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기행] ‘프롬뇌’ 없으면 이해 못하는 ‘다크 소울’ 세계관
2018.05.24 17:11게임메카 이새벽
▲ 최근 발매된 ‘다크 소울 리마스터드’ 공식 홍보 이미지 (사진출처: 스팀)
프롬소프트웨어가 개발한 RPG ‘다크소울’ 시리즈는 여러 모로 게임 역사에 큰 획을 그은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 시리즈는 특유의 불친절한 구성과 높은 난이도로 뭇 게이머들의 원성을 자아내면서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익숙해지고 자꾸 도전하게 되는 절묘한 작품성으로 유명하다. 특히 해당 이름을 처음 사용한 ‘다크 소울 1’은 출시된 지 10년이나 된 게임이지만, 그 중독적인 재미 탓인지 최근에는 리마스터까지 나왔을 정도다.
‘다크 소울’에서 난해하지만 갈수록 흥미가 붙는 것은 비단 난이도만이 아니다. 세계관과 스토리 역시 그렇다. 처음에 이 게임의 설정은 도무지 맥락을 알아먹을 수 없을 정도로 황당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하다 보면 세계관을 이해할 수 있는 단서가 보이기 시작하고, 나중에는 아예 이 단서들을 바탕으로 세계관을 나름대로 추론하기에 이른다.
이렇다 보니 ‘다크 소울’ 팬들은 아예 ‘프롬소프트웨어 개발진의 의도를 추론하여 게임 세계관을 이해하는 뇌’라는 의미의 ‘프롬뇌’라는 용어까지 사용할 정도다. 플레이어가 스스로 게임 내 존재하는 단서를 찾고 맥락을 해석하지 않으면, 다시 말해 ‘프롬뇌’를 쓰지 않으면 세계관을 이해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참으로 기묘한 스토리텔링 방식이다.
그렇다면 과연 ‘다크 소울’은 왜 이처럼 특이한 방법으로 세계관과 스토리를 전하는 것일까? 이번‘다크 소울 리마스터’ 출시를 맞아 그 이유를 알아보자.
‘직접 발견하는 재미’를 고집한 프롬소프트웨어
▲ 프롬소프트웨어 공식 로고 (사진출처: 프롬소프트웨어 공식 홈페이지)
‘다크소울’ 세계관에 대해 이야기하기에 앞서, 잠시 이 게임을 만든 이들에 대해서도 간단히 알아보자. 이들에 대해 알아두어야 할 이유는 간단하다. ‘다크소울’의 기이한 세계관은 이 게임을 만든 개발업체, 프롬소프트웨어의 독특한 고집으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1986년 설립된 프롬소프트웨어는 본래 게임 개발업체가 아니었다. 설립 당시 프롬소프트웨어는 사무용 소프트웨어들을 제작했다. 그러다 1994년 이 회사는 전부터 게임에 관심 있던 괴짜 사장 진 나오토시에 의해 돌연 게임 제작으로 사업분야를 수정했다.
▲ 프롬소프트웨어 게임 철학에 큰 영향을 줬다는 ‘위저드리 4’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사실 진은 ‘위저드리’ 같은 고전 RPG 마니아였다. 이전부터 몇 번 ‘위저드리’ 같은 게임을 만들고자 개인적으로 시도했던 적이 있었을 정도다. 다만 당시에는 그처럼 규모 있는 게임을 만들기에는 기술이 부족해 섣불리 도전하지 못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1994년 소니가 플레이스테이션(PS)을 출시하면서 사정이 바뀌었다. 소니는 새로운 콘솔 기기 발매에 맞춰 다양한 타이틀 출시를 위해 기술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는데, 전부터 게임 개발에 관심 있던 진은 이를 기회로 여겼다. 해외 IT 전문매체 클록워크 포럼이 2002년 인터뷰한 내용에 따르면, 당시 프롬소프트웨어 내부에서는 게임 개발로의 전향에 대한 불안감이 상당히 높았다고 한다. 그러나 진은 어떻게든 사원들을 설득했고, 결국 1994년 이 회사는 게임 개발업체로 다시 태어나게 됐다.
