섀도 오브 더 툼 레이더, 스토리와 짧은 볼륨이 아쉽다
2018.09.21 13:52게임메카 이재오 기자
▲ '섀도 오브 더 툼 레이더' 공식 트레일러 (영상출처: 게임 공식 유튜브)
보통 3부작을 내세운 영화나 게임의 마지막은 장중하고 우아하기 마련이다. 세 편에 걸친 이야기를 완결한다는 느낌을 주기 위해 서사 측면에서만큼은 완벽에 완벽을 가하기 때문이다. '다크나이트' 3부작이나 '반지의 제왕', '바이오쇼크' 같은 작품들이 그랬다. 수작으로 평가받는 3부작들의 세 번째 작품은 2편보다 뛰어나다고 할 수는 없어도 시리즈를 마무리하는 데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완성도를 자랑했다.
지난 14일 발매된 '섀도 오브 더 툼 레이더'는 '툼 레이더 리부트'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이다. 언젠가는 '툼 레이더'를 소재로 한 다른 작품이 나올 수도 있지만 '라라 크로프트'와 '트리니티' 사이의 암투를 다룬 시리즈는 이번이 확실하게 마지막이다. 당연히 시리즈 세 번째이자 마지막 작품인 만큼 많은 사람들이 멋들어진 끝을 맺어주길 바랐다.
그러나, '새도 오브 더 툼 레이더'는 트릴로지의 끝을 기대만큼 만족스럽게 마무리하지 못했다. 하나하나 떼어놓고 보자면 분명히 재밌는 게임이겠지만, 스토리에서만큼은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했다고밖에 볼 수 없는 아쉬운 완성도였다.
▲ 이번 작품의 분위기를 설명하는 게임 속 한 장면 (사진: 게임메카 촬영)
트리니티와의 마지막 결전
이번 '새도 오브 더 툼 레이더'는 뒤에서 암약하기만 하던 '트리니티'와 라라 크로프트의 전면전을 다루고 있다. 그동안 알려진 바 없던 '트리니티' 수장과 그들의 목적이 드러나면서 이야기를 클라이막스로 끌고 간다. 라라 또한 그 중심에서 줄곧 활약하게 되며 세계를 멸망시킬 심산을 드러낸 그들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게 된다.
본작에서 가장 도드라지는 부분은 역시 라라의 새로운 모습들을 많이 알게 된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이번 작품에서 라라는 자주 미소를 보여준다. 이전까지 플레이어가 볼 수 있었던 라라의 표정은 대부분 울상 섞인 분노와 결심이 느껴지는 표정으로 국한됐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전 작품에서 보여준 라라의 여정은 고난과 고행의 연속이었기 때문에 딱히 웃을 만한 순간이 없었다.
▲ 해맑은 표정으로 유물을 찍고 있는 라라 크로프트 (사진: 게임메카 촬영)
▲ 유적의 비밀을 설명할 때마다 눈이 반짝 거린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그러나 이번에는 라라의 캐릭터 자체가 보다 입체적이고 다변적으로 변모했다. 특히, 고고학자로서의 캐릭터성이 매우 강화돼 멋진 유물을 보고 감탄하는 모습이나 중간중간 새로운 비밀을 알아냈을 때 즐거워하는 모습이 종종 담겨있다. 유물 사진을 찍기 위해 무너지는 동굴에서 탈출하지 않고 버티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이 사람이 내가 알던 여전사가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
고고학자로서의 캐릭터성은 게임 플레이에도 그대로 적용돼 있다. 1편에서는 생존이란 부분이 전면에 내세워져 있었고, 2편은 본의 아니게 전투라는 측면이 강조돼 있었다면, 이번엔 퍼즐에 대한 분량이 대폭 상승했다. 단순히 길을 찾는 걸 넘어서 유적을 이용해 맞추는 퍼즐들이 다수 추가됐다. 퍼즐 수준은 '언차티드'가 연상될 만큼 꽤 높은 편이지만, 플레이어가 별도로 퍼즐 난이도를 조절할 수 있기 때문에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 생각보다 퍼즐 난이도는 어려운 편이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 그래도 힌트를 이용하면 금방 뚝딱 맞출 수 있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저 여자가 우리를 다 죽일 거야!
