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동서양 요소가 잘 조합된 대기만성형 개발자 고동일PD
2005.02.18 10:50게임메카 박진호
게임을 접하면서 일본으로 대표되는 동양식 게임을 주로 즐겼느냐 아니면 북미로 대표되는 서양식 게임을 주로 즐겼느냐에 따라 게임에 대한 관점이 크게 달라지는 것을 우리는 흔히 보고 경험해 왔다. 물론 동양식 게임을 주로 즐겼다고 해서 게임성과 상관없이 서양식 게임을 무조건 배척하고 싫어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게임을 선택하고 평가하는데 있어 이러한 관점은 중요하게 작용한다. 그리고 이는 게이머들이 게임을 선택하고 평가하는데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게임을 개발하는 개발자의 개발마인드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이는 이전에 소개한 그리곤엔터테인먼트 김병철 개발이사나 프리스톤 문득기 기획이사의 경우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이번에 소개할 엔틱스소프트 고동일 PD는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꽤 독특한 개발자라고 할 수 있다. 유년시절에는 ‘울티마’나 ‘바즈테일’ 등의 서양식RPG를 주로 즐기면서 게임개발에 대한 의지를 확고히 했으며 자신의 개발작품에 대한 청사진은 ‘패미컴 워즈’, ‘콘트라’ 등 일본식 게임을 즐기면서 그렸기 때문이다. |
[세 번째 이야기] 엔틱스소프트 고동일 PD
흔히 학원물이라 부르는 재패니메이션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가진 온라인게임 ‘요구르팅’ 개발을 총괄하고 있는 고동일 PD(이하 고PD)가 처음으로 접했던 게임은 동년배 개발자들과 마찬가지인 ‘인베이더’.
‘그 당시에는 누구나 다 인베이더 밖에 즐길 게임이 없지 않았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당시 고PD가 초등학교를 갓 입학한 상태였고 거주했던 곳이 제주시였던 것을 감안한다면 게임에 대한 그의 열정은 조금은 남달랐다고 할 수 있다.
“제가 게임을 즐기게 된 것은 운이 좋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오락실 자체가 드물었던 시절 운 좋게도 집 근처에 인베이더가 있었던 오락실이 한 군데 있었거든요. 인베이더 외에도 많은 게임을 즐겼던 것 같은데 인베이더 외에는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게임이 없네요”
인베이더를 플레이하기 위해 부모님의 눈을 피해 부단히도 드나들었던 오락실. 고PD는 이렇게 게임에 빠지기 시작한 자신의 게임인생에 서광이 비추기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고 제주도보다는 게임을 접하기 더 쉬웠던 경기도 과천으로 이사를 하면서부터였다고 당시를 회상한다.
‘이 게임은 어떻게 만들까?’라는 의문보다는 ‘이 게임 어떻게 하면 잘할까’라는 의문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던 고PD가 게임개발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중학교 입학 후 컴퓨터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친구들을 만나면서부터였다.
▲왕년에 이거 만져보지 않은 개발자가 있으려나. 그정도로 하나의 관문처럼 여겨진 하드웨어들 |
“사실 초등학교 때에는 동네 컴퓨터학원에 다니면서 베이지 정도를 배웠을 뿐이었기 때문에 그다지 PC에 대해 관심이 높았다고 할 수 없었습니다. 본격적으로 컴퓨터에 관심을 갖고 열의를 보인 것은 중학교를 입학한 이후일 겁니다”
중학교 입학이후 컴퓨터라는 공통의 관심사를 갖고 있는 친구들을 만나면서 본격적으로 컴퓨터에 관심을 갖게 된 고PD는 친구들과 컴퓨터관련 서클을 만들 정도로 높은 열의를 보였으며 지금까지도 당시 서클 친구들과 함께 게임을 개발하고 있을 정도로 큰 의미를 두고 있다.
고PD가 처음 마련한 컴퓨터 환경은 당시로서는 매우 일반적이었던 애플II. 하지만 별도구매품이었던 모니터를 구입할 자금이 부족해 RF모듈레이터를 이용해 TV를 모니터로 사용해야만 했었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처럼 게임이 시중에 정식으로 유통되지 않았을 당시 고PD는 애플II로 즐길 수 있는 게임을 구하기 위해 청계천을 전전했으며 자연스레 게임에 대한 그의 관심은 초등학교 때 주로 즐겼던 오락실게임에서 PC게임으로 점점 옮겨가기 시작했다.
