⑤늦깎이 개발자들의 좋은 본보기 한상은 대표
2005.03.15 09:10게임메카 박진호
본 기획기사를 비롯해 게임개발자와 관련된 여러 기사를 통해 익히 알고 있듯이 국내 게임개발자의 대부분은 성장과정기간동안 게임개발자를 목표로 나름의 수순을 밟아왔다.
누가 이것이 바로 게임개발자가 되기 위한 정해진 스텝이라고 못 박아 놓지도 않았는데 열의 일곱은 비슷한 과정을 거쳐 게임개발자에 이른다. 물론 그 방법이 가장 안정적이고 정형화된 방법이며 현실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과정에 있어 약간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현재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20대 후반에서 30대 초, 중반 개발자들의 대부분은 스페이스 인베이더를 통해 게임을 처음 접했으며 애플이나 MSX를 통해 바즈테일, 울티마 시리즈를 즐기면서 게임개발에 대한 꿈을 키웠다. 뒤늦게 게임이 아닌 컴퓨터에 대한 재미에 눈을 뜨게 된 이들은 컴퓨터 공학을 전공해 프로그래밍에 대한 지식을 습득하고 게임개발에 대한 실무능력을 쌓은 뒤 개발자로서의 첫 발을 내딛였다. 하지만 현재 게임업계에는 이렇게 정형화된 코스를 밟지 않고서도 게임개발자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유명 개발자들이 많이 있다. |
게임개발자라고 해서 처음부터 게임에 대해 애착을 갖고 게임만을 생각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필자는 나코인터랙티브 한상은 대표를 만나면서 깨닫게 됐다.
어떻게 보면 한상은 대표의 성장기도 앞서 설명한 개발자들과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게임개발에 대한 열정을 게임을 즐기면서 또는 컴퓨터를 공부하면서 느낀 것이 아닌 18개월에 걸친 일반 회사원으로서의 생활을 통해 깨닫게 된 점은 특이할 만하다고 할 수 있다.
[다섯 번째 이야기] 나코인터랙티브 한상은 대표
동년배의 다른 게임개발자들과 마찬가지로 한 대표도 아케이드게임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스페이스 인베이더’를 통해 처음 게임을 접했다. 하지만 게임은 한 대표의 호기심 많은 시선을 묶어두기에는 그리 매력적인 컨텐츠가 아니었다.
여느 아이들과 달리 게임을 좋아하지 않았던 한 대표는 믿기지는 않지만 초, 중, 고등학생 시절 학과공부에만 전념했으며 나름대로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유일하게 가졌던 취미는 ‘드래곤볼’, ‘북두신권’ 등이 시중에 유통되면서 읽기 시작한 만화책 정도.
▲한 대표는 아직까지도 틈만나면 만화를 열독할 정도로 만화에 대한 인상을 깊게 새기고 있다 |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게임도 꽤 매력적인 컨텐츠였지만 어렸을 때는 게임을 하는 것보다 만화책을 보는 것이 더 즐거웠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하지만 만화책을 보는 것도 게임을 하는 것 만큼이나 자녀교육에 부정적이라는 시각을 가진 부모님 덕에 유일한 탈출구였던 만화책 읽기도 그리 쉽지만은 않았던 모양이다.
그래도 최근까지 짬이 나면 틈틈이 책방에 들러 신간만화를 챙겨볼 정도로 당시 추억에 깊은 애착을 가지고 있는 한 대표는 게임보다는 만화에 대해 예찬론을 펼친다.
“만화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아이템은 게임개발에 많은 도움이 됩니다. 게다가 소설과는 달리 굉장히 직관적인 방법으로 내용을 전달하기 때문에 짧은 시간에 많은 아이템을 캐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죠”
이렇게 게임보다는 만화가 좋았던 한 대표가 처음으로 게임이 재미있다고 느낀 것은 대학교 4학년 때 접한 ‘디아블로’를 통해서 였다고 한다. 사실 게임을 재미있다고 느끼면서 빠져들었던 것은 학과동아리에서 한글화를 시도한 영문 머드게임을 접하면서부터였지만 냉정하게 따지자면 게임도 재미있었겠지만 아는 사람들과의 커뮤니티가 더 큰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기 때문에 한 대표는 혼자서도 충분한 재미를 느낄 수 있었던 ‘디아블로’에 더 큰 의미를 두고 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그는 자신의 전공을 게임개발에 적용하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다.
▲빌 게이츠가 되고 싶었던 소년
한 대표는 초등학생 때 애플컴퓨터를 처음 접하면서 컴퓨터의 매력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우연히 보게 된 컴퓨터 학원 원생모집광고를 통해 처음 컴퓨터학원에 방문했다는 한 대표는 그때부터 컴퓨터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이뤄졌다고 당시를 설명했다. “단지 학원비를 싸게 해준다는 말에 부모님께 해보고 싶다고 무작정 부탁했습니다. 아무런 준비 없이 처음 맞게 된 컴퓨터가 그 당시 제가 배우고 있었던 주산, 피아노보다 더 신기하고 재미있는 것이란 걸 알게 됐습니다” |
컴퓨터와의 인연을 결코 우연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한 대표는 휴일에도 도시락을 싸들고 학원을 찾아가 컴퓨터 공부에 열중할 정도로 컴퓨터에 푹 빠져 있었다.
