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앙의 M&M 히어로즈킹덤즈 기행기 1부, 매맞는 군주
2011.01.28 22:44게임메카 류종화 기자
[크앙의 '마이트앤매직 히어로즈킹덤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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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앙의 M&M 히어로즈킹덤즈 기행기 1부, 매맞는 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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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앙의 M&M 히어로즈킹덤즈 기행기 2부, 제2 크앙월드 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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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앙의 M&M 히어로즈킹덤즈
기행기 3부, 전쟁 그 처절한 아픔
크앙은 오늘도 어딘가 찌뿌듯함을 느꼈다.
여신을 구하기 위해 검 한 자루만 들고 모험을 떠나기도 했고, 세계를 파괴하려는 마왕을 해치우기 위해 마법사의 길을 걸은 적도 있다. 야생동물에서 몬스터, 유령까지 수많은 적들과 싸우며 실력을 키웠다. 전설의 무기를 얻으려고 전 재산을 다 건 적도 있다.
그런데 결과는? 여신은 내가 안 구해줘도 신계에서 띵가띵가 잘 놀고 있고, 마왕은 부하들과 부귀영화를 누리며 잘 살고 있다. 그 때는 나름 ‘내가 주인공이다!‘ 라는 신념이라도 있었건만, 지금은 빛이 바랜지 오래다.
눈빛도 죽어버렸다. 예전의 크앙은 어둠 속에서도 반짝반짝 빛나는 보석같은 눈빛의 소유자였으나, 최근에는 수입된 정신성약물 ‘FM 2011' 이라는 마약에 중독되어서 그저 하루하루 똥이나 만드는 기계가 되어버렸다. 소문에 의하면 ‘FM 2011’에 찌든 사람은 이혼, 혹은 그에 상응하는 결말을 맞이한다고 한다. 주변 사람들이 필사적으로 말렸지만 벌써 중독 중기 단계에 들어선 크앙은 그런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렇게 한 달여의 시간이 흘렀다. 일각에서는 “크앙은 틀렸어, 이제 없어.” 라는 말까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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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의 크앙이 왼쪽이라면 FM을 시작한 크앙은 오른쪽
주중, 주말, 심지어 꿈에서까지 환각 상태에 빠져 헤롱대던 크앙에게 약 1주일 전부터 변화가 찾아왔다. 야구선수를 방불케 하던 다크써클이 점차 사라졌고, 타래팬더처럼 흐물흐물하던 자세가 꼿꼿해졌다. 곧이어 늘 작업표시줄 첫 번째 칸에 켜져 있던 ‘FM 2011' 의 출현 빈도가 감소하더니 최근에는 아예 모습을 감췄다.
크앙의 변화에 놀란 것은 주변인들 뿐만이 아니었다. 각종 공중파 방송은 앞다투어 ‘FM을 이겨낸 크앙’ 이라는 특집방송을 준비하고,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국무도 내팽개치고 크앙을 만나러 방한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으리라고 전망된다. 아마 내일쯤이면 찾아오겠지. 아무튼 크앙의 변화를 지켜보던 주변 사람들은 크앙에게 물었다.
“대체 어떻게 해서 FM을 끊으신 것입니까?” |
그 말에 크앙은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나는 하찮은 전사나 마법사, 혹은 축구감독으로는 성이 차지 않았다. 남자라면 세계를 지배하는 군주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
그리고 크앙은 석양을 향해... 아니, ‘마이트 앤 매직 히어로즈 킹덤즈’ 의 세계를 향해 사라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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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쪽 세계도 중독성 만만치 않기로 유명하지만...
크앙, 드디어 왕 되다!
크앙은 고전적인 신비로움이 살아 숨쉬는 ‘마이트앤매직 히어로즈킹덤즈’ 의 세계, ‘아샨’ 대륙에서 군주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악마 종족인 인페르노를 선택한 크앙의 1차 목표는 전 세계를 손끝 하나로 지배하는 대군주(오버로드 아님)였다. 여지껏 크앙을 부려먹은 여신이나 마왕, 혹은 축구 구단주들은 하나같이 지배 계층이었고, 그 밑에서 죽도록 싸워봐야 결국 아이템 사고 장비 강화하고 선수 사 오다 보면 결국 ‘내 지갑은 텅텅, 그들의 지갑은 탱탱’ 의 결과만 볼 수 있었다.
