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기행] 첩보에서 차원이동 좀비물로, 메탈 기어 변천사
2018.02.15 10:58게임메카 이새벽 기자
▲ 오랜 세월 동안 숱한 변화를 거듭해온 '메탈 기어' 시리즈 (사진출처: 코나미 공식 블로그)
※ 이하 글은 '메탈 기어' 시리즈 줄거리에 대한 스포일러를 일부 포함하고 있습니다.
코나미 대표 프랜차이즈 '메탈 기어'는 그야말로 입지전적의 시리즈다. 이 게임은 당시만 해도 생소했던 전술 잠입이라는 소재를 전면에 세워 어드벤처 장르에 새로운 문법을 제시했으며, 우수한 그래픽과 독특한 연출로 2000년대 중반의 '영화 같은 게임' 유행을 선도하기도 했다. 덕분에 오늘날에도 명작 프랜차이즈를 꼽을 때면 '메탈 기어'라는 이름은 반드시 빠지지 않고 들어간다.
그러나 처음부터 시리즈 팬이었다면 모를까, 사실 '메탈 기어' 세계관은 뒤늦게 관심 생긴 신규 팬들이 제대로 이해하기에는 다소 난해한 내용이다. 그 이유는 시리즈가 진행될수록 급히 설정을 바꾸어왔기 때문이다. 초창기 '메탈 기어'는 나름대로 사실적인 전개를 보여주었지만, 시리즈가 인기를 얻음에 따라 점차 자극적인 소재를 도입하며 황당한 내용으로 흘러갔다. 영어 사용자만 골라 죽이는 바이러스라거나, 갑자기 열린 웜홀로 평행세계에 가는 등이다.
과연 '메탈 기어' 시리즈는 어떻게 시작했고 왜, 그리고 어떤 궤적을 그리며 오늘날에 이르렀을까? '메탈 기어' 세계관을 간단히 정리해보았다.
처음부터 SF 판타지는 아니었다, 나름대로 사실적었던 초창기 '메탈 기어'
▲ 북미 버전 '메탈 기어' 시작 화면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메탈 기어' 시리즈의 아버지로 불리는 코지마 히데오는 오늘날 세계적인 스타 개발자 반열에 올랐지만, 처음 '메탈 기어'를 개발할 때만 해도 일개 무명 기획자에 지나지 않았다. 사실 '메탈 기어' 자체도 처음부터 코나미에서 많은 기대를 건 작품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시리즈 첫 작품인 '메탈 기어'도 크게 모난 구석 없는, 무난한 내용의 첩보물로 탄생했다.
'메탈 기어'에서 주인공은 '폭스하운드'라는 가상 특수부대에 새로 배치된 병사 '솔리드 스네이크' 역할을 맡는다. 게임 시작과 함께 '솔리드 스네이크'는 극비리에 진행 중인 작전을 맡게 된다. 그 내용인즉 남아프리카의 무장집단 '아우터 헤븐'이 핵무기가 탑재된 보행병기를 개발 중이며, 이를 이용해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을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것이다. '솔리드 스네이크'는 단독으로 파견되어 '아우터 헤이븐'의 음모를 저지하고 정체불명의 병기를 파괴해야 했다.
▲ 첫 '메탈 기어'는 줄거리보다 전술적 판단에 초점을 맞춘 첩보물이었다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물론 이 줄거리에도 반전은 있었다. 알고 보니 사실 '아우터 헤이븐'을 이끈 배후 조종자가 '폭스하운드' 지휘관 '빅 보스'였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솔리드 스네이크'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상태의 비밀병기 '메탈 기어'를 파괴하는 것은 물론, 배신자인 '빅 보스'까지 처단하고 복귀하는 것으로 첫 번째 임무를 완수했다. 이렇듯 '메탈 기어'는 짧고 단순한 내용이었고, 실제 플레이 시간도 약 2~3시간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간단한 줄거리에도 불구하고 '메탈 기어'는 일본과 북미에서 예상을 웃도는 좋은 성적을 기록했다. 세밀한 도트 그래픽, 적의 감시를 피해 잠입하는 스릴, 다양한 반복 플레이 요소 등이 인기를 끈 것이다. 즉, 줄거리가 아닌 게임 시스템의 독특함이 '메탈 기어'의 강점이었다. 이에 코나미는 급히 '메탈 기어: 스네이크의 복수'라는 번외 게임을 개발한 동시에, 원작자 코지마 히데오의 정식 후속작 개발 요청을 승인해 '메탈 기어 2: 솔리드 스네이크' 제작에 착수했다.
