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기행] 대놓고 병맛, 스토리 대신 캐릭터 개성 살린 '철권'
2017.06.08 23:50게임메카 이새벽 기자
▲ 최근 PC와 콘솔 버전이 출시된 시리즈 최신작 '철권 7' (사진출처: 공식 홈페이지)
반다이남코의 대전격투게임인 ‘철권’은 장장 23년이라는 오랜 세월 동안 굴지의 인기를 누린 장수 시리즈다. 그러한 ‘철권’의 특징 중 하나는 단연 다양한 캐릭터들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철권’을 조금이라도 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플레이 가능 캐릭터만 해도 최신작 ‘철권 7’을 기준으로는 38종, 시리즈 전체로는 총 88종에 이를 정도로 많다. 게다가 캐릭터 하나하나의 개성도 넘치다 보니, 게임은 안 해도 캐릭터는 좋아한다는 팬들도 숱하다.
▲ '철권' 시리즈에는 수많은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이 등장한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하지만 캐릭터의 면면을 하나씩 뜯어보고 있노라면 때로는 황당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격투게임 캐릭터로 재벌 총수나 사이보그, 복제인간이 나오는 거까지는 그렇다고 치자. 하지만 유전자 조작 공룡, 외계인의 생물병기, 봉인된 파괴신 등 온갖 판타지 SF 캐릭터까지 난무하는 걸 보면, 대체 ‘철권’은 세계관이 어떻길래 저런 것들이 나오나 싶어진다. 이거 완전 대놓고 엽기 콘셉트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물론 ‘철권’ 세계관도 처음부터 지금 같이 막 나가는 내용은 아니었다. 첫 작품만 해도 ‘철권’의 세계관은 나름대로 무난한(?) 분위기였다. 그러나 개성 강한 캐릭터를 계속 새로 추가하다 보니, 배경 설정을 감당하기 위해 세계관도 점점 안드로메다로 가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철권’에는 어떤 엽기적인 캐릭터들이 등장할까? 또 그들의 배경 이야기는 어떻게 설명되고 있을까? 캐릭터의 개성이 강하다 못해 철철 넘치고, 아예 세계관을 통째로 산으로 보내버릴 정도인 ‘철권’, 그 이야기를 한 번 알아보자.
스토리 개연성보다는 캐릭터 개성, 분명히 선택했다
‘철권’의 이야기는 처음에는 무척 단순하게 시작됐다. 어느 날 ‘미시마 재벌’이라는 대기업이 ‘철권 토너먼트’라는 격투대회를 연다. 대회의 최종 승리자에게는 막대한 부와 명성이 보장됐고, 이에 전세계에서 내로라하는 뛰어난 무술가들이 대회에 앞다투어 참가한다.
▲ '철권 토너먼트'의 최초 개최자인 '헤이하치' (사진출처: 공식 홈페이지)
그런데 사실 이 대회는 기업 총수 ‘미시마 헤이하치’의 매우 개인적인 욕망 때문에 열린 것이었다. ‘헤이하치’는 ‘약자는 아들로 인정할 수 없다’면서 어린 아들을 절벽에서 떨어뜨리기까지한, 힘에 미친 무술가다. 이처럼 힘에 집착하던 ‘헤이하치’는 늘 자신이 최강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전세계의 뛰어난 무술가를 한 자리에 모아 그 중 일인자와 겨루고자 했으며, ‘철권 토너먼트’는 바로 그들을 모으기 위한 수단이었던 셈이다.
▲ '철권'의 주요 캐릭터들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이처럼 ‘철권’의 첫 이야기는 무척 단순한 내용이다 보니 특이하게 느껴지는 점도 별로 없었다. 물론 이 때도 몇몇 특이한 캐릭터가 등장하기는 했다. ‘헤이하치’가 인육을 먹여 키운 크고 흉포한 곰인 ‘쿠마’나, 전투 데이터를 축적을 위해 러시아가 보낸 인공지능 로봇 ‘잭’이 있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게임적 허구라고 납득하고 넘어갈 수 있는 수준의 특이함이었다. 따지고 보면 동시대의 격투게임인 ‘버추어 파이터’나 ‘스트리트 파이터’에서도 이 정도 설정은 흔히 나왔다.
본격적으로 ‘철권’이 별난 설정을 보여주기 시작한 것은 1994년에 발매된 작품 ‘철권 2’부터였다. ‘철권 2’도 스토리는 전작과 다르지 않았다. 전작에서 아버지 ‘헤이하치’를 꺾고 ‘미시마 재벌’을 계승한 ‘카즈야’는 다시 한 번 ‘철권 토너먼트’를 개최한다. 여기에 다시 한 번 전세계 무술가들이 ‘미시마 재벌’이 내건 막대한 상금을 탐내 모여들고, 이 중에는 패배 이후 자취를 감추고 복수의 칼날을 갈던 ‘헤이하치’도 끼어있었다는 이야기다.