뭔가 불공평하지만 이것은 계급사회의 기본이자 진리이고, 지금까지 크앙이 거쳐 온 세계는 대부분이 계급사회였다. 참고로 ‘아샨’ 대륙도 계급 제도가 밑바탕에 깔려 있는 세계다. 판타지와 마법이 번쩍대고, 드래곤과 영웅이 아기햇님과 같이 동산에서 뛰어노는 그런 아스트랄하고 매력적인 세계이지만, 결국엔 2%에 불과한 지배 계층이 98%의 백성들의 피와 땀을 빨아먹고(우웩) 사는 불평등 사회인 것이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 내가 바로 그 2%의 지배계층, 즉 군주가 돼서 백성들의 고혈을 짜 먹고 살아야 한다. 그래서 세웠다, 나만의 왕국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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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페르노가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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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정 좋고~
“이게 최선입니다, 확실해요.” |
별 의미 없는 유행어를 내뱉으며 크앙은 자신의 성을 바라다보았다. 왕국을 건설하는 것은 의외로 간단했다. 널린 게 들판이고 부동산도 없으니 대충 자리 골라서 성 하나 뚝딱 지어 놓고 ‘내가 왕이오!’ 라고 외치면 그 때부터 왕이 되는 것이다. 무슨 돈이 있어서 성을 지었냐고는 묻지 말자. 세계관이 흔들린다.
어쨌든 크앙은 오늘부터 왕이 되었다. 이대로 세력을 키워 세계를 정복하면 비단옷과 산해진미, 삼천궁녀를 거느리고 낙화암에서 뛰어내... 리면 안되고, 아무튼 떵떵거리며 살 수 있을 것이라는 꿈이 부풀어 올랐다. 상상(낙화암 말고)을 하자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다. 누군가에게 자랑하고 싶었다. 나는 왕이라고, 세계를 정복할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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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좀 안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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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나만의 악마성이 완성되었다! 보기는 이래도 안쪽은 안락해요
“근데... 부하가... 없네...” |
크앙은 잠시 주위를 둘러 보았다. 아무도 없다. 설마 성까지 지어 놨는데 아무도 없을 리가? 다시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자 성벽 밑에 몇 마리인가 몬스터들이 보이긴 하는데 저게 부하인지도 잘 모르겠다. 그 몬스터들의 목소리가 조금씩 들리기 시작했다
“깍깍 꾸까까까까깍” |
“이것들 뭐야? 뭐래는거야...?” |
“이 셩 뫄메 O 드러욤! 淺탉 울휘드뤼 갖여욤!” |
“오, 이 말은 대충 알아들을 수 있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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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셩 淺탉 울휘드뤼 갖여욤! / 그로퀘 해욤!
크앙은 뒤도 안 돌아보고 성벽에서 도망쳐 나왔다. 저 흉악한 몬스터들이 감히 반란... 아니지, 애초에 내 부하도 아니었던 것 같고, 아무튼 겨우 성 하나 세워 놨더니 이상한 놈들이 성을 점령하려고 드는 것이다. 이건 뭔가 아닌 것 같다. 검이라도 하나 들고 저놈들을 때려눕혀야 하나? 근데 나, 싸움은 할 줄 알던가..?
“뭐야, 이대로 점령당해 버리면 인생 끝인가? 농사라도 지어야 하나?” |
“ㅉㅉ” |
“?” |
크앙의 바로 뒤쪽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자 목소리다. 이 상황은 분명 뒤에서 아리따운 미소녀가 툴툴거리며 나타난 후 여러 가지 도움을 주는 플래그다. ‘삼천궁녀의 첫 번째 멤버인가!’ 라는 기대감으로 크앙은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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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예쁘긴 한데 조금 무섭게 느껴지는 건 기분 탓일까?
크앙의 기대는 정확히 절반만 맞아 떨어졌다. 빨간 포니테일에 나올 곳은 나오고 들어갈 곳은 쏙 들어간 완벽한 몸매, 오똑한 코와 날카로운 턱선을 가진 여인이 이 쪽을 보고 혀를 차고 있었다. 한 가지 흠이 있다면 큰 눈에 눈동자가 없어서 조금 무서워 보인다는 것 정도?
“넌... 누구?” |
“마리 옅느와네트, 줄여서 옅느다! 네가 고용해 놓고도 모르는거냐 이 씨 발라먹을 놈아!” |
정정한다, 매우 많이 무섭다. 이름도 이상하다. 왠지 힘도 셀 것 같다. 저 뿔로 찔리면 아프겠지? 성에 병원.. 아니 양호실은 지어 놨던가? 의료보험증도 안 가져왔는데. 하긴 요즘엔 신분증만 있어도 보험 혜택이 적용되니 괜찮을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옅느라는 이름의 저 인페르노 누님은 일단 내 수하의 첫 번째 히어로인 듯 하다. 대충 봐도 무지 강해보이는 걸 보니 성벽 밑에 있는 몬스터 따윈 우습게 이길 것 같다. 솔직히 아직 무섭게 느껴지긴 했지만 크앙은 군주고 옅느는 부하다. 군주는 부하에게 명령을 내려야 위엄이 살아난다. 고로 크앙은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옅느에게 명령을 내렸다.