▲ 프롬소프트웨어 최초의 작품 ‘킹스 필드’ (사진출처: 프롬소프트웨어 공식 홈페이지)
이처럼 사장 주도로 갑자기 업종을 사무용 소프트웨어에서 게임 개발로 변경하다 보니, 자연 초기 작품에는 사장의 취향이 강하게 반영될 수밖에 없었다. 프롬소프트웨어 첫 번째 타이틀인 ‘킹스 필드’는 ‘위저드리’ 같은 서양 RPG를 좋아하던 진의 취향이 깊게 녹아있는 작품이었다. 이 게임은 왕가의 유물이 잠들어 있는 성전으로 탐사를 떠난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서 모험에 나선 주인공의 이야기를 내용으로, 짜임새 있는 스토리보다는 자유도를 중시한 작품이었다.
‘킹스 필드’는 발매 후 극악한 난이도와 높은 자유도, 그리고 던전의 으스스한 분위기를 실감나게 묘사한 점으로 많은 게이머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여기서 특기할 점은, RPG임에도 스토리와 설정을 하나씩 설명해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킹스 필드’는 플레이어가 직접 던전을 탐사하고, 유물을 발굴하고, 사람들과 만나 대화를 할 때야 비로소 상세한 스토리를 파악할 수 있었다. 따라서, 플레이에 따라서는 대부분의 스토리를 보지 않고도 게임을 끝내는 것 역시 가능했다.
▲ 고전 던전 탐사 RPG 감수성이 물씬 풍기는 ‘킹스 필드’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데몬즈 소울’과 ‘다크 소울’ 디렉터를 맡은 미야자키 히데타가는 훗날 해외 게임전문매체 4Gamer와의 인터뷰에서 ‘킹스 필드’ 제작 당시 ‘위저드리’ 등 ‘옛날 RPG’에서 느낀 재미를 중시했다고 언급했다. 그가 이야기하는 재미는 던전을 탐험할 때의 두근거림, 적을 만났을 때의 공포감, 긴 탐색 끝에 무언가를 발견하는 성취감 같은 요소들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재미들을 느끼기 위해서는 한 가지 조건이 필요했는데, 이는 바로 플레이어 스스로 해낼 때만 얻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킹스 필드’는 2001년 ‘킹스 필드 4’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나오지 않게 됐다. 하지만 ‘킹스 필드’ 같은 게임을 원하는 팬들은 생각보다 많았고, 이에 한동안 로봇 게임 ‘아머드 코어’에 집중하던 프롬소프트웨어도 2009년에 이르러 다시 한 번 ‘킹스 필드’ 감수성을 지닌 RPG를 만들기로 했다. 이렇게 탄생한 작품이 바로 ‘다크 소울’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 전신 ‘데몬즈 소울’이었다.
▲ ‘데몬즈 소울’ 공식 홍보 이미지 (사진출처: 프롬소프트웨어 공식 홈페이지)
‘데몬즈 소울’의 내용을 간단히 설명하면 이렇다. 이 세계에는 무시무시한 ‘짐승’이 있는데, 오랜 세월 동안 봉인되어 있던 그 ‘짐승’이 깨어나며 세상에 저주받은 안개가 퍼지고 악마들이 나타나 문명을 파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짐승’ 봉인을 담당하고 있는 여성이 주인공에게 악마들을 제거하고 ‘짐승’을 봉인하게 도와줄 것을 부탁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데몬즈 소울’은 게임 구성, 진행 방식, 레벨 디자인 등에 있어서는 ‘킹스 필드’와 큰 차이가 있는 게임이었다. 그러나 세계관과 스토리텔링에 있어서 두 게임은 하나의 뿌리를 두고 있었다. 둘 다 큰 재앙으로 문명에 위기가 닥친 다크 판타지 세계관에서, 직접 미지의 유적과 황야를 탐사하며 숨겨진 진실을 플레이어가 직접 찾아내야 했던 것이다.