▲ '철권 2'에는 수많은 캐릭터가 추가됐는데, 개중에는 격투게임에 나오면 안 될 것 같은 친구들도 있다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철권 2’는 별로 달라진 것 없는 스토리와는 달리 캐릭터 수는 전작에 비해 두 배 가까이 늘어난 25종에 달했다. 그런데 캐릭터 수가 워낙 많아서 각각에게 그럴 듯한 개성을 부여하기 힘들었던 건지, 개중에는 황당한 콘셉트의 캐릭터도 있었다. 예로 공룡 ‘알렉스’나 캥거루 ‘로저’는 ‘미시마 재벌’에서 무술가와 동물의 유전자를 합성하여 만든 생물병기였고, ‘데빌’은 ‘카즈야’ 내면에 깃든 사악한 힘이 각성해 신체를 장악했다는 설정이었다.
그런데 이 황당한 캐릭터들은 의외로 좋은 반응을 얻었다. 사실 격투게임의 특성상 짜임새 있는 스토리나 심도 깊은 세계관은 있어봤자 플레이어에게 전달되기가 쉽지 않다. 그에 비해 외견상 웃기거나 멋진 캐릭터는 한 눈에 시선을 잡아 끌 수 있었으므로 그 중요성이 컸다.
▲ '철권' 시리즈의 향후 방향성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이미지 (사진출처: ridictop)
그래서였을까? 이후부터 ‘철권’ 시리즈는 사실적인 격투가나 실제 동물보다 다소 기이한 캐릭터의 비중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철권 3’에서는 사이보그 ‘브라이언 퓨리’, 중남미에 잠들어있던 외계 생물병기 ‘오우거’, 강대한 자의 기운에 반응해 스스로 움직이는 나무인간 ‘모쿠진’ 등이 등장했다. 여기에 ‘철권 4’에서는 유전자 복제 인간인 ‘스티브 폭스’가 추가됐으며, 이어지는 시리즈에서는 거대 군사 로봇 ‘NANCY-MI847J’이나 봉인된 파괴신 ‘아자젤’ 등 SF 판타지적 캐릭터가 늘어났다.
더불어 미소녀 캐릭터도 늘어났다. 물론 시리즈 초기에도 ‘안나 윌리엄스’나 ‘니나 윌리엄스’ 등의 아름다운 여성 격투가 캐릭터들이 등장했지만, 최소한 이들은 암살자라는 설정이 있었다. 그러나 후기 시리즈에서는 ‘아스카’, ‘릴리’, ‘럭키 클로에’처럼 개연성 없이 강한 한 소녀가 다수 등장하고, ‘알리사’, ‘엘리자’처럼 노골적으로 만화 풍인 여성 캐릭터도 나오기 시작했다.
▲ '철권 토너먼트'에 출전하는 현직 아이돌 '럭키 클로이' (사진출처: 공식 홈페이지)
이처럼 ‘철권’은 세계관과 스토리의 개연성은 포기한 대신, 눈에 띄는 캐릭터성은 확실히 부각시켰다. 덕분에 '철권'은 다른 격투게임과는 확실히 차별화되는 독특한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헤이하치’ 빼면 역대 보스 전부 악마나 괴물, 판타지 요소 강하다
그렇다면 과연 ‘철권’에 얼마나 특이한 캐릭터가 나올까? 콘셉트에 따라서 한 번 살펴보자. 우선 꼽을 수 있는 콘셉트는 ‘판타지’가 있다. 사실 ‘철권’은 메인 스토리도 어느 정도 초자연적인 힘을 중심 소재 삼아서 흘러간다. 그만큼 전체 세계관에서 판타지 속성이 갖는 비중은 크다.
▲ 평범한 인간은 거부하는 게 '철권' 세계관의 묘미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가장 먼저 짚을 만한 캐릭터는 물론 ‘데빌’이다. ‘데빌’은 시리즈 주인공인 ‘카즈야’의 내면에 깃든 사악한 존재로, 실은 첫 작품인 ‘철권’부터 꾸준히 등장해온 전통의 캐릭터다. 다만 ‘철권’에서는 스토리상 정말로 존재하는 캐릭터는 아니고 ‘카즈야’의 코스튬 중 하나로 나왔다.