“에헴, 옅느여 나를 위해 저 괴물들을 해치우거라.” |
“이런 샹그릴라! 부대 지정을 해 줘야 싸우든 말든 하지!” |
“부대.. 뭐? 부대찌개?” |
“이걸 왕이라고! 화면 오른쪽 위에 군사들이 대기하고 있잖아! 그걸 나에게 끌어 놓아서 부대를 편성한 후 저놈들과 싸우라고 명령만 하면 돼!” |
아, 그런 거였구나. 오른쪽 위를 보니 임프와 데몬, 헬 하운드가 보였다. 크앙은 혼자가 아니었다. 충성스러운 병사들이 곁에 있었던 것이다. 비록 성이 함락되려기 직전인 상황에서도 바닥에 그림이나 그리며 놀고 있긴 했지만 그래도 얘들은 반항은 안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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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쪽 박스의 병사를 영웅에게 일괄 편성하려면 아래쪽 박스 안의 화살표를 누르면
된다
크앙은 재빨리 몬스터 군단을 집합시키고 부대를 편성했다. 임프와 데몬은 근접 공격을 하는 보병이고 헬 하운드는 빠른 기동력을 바탕으로 적진을 휘젓고 다니는 기병이다. 이제 이 괴물들을 배치해야 하는데, ‘삼국지’ 나 ‘징기스칸’ 같은 게임에서는 보통 기마병이 가장 세게 나온다. 그렇다면 역시 기마병을 선두에 놓고....
“자! 부대를 편성했으니 나를 믿고 나가서 싸워라!” |
“싸우라니 싸우긴 하겠는데… 이 멍청아!! 뇌가 없냐?” |
“네.. 네?” |
순간적으로 존댓말이 나와버렸다.
“적의 태반이 보병인데 기병을 선봉에 세우다니! 전투의 기본 몰라? 아 속터져!” |
사실 크앙은 전투라면 강한 유닛이 약한 유닛을 이긴다는 것 정도밖에 몰랐다. 게다가 아군의 수가 적보다 훨씬 많았고 전투력도 거의 두 배에 가까웠다. 대충 싸워도 이길 전투인 것이다. 게다가 기동력이 뛰어난 기병이 보병을 압도한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이다. 아무리 살펴봐도 잘못한 게 없었다.
그러나 크앙은 한 가지를 간과하고 있었다. 이 곳은 현실 세계가 아닌 마법과 검이 판치는 판타지 세계라는 것이다. 여기는 칼이나 창을 든 보병이 아무렇지도 않게 검기를 팡팡 쏘아대고 마법까지 쓰는 세상이다. 기병이 말 타고 덤비면 말 위로 점프해서 끌어내리거나, 헬 하운드가 달려오면 그대로 영양탕 끓여먹을 만한 괴물(말 그대로)이 널린 세상인 것이다. 때문에 기병은 보병에게 약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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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색 표시는 상성 상 유리한 위치를 점한 상태를 점했다는 것을 뜻한다
한편 보병은 궁병에게 약하다. 아무리 보병이 세다 해도 멀리서 날아오는 공격에는 크게 힘을 쓰지 못한다. 단순히 화살만 날아온다면 초인적인 능력으로 막아내면 되는데, 각종 마법이나 뿔, 혹은 집채만한 돌덩이 같은게 날아오면 도저히 어찌해 볼 도리가 없다.
그리고 궁병은 기병에게 약하다. 뛰어난 기동력을 바탕으로 전장을 헤집고 다니는 기병에게 원거리 공격을 명중시키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일단 접근하고 나면 큰 힘을 쓰지 못하는 궁병의 특징 상 기병의 돌진력은 무서울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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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위 바위 보 개념
때문에 궁병>보병>기병>궁병>... 이라는 상성이 성립한다. 한마디로 방금 전 보병을 상대로 기병을 배치한 크앙의 전술은 가장 피해야 할 선택인 것이다. 전력의 차가 워낙 크기 때문에 이길 수야 있겠지만 이대로라면 기병의 손실이 커진다. 이번 전투만 이기면 평생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앞으로 병력 쓸 곳이 한 두 군데가 아니니 옅느가 화내는 것도 당연하다.
크앙은 부대를 재배치했다. 전투는 선봉에 선 유닛끼리 부딪힌 후 진 유닛이 나가떨어지면 그 뒤에 대기하고 있던 유닛이 그 자리를 이어 싸우는 방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당장의 상성 관계만 보고 유닛을 배치하면 안 된다. 적의 선봉만 보고 배치했다가는 뒤에 대기하고 있는 역상성 부대에게 패가망신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이트앤매직 히어로즈 킹덤즈’ 에서는 전체적으로 전투가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를 파악하고, 그에 알맞은 상성 유닛을 배치해야만 병력을 아낄 수 있다.