▲ ‘데몬즈 소울’의 주역인 ‘짐승’ (사진출처: 프롬소프트웨어 공식 홈페이지)
그러나, ‘데몬즈 소울’에서는 정해진 길만 따라가서는 스토리 인과관계를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었다. 알 수 있는 사실이라고는 ‘짐승’이 존재하는 이유 정도가 고작이다. ‘짐승’의 봉인을 푼 이가 어떠한 목적으로 그러한 짓을 벌인 것인지를 비롯해, 많은 스토리가 설명되지 않은 채 남는다. 이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플레이어가 직접 숨겨진 단서들을 모으고, 이를 바탕으로 세계관을 추론해야 했다.
‘킹스 필드’보다 한층 높은 난이도와 불친절한 스토리텔링 탓에 ‘데몬즈 소울’은 발매 첫 주 고작 2만 장을 간신히 팔았을 정도로 처참한 성적을 거두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직접 발견하는 재미’에 빠진 사람들 사이에 입소문이 돌기 시작했고, 특히 유럽에서 전혀 예상 못했던 큰 인기를 얻었다. 그 결과 ‘데몬즈 소울’은 메타크리틱 기준 89점이라는 높은 점수를 달성했다.
▲ 그냥 지나치면 알 수 없는 내용이 하나 둘이 아니다 (사진출처: ‘데몬즈 소울’ 위키)
‘데몬즈 소울’이 당초 기대보다 훨씬 좋은 성적을 거둔 데 자극 받은 프롬소프트웨어는 다시 한 번 비슷한 스타일의 게임을 만들기로 했다. 이 작품은 조작 방식이나 레벨 디자인 등은 물론이고 세계관과 스토리텔링도 한층 더 하드코어하게 다듬은 게임으로 기획됐다. 그렇게 탄생한 ‘데몬즈 소울’의 정신적 후계자가 바로 ‘다크 소울’이다.
‘불사의 저주’에 걸린 주인공, 모든 것이 망각되어가는 세계를 헤매다
▲ 황량한 폐허로 변한 세상을 그린 ‘다크 소울’ (사진출처: 스팀)
‘다크 소울’을 만든 프롬소프트웨어가 고전 RPG ‘위저드리’에서 영감 받아 ‘직접 발견하는 재미’를 추구했다는 점은 앞서 확인했다. 이제 ‘다크 소울’이 어떠한 세계관을 구성하고 있는지 간단히 알아보자.
‘다크 소울’은 스토리텔링이 그리 친절한 게임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제공되는 정보는 이 세계가 빛을 잃고 어둠에 잠기고 있으며, 위대한 자들의 영혼을 태초의 불꽃에 바치지 않으면 모든 것이 끝장나리라는 것뿐이다. 그 외 세부적인 스토리는 플레이어가 스스로 세계 곳곳을 탐험하고, 적과 싸우며, 아이템을 모아 알아가야 한다.
▲ 무채색이던 세상을 지배한 드래곤들 (사진출처: 게임 내 영상 갈무리)
‘다크 소울’ 스토리는 다소 갑작스럽게 시작한다. 세상은 본디 무채색 공간이었으며 지상은 비늘 덮인 불사의 생물인 드래곤이 지배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가 발생하여 최초의 불꽃이 일었고 여기서 빛과 온기, 빛과 어둠이 탄생했다는 것이다.
이 최초의 불에 매료되어 어둠 속에 있던 존재들이 나타났다. 그 중에서도 가장 먼저 나와 불꽃 가까이 간 이들이 셋 있었는데, 이들은 불 속에서 기묘한 힘을 찾아냈다. 이는 일종의 신성한 힘과 같아서, 그들을 신과 같은 존재로 만들어주었다.