▲ 사실 '데빌'은 '철권' 시절부터 나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그러나 ‘철권 2’부터 ‘데빌’은 독립적인 캐릭터로 등장했고 스토리상으로도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사실 ‘카즈야’의 핏줄에는 ‘데빌 인자’라는 특이한 피가 흐르는데, 이 피가 각성하면 초월적 힘과 사악한 의지를 지닌 초자연적 존재인 ‘데빌’로 변한다. 작중에서는 ‘데빌’의 힘만 있으면 용암에 빠지고도 살아남고, 눈에서 광선을 발사해 인공위성도 부수는 것으로 나오니, 대충 어느 정도로 강한지 알 만하다. ‘철권’ 스토리는 바로 이 ‘데빌 인자’를 지닌 인물들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 '데빌'이 된 '카즈야' (사진출처: 공식 홈페이지)
‘데빌’의 기본 버전은 시리즈 최초로 등장했던 ‘데빌 카즈야’다. 그러나 사실 ‘데빌 인자’만 있으면 다른 사람도 ‘데빌’이 될 수 있는데, 이 때는 원판(?)이 누구냐에 따라 ‘데빌’화한 모습도 조금씩 달라진다. 예를 들어 ‘카즈야’는 ‘데빌’로 변신 시 박쥐 날개가 생기지만, 마찬가지로 ‘데빌’ 변신이 가능한 아들 ‘진’은 검은 깃털에 덮인 날개가 생긴다. 그런가 하면 ‘데빌 인자’의 근원이라는 파괴신 ‘아자젤’은 보랏빛 수정으로 이루어진 드래곤처럼 생겼다.
여기에 ‘오우거’도 빼놓을 수 없다. ‘철권 3’에 최종 보스로 등장한 ‘오우거’는 중남미 유적지에서 깨어난 정체불명의 존재다. 기본적으로는 녹색 피부에 아즈텍 장식물을 두른 근육질의 거인으로 나타나지만, 사실 본체는 휘어진 뿔에 거대한 날개를 지닌 고대의 괴물이다.
▲ '철권 3'의 주요 악역이었던 '오우거'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오우거’는 본능적으로 강자의 존재를 느끼고 나타나, 싸워서 패배시키고 힘을 흡수한다. ‘철권 3’ 스토리는 ‘오우거’가 세계 각지의 무술가를 습격해 힘을 빼앗으면서 시작된다. 주인공 ‘진’이 ‘철권 토너먼트’에 참가하게 되는 계기도 바로 어머니를 살해한 ‘오우거’에게 복수하기 위해서다.
사실 ‘오우거’에게는 외계인이 만든 생물병기라는 배경설정과, ‘헤아하치’가 ‘오우거의 피’를 사용해 ‘데빌’에 대항할 힘을 얻고자 한다는 스토리가 있었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철권 4’부터 이 설정은 등장하지 않고 있다. 아마 새 캐릭터를 내느라 바빠서 설정 회수를 못 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 '철권 태그 토너먼트 2'에 등장한 '트루 오우거' (사진출처: 공식 홈페이지)
여기에 뱀파이어도 등장한다. ‘철권 7’에 등장하는 ‘엘리자’가 그 주인공이다. 설정상 1,000년 전에 잠든 뱀파이어라는데… 어쩐지 노출도가 끝내주는 미니스커트에 검은 스타킹을 신은 고스족으로 나온다. 뱀파이어인 만큼 게임에서도 어둠을 휘두르고 상대 피를 빠는 등의 기술을 구사한다.
▲ '철권 7'에 등장한 뱀파이어 소녀 '엘리자'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독특한 점은 역대 시리즈 중 ‘철권’과 ‘철권 4’를 제외하면 최종 보스는 늘 괴물이나 악마 종류가 맡아왔다는 것이다. ‘철권 2’은 ‘데빌’이, ‘철권 3’은 ‘오우거’가, 그리고 ‘철권 5’와 ‘철권 6’은 각각 ‘데빌’에 빙의된 ‘진파치’와 파괴신 ‘아자젤’이 최종보스로 등장했으니 말이다. 여기에 최신작 ‘철권 7’에서도 최종보스로 ‘데빌 카즈미’가 나오고, 외전격인 ‘철권 태그 토너먼트’ 시리즈에도 귀신에 빙의된 존재 ‘언노운’이 나오니, 이 정도면 시리즈 전통이라고 할 만하다.
그 외에도 ‘철권’에는 숙주가 ‘데빌 인자’에게 침식되어갈 때 나타나 도움을 주는 정체불명의 존재 ‘엔젤’, 이탈리아의 퇴마사 ‘클라우디오 세라피노’ 등 초자연적 힘을 지닌 캐릭터들이 다수 등장해 판타지 색채를 더하고 있다.