그러나 당시 크앙이 고도의 전략을 세우는 것은 불가능했다. 오직 옅느가 무섭다는 생각과, 전투 이겼는데 왠 성질이냐는 투덜거림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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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 차가 저렇게 나는데 매우 비효율적인 전투를 펼쳤다
크앙, 3대 중요시설이 뭔지 아세요?
옅느는 마치 삼국지의 관우처럼 따라 놓은 술이 식기 전에 전투를 끝내고 돌아왔다. 아군의 손실도 꽤 됐지만 성을 위협하던 적군은 완전히 전멸했기에 크앙은 승리감에 도취되어 있었다.
“자, 이제 이 기세를 몰아 세계를 정복하자!” |
“웃기고 있네” |
“음? 지금 뭐라고 그랬지?” |
“지금 남은 병력이 40기도 안 되는데, 게다가 자기 영토도 제대로 못 다스리는 주제에 무슨 세계 정복이야?” |
“윽… 그것도 이미 생각하고 있었느니라. 에헴” |
세계를 지배하기 위해서는 영토 확보도 중요하지만 일단은 내실을 다져야 한다. 자원을 채취하고 병사를 모집하지 않으면 세계 정복은 불가능하다. 미네랄을 캐서 해병을 뽑지 않고서는 임요환의 벙커 러쉬가 불가능한 것과 같다. 그렇다면 먼저….
“자원을 캐야겠군!” |
“아니, 그 전에 영웅을 더 뽑아야지.” |
“무슨 소리야? 자원이 있어야 영웅을 더 뽑던지 할 거 아녀?” |
“그래, 자원 중요하지. 그런데 저기 보여?” |
옅느는 손가락을 뻗어 내 영지 구석을 가리켰다. 그 곳에는 네 개의 광산이 있었다. 황금, 철광석, 유황, 그리고 목재(목재가 왜 광산에서 나오는지 궁금했지만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그리고 그 광산 입구에는 몬스터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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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산이다! 근데, 나무도 광산에서 캐나?
“몬스터네” |
“저기뿐만이 아니야. 네 영지에서 몬스터가 없는 곳은 겨우 내성 안밖에 없다고. 이 상태에서 자원을 캐고 광산을 개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어?” |
“저 놈들을 i아내야지.” |
“그러려면 뭐가 필요할~까?” |
“당연히 병력! 그리고… 영웅….” |
결국 옅느에게 깨갱한 크앙은 영웅들의 모임터이자 시민들의 휴식공간 ‘선술집’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시민들은 선술집 건설에 적극적으로 협조했을 뿐 아니라 술집이 생겨 기쁘다며 크앙에게 돈까지 갖다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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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들이 선술집을 이렇게 좋아할 줄이야!
크앙은 새로 건축된 선술집에 입장했다. 새로 들여와 니스 냄새가 풍기는 바에 걸터앉으니 주인장이 와서 조용히 메뉴판을 내밀었다. 술을 마시러 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거절하려던 찰나, 안주 코너의 탱글탱글한 소시지가 눈에 띄었다. 생각해보니 군주가 되고 나서 제대로 된 식사 한 번 못해봤다. 이게 다 옅느 때문이라는 생각이 복받쳐 올랐다. 영웅이건 뭐건 일단은 뭐 좀 먹어야겠다.
“어이! 여기 소시지 갖다 줘!” |
“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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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께끼의 미녀 등장
오라는 소시지는 안 오고 왠 빨간 머리의 여인이 나타났다. 얼핏 보면 옅느와 상당히 닮아 보이는데, 자세히 보면 뿔도 약간 다르고 긴 생머리를 찰랑거리는 게 뭔가 덜 난폭해 보인다. 그런데 대체 누구지?
“…누구?” |
“아, 아까 저 부르시지 않으셨나요?” |
“안 불렀는데요? 설마 이름이 소시지는 아닐테고…… ㅋㅋㅋㅋ 이름이 소시지면 그게 뭐야 ㅋㅋㅋ 아 웃겨 ㅋㅋㅋㅋ” |
“......” |
“……” |
“ㅋ?” |
“ㅋㅋ” |
“ㅋㅋㅋㅋㅋㅋㅋㅋ” |
“ㅋㅋㅋㅋㅋㅋㅋㅋ” |
<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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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떨결에 취직(?)한 소시지
그렇게 크앙의 눈에는 팬더같은 멍이 들었고, 크앙랜드의 영웅 목록에는 소시지라는 이름이 새겨졌다. 옅느와 소시지의 활약으로 크앙은 금새 네 개의 광산을 전부 차지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건물도 업그레이드 해야 하고, 전투 유닛도 모집해야 하고, 광산도 연구해야 하는 등… 돈 쓸 곳은 너무 많은데 자원 채취량이 너무 적다. 게다가 가장 중요한 병력이 모이는 속도가 너무 느렸다. 점점 속이 타기 시작했다.
