폼生폼死, 스타일리쉬 액션게임의 정체를 밝혀라!
2006.09.25 16:36게임메카 김지연
◆ 폼 때문에 살고, 폼 때문에 죽는~ 우리 형!
데빌 메이 크라이(Devil may cry)라는 게임의 제목에 대해서는 해석이 분분하다. 악마는 울지 않는다, 악마도 운다, 악마도 울지도 모르잖아? 악마도 울면 어떡할래... 스토리에 기반을 둔 여러 추론들, 단테네 가게 이름이라는 의견, 영어 숙어로 다른 뜻이 있다는 의견. 보면 볼수록 알쏭달쏭. 이 말도 맞는 듯하고 저 말도 맞는 것 같다.
하지만 번역의 묘미는 역시 의역 아닌가. 영어에 얽매이지 말고 느낌을 살려보자. 데빌 메이 크라이하면 떠오르는 세 글자는 바로 이거다.
“형 왔다.”
▲ 연예인처럼 돌아올 때마다 성형 수술 의혹에 시달리는 단테형 |
‘스타일리쉬’는 이미 현대의 트렌드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기술이 날로 발전하는 지금, ‘하는’ 게임에서 ‘보여주는’ 게임의 시대가 된지 오래고, 어차피 보여줄 거라면 최대한 멋있게 보여 주고 싶다는 제작자들의 포부도 남다르다. ‘스타일리쉬’라는 단어는 사랑이란 단어처럼 흔하디 흔해져서 여기저기 굴러다니게 되었지만, 때 묻어도 마냥 매끈한 그 뉘앙스에 우리는 알면서도 속는 것을 반복한다.
◆ 내가 시작이고 내가 끝이다
데빌 메이 크라이는 최초로 스타일리쉬 액션이라는 장르를 표방한 게임이다. 주인공 ‘단테’가 호쾌한 액션으로 복수를 위해 싸우는 아주 단순한 줄거리에 스타일리쉬라는 양념이 잘 섞여 만들어진 명작이다. 게임계의 헐리우드 블록버스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시리즈는 1, 2, 3,를 거쳐 4의 발매를 눈앞에 두고 있고, PC판까지 출시돼 많은 인기를 누렸다.
▲ 어느새 4인가... |
데빌 메이 크라이(이후 데메크)의 성공에 뒤를 이어 많은 게임들이 스타일리쉬라는 딱지를 붙이고 나왔지만, 왕좌는 여전히 데메크. 정확히 말하자면 주인공인 ‘단테’가 굳게 지키고 있다. 이후에 나온 많은 게임 중에서 진정한 후계자라고 꼽을 수 있는 것은 데메크를 제외하면 '건그레이브' 정도뿐이기 때문이다.
이미 스타일리쉬는 액션 게임에 당연히 붙는 수식어이면서 빠져서는 안 되는 요소가 되었다. ‘귀무자’나 ‘삼국무쌍’ 같은 작품을 멋진 캐릭터가 나와서 화끈한 액션을 보여준다는 이유로 스타일리쉬 액션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건 아니다. 높은 수준의 액션과 화려한 효과만으로는 진정한 스타일리쉬 액션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멋진 효과가 아니라 마음가짐이다. 폼에 살고 폼에 죽겠다는 주인공의 굳은 결의. 어떤 상황에서도 멋을 신경 쓰는 일관된 카리스마. 그것이 바로 스타일리쉬 액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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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을 쏠 때나 발차기를 할 때나 '춤을 추듯' 멋진 자세가 제일 중요하다. |
◆ 스타일리쉬 액션게임은 '힘의 추구'
스타일리쉬는 ‘힘의 추구’의 연장선에서 이해할 수 있다. 홍콩 영화의 히어로 주윤발이 씹던 성냥개비를 콧구멍에 넣었을 때, 사람들은 우와~ 했다. 단지 콧구멍에 성냥개비를 넣어서 열광한 것이라면 오백원짜리가 들어가는 이홍렬씨는 세계 카리스마 넘버원이 아니겠는가.
▲ 데메크 4의 주인공 자리를 꿰찬 네로. 건방진 자세는 합격인데 눈빛 연기가 부족하다 |
중요한 건 주윤발이라는 핸섬한 ‘남자’가 가진 절대적인 ‘힘’과 멋을 아는 ‘여유’였다. 단지 그것이 성냥개비나 선글라스에 반영된 것뿐이다. 단테를 필두로 이어지는 스타일리쉬 게임의 주인공들에게도 공통적인 힘과 여유의 상징들이 발견된다.
◆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나? 천만에, 악마는 코트를 입는다. 메이커가 프라다이건 동대문 간지 패션이건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슈퍼맨, 배트맨, ‘맨’자 붙는 히어로들이 “나는 하늘도 날지롱” 하고 자랑 삼아 구색 갖춰 입던 망토를 훗 하고 비웃으며, 단테는 코트를 걸쳤다.