▲ '메탈 기어'의 존재만 빼면 나름 사실적 분위기였던 '메탈 기어 2: 솔리드 스네이크'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메탈 기어 2: 솔리드 스네이크'는 전작 '메탈 기어'와 크게 다르지 않은 줄거리였다. 주인공 '솔리드 스네이크'는 중동 어딘가에 위치한 '잔지바르랜드'에 '빅 보스' 휘하 무장집단이 남아있고, 이들이 여전히 세계 각지에서 탈취한 여러 핵무기를 보유 중임을 알게 된다. 또한 '잔지바르랜드'에서는 비밀리에 새 '메탈 기어'까지 개발하는 상황이었다. 이에 미국은 다시 한 번 역전의 용사 '솔리드 스네이크'를 보내 음모를 저지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메탈 기어 2: 솔리드 스네이크'는 전작보다 다양한 잠입요소가 추가됐다. 예를 들어 잔지바랜드 군가를 틀어놓으면 병사들이 모두 경례 자세를 취하며 집중하는데, 이 특징을 이용하면 경계가 삼엄한 곳도 쉽게 통과할 수 있었다. 그 외에도 적을 유인해 몰래 기절시키는 등 다양한 행동이 가능했다. 물론 지금은 여러 게임이 채택하고 있는 기능이지만, 이 게임이 출시된 1990년 당시만 해도 이 정도 전술적 선택지를 제공하는 잠입게임은 드물었다.
▲ 게임 중 무선 통신으로 이루어지는 대화도 나름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그리고 '메탈 기어 2: 솔리드 스네이크'에 대폭 추가된 요소가 하나 더 있었으니, 바로 줄거리였다. 사실 개발 PD 코지마 히데오는 소싯적 영화감독이 꿈이었다. 비록 게임 개발자의 길을 걸으며 그 꿈은 포기했지만, 여전히 게임을 통해 창작욕을 발산하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 그런데 '메탈 기어' 시리즈의 성공과 함께 개발 권한이 강해지자, 오랜 염원대로 '영화 같은 줄거리'를 게임에 도입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덕분에 '메탈 기어 2: 솔리드 스네이크'는 줄거리 면에서 큰 진보를 이루었다.
'메탈 기어 2: 솔리드 스네이크'에는 전작에 없던 여러 드라마가 추가됐다. 알고 보니 '빅 보스'가 '솔리드 스네이크'의 아버지였다거나, 전작의 동료 '그레이폭스'가 사상적 문제로 '빅 보스'에 가담하고 주인공에 맞서는 등 극적 전개는 물론, 주인공과 여성 CIA 요원의 로맨스까지 있던 것이다. 연출 또한 다수의 컷신과 캐릭터 대화가 대폭 늘어나 보는 재미를 더해주었다. 다만, 이 때까지만 해도 줄거리는 어디까지나 부차적 요소에 지나지 않았다.
이러한 특징들을 바탕으로 '메탈 기어 2: 솔리드 스네이크'는 MSX 매거진에서 조사한 '6개월 동안 가장 많이 팔린 MSX 게임 30선'에서 1위를 차지했다. 해외에서도 여러 매체와 게이머가 최고의 8비트 게임으로 이 작품을 꼽았으며, 오늘날에도 컬트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을 정도다.