그렇게 방법을 찾아 헤매던 크앙의 눈에 무언가 번쩍이는 것이 포착되었다. 지금까지 신경도 쓰지 않던 퀘스트 목록이 날 좀 봐달라며 점멸하고 있는 것이다. ‘복잡한 것 싫어하는 사람 Top 100’ 목록에 이름을 올려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단순한 성격 탓에 크앙은 여지껏 퀘스트 목록은 열어보지도 않았다. 한 마디로 이번에 퀘스트를 열어본 것은 단순한 변덕이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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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밑에서 뭔가 노란색으로 반짝거려
<퀘스트 보상으로 금 10000을 드립니다>
<퀘스트 보상으로 목재와 광석을 10씩 드립니다>
<퀘스트 보상으로 헬 하운드 5기를 드립니다>
“뭐… 뭐야 이거?” |
기껏해야 금 500 정도나 줄 거라고 생각했던 퀘스트 보상은 꽤나 파격적이었다. 특히 전투 퀘스트의 경우 한 시간을 기다려야 겨우 한 두기 정도만 모집되던 전투 유닛을 보상으로 지급해 주기 때문에 엄청나게 도움이 되었다. 크앙은 그제서야 퀘스트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다행히 초보 퀘스트는 따로 퀘스트를 수락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더라도 자동으로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었고, 크앙은 그 보상으로 멈추지 않고 영지를 발전시켜 나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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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단순히 가지고 있던 잉여자원 팔았을 뿐인데 선물까지 주나요?
크앙, 누군 태어날 때부터 제왕으로 태어났나?
퀘스트 보상으로 자원 문제는 해결되었지만 광산을 개발하고 영지 곳곳을 정벌하다 보니 일손이 부족했다. 옅느와 소시지가 백방으로 뛰어다녔지만 그 둘이 임무를 수행하러 나간 후에는 아무 것도 할 게 없는 것이다.
“아직 갈 길이 태산인데 할 게 없네ㅋ 이게 군주의 여유구나! 남는 시간에 뭘 할까? 스머프 사냥? 우유배달?” |
“놀지만 말고 영웅이라도 더 모집해! 어휴, 군주 잘못 만나서 이게 무슨 꼴이야.” |
“전 탄광에 취칙한 줄 알았어요. 허구한날 광산만 보내고…” |
“그냥 저거 없애고 우리가 왕국 지배하는 게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 |
“어, 저도 그 생각 했는데.” |
“야, 다 들려! 그리고, 다 이렇게 시행착오 겪으면서 배우는 거지! 누군 태어날 때부터 ‘나 왕이요~’ 하면서 태어났어? 그럼 그런 군주 찾아 가! 가버리라고!” |
“어머, 저 패배의식 봐.” |
“피고용자 입장에서 할 말은 아닌데, 좀 추하네요.” |
▲ 너네들
다 미워!
크앙은 두 여자의 차디찬 시선에 울음을 터뜨리며 성을 뛰쳐나갔다. 이런 기분은 국민학교 1학년 크리스마스에 그렇게 바라던 슈퍼 그랑죠 로봇 대신 동아백과사전 전집을 받았을 때 이후 처음이었다. 너무 슬픈 나머지 주화입마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크앙은 필사적으로 견뎠다. 이 모든 것을 빌어먹을 세상 탓으로 돌리자 조금씩 마음이 진정되기 시작했다.
겨우 슬픔이 가시고 평소의 쿨한 모습으로 돌아오자 마자 크앙의 머리 속에 위험 경보가 울렸다. 일손 부족도 문제지만 가장 위험한 것은 저 여자들이었다. 항상 곁에서 왕을 지켜줄 충성심 강한 영웅이 필요했다. 전투도 잘하고, 성도 지키고, 하는 김에 크앙 자신도 보호해 줄 인재여야 한다. 이왕이면 과묵하고 믿음직했으면 더 바랄 게 없겠다.
그리고 바로 그 적임자로 십점 만점에 십점인 멋지구리한 영웅이 눈 앞에 나타났다. 온 몸에 붉은 빛이 도는 검은 갑주를 걸쳤고, 하늘을 향해 뻗은 수 십개의 뿔은 엄청난 오오라를 풍겼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투구 속에서 붉게 빛나는 두 눈! 늘 시끌벅적한 선술집의 분위기를 엄숙한 성당의 그것으로 만들어버릴 정도의 포스를 목격한 순간 크앙의 머릿속에는 단 한 가지 생각만 맴돌았다. 저 영웅을 내 편으로 만들겠다는 강한 집념.
▲ 적으로
만났으면 그대로 지릴 뻔!