▲ 최초의 불에서 찾은 ‘왕의 영혼’에 매료된 ‘이자리스의 마녀’ (사진출처: 게임 내 영상 갈무리)
이들 셋이 ‘다크 소울’의 주요 적으로 등장하는 ‘그윈’, ‘니토’, ‘이자리스의 마녀’라는 존재다. 이들은 훗날 ‘왕의 소울’로 불리는, 최초의 불 속에서 찾아낸 신성한 힘을 바탕으로 이 세상을 자신들이 꿈꾸는 모습으로 다시 빚어내고자 했다. 그리하여 셋은 돌연변이로 태어나 비늘이 없었기에 자기 동족을 증오했던 드래곤 ‘시스’와 손잡고, 드래곤을 거의 멸절해 세상의 패권을 빼앗았다.
▲ ‘왕의 소울’로 얻은 힘으로 드래곤을 죽이는 ‘그윈’ (사진출처: 게임 내 영상 갈무리)
드래곤들로부터 세상을 빼앗은 ‘그윈’, ‘니토’, ‘이자리스의 마녀’, ‘시스’는 이후 ‘불의 시대’로 불리는 부흥기를 이룩했다. ‘왕의 소울’을 지닌 자는 그 힘을 바탕으로 왕국을 건설하고 신으로 군림하며 열등한 인간들을 통치했다. 그 중에서도 특히 ‘그윈’은 ‘왕의 소울’에서 얻은 힘으로 태양의 신이 됐고, 막강한 힘을 지닌 반신 자식들과 함께 ‘아노르 론도’라는 신들의 도시를 건설했다.
인간은 ‘그윈’의 왕국에서 지배 받는 위치에 있었다. 사실 인간은 본디 어둠 속에 기거하던 난쟁이 같은 존재의 후예로 ‘왕의 소울’에서 비롯된 신성한 존재들과는 뿌리부터 다른 종족이었다. 게임에서 일부 인간 같은 외모임에도 불구하고 크기가 매우 큰 존재들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이들이 인간보다 훨씬 크고 강건한 육신을 지닌 ‘그윈’의 후손이기 때문이다.
▲ 화면 중앙의 인간 캐릭터보다 훨씬 크게 묘사된 ‘그윈’의 종복들 (사진출처: ‘다크 소울’ 위키)
하지만 계속 이어질 것만 같던 ‘불의 시대’에도 어둠이 드리웠다. ‘그윈’, ‘니토’, ‘이자리스의 마녀’가 최초의 불에 들어 있던 ‘왕의 소울’을 꺼내 갔기 때문이다. 이에 ‘왕의 소울’로 타오르던 최초의 불은 그 힘을 잃고 사그라지기 시작했고, 세상에는 여러 불길한 징조들이 나타났다. 그 중 가장 심각했던 것이 사람의 정신은 죽고 육신은 이성을 잃은 채 배회하게 되는 불사의 저주였다.
이러한 재앙에 직면한 ‘그윈’은 동료들에게 ‘왕의 소울’을 모아 최초의 불에 반환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이자리스의 마녀’는 이를 거부하고 스스로 최초의 불을 복제하고자 시도했다. 이 시도는 끔찍하게 실패하여 이자리스 왕국을 파멸시키고 ‘이자리스의 마녀’와 그 딸들을 이성 없는 괴물로 변이시키고 말았다. 반면 ‘니토’와 ‘그윈’에게 ‘왕의 소울’을 조금 나누어 받은 ‘시스’는 세상이 어떻게 되든 상관 없다는 태도를 보였다.
▲ 식물과 불꽃이 뒤섞인 기묘한 괴물이 된 ‘이자리스의 마녀’ (사진출처: 게임 내 영상 갈무리)
이에 어쩔 수 없이 ‘그윈’은 자기 몫의 ‘왕의 소울’만이라도 최초의 불에 반환하기로 했다. 스스로 최초의 불 속으로 걸어 들어간 그는 자신을 태워 불길을 되살리는 데 성공했고, 잠시나마 세상에 빛과 생명이 돌아왔다. 그러나 이는 잠시 뿐이었다. ‘그윈’ 소유 ‘왕의 소울’만으로는 최초의 불꽃을 완전히 복원할 수 없었던 것이다. 시간이 흐르자 최초의 불꽃은 다시 작아지기 시작했고, 세상은 다시 비탄과 어둠에 잠겨갔다.