두 '메탈 기어' 성공으로 자신감을 얻은 코지마 히데오는 보다 자기 취향으로 다듬어진 후속작 시리즈를 새로 기획했는데, 바로 '메탈 기어 솔리드' 시리즈였다. '메탈 기어 솔리드'부터 시리즈는 점점 영화 같은 연출을 중시했고, 줄거리와 서사도 차츰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갑자기 달라진 장르, 첩보물 아닌 '스네이크 가문 연대기' 된 '메탈 기어 솔리드'
▲ 줄거리와 서사에 집중하기 시작한 첫 작품, '메탈 기어 솔리드' (사진출처: PS 공식 홈페이지)
▲ 줄거리와 서사에 집중하기 시작한 첫 작품, '메탈 기어 솔리드' (사진출처: PS 공식 홈페이지)
마침 '메탈 기어 솔리드'가 제작되던 시기는 MSX 황혼기였고, 이미 대세는 PS1으로 넘어가는 중이었다. '메탈 기어 솔리드'는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 따라 전작들과 달리 MSX가 아닌 PS1으로 개발됐다. 덕분에 이 작품은 전작들보다 수준 높은 그래픽과 연출을 보여줄 수 있었는데, 본인이 영화 애호가였던 코지마 히데오는 이 특징을 이용해 영화적 연출과 서사를 '메탈 기어 솔리드'에 적극 도입했다. 그 결과 '메탈 기어 솔리드'는 단순한 내용의 전작과 달리, 상당히 복잡한 인물간 갈등을 내세운 서사극이 됐다.
'메탈 기어 솔리드' 내용은 다음과 같다. '메탈 기어 2: 솔리드 스네이크' 사건 후 주인공 '솔리드 스네이크'는 전역하여 알래스카에서 썰매 개를 키우는 조용한 삶을 산다. 그러나 그를 찾아온 전 상관은 '솔리드 스네이크'와 똑같이 생긴 정체불명의 사내 '리퀴드 스네이크'가 '폭스하운드' 부대 전체를 데리고 봉기, 알래스카에 위치한 섬 '섀도우 모세스'에 핵무기를 설치하고 모종의 요구를 하고 있는 사실을 알린다. 이에 주인공은 다시 한 번 임무에 나서 '폭스하운드'의 야욕을 막는다.
▲ PS로 넘어간 덕에 전작보다 훨씬 뛰어난 그래픽이 가능해진 '메탈 기어 솔리드'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그런데 이 게임을 하다 보면 상당히 충격적인 진실이 드러난다. 사실 '솔리드 스네이크'와 '리퀴드 스네이크'는 일반적인 인간이 아닌 복제인간이었다는 것이다. 이들은 전작에서 사망한 '빅 보스'의 유전자로 만들어진 인조인간으로, 이미 노쇠한 '빅 보스' 유지를 잇기 위해 만들어진 존재였다. 그러나 '리퀴드 스네이크'는 자신이 유전적 결함으로 인해 짧은 수명과 각종 유전병을 앓고 있다 믿었고, 이를 치료하기 위해 미국 정부에 '빅 보스'의 시신을 요구했던 것이다.
'리퀴드 스네이크'를 막는 과정에서 '솔리드 스네이크'는 또 다른 진실을 알게 된다. 사실 세계의 이면에는 '현인회'라는 그림자 정부가 존재하며, 이들이 1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전쟁을 통해 세계 정치와 경제를 조종해왔다는 것이다.
▲ 유전병 치료하게 '빅 보스' 시체를 내놓으라는 복제인간 '리퀴드 스네이크'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현인회'는 1차 세계대전 직후 미국, 러시아, 중국의 부유하고 유능한 인물이 모여 결성한 조직이었다. 설립 초기에는 세계의 정치를 비밀리에 좌지우지해 전쟁을 막겠다는 목표를 지니고 있었고, 각자 자금을 모아 막대한 기금을 조성해 세계정치를 통제하기로 한다. 물론 실제 역사로 따지면 1차 세계대전이 끝났을 때 제정 러시아는 이미 사라졌고, 중화민국도 위안스카이가 사망하여 혼란스러웠던 시점이라 세계정세를 조종할 수는 없었다. 실제 역사와는 다른 부분인 셈이다.