▲개발자로서의 초석이 된 ‘신검의 전설’
어렵게 컴퓨터를 마련한 고PD가 처음 즐겼던 게임은 유명 만화를 바탕으로 개발된 ‘스파이 VS 스파이’. 스파이 VS 스파이는 입이 뾰족한 검은 스파이와 흰 스파이가 서로 대결을 벌이며 가방에 필요한 물품을 담아 건물을 탈출해야 하는 당시로서도 비교적 단순한 패턴으로 구성된 게임. 고PD는 함정을 이용해 라이벌과 대결해야만 하는 전략성과 화면을 상하로 분할하면서 지원했던 2인 대전시스템이 상당히 매력적이었다며 개발자가 된 뒤에도 스파이 VS 스파이를 통해 받았던 인상은 여전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게임에 대한 그의 시각을 바꾼 게임은 거의 대부분의 개발자들이 명작이라고 입을 모아 말하는 울티마와 바즈테일 시리즈였다.
특히 고PD는 울티마 시리즈에 대해 디스크 4장이라는 당시로서는 고용량의 게임이었기 때문에 쉽게 즐길 수 있는 게임이 아니었지만 플레이어가 머릿속에 그리는 상상의 마법세계를 간접 체험할 수 있을 정도의 자유도와 몰입감은 지금에 와서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고 극찬했다.
▲영원한 고전이라고 불려지는 울티마 시리즈. 고PD는 85년과 88년에 각각 발매된 울티마 4와 울티마 5를 즐겨했다고 |
하지만 다양한 RPG장르의 게임을 심취하며 즐길 정도로 게임에 대한 시각을 바꾸어줬던 울티마, 바즈테일 시리즈지만 고PD에게 있어 이들 게임은 게이머로서 재미있게 즐겼던 게임이상의 의미는 갖지 못했다.
오히려 고PD는 해외게임에서 게임개발에 대한 영향을 받은 다른 개발자들과 달리 국내 패키지게임을 접하면서 본격적으로 게임개발에 대한 의욕을 불태웠던 케이스다.
“게임을 개발해보고 싶다라는 생각을 한 것은 남인환 씨와 우현철 씨가 고교시절에 개발해 1989년 애플II용으로 발매된 국내최초의 한글 RPG였던 신검의 전설을 플레이하고 나서였습니다. 울티마나 바즈테일과 같은 게임을 플레이해왔기 때문에 그래픽만 보자면 이질감이 있었지만 한글 RPG를 개발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신검의 전설을 통해 봤기 때문입니다”
국산게임이라고 마땅하게 내세울 것도 없었던 때에 고등학생들이 한글RPG를 개발해 상용화시킨 것에 고PD는 적잖게 충격을 받은 듯했다.
“당시 신검의 전설은 울티마의 아류라는 별명을 달고 있었지만 양손에 아이템을 하나씩 장착하는 시스템 등 신검의 전설만의 새로운 시스템을 탑재해 울티마를 즐겼던 게이머들에게도 새로운 즐거움을 줄 수 있을 정도로 완성도가 높았죠. 그때였을 겁니다. 게임을 개발해보자고 마음을 먹었던 것이 말이죠”
▲일본게임과 애니메이션은 개발자로서의 이정표
애플II를 통해 PC게임을 조금씩 접하기 시작한 고PD는 인베이더를 즐기기 위해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부터 자주 드나들었던 오락실 출입을 조금씩 자제해 나갔으며 일본에서 살고 있었던 친척덕분에 처음 접하게 된 닌텐도의 패미컴 타이틀을 본격적으로 즐기면서 오락실과의 인연을 정리했다.