“집념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다고 하지. 흠흠, 이보시오 영웅 양반.” |
“…….” |
영웅과 눈이 마주친 순간 크앙은 정수리부터 발끝까지 소름이 돋았다. 온 몸의 세포가 ‘이 영웅은 진짜다’ 라고 알려주는 것 같았다. 이 기회를 놓치면 다음은 없다. 이는 마치 바르셀로나에서 FA로 풀려난 리오넬 메시를 K리그 구단에서 연봉 5천에 5년 계약으로 영입할 수 있을 정도의 기적같은 상황, 아니 그 이상이었다.
“나, 나, 나는 이 왕국의 주인 크앙이라고 하는데, 나와 함께 세계를 정복하지 않겠어?” |
그 순간 크앙은 영웅의 눈빛에 감도는 묘한 기운을 감지했다. 영웅은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하더니 선술집 바깥으로 걸어나갔다. 실패인가? 크앙은 부랴부랴 그 뒤를 i았다. 영웅이 향한 곳은 성 전체를 한 눈에 둘러볼 수 있는 요새였다. 영웅은 요새에 서서 잠시 동안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 입을 열었다.
▲ 멋있는
놈은 그냥 주변만 둘러봐도 멋있구나
“좋은 왕국이군. 좋다, 제안을 받아들이지.” |
“브라보 메시! 와이키키! 감사합니다!” |
영웅은 의외로 덤덤하게 크앙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이제 무시무시한 마녀들에게 자리 뺏길 걱정 안 해도 되고, 힘들 때 조언을 구하거나 기댈 수 있는 존재가 생긴 것이다. 크앙은 곧바로 성으로 돌아와서 강렬한 포스의 새로운 영웅을 모두에게 소개시켰다. 크앙의 예상대로 옅느와 소시지도 그 기세에 압도당한 것 같았다.
“오호, 상당히 세... 보이는데?” |
“체….격이 좋으시네요. 전투 잘 하시게 생겼어요…” |
“하하하. 이로써 우리 왕국도 탄탄대로를 걷게 될거야! 모두 주목! 소개하겠다. 새로운 영웅, ……. 아, 그러고 보니 이름도 안 물어봤군.” |
“제왕이라 불러라. 잘 부탁한다” |
“그래, 이 분은 제왕 전하이시…. 뭐?” |
“태어나기 전 부터 아버지가 지어주신 본명이다. 이름답게 살라는 유언을 남기고 돌아가셨지.” |
▲ 이름이...
제왕... 태어날때부터 왕인 사람이 요기잉네?
“와~ 그러고 보니 크앙보다 훨씬 군주 자리에 잘 어울리는데?” |
“그러게 말이죠. 태어날 때부터 군주인 사람이 요기 잉네요.” |
“이 왕국이 세계 제일의 국가가 될 때 까지 힘을 다하겠다.” |
“다음은? 세계 제일이 된 그 다음은?” |
“……” |
“다음은 어떻게 할 거냐고? 나 최고로 만든 후에 뭐 할꺼냐고? 응? 저기, 가지 말고 답변 좀 해줘 제발! 플리즈! 오네가이시마스! 아아아아아~” |
그날 밤, 크앙월드의 주민들은 원인을 알 수 없는 울음소리에 밤새 공포에 떨었다고 전해진다.
크앙, 신탁부자 해프닝
“렉스형, 난 게이 아냐.” |
“넌 왕인데 부하보다 위엄이 없었어. 그렇게 다들 게이가 되는거야.” |
“내가 게이라니! 말도 안돼. 말도 안된다고! 어흐흑 제왕 이놈!” |
“안 돼!!!” |
▲ 어흐흑
안돼 고작 저런 이유로 고자.. 아니 게이라니!
크앙은 잠에서 깨어났다. 지독한 악몽이었다. 물론 현실에서 크앙의 왕국은 잘 돌아가고 있었다. 크앙이 자는 와중에도 광산 개발은 순조롭게 이뤄지고 있었고, 성내 시설물도 차곡차곡 증축되었다. 퀘스트로 획득한 쿠폰으로 갖가지 용의 가호까지 받아 가며 자원과 병력도 꾸준히 모이고 있었다.
영웅들도 열심히 일했다. 영웅은 레벨 업에 따라 스킬 포인트를 얻게 되는데, 이를 사용해 최대 3개의 직업을 선택하고 스킬을 배울 수 있다.
수석 영웅 옅느는 지휘관과 기사 직업을 선택했다. 지휘관은 유닛을 더 빠르게 생산/모집하는 직업으로, 모든 유닛의 공격력을 15까지 증가시키는 ‘선동’ 스킬, 유닛 일일 모집 수를 증가시키는 ‘지도력’ 스킬을 배웠다. 기사는 유닛과 도시의 방어 능력을 보다 강력하게 해 주는 직업으로, 기사 영웅이 도시에 있으면 성벽도 건설할 수 있다.