컴퓨터 공부에 열중한 결과인지 한 대표는 영문 명령어로 이뤄진 BASIC 프로그래밍을 크게 어려워하지 않았고 모양은 투박하지만 스페이스 인베이더 류의 슈팅게임을 직접 프로그래밍할 정도로 실력이 뛰어났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한 대표가 재미있게 그리고 자신 있게 프로그래밍 한 것은 게임이 아닌 일반 어플리케이션이었다.
게임보다는 바이오리듬과 같은 어플리케이션 개발에 관심을 보인 한 대표는 삼각함수에 대한 이해는 고사하고 구현자체로 버거웠던 MSX와 애플컴퓨터를 이용해 어느 정도 완성도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이런
바이오리듬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 당시에는 한 대표의 목표였다
프로그램 개발 외에 MSX나 애플컴퓨터에서 구동되는 게임은 즐겨보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롬 카트리지, 테이프 등 다양한 게임을 구입해 즐겨보기는 했지만 게임에 큰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기억에 남는 게임은 없다고 대답했다. 오히려 한 대표에게 있어 게임은 헥사, 아스키코드 에디팅 프로그램이었던 PCTools를 통해 데이터 수정을 연습할 수 있는 좋은 교재였다.
그렇게 컴퓨터가 마냥 좋았던 한 대표는 빌 게이츠가 되겠다는 커다란 포부를 갖고 컴퓨터공학을 선택했다. 빌 게이츠가 되겠다는 꿈이 너무나 컸는지 학년이 올라가면서 포부에 대한 기대는 점점 소원해져갔지만 개발자가 되겠다는 의미만큼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프로그래머로서의 소양을 쌓기 위해 영어동아리에 들어갔다는 한 대표는 “게임개발자든 일반 어플리케이션 개발자든 영어는 필수”라며 “매뉴얼이나 관련정보들이 대부분 영문이기 때문에 영어에 대한 거부감도 없애고 개발자로서의 심화학습을 위해서 였다”고 당시를 설명했다.
또 그는 “게임개발자라고 해서 게임에만 매달리는 것은 위험하다”며 “게임 외에 다양한 지식습득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충고했다.
▲뜻밖의 기회로 게임개발에 매력을 느끼다
게임에 큰 관심이 없었던 한 대표가 게임플레이가 아닌 게임개발에 매력을 느끼게 된 것은 아주 우연한 기회였다고 한다.
“대학교 4학년 때 머드게임을 통해 처음 게임개발에 참여했었습니다. 그 당시 각 대학교마다 컴퓨터 동아리들이 학교를 대표해 활발히 게임개발 및 서비스 활동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제 모교에는 그런 팀이 하나도 없었던 거에요. 개발력이 없는 것도 아닌데 말이죠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 한창 빠져 살았던 머드게임을 개발하게 됐습니다”
▲한 대표가 처음 재미있게 즐긴 게임도 머드게임, 처음 개발한 게임도 머드게임. 머드게임과의 인연은 쉽게 끝나지 않았다 |
개발에 대한 욕심보다는 모교의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 처음 개발했던 머드게임의 타이틀 명은 ‘사라진 대륙’. 사라진 대륙은 게임개발에 대한 경험이 많지 않은 아마추어 개발자들이 개발한 작품치곤 완성도가 높아서 01410 인포샵 중 하나인 키스넷에서 오랫동안 서비스됐다.
영문 머드게임을 한글화하면서 틈틈이 즐긴 것이 게임개발로 연결되리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한 한 대표는 사라진 대륙을 개발하면서 비로소 개발자다운 생활을 해 봤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의외로 사라진 대륙에 대한 유저들의 반응이 좋아서 내심 상용화까지 생각했었지만 무리였습니다. 아쉬운 점은 많았지만 머드게임 개발을 통해 게임개발도 어플리케이션 개발만큼 해볼만한 것이라는 걸 알게됐죠. 덕분에 지금은 이렇게 게임개발을 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의외의 경험 때문에 대학교 졸업반이 돼서야 비로소 게임개발에 매력을 느끼게 됐지만 한 대표는 의외로 졸업 후 게임개발과 관련된 회사가 아닌 프로그램 개발, 게임개발과는 전혀 상관없는 현대전자 통신시스템 본부 생산부 자동화과에 취직했다.
다양한 머드게임을 즐기면서 온라인 시스템에 대해 배우고 디아블로를 통해 RPG에 대한 개념을 이해한 한 대표가 가장 개발하고 싶었던 것은 MUG게임이었다. 하지만 게임개발에 대한 알고리즘을 잘 알지 못했기 때문에 졸업 후 게임개발에 바로 뛰어드는 것보다 회사생활을 하면서 나름대로 앞날에 대한 준비를 해 두는 것이 올바른 선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당시를 설명했다.