우수에 젖어 낙엽을 밟을 때, 무대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기타를 연주할 때, 여고 뒷산에 오를 때, 어떤 상황에서도 어색하지 않은 파워풀하고 폼 나는 코트. 단테는 코트의 매력을 아는 남자이고 그것을 발휘할 줄 아는 남자였다.
캡콤이 새 주인공 네로를 발표하면서 은발과 코트는 주인공의 상징과 같다고 말했다. 예전 짧은 자켓을 입은 단테의 모습을 보신 분은 어머님의 옷 입히는 센스에 적극 찬성할 것이다.
흩날리는 붉은 코트 자락에 멋을 더하는 은발의 샤기 컷도 빠질 수 없다. 샤기 컷이란 하늘하늘 날리는 듯한 느낌을 주는 층을 많이 낸 헤어스타일을 말한다. 고개만 한번 흔들어도 각각 따로 노는 머리카락들이 단테의 스피디한 동작에 맞춰 흩날리는 모습은 머리에 후광이 반짝반짝. 최신 트렌드에 발 빠르게 앞서가는 그의 센스에 다시 한 번 감탄하게 된다.
▲ '간지'가 좔좔 흐르는 샤기 컷의 단테와 형님 버질 |
들고 다니는 무기는 어떤가. 켈베로스, 에보니&아이보리 등 이름도 어려운 단테의 무기들은 다양하지만, 간단하게 칼과 쌍권총 정도로 구분할 수 있다. 스타일리쉬 게임의 대부분의 주인공들은 헌터 내지는 건슬링거라는 직업을 갖기 때문에 기본이 칼이고 옵션이 쌍권총이다.
▲ 총은 꼭 두 자루 이어야한다. 칼과 총의 혼합형태도 사랑받는다. |
단테의 무기들을 전설의 무기라고 확신하게 되는 것은 물론 그 외형이 혼을 쏙 빼 갈 만큼 너무나 멋진 것도 있지만, 과학쯤은 쉽사리 뛰어넘는 ‘게이머’라는 인공지능이 탑재 되어 있기 때문이다.
단테는 안보고 쏘는 것 같은데 자동으로 락온 되는 것은 물론이고 총알은 절대로 떨어지지 않는다. 적이 너무 많이 등장해서인지, 실력이 뛰어나서인지 알아서 착착 맞고 쓰러지고... 이런 상황에서 단테가 신경 써야 할 것은 당연히 폼이다. 얼마나 멋지게 쏠 것인가! 얼마나 멋지게 벨 것인가! 끝없이 이어지는 콤보의 향연. 이 얼마나 멋진 세계인가!
▲ 일단 띄우고~ |
▲ 멋진 단테를 완성시키는 화룡정점은 게이머의 솜씨에 달려 있다 |
벽을 밟고 뛰어다니는 것은 단테에게 아무것도 아니다. 허공에서 이단 점프쯤은 가뿐하게 해주고 당장에 요가 선생님으로 나서도 될 만큼 관절도 유연해서 자기 키 만큼 큰 칼을 등에 매고 다녀도 문제없이 넣었다, 뺐다, 휘둘렀다, 막았다 할 수 있다. 어느 각도에서 잡아도 흠 잡을 데 없는 45도 얼짱 각도를 유지하는 것은 언제나 카메라를 의식하는 프로정신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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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멋진 조연들도 스타일리쉬의 법칙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
◆ 스타일리쉬 액션家의 아들들
큰아들 단테가 너무 잘 나가서 그렇지, 스타일리쉬 액션 집안에 아들이 하나 밖에 없는 것은 아니다. 둘째 아들로 건그레이브의 주인공 ‘비욘드 더 그레이브’를 들 수 있다. 건그레이브는 풀 브레이크 건 액션(Full Break Gun Action)이라는 휘황찬란한 장르를 표방하는 데 영어로 멋내는 것은 스타일리쉬 액션 집안의 특징이다. 켈베로스라는 두자루의 총을 들고 중화기가 탑재된 거대한 관을 맨 그레이브의 뒷모습은 스타일리쉬라는 수식어에 부족함이 없다.
단테도 그렇지만 그레이브 역시 인간이 아니다. 보다 멋지고 화려한 액션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모습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단테가 악마라면 그레이브는 죽었다 살아난 최강 좀비이다. 두 사람 모두 웬만해서는 죽지 않는다.
그레이브는 단테에 비하면 약간 무거운 캐릭터다. 총을 쏠 때 전해지는 진동이나 관을 휘돌려 적을 칠 때의 타격감을 생각해보면 그 육중함이 잘 어울린다. 스피드를 중시하는 단테와 좀 다르게 보일지 모르지만, 콤보에 목숨 거는 것도 그렇고 한자리에서 춤추듯 총을 쏘는 버스트모드만 봐도 한 집안이라는 느낌이 확 온다.
인간이지만 뛰어난 능력을 가진 주인공들도 있다. 야쿠자 리얼 액션 ‘용과 같이’의 주인공 키류 카즈마. 액션 느와르를 표방하는 ‘츠키요니 사라바'의 주인공 크로우를 들 수 있다.