‘다크 소울’은 이처럼 어두운 시대에, 불사의 저주에 걸린 주인공이 모종의 계기를 통해 최초의 불을 되살리는 사명을 짊어지게 되는 이야기를 다루었다. 모종의 사건을 계기로 불사의 저주에 걸린 주인공은 ‘왕의 소울’을 얻기 위해 퇴락한 반신들, ‘이자리스의 마녀’, ‘니토’, ‘시스’를 처치해야 하는 여정에 오르며, 종국에는 세상의 운명을 가를 기로에 서게 된다.
▲ ‘그윈’은 어쩔 수 없이 자기 몫의 ‘왕의 소울’만을 희생한다 (사진출처: 게임 내 영상 갈무리)
이후에 발매된 ‘다크 소울 2’와 ‘다크 소울 3’는 ‘다크 소울’로부터 오랜 세월이 흐른 후 벌어지는 이야기지만, 전체적인 내용은 비슷하다. 모든 ‘왕의 소울’을 모으고도 최초의 불꽃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약해지기 시작한다. 그렇게 불꽃이 약해지면 불사의 저주에 걸린 이가 나타나 위대한 이들의 영혼을 모아 빛을 되찾기 위한 여정에 오른다. 그것이 이 세계의 숙명인 셈이다.
“뛰어난 ‘프롬뇌’에게 상금 드립니다”, 게이머 해석 유도하는 ‘다크소울’ 스토리
▲ 게이머들이 직접 ‘다크 소울’ 세계관과 스토리를 추론한 영상들 (사진출처: 유튜브)
‘다크 소울’은 이처럼 세상이 최초의 불에서 비롯된 빛과 온기에 의해 유지되고, 불꽃이 약해지면 어둠에 물들어간다는 순환적 세계관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기본적 정보 외에는 세계관과 스토리에 대해 이렇다 할 설명이 친절하게 주어지지 않는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다크 소울’ 보스 중 하나인 비늘 없는 백룡 ‘시스’는 게임이 진행 시점에서는 변태적인 인체 실험에 미친 채 어떤 목적을 추구하고 있다. 하지만 메인 스토리만 따라가서는 그가 어떤 동기로 무엇을 추구하는지 명쾌하게 설명되지 않는다.
▲ 비늘 없는 백룡 ‘시스’ 스토리는 게임에서 명확히 설명되지 않는다 (사진출처: 스팀)
그러나 ‘시스’와 관계된 아이템을 얻으면 볼 수 있는 설명문, 그리고 ‘시스’ 던전에서 찾게 되는 기묘한 오브젝트들을 통해 그의 상태를 파악할 수 있다. 드래곤이 불사인 이유는 전신을 뒤덮은 암석 같은 비늘에 있다. 비늘이 있는 한 드래곤은 죽지 않는다. 그러나 돌연변이 ‘시스’는 태생적으로 비늘이 없는 몸이었다. 동족과 달리 죽음을 직면해야 했던 것이다.
이런 단서를 얻었다면, 플레이어는 ‘시스’가 비늘 대신 몸을 뒤덮어 자신을 불사신으로 만들어줄 무언가를 찾기 위해 인체 실험에 몰두했으리라고 추측할 수 있다. 실제로 게임 내에서 ‘시스’는 인공 수정으로 자기 몸을 뒤덮고 있다. 그 외도 플레이어는 고대 기록물과 유적을 통해 과거 흔적을 되짚거나, 이제는 뒤틀리고 변이한 괴물이 된 옛 시대의 생존자들을 통해 세계관을 유추해볼 수 있다.
▲ 자세히 보면 ‘시스’가 인공 수정으로 자기 몸을 뒤덮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진출처: 스팀)
특기할 점은, 이처럼 게임 곳곳에 있는 단서를 모아 세계관을 유추할 수 있는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게임 기획단계에서 철저히 의도된 특징이다. 프롬소프트웨어는 세계관을 해석하는 데 필요한 모든 단서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했다. 덕분에 플레이어는 구구절절한 설명에 의존하지 않고, 직접 게임 세계를 탐험하여 숨겨진 진실을 알아내는 쾌감을 맛볼 수 있다.