▲ 판타지 캐릭터 중에서는 유일한 선역인 '엔젤'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유전자 조작 괴물, 사이보그, 생체병기, SF 냄새까지 풍긴다
악마나 괴물 같은 판타지 오컬트 캐릭터가 전부가 아니다. 공상과학적인 캐릭터도 여럿 나온다. 심지어는 시리즈 첫 작품인 ‘철권’에서부터 인공지능 전투로봇인 ‘잭’이 나왔는데, 나중에 등장할 캐릭터들에 비하면 이 정도는 대단히 사실적인 축에 속했다.
우선 ‘잭’부터 이야기해보자. ‘잭’은 ‘철권’에서 쌓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양산에 성공, 전장에 투입된다. 그러나 ‘철권 2’에서 어느 ‘잭’은 작전 중 도움을 요청하는 여자아이 ‘제인’을 만나고, 그를 구하기 위해 탈영을 감행하게 된다. ‘잭’은 ‘제인’을 안전한 곳까지 피신시키는 데 성공하고 둘은 행복해하지만 그것도 잠시, 군은 탈영 로봇을 처분하기 위해 인공위성으로 포격을 가하고 ‘잭’은 무참히 파괴되어버린다.
▲ '잭'은 안타깝게도 '철권 2'에서 위성포격을 맞고 파괴된다 (사진출처: 영상 갈무리)
‘잭’을 잃은 충격이 트라우마가 된 걸까? ‘제인’은 ‘잭’을 되찾기 위해 공학도로 성장하고 실제로 어느 정도 ‘잭’을 수리하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제인’은 ‘잭’을 고치는 데 만족하지 못하고 더욱 향상시키기 위해 개조를 거듭해나가고 다양한 버전의 ‘잭’ 시리즈를 만들어내기에 이른다.
▲ '잭'은 '제인'의 집념으로 시리즈를 거듭하며 끝없이 개조된다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이러한 ‘제인’의 성과는 얼마 후 유전공학과 생체개조에 전문화된 대기업인 ‘G사’의 이목을 끌게 된다. ‘G사’는 마침 위험에 빠진 ‘제인’을 구해 입사를 권유하고, 그는 ‘잭’의 개량을 지원받기 위해 ‘G사’에 입사한다. ‘철권 5’부터 등장하는 ‘잭’은 이처럼 ‘제인’이 ‘G사’에서 만들어낸 개조 ‘잭’이다.
이처럼 ‘잭’이 완전히 기계로만 이루어진 로봇이라면, 신체 일부 기계로 대체한 사이보그도 있다. 바로 ‘브라이언 퓨리’다. ‘브라이언’은 총격으로 죽은 경찰을 사이보그로 만들어 되살린, 이를테면 로보캅 같은 캐릭터다. 여기에 로보캅과 하나 다른 점이 있다면 ‘브라이언’은 나쁜 놈이라는 것. 원래도 과격한 기질이 있던 사람인데, 한 번 죽었다 사이보그가 되어 살아나면서 더욱 정신 나간 상태가 됐다. 사람을 하도 해치고 다니는 탓에 ‘브라이언’을 증오하는 인물도 상당히 많다.
▲ 사실 '브라이언'은 겉모습만 봐서는 사이보그라는 사실을 알아채기 힘들다 (사진출처: 공식 홈페이지)
묘하게 ‘브라이언’과 주적관계인 ‘요시미츠’도 사이보그다. 사실 ‘철권’에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요시미츠’는 사이보그가 아닌 인간 닌자였다. 그러나 ‘철권 2’에서 팔이 잘리고 의수를 단 것을 시작으로 시리즈가 진행될수록 점점 사이보그화가 진행되더니, 이제는 아예 사람처럼 보이지도 않는 수준이 됐다. 실제 게임 내에서도 칼을 든 손을 고속회전 시켜 프로펠러 삼아 날아가는 등 대략 어이를 잃게 만드는 기술들을 보여준다.
▲ '브라이언'의 라이벌 '요시미츠'는 한 눈에 사이보그인 줄 알 수 있게 생겼다
(사진출처: 공식 홈페이지)
그런가 하면 유전자 조작 생체병기까지 나온다. 의외로 생체병기의 첫 등장시기는 생각보다 꽤 빠르다. ‘철권 2’에서 나온 엽기의 두 축인 ‘알렉스’와 ‘로저’가 유전자 조작 생체병기이기 때문이다. 이 둘은 설정상 앞서 언급한 것처럼 공룡의 유전자와 캥거루의 유전자를 무술가의 유전자와 합성해서 만들어낸 괴물들이다. 물론 무술가의 유전자를 합성했다고 싸움을 잘하게 될 리는 없지만, 어쨌든 게임 설정상으로는 그렇다.