▲ 수석
영웅의 위엄! 지휘관과 기사 직업을 선택한 옅느
소시지는 감독관과 술고래를 선택해 최적의 군사와 영웅 모집 환경을 만들었다. 감독관은 자원 생산량을 늘리고 연구탑을 건설할 수 있는 직업이다. 소시지가 ‘보급’ 과 ‘연금술’, ‘금광 탐사’ 스킬을 통해 기본/특수 자원과 금의 생산량을 늘리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뿌듯함이 앞선다. 술고래는 영웅을 고용할 때 많은 이득을 가져다주는 직업으로, 영웅을 더 싸게 영입하거나 신규 영웅이 가지고 들어오는 스킬 포인트와 보유 유닛을 늘릴 수 있다.
▲ '광부
되러 온거 아닌데...' 감독관과 술고래 직업을 택한 소시지
위엄 넘치는 제왕은 자신에게 잘 어울리는 전사와 투사 직업을 선택했다. 전투에서 가장 큰 힘을 발휘하는 전사는 기병과 궁병, 보병의 공격력을 업그레이드 시켜 주는 스킬을 가지고 있으며, 제왕은 모든 유닛의 공격력을 한 번에 상승시키는 ‘공격 전술’ 스킬을 배운 후 영지 내에서 설쳐대는 각종 몬스터와 떠돌이 병사, 농민(!?) 들을 처치하고 다녔다. 투사의 경우 향후 찾아올지도 모르는 적 세력의 정찰병을 찾아애는 능력을 가진 직업이지만, 전투에서 적군의 유닛 손실을 증가시키는 ‘유격’ 스킬을 배우자 한층 전투에 특화된 모습을 보였다.
▲ 전투!
또 전투! 전사와 투사를 선택한 제왕
이처럼 옅느와 소시지, 제왕은 크앙의 예상과는 다르게 열과 성을 다해 왕국을 발전시키고 있었다. 주어진 임무를 자신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주인 의식이 뚜렷해 보여 크앙은 흐뭇함을 느꼈다. 그 주인 의식이 좀 많이 높은 게 문제라면 문제지만…
아무튼 영지는 잘 발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날 밤, 바로 그 사건이 터졌다.
“크앙! 아니, 왕! 크..크.. 큰일, 경사 났어!” |
“응? 무슨…?” |
“편지함을 봐라.” |
“편지함이라… 광산 개발 완료, 스킬 습득 완료, 운영진이 드리는 편지…. 응? 이건?” |
“신탁이야!/신탁이네요…/신탁이다.” |
“이.. 이게 뭐야! 쿠폰이 하나 둘 셋….. 이천삼백오십오 장?” |
[관련기사] 잘못 발송된 GM 메일, 마이트앤매직 유저 `돈벼락`
그야말로 하늘의 축복이었다. 퀘스트를 완료하면 한두 장, 많아 봐야 열 장 정도밖에 얻을 수 없는 쿠폰이 무려 2,355 장이나 내려온 것(금 20,000 원은 보너스)이다. 일정 시간 동안 작업 속도나 자원 채취량, 군대 능력치 등을 수십퍼센트씩 상승시켜 주는 드래곤의 축복이 쿠폰 1~20 장, 가장 비싼 축복은 90 장에 받을 수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어마어마한 양이다. 특히, 쿠폰으로 일반/특수 자재를 매일 일정량씩 구매할 수도 있기 때문에 앞으로의 영지 발전에도 엄청난 도움이 될 것이다.
“만세 우린 부자야!” |
“신이 우리를 아꼈나 봐요” |
“흡족하군.” |
“이제 돈 걱정은 없다! 세계 최고의 왕국까지 얼마 남지 않았어!” |
크앙과 옅느, 소시지와 제왕은 한 마음이 되어 신탁에 대해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특히 크앙의 기쁨은 각별했다. 여지껏 뭔가 운이 없었다고 여겼는데, 이게 다 지금의 신탁을 위한 액땜이었던 것이다. 모두가 꿈꾸는 재력 넘치는 군주로의 골든 로드가 눈 앞에 보이는 듯 했다. 국회의원 선거에서 1표 차이로 당선된 것이 이런 기분일까?
▲ 1표
차이 당선의 기분이 이런 기분일까?