초기 '현인회'는 원래 목표대로 전쟁을 억제하거나 단축하는 데 힘썼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막대한 공동기금을 모아 연합군을 무장시킨 동시에, 한 번에 전쟁을 끝낼 수 있는 핵무기를 개발하고자 맨하튼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메탈 기어' 시리즈에서 2차 세계대전이 끝난 것은 현인회의 공으로 볼 수 있으며, 사실상 '메탈 기어' 프로젝트도 이들에게서 파생됐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은 힘과 계략을 통해 강제로 세계를 평화롭게 만들겠다는 뜻을 계속 이어갔다.
▲ 게임 상에서는 흐릿한 과거 사진으로만 등장하는 '현인회'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그러나 세월이 흐르며 '현인회'도 점차 세대가 교체됐다. 2세대 '현인회'는 냉전기에 주도권을 잡고, 아직까지 생존해 있던 소수의 1세대를 숙청한 후 조직을 완전히 장악했다. 이들은 세계평화보다는 전쟁을 통해 자신들이 얻을 수 있는 이권에만 치중했다. 또한 자본주의 진영과 공산주의 진영이 대립함에 따라 '현인회'는 분열됐고, 미국 '현인회'는 내분으로 인해 아예 '애국자들'이라는 독자 진영으로 분리되기까지 했다.
그림자 속에서 미국을 조종하는 '애국자들'의 우두머리는 사실 전작에 나온 '빅 보스'였다. 그가 사망한 후 유사시를 대비해 양성되고 있던 복제인간들이 하나씩 그의 유지를 이어 활동하기 시작했는데, 사실 이들은 '솔리드 스네이크'와 '리퀴드 스네이크' 외에도 여럿이 존재했다. '메탈 기어 솔리드'는 이러한 진실을 깨달은 주인공 '솔리드 스네이크'가 진정한 적 '애국자들'과 '메탈 기어' 양산 계획에 맞서 활동을 개시한다는 내용으로 종료됐다.
▲ 또 다른 '빅 보스' 복제 '솔리더스 스네이크', 유전적 문제로 인해 37세에 노인이 됐다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메탈 기어 솔리드'에서 끝난 줄거리는 '메탈 기어 솔리드 2: 선즈 오브 리버티'로 계속 이어진다. 여기서는 세 번째 '빅 보스' 복제인간 '솔리더스 스네이크'가 악당으로 등장한다. 그도 '빅 보스'의 빈 자리를 채우기 위해 만들어진 존재로, 잠시나마 미국 대통령 자리에까지 오르며 '애국자들'의 총애 받는 요원으로 활동했다. 그러나 '섀도우 모세스' 사건으로 '애국자들'이 자신을 실각시키자, 그는 자신 또한 언제든 대체될 수 있는 도구에 불과했다는 걸 깨닫고 분노해 복수에 나선다.
'메탈 기어 솔리드 2: 선즈 오브 리버티'는 이러한 '솔리더스 스네이크'와 그 휘하 조직 '선즈 오브 리버티'를 막기 위한 주인공들의 활약을 다루었다. 상세한 내용을 일일이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 내용은 결국 '빅 보스'가 세운 '애국자들'과, 그에 맞서는 '빅 보스' 복제인간 '스네이크'들이 벌이는 투쟁으로 요약된다. '애국자들'은 모든 것을 자신이 통제하는 질서를 구축하고자 하며, 복제인간인 '스네이크'들은 그에 맞서 자유로운 삶을 쟁취하기 위해 싸우는 것이다. 이러한 '스네이크' 집안 연대기는 '메탈 기어 솔리드 3: 스네이크 이터', '메탈 기어 솔리드 4: 건즈 오브 더 패트리어츠'를 모두 거치고서야 대충 마무리된다.