▲ '철권 태그 토너먼트 2'에 등장한 '알렉스' (사진출처: 공식 홈페이지)
▲ '철권 5'에는 '로저'의 아내와 자식이 '로저 주니어'라는 이름으로 공동 출전한다
(사진출처: 공식 홈페이지)
어쨌거나 ‘미시마 재벌’ 연구진도 이 둘의 전투력이 굳이 유전공학까지 써서 만들어낼 만큼 대단하지 않다는 것을 결국 깨달았는지, 이후 ‘알렉스’와 ‘로저’는 군사적 목적으로 투입됐다는 이야기는 없다. 반면 ‘미시마 재벌’과 대립구도를 이루는 ‘G사’는 조금 더 그럴 듯한 생체병기를 만들어냈다. 바로 ‘철권 7’부터 참전한 ‘기가스’가 ‘G사’의 작품이다. 비인간적인 근육 덩어리와 기괴한 기계장치가 결합된 모습의 ‘기가스’는 사실 강제 개조된 무술가다.
▲ 조금 더 그럴 듯해 보이는 'G사'의 생체병기 '기가스' (사진출처: 공식 홈페이지)
생체병기로 개조되는 과정에서 심한 고통을 겪고 이성을 잃은 ‘기가스’는 분노로 가득 찬 존재다. 그는 작전지역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을 무자비하게 해치는 괴물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작은 감동 포인트가 있다. 사실 개조되기 전 ‘기가스’는 ‘철권 7’의 또 다른 캐릭터 ‘카타리나 아우베스’의 아버지였다. 그래서일까, ‘기가스’는 괴물이 된 지금도 딸만은 본능적으로 지켜주고자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기가스’의 이야기는 ‘미시마 가문’의 존속살해 시도로 점철된 ‘철권’의 막장 스토리에서 얼마 안 되는 훈훈함을 준다.
▲ 하지만 딸 아닌 사람에게는 자비가 없다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이미 정상적인 스토리 진행은 포기했다, 막장과 개그로 주는 '병맛'의 재미
여기까지 이야기가 나왔으니 아마 한 가지 의문이 들 것이다. 이렇게 온갖 종류의 캐릭터가 떼로 나오는데, 과연 정상적인 스토리 진행이 가능할까?
▲ '철권 5' 이후의 많은 엔딩은 대놓고 '병맛' 개그 노선을 탄다 (사진출처: 영상 갈무리)
사실 ‘철권’은 어느 정도는 이미 스스로도 진지한 스토리 진행을 포기한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일단 게임 엔딩은 공식 설정으로 채택되는 하나를 제외하면 대부분 코미디다. 이러한 희극화는 ‘철권 5’부터 시작됐는데, ‘헤이하치’는 자기 엔딩에서 아예 아들인 ‘카즈야’와 손자인 ‘진’을 로켓에 묶어서 우주로 쏴버리고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가 하면 ‘철권 태그 토너먼트 2’의 ‘왕 진레이’ 엔딩에서는 비인기 캐릭터들이 모여서 인기를 높이기 위한 ‘철권 미래 토론회’를 연다.
공식 설정으로 채택되는 엔딩이라고 크게 다르지도 않다.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번갈아 절벽에서 던지는 엔딩이 시리즈 내내 반복되고, 나중에는 그냥 던지는 건 강도가 약했다 싶었는지 용암에 던지는 버전으로 업그레이드까지 한다. 물론 그래도 잘만 살아서 돌아온다.
▲ '철권 2'에서 '헤이하치'는 아들 '카즈야'를 용암에 던지지만...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 멀쩡하게 살아 돌아와서 이번에는 아버지를 던진다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하지만 그렇다고 ‘철권’ 세계관과 스토리가 엉성하다고 비판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철권’의 본질은 어디까지나 격투게임이고, 서사를 심도 있게 풀어내기 힘든 격투게임의 특성상 세계관과 스토리는 부차적인 요소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철권’ 시리즈는 의외로 세계관과 스토리를 잘 활용하고 있는 셈 아닐까? 비록 개연성은 떨어질지 모르지만, 부수적인 요소를 적극적으로 내세워서 오랫동안 관심을 받고 있으니 말이다. 이 정도 ‘병맛’이면 그 자체로 인정해주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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