이에 팬들 사이에서는 게임 곳곳에 존재하는 단서를 모아 ‘다크 소울’ 세계관을 추론하는 것이 큰 유행이 된 적도 있다. 지금도 유튜브에서는 게이머가 자신이 직접 찾아낸 단서를 바탕으로 ‘다크 소울’ 세계관을 설명하는 영상이 계속 올라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만큼 스스로 세계관 및 스토리를 ‘직접 알아내는 재미’가 성공적으로 정착한 셈이다.
▲ 세계관 해설 공모전 상금으로 1만 달러를 건 반다이남코 (사진출처: ‘다크 소울’ 공식 텀블러)
특이한 점은 개발사와 배급사도 게이머의 세계관 해석을 적극적으로 유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반다이남코는 ‘다크 소울 3’ 발매 당시에 매우 독특한 유저 참여 이벤트를 진행했다. 유튜브 등 비디오 사이트에 ‘다크 소울’ 세계관을 잘 설명한 영상을 올리면, 그 중 우수한 영상을 선정해 1등에게 1만 달러(한화 약 1,000만 원)와 한정판 피규어를 상품으로 지급한 것이다.
이렇듯 ‘다크 소울’ 세계관은 확실히 정해진 설정이 많지 않기에 더욱 큰 인기를 얻었다. 치밀한 설계로 게이머의 상상과 추론이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절묘하게 남겨, 보다 많은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낸 것이다. 프롬소프트웨어가 처음 게임업계에 뛰어들든 이래 계속 고집한 ‘직접 발견하는 재미’가 성과를 거둔 셈이다.
‘소울라이크’ 장르 개척한 ‘다크 소울’, 앞으로도 시리즈 계속 나올까?
▲ 어쩌면 ‘다크 소울 3’이 시리즈 마지막이 될 수도? (사진출처: 스팀)
프롬소프트웨어에 따르면 2009년 발매된 첫 작품 ‘다크 소울’은 2013년까지 4년 동안 전세계에서 총 230만 장이 판매됐으며, 메타크리틱 기준으로도 89점이라는 높은 점수를 기록했다. 뒤를 이어 발매된 ‘다크 소울 2’와 ‘다크 소울 3’는 이를 상회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처럼 연이은 성공 덕에 이제 높은 난이도와 간접적 스토리텔링을 묘미로 내세운 게임은 아예 ‘다크 소울’ 비슷하다는 의미에서 ‘소울라이크’로 불리기까지 한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다크 소울’ 특유의 음울하고 신비한 세계관을 보여줄 작품을 계속 만나볼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대답은 ‘확신할 수 없다’다. ‘다크 소울’ 디렉터에서 프롬소프트웨어 사장으로 올라선 미야자키가, 해외 게임전문매체 GNN과 인터뷰 중 이제 자신이 ‘다크 소울’을 만들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기 때문이다. 그는 더 이상 ‘다크 소울’을 만들지 않는 이유는 새 IP 게임을 제작하고 싶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으며, 이미 개발에 착수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새로운 ‘다크 소울’이 나올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미야자키는 만약 사내에서 누군가 신규 ‘다크 소울’ 프로젝트를 제안하면 거절할 생각은 없다는 뜻을 내비쳤다. 자신이 직접 ‘다크 소울’을 만들지 않는다는 것이지, 완전히 ‘다크 소울’ 시리즈를 종결 짓겠다고 확정하지는 않았다는 이야기다. 다만 그의 발언으로 미루어 볼 때, 당분간 새로운 ‘다크 소울’을 기대하는 것은 조금 힘들 것으로 생각된다.
▲ 2017 ‘더 게임 어워드’에 공개된 프롬소프트웨어 신작 이미지 (사진출처: 생중계 영상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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