“대전격투게임에 소질이 없었던 저로서는 대전격투게임이 주류를 이루었던 오락실이 더 이상 흥미의 대상으로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패미컴으로 즐겼던 영환도사나 콘트라와 같은 게임이 오히려 더 체질에 맞았다고 할 수 있죠”
▲이런 대전격투게임하고는 일찍이 거리가 멀었던 고PD |
일본에서 개발된 패미컴용 타이틀을 즐기며 울티마, 바즈테일 등 서양RPG가 줬던 재미와는 전혀 다른 재미를 느끼게 된 고PD는 인텔리전스가 개발하고 닌텐도가 발매한 ‘패미컴 워즈’를 가장 인상 깊었던 게임으로 꼽았다.
서양식 게임과 달리 코믹하게 그려진 캐릭터를 이용한 턴제 전략시뮬레이션이라는 점을 가장 인상 깊게 본 고PD는 실제로 이와 비슷한 게임을 개발해보기 위해 컴퓨터 서클 친구들과 방안지에 도트를 찍어가며 이를 흉내낸 게임을 만들기도 했었다.
▲이 게임을 즐기면서 게임개발에 대한 의욕이 더 불타올랐다고 고PD는 설명했다. 당시로서도 패미컴 워즈는 대전략 못지 않은 완벽한 밸런스로 큰 인기를 끈 바 있다 |
하지만 이런 고PD의 게임개발에 대한 열정은 학업이라는 벽을 넘지 못했다.
스스로 게임을 즐길 수 없었던 고등학교 시절을 게임인생에서 암흑기였다고 평가하는 고PD는 그동안 게임에 쏟았던 관심을 재패니메이션으로 돌리면서 자연스럽게 일본문화, 일본게임, 일본어에 대한 지식을 쌓게 됐고 개발자로서의 지금의 모습에 이르게 됐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가 즐겨봤다는 애니메이션 오렌지로드. 부모님이 외출하시면 빠짐없이 봤다고 한다 |
대학합격통지를 받고 바로 울티마 5를 즐기기 위해 486컴퓨터를 장만할 정도로 서양식RPG에 대한 애착이 남달랐지만 대학입학 후 당시로서는 생소했던 ‘애니메이션-게임’ 동아리를 조직해 비슷한 취향의 친구, 후배들과 지낼 정도로 일본문화를 접한 이후 그는 많이 변해있었다.
“개발자로서 이정표가 된 셈이죠”
요구르팅을 개발하고 있는 고PD는 당시의 경험을 이렇게 설명했다.
▲리니지를 통해 경험한 것은 개발자로서의 큰 자산
컴퓨터 게임을 개발하기 위해 전공을 컴퓨터 공학으로 정하고 애니메이션-게임 동아리까지 조직해 운영했지만 고PD는 대학시절 이렇다 할 작품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게임개발자를 꿈꾸는 보통사람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다른 길을 찾아봄직도 하지만 고PD는 게임개발에 대한 의지를 굽히지 않고 대학원으로 이어나갔다. 그리고 당시 연구실 선배이자 현 엔씨소프트 대표인 김택진 씨를 만나게 되면서 개발자로서의 꿈을 다시금 이뤄나갔다.
김택진 대표의 권유로 당시 B2G 솔루션 개발업체인 엔씨소프트에서 아르바이트 개발자로 일하기 시작한 고PD는 송재경 씨의 입사와 함께 온라인게임 리니지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됐기 때문이다.
송재경 씨가 엔씨소프트에 입사했을 당시 리니지는 거의 완성된 상태였기 때문에 개발에 직접적으로 참여할 수 없었지만 보조 프로그래머로서 송재경 씨를 서포트하고 GM업무를 동시에 진행하면서 게임개발 실무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는 고PD.
그런 고PD는 온라인게임 리니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리니지가 게임으로서 게임개발자를 꿈꿨던 제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확실히 말할 수 없지만 리니지를 통해 본 선배들과 유저들의 모습은 제게 가장 큰 자산이 됐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게임개발자를 꿈꾸며 즐겨왔던 수 많은 게임들을 통해 ‘게임은 사람을 즐겁게 하기 위한 도구’라는 것을 깨달은 고PD는 “그 방법에는 정말로 수 많은 길이 있으며 그 방법은 어느 것도 우월하거나 열등하지 않다”라고 말했다.
‘얼마만큼 사람들에게 재미와 감동을 줄 수 있는가’가 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하는 고PD. 부디 요구르팅을 비롯해 그가 만드는 게임에 이런 그의 마음자세가 잘 녹아들어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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