▲ '메탈 기어 솔리드 4'에 가면 다들 늙어서 양로원 분위기가 된다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이렇듯 '메탈 기어'가 핵무장 테러리스트 집단을 무찌르는 영웅의 활약이라는 단순한 내용이었던 것에 비해, 후속작 '메탈 기어 솔리드'는 등장인물들 사이의 드라마에 치중한 서사극적 줄거리를 내세웠다. 다만 이처럼 급격한 분위기 변화는 팬들 사이에도 호불호가 갈리게 했다. 테러리스트를 막는 특수부대원의 활약에서, 그림자 정부와 초인 복제인간들의 암투라는 내용으로 서사가 크게 바뀐 데 거부감을 느낀 이들이 많았던 것이다.
하지만 줄거리와 서사에 대한 호불호와는 별개로 '메탈 기어 솔리드 2'는 전세계적으로 800만 장 이상 판매되는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다. 이에 기세가 오른 코지마 히데오는 '메탈 기어 솔리드 3: 스네이크 이터'부터 조금 더 자극적인 소재들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조금 뜬금 없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바로 초능력이었다.
전기 능력자부터 광합성 능력자까지, 초능력 대전으로 변한 '메탈 기어 솔리드'
▲ 맨손으로 전기고문이 가능한 사내 '볼긴'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사실 '메탈 기어 솔리드 3' 전에도 조금 황당하다 싶은 내용은 있었다. 예를 들어 '메탈 기어 솔리드'에서 사이보그 닌자가 나온다거나, '메탈 기어 솔리드 2'에 나노머신의 도움으로 물 위를 걷거나 머리에 총을 맞고도 안 죽는 '뱀프' 같은 캐릭터가 나오는 등이었다. 하지만 애초에 '메탈 기어'가 어느 정도 SF 요소를 안고 있는 게임인지라, 여기까지는 그래도 감안하고 넘어갈 수 있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후부터 '메탈 기어 솔리드'의 판타지 요소는 산으로 가기 시작했다.
'메탈 기어 솔리드 3: 스네이크 이터'는 전작들의 과거 시점인 1960년대를 배경으로 했으며, 젊은 시절의 '빅 보스'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이 또한 '스네이크' 가문의 역사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보면 전작들과 비슷했지만, 여기에 한 가지 특이한 요소가 더 있었다. 본격적으로 초능력자들이 대거 등장한 것이다. 그 종류만 해도 전자기 조작, 곤충 지배, 광합성 등 다양하다.
이 게임에서는 당시에 '네이키드 스네이크'로 불리던 '빅 보스'가 미국 '현인회'의 지시로 변절자 요원이자 스승인 '더 보스'를 제거하러 가게 된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만나는 '더 보스' 협력자와 수하들이 왠지는 모르겠지만 무시무시한 초능력을 활용한다. 일부 캐릭터는 아예 능력의 기원을 설명하길 포기했는지, 그냥 초능력자라고 언급될 정도다.
▲ '볼긴'은 초능력으로 인간 발전기도 될 수 있다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우선 최종 보스로 등장하는 '볼긴'만 해도 불가사의한 초능력을 휘두른다. 선천적으로 초능력이 있었다는데, 일단 몸에 전류가 흐르거니와, 그 전류를 자기 뜻대로 움직여 손에서 뇌전을 뿜고, 전기 방어막을 치며, 일시적으로 공중부양까지 한다. 심지어 마지막 전투에서는 수틀리자 대량의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거대병기 '샤고호드'를 움직이기 위해 스스로 인간 발전기가 되기까지 한다. 자기 몸에서 전기를 뿜어 '샤고호드'에 공급하는 것이다.