아무튼 신탁도 꿰어야 보배라고, 크앙과 영웅들은 재력을 바탕으로 열심히 일했다. 드래곤의 축복을 풀 셋으로 받아 놓은 후 자원을 전부 사서 필요량만 남기고 팔아버린다. 그 동안 자원 부족으로 천천히 진행했던 건물 업그레이드도 생각난 김에 최대한 지정해 놓았다. 아무튼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어느 새 자정이 넘었고 크앙과 영웅들은 활기찬 내일을 기대하며 잠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아악! 금고가!” |
심상치 않은 비명 소리가 성 전체에 울려퍼졌다. 소리의 근원지는 성 지하의 보물창고였다. 저혈압 때문에 잠이 덜 깬 크앙이 휘적대며 지하에 도달했을 때는 이미 모든 영웅들이 문 앞에서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뭐야? 무슨 일인데?” |
“저.. 저거…” |
“설마 꼽등이라도 나왔나?” |
다행히도 꼽등이는 없었다. 지네도 없었다. 바퀴벌레나 돈벌레도 없었다. 쿠폰도 없었다. 모든 것이 깔끔했…
“엥? 쿠폰 어디갔어? 내 쿠폰!?” |
“그게…” |
“다들 꼼짝마! 움직이는 놈이 범인이야!!” |
“이봐 크앙, 진정…” |
“제왕 네놈이 범인이냐! 이걸 노리고 내 부하가 된 거야?” |
<빠각>
▲ 범인은
너다! 너라고! 거기 그쪽에 그 검은 머리 가진 눈 두개 있으신 분이요
한 대 맞고 정신이 든 크앙 앞에 놓여진 것은 새로운 신탁이었다. 크앙은 조심스럽게 신탁을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신탁은 꽤나 길었지만 결론은 하나였다.
<아, 그 쿠폰 잘못 보낸거야. 돈은 너 가져도 되는데 쿠폰은 다시 가져갈게. 미안해~ 데헷☆>
“……” |
모두가 침울침울 열매를 먹은 것 처럼 급 침울해졌다. 마치 아빠의 주말근무 때문에 놀이공원 나들이 계획이 취소된 4인 가정의 다섯 살 난 딸내미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옅느는 방 구석에 홀로 앉아 ‘줬다 뺏는 건 나쁜 거잖아요…’ 라고 중얼대고 있었고, 소시지는 눈에서 땀을 흘리며 밖으로 뛰쳐나갔다. 제왕은 특별히 감정 표현을 하지는 않았지만 평소와 달리 눈빛의 채도가 낮아졌다.
모두가 침울해 있는 상황에서 눈에 띄는 것은 크앙의 침착함이었다. 크앙은 말 없이 밖으로 나가 모두에게 일을 지시하기 시작했다. 충격에 빠져 있던 영웅들은 크앙의 의연한 태도에 놀랐다. 누구보다 크게 울고불고 난리를 쳐야 할 것 같은 크앙이 저런 모습을 보이다니.
▲ 묵묵히
자원 관리와 작업 지시를 내리는 크앙, 군주답게 작은 바람에는 흔들리지 않는 것일까?
“크앙에게도 저런 면이 있네?” |
“그러게 말이에요. 다들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데 저렇게 침착하다니… 다시 봤어요.” |
“정신력이 대단하군.” |
군주로서의 위엄이 조금은 올라간 크앙, 그는 태연히 작업 지시를 마친 후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신탁 해프닝에 휘둘리지 않는 지극히 일상적인 모습이었다. 이런 모습에 특히 충격을 받은 건 크앙의 일에 사사건건 트집을 잡던 수석영웅 옅느였다. 사실 옅느가 실제로 크앙을 무시하고 왕좌를 뺏으려 든 것은 아니다. 단지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치는 군주 크앙의 행동 하나하나가 너무 답답했고, 그 때문에 약간 히스테릭한 말을 몇 번 내뱉은 것 뿐이었다.
▲ 옅느가
원한 진정한 군주의 위엄은 바로 이런 것이었다
“아무래도 사과해야겠어.” |
옅느는 크앙의 방으로 찾아갔다. 여태까지의 무례한 언행에 대해 사과도 하고, 앞으로의 왕국 발전 방향에 대해서 진지한 토론도 하고 싶었다. 옅느는 크게 심호흡을 한 번 하고 크앙의 방으로 들어갔다.
“크앙, 아니 크앙님. 드릴 말씀이……” |
“......그렇지, 윌슨? 아무래도 만우절 장난이나 뭐 그런 것 같지?” |
“……?” |
“그래, 스페인 만우절은 12월이라고 하잖아. 여기 만우절은 1월인가봐. 내 추리가 어때, 윌슨?” |
▲ 에헤헤..
내 친구는 윌슨 너밖에 없어
옅느의 눈에 비친 것은 미소를 지으며 바닥에 쪼그려 앉아 있는 크앙, 그리고 그 앞에 놓여 있는 배구공…이었다. 어디서 봤는지 배구공에는 빨간 손바닥 도장이 찍혀 있었고, 귀엽게 눈과 입까지 그려 놓았다. 기가 막혔다.
“어? 만우절 장난 좋아하는 옅느다~ 아, 인사해 이쪽은 내 새로운 친구 윌슨….” |
“집어치워!! 이 의지박약아 자식 같으니라고!” |
그 날, 크앙의 방 창문에서는 정체 불명의 하얀 천인지 가죽인지의 조각들이 흩날렸다고 한다. ‘윌슨~’ 이라는 서글픈 울음소리와 함께.
(크앙의 M&M 히어로즈킹덤즈 기행기 2부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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