▲ 다양한 후까시를 보여주는 두목들 |
▲ 조직에서 권장하는 멋진 남자의 자세? |
용과 같이는 일본의 조직 폭력배 야쿠자의 이야기이다. 일본의 밤거리를 리얼하게 표현한 것이 게임의 특징이면서 매력이기 때문에 주인공인 키류는 전설의 야쿠자지만 단테처럼 칼에서 번개가 나가거나 날개가 돋아나서 하늘을 날지는 못한다. 그래도 주먹을 뻗는 형님의 모습에서 진솔한 멋이 묻어나는 것이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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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설적인 야쿠자의 고난위도 리얼 액션, 맥주박스 던지기 |
츠키요니 사라바는 이탈리아 마피아의 이야기이다. 히트맨인 크로우는 순간을 영원처럼 느끼는 힘을 가지고 있는데 쉽게 말하자면 영화 매트릭스에서 네오가 총알을 피하는 것과 같은 능력이다. 이런 느려진 효과는 다른 여러 게임에서도 종종 사용되지만 츠키요니 사라바에서는 하나의 기술로 과장되어 표현된다. 이 느려진 순간에 얼마나 멋지게 폼을 잡으며 총을 쏠 것인가가 게임의 목적이다.
◆ '갈 데까지 가보자' 스타일리쉬 액션家의 진화
스타일리쉬는 시대도 초월한다. ‘시노비’와 ‘쿠노이치’는 스타일리쉬가 가미된 고전의 전형을 보여준다. 닌자가 주인공인 시노비와 쿠노이치는 스타일리쉬 주인공의 전매특허와 같은 붉은 색과 올가을 유행 컬러 블랙을 선택해 세련되고 스타일리쉬하다. 잠입이 많은 닌자가 붉은 머플러를 휘날리는 것을 보면 엄청나게 튀고 싶은 것이 분명하다. 임무보다 멋을 선택한 닌자. 당연히 엄청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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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심 받고 싶어요” |
그래도 비교적 건전하게 멋을 추구하는 시노비에 비해 전국 바사라의 대책 없는 장수들은 어떤가. “렛츠 파티” 라는 둥 “컴온” 이라는 둥 전국시대 장수가 어설픈 영어를 남발하며 말을 타고 폭주족 흉내를 내지 않나, 기모노를 차려입은 섹시한 아가씨가 쌍권총에 그레이브도 울고 갈 중화기를 연달아 쏴대고, 필살기를 쓰면 화염이 일어나고 번개가 친다. 일반 병사들은 수십 수백 명이 달려들어도 한번 휘두르면 그야말로 추풍낙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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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시대?? 역사물?? 실존 인물?? |
◆ 스타일리쉬 액션게임의 극한은 '오버' 액션게임?
멋을 부린 과장된 영상이 액션에 호쾌함을 주면서 그 극한의 멋이 급기야 게이머를 웃게 만드는 경우도 있다.
스타일리쉬 게임의 특징인 오버 액션을 극한까지 밀어붙여, 과장된 동작을 개그로 바꿔버린 게임도 있다. 이런 게임의 대표작은 역시 ‘뷰티풀 죠’이다. 보다와 아름다움을 합한 단어 'Viewtiful'에서 무슨 일이 있어도 아름답고 멋지게 보이겠다는 각오가 느껴진다.
특히, 단테의 출장 서비스는 주인공인 죠도 놀라게 만들었다.
앞선 게임들이 3D방식의 멋진 CG에 중점을 두었다면 뷰티풀 죠는 개성적인 캐릭터와 외국 히어로 만화를 보는듯한 독특한 화면이 장점이다. “예엡~ 베이베” 하는 느끼한 대사도 빼놓을 수 없다. 애니로도 제작되었고 PS2, NDS, PSP등 종횡무진 히어로의 세계를 넓히고 있다.
스타일리쉬 게임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복수를 위해 싸운다. 가족의 복수, 연인의 복수. 하지만 게임을 하다보면 이 스토리라는 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주인공의 이야기보다는 ‘액션’이라는 장르에 깊이 빠져, ‘화려한 전투’라는 과정을 즐기는 것이다. 우리는 혼자서도 잘 노는 멋진 주인공이, 제멋에 신나서 잡는 포즈를 보며 좀 더 멋진 포즈를 취할 수 있도록 조작하는 재미를 즐긴다.
▲ 캡콤은 TGS2006을 통해 내년에는 데메크의 애니메이션판도 나온다며 깜짝 발표를 했다 |
스타일리쉬 게임은 쉽게 질리거나, 끝나면 남는 게 없어 허무하다는 단점이 있다. 마치 잡지 화보 속의 연예인을 보는 것과 같아, 보는 순간이 제일 즐겁기 때문이다. 스타일리쉬 액션은 ‘형’들의 판타지다. 판타지에 내용이 없다고 딴지를 거는 것은 스타일리쉬 하지 못한 행동. 오로지 생각할 것은 하나뿐이다. 더 멋지게! 더 화려하게! ‘형’들의 세계에서 스트레스를 날려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