'볼긴'만 해도 황당한데, 여기에 충술사도 나온다. 중간 보스인 '더 페인'이라는 초인병사다. 특별한 기생충을 체내에 이식해 벌 떼를 조종할 수 있는 힘을 얻었다는데, 정말로 전투 시 벌을 소환해 싸운다. 무수한 벌 떼로 총알도 방어하고, 벌들에게 독침을 쏘게 지시해 플레이어를 공격하기까지 한다. 조금 당황스럽지만, 어쨌든 게임에서는 상당히 진지하게 나오는 적이다.
▲ 벌 떼를 부리는 '더 페인'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그런가 하면 또 다른 중간 보스 '디 엔드'는 놀랍게도 광합성을 한다. '디 엔드' 본인은 100살이 넘은 노인으로 골골대며 다니지만, 태양광만 받으면 체내에서 광합성으로 에너지를 얻어 활발한 활동이 가능해진다. 게임 내에서도 '디 엔드'는 스태미나가 떨어질 시 태양빛이 잘 드는 곳으로 가 순간적으로 스태미나를 회복하는데, 이 또한 보고 있자면 기가 차는 능력이다.
후속작 '메탈 기어 솔리드 5: 팬텀 페인'에 다다르면 더욱 기이한 능력들이 등장한다. 예를 들어 성대에 기생하고 있다가 특정한 언어만 사용하면 숙주를 죽이는 기생충이라거나, 뭔지는 몰라도 이식하면 재생 능력, 투명화 능력, 장거리 도약 능력, 방어막 능력 등 초능력이 생기는 기생충도 있다. 무슨 의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어느 순간 세계관에 초능력이 만연해진 것이다.
▲ '메탈 기어 솔리드 5'에 떼로 등장하는 초능력 병사들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여기에 정점을 찍은 것이 최근에 나온 '메탈 기어 서바이브'다. 이 작품은 아예 '메탈 기어 솔리드 5: 그라운드 제로' 시점에서 갑자기 웜홀이 발생했고, 거기 빨려 들어간 대원들이 평행세계에서 기괴하게 뒤틀린 좀비 무리로부터 생존해야 하는 내용을 다루었다. 차원이동 좀비물이라니, 초기 '메탈 기어'에 비교하면 확실히 달라진 셈이다.
앞으로도 한치 앞을 예상할 수 없는 프랜차이즈
▲ 차원이동 좀비물이 된 '메탈 기어 서바이브'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이렇듯 '메탈 기어' 시리즈는 시대에 따라 계속 주제와 장르가 바뀌어왔다. 첫 두 작품은 핵으로 무장한 테러리스트 집단을 막기 위한 특수부대의 잠입 활동을, 그리고 그 뒤의 작품들은 그림자 정부에 의해 만들어진 복제인간 집안의 비극적인 연대기를 다루었다. 또한 중간부터는 초능력이 나오기 시작해, 이제는 차원이동 좀비물이 됐다. 냉전과 핵 위기라는 나름 사실적 소재를 다루던 초기 작품들과는 꽤 거리가 멀어진 셈이다.
하물며 '메탈 기어' 시리즈 아버지로 불리는 코지마 히데오도 이제는 코나미를 퇴사한 상황이다. '메탈 기어 솔리드 5: 팬텀 페인'을 마지막으로 '메탈 기어'와 이별한 것이다. 실제로 '메탈 기어 서바이브'는 코지마 히데오 없이 제작된 첫 번째 '메탈 기어'로, 많은 팬이 이 게임이 과연 만족할 만한 작품인지에 대해 의구심을 품고 있는 상황이다.
'메탈 기어' 시리즈는 지금까지 다소의 황당함과 작위성을 감수하면서도, 특유의 뛰어난 연출과 유머 코드로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과연 '메탈 기어'는 앞으로도 황당함과 즐거움 사이의 묘한 균형을 맞출 수 있을까? 조금 더 지켜봐야 할 듯하다. '메탈 기어'는 지금까지 수많은 변화를 거듭해왔고, 계속해서 엽기적이지만 매력적인 재미를 보여줘 왔으니 말이다.
▲ 줄거리를 따라가기는 힘들지만, 그래도 재미는 있다 (사진출처: 위키피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