아온 이의 이야기처럼 들렸다. 하긴 이렇게 외계인들과 전쟁이 한창인 상황도 그에 못지않지만 말이다.
그는 UAC라는 화성기지에서 첫 임무를 수행했다. 제한적이기는 했지만 비교적 자유롭게 기지를 돌며 그곳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과 이야기도 하고 무슨 실험이 진행 중인지도 알 수 있었다. 다들 밝은 표정이어서 그곳에 지원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뭔가 문제가 발생했다. 지옥에서 나온 영혼들이 사람들 몸속으로 들어간 것처럼 모두들 변했다. 얼굴이 일그러지고 몸이 뒤틀렸다. 그들은 더 이상 사람이 아니었다.
이건 분명히 93년 10월에 있었던 ‘화성의 둠’ 사건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장소나 정황뿐 아니라 묘사한 몬스터들의 모습도 그 사건과 같았다. 어찌된 일일까? 90년대 중반을 뜨겁게 달궜던 화성 포보스 위성의 둠 사건은 일단락되고 새롭게 화성에서 재건사업이 진행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다시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자신을 둠가이라고 밝힌 이 남자는 그날의 긴박했던 상황을 이렇게 전한다. 분주하게 움직이던 사람들로 활기가 넘치던 UAC는 순간 몬스터가 우굴거리는 던전이 되었다. 동료들은 죽거나 좀비처럼 팔을 흔들며 공격해왔다. 오른팔이 뱀처럼 늘어나는 한 괴물은 점프를 하며 다가왔고 환기구를 통해 또는 바닥을 뜯고 사방에서 몰려들었다. 어떤 강력한 무기도 죽음으로부터 나를 겨우 벗어나게 도와줄 뿐이었다.
악몽은 쉽게 끝나지 않았다. 한 건물에서 벗어나 다른 건물로 들어가면 전에는 보지 못했던 괴물들이 어둠속에서 걸어 나왔다. 눈에 보이지 않는 괴물은 그 자체로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가 시체를 들고 돌아다니면 마치 시체가 스스로 자신이 몸을 흔들어 대는 것처럼 보였다. 특히 UAC는 좁은 통로가 계속해서 연결된 구조라 마치 긴 동굴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더구나 가끔씩 불이 나가면 긴장감은 절정에 달했다.
나는 미로처럼 얽힌 UAC를 돌고 돌아 탈출구를 찾았다. 다행히 나에겐 새로 주은 무기를 설명해주고 새로운 지역의 맵을 알 수 있게 도와주는 PDA가 있어 버틸 수 있었다. 화성에 파견되기 전에 업무 인수인계 과정에서 배운 PDA 사용법 강좌가 나의 목숨을 구했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했다. 지옥에서 탈출한 나는 소형 비행선을 타고 고향별로 향했다. 우주에서 바라본 지구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 다시 PD 공책으로 돌아오다.
알렙 PD 수고했습니다. <둠 3>와 <하프라이프 2>는 몇 년에 걸쳐 수많은 프리뷰, 인터뷰, 게임 플레이 동영상, 스크린 샷 등을 통해 소개되고 알려졌지만 여전히 게임의 많은 부분들이 베일에 싸여있습니다. 더구나 최근 몇 개원 동안에는 홍보활동도 뜸해졌습니다. 아마도 두 게임의 개발사들은 오늘 5월 E3를 최적의 홍보시점으로 보고 여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듯합니다. 따라서 E3 전까지 이들 게임에 대한 새로운 기사는 보기가 어려울 전망입니다.
<둠 3>와 <하프라이프 2>에 대한 자료를 모으면서 보니 두 게임 모두 이전 시리즈의 특징이 여전하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둠 3>의 이야기는 단조로웠고 관련 동영상도 몬스터의 움직임과 이를 쏘는 행위자체에 치중해서 만들어졌습니다. 이에 비해 <하프라이프 2>는 극적인 전개를 중심으로 다양한 상황에서 펼쳐지는 전투장면을 영화처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특성은 글을 쓸 때도 반영이 돼서 세계관이 깊은 <하프라이프 2>는 쓸수록 더 쓰고 싶었던 반면 <둠 3>는 몇 줄을 쓰고 나니 더 이상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이것만으로 두 게임을 상대평가 하기에는 너무나 이릅니다. 시시하게 보이는 이야기에 단순하고 아케이드에 가까운 게임 플레이로 똘똘 뭉친 <둠>시리즈가 10년이 지나도 여전히 빛을 발하고 있다는 사실은 <둠 3>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지 못하게 합니다.
인공지능이든 스크립트에 의한 연출이든 최고가 될 것으로 믿는 <하프라이프 2>와 한 번도 게이머를 실망시킨 적이 없는 id가 회사의 명운을 걸고 만드는 <둠 3>는 분명 올해 최고의 게임들이 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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