게임은 고사하고 프로그램 개발과도 전혀 상관없는 부서에서 근무하면서도 한 대표는 각종 게임서적을 꼼꼼히 챙겨보고 틈틈이 게임을 즐기는 등 어렵게 맺은 게임과의 인연을 놓지 않았다.
온라인게임도 많이 즐겼지만 당시만 해도 게임개발에 대한 다양한 아이디어는 패키지게임을 통해 더 많이 얻을 수 있었다는 한 대표에게 있어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발더스 게이트’ 시리즈.
▲발더스게이트를 구입하기 위해 이천에서 용산까지 먼 걸음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정도로 한 대표에게 있어 이 게임은 의미가 깊다 |
“발더스 게이트를 구입하기 위해 직장이 있었던 이천에서 용산까지 그 먼거리를 단숨에 달려갔습니다. 이런 제 모습을 보면서 게임개발에 대한 의지가 더 확고해졌죠”
▲회사원에서 게임개발사 대표로
사회경험을 쌓고 개발자로서의 준비를 위해 회사원 생활을 선택했지만 빠르게 발전하는 온라인게임시장에서의 도태될까 두려워 한 대표는 입사한지 1년 6개월 만에 회사원 생활을 정리했다.
컴퓨터 프로그래밍에는 자신 있었지만 게임개발과 관련된 알고리즘은 전혀 알지 못했기 때문에 한 대표는 99년 4월 게임스쿨에 입학해 게임개발관련 실무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렇게 게임개발에 대한 경험을 익혀나간 한 대표는 현 나코인터랙티브 서정원 이사와 이동현 이사와 함께 99년 12월 서울 한 오피스텔에 ‘나코인터랙티브’를 설립하고 본격적인 게임개발사업을 시작했다.
나코인터랙티브 설립당시만 해도 온라인게임보다는 패키지게임이 강세였음에도 불구하고 머드게임을 통해 경험한 온라인게임에 대한 애착 때문에 한 대표는 온라인게임개발을 고집했으며 ‘라그하임’ 개발에 착수했다.
라그하임을 본격적으로 개발하면서부터는 게임은 즐기는 대상이 아닌 분석의 대상이 됐기 때문에 게임을 제대로 즐길 기회가 없었다는 한 대표는 그래도 개발에 대한 아이디어도 얻기 위해 ‘울티마 온라인’과 ‘애쉬론즈 콜’을 꾸준히 플레이했다고 한다.
“울티마 온라인에서는 잘 짜여진 세계관을, 애쉬론즈 콜에서는 3D 구현능력에 대해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모든 개발자들이 이구동성으로 본받을 만한 게임으로 꼽는 울티마 온라인과 애쉬론즈 콜 |
하지만 무엇보다 그가 온라인게임을 개발하는데 있어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은 ‘뮤’, ‘라그나로크’, ‘프리스톤테일’, ‘RYL’ 등의 국내 온라인게임이라고 한 대표는 자신 있게 말했다.
최근 연이은 개발일정 때문에 제대로 게임을 즐길 시간이 없지만 국내 온라인게임만은 충분한 시간을 할애해 플레이할 정도로 국내 온라인게임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 있는 한 대표가 최근 가장 관심 있게 보고 있는 작품은 엔씨소프트의 ‘길드워’라고 한다.
▲경쟁사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좋은 평가를 내리며 기대하고 있는 한 대표의 기대작 길드워 |
게임도 소설이나 영화처럼 뚜렷한 목적을 가진 엔터테인먼트성이 강조돼야 나름대로의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하는 한 대표가 지금 가장 하고 싶은 것은 바로 캡콤의 간판 액션타이틀 ‘데빌메이크라이’의 온라인화라고….
국내 온라인게임 개발에 대한 노하우와 해외 게임컨텐츠를 접목해 MMORPG로 집중된 시각을 분산시킴과 동시에 다양한 장르를 경험해 보지 못한 온라인게임 유저들에게 색다른 재미를 주고 싶다는 것이 한 대표의 설명이다.
“기획자의 참신한 기획을 통해 새로운 온라인게임컨텐츠를 구현하는 것도 좋지만 너무 그에 매달리기 보다는 해외 게임컨텐츠를 도입해 온라인게임 컨텐츠 다각화를 모색해보는 것도 중요하다”며 “기회가 된다면 국내 유명 개발자들과 함께 프로젝트팀을 조직해 도전해 보고 싶다”고 한 대표는 국내 온라인게임에 대한 청사진을 그렸다.
플랫폼의 다각화가 진행되면 다른 플랫폼의 게임도 개발하겠지만 만일 제약이 생기더라도 온라인게임만은 계속 개발할 계획이라는 한 대표. 부디 그가 말한 것처럼 소설이나 영화에서 얻을 수 있는 감동과 같은 감동을 얻을 수 있는 온라인게임을 개발해주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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