그렇다고 그동안 라라가 쌓아왔던 전투력이 급감한 것은 절대 아니다. 라라는 이번 작품에서도 여지없이 인간을 초월한 신체 능력과 전투력을 보여준다. 전문 산악인보다 훨씬 뛰어난 암벽 등반 실력과 지칠 줄 모르는 체력은 여전하며 인간 병기에 가까운 살인 기술을 잔뜩 보유하고 있다.
▲ 작정하고 숨으면 도저히 찾을 수 없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그것이 잘 드러나는 부분이 바로 '암살'이다. '암살'이 전작보다 훨씬 강화되면서 주변 지형지물을 이용해 적의 뒤를 급습하면 별도의 장비가 없이도 쉽게 적을 헤치우는 것이 가능해졌다. 그중에서도 위장술의 성능은 압도적이다. 작정하고 숨으면 플레이어도 헷갈릴 정도로 완벽하게 적의 시야에서 사라지는 것이 가능하다. 수시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그때그때 은신하거나 위장할 수 있는 지형을 스캔하는 것이 플레이에 큰 도움이 된다.
이 밖에도 적을 무참히 학살해 상대방에게 공포심을 심는 효과도 생겼으며, 은신에 도움을 주는 다양한 의상을 모을 수도 있다. 자원이 간소화돼 사냥과 생존의 비중이 줄었다는 부분은 호불호가 갈릴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무기 제작이 훨씬 쉬워졌기 때문에 적을 상대하기 위해 준비하는 시간도 그만큼 줄어들어 전투에 대한 부담은 줄고 풀이법은 훨씬 다양해 졌다.
▲ 너희는 내 손에 다 죽을 것이야 (사진: 게임메카 촬영)
▲ 이제는 활도 화살도 금방금방 만들 수 있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아쉬운 스토리 텔링과 떨어지는 몰입감
위에서 상술했듯이 '섀도 오브 더 툼 레이더'는 분명 전작에 비해 혁신적인 측면도 있고, 완성도도 나쁘지 않은 게임이다. 거칠고 험한 여정 속에서 어쩔 수 없이 함몰됐던 라라의 캐릭터성이 부활했다는 점이나, '암살'과 같은 시스템은 분명 새롭게 다가온다. 총기 사운드나 의상 등 세세한 부분에서도 많은 신경을 썼다는 것이 느껴진다. 하지만, 이런 차별점이 게임상에서 부각되지 못한다는 점이 본작 최대 단점이다.
우선 전작들에 비해서 스토리 흡인력이 매우 떨어진다. 무엇보다 게임을 시작하고 몇 분 지나지 않아 최종 보스 정체가 너무 싱겁게 드러난다. 그것도 뭔가 단서를 통해 깨닫는 것이 아니라 무전을 통해 라라 혼자 스스로 이야기하는 수준이다. 이후에 이야기가 흘러가며 몰입감을 만들기 위해 지속적으로 완급 조절을 시도하지만 기본 플롯은 전작과 마찬가지로 라라는 계속해서 구르고 최종 보스는 순탄하게 나쁜 짓을 한다는 구조를 따라간다.
▲ 정작 스토리에서 큰 의미를 차지 하지 않는 재규어 씬은 생각보다 긴 편이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주인공의 밝은 부분만큼 어두운 부분과 그의 고뇌를 담아내고자 했던 부분도 개연성이 떨어진다. 특히, 라라가 자신의 손으로 해일을 일으켜 한 도시를 수몰시킨 후 다른 캐릭터들이 그녀를 비난하는 장면은 전혀 공감이 되질 않는다. 어디까지나 '트리니티'가 시켜서 억지로 저지른 일인 데다가 라라가 아니어도 트리니티가 직접 일으켰을 재앙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리니티 수장과 라라의 친구까지도 앞서서 그의 판단이 잘못됐다고 비난한다. 억지로 라라의 고민을 늘리기 위한 작위적인 연출로 보인다.
▲ 라라의 어린 시절 이야기도 꼭 필요했을까 의문이 든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해당 장면이 아니어도 이번 작품은 유독 라라의 고뇌를 자주 비춰준다. 잡혀간 동료를 구출하기 위해 적을 몰살시킨 후 갑작스레 살생을 후회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트리니티에 의해 상황이 악화되는 순간에도 자신을 탓하며 줄곧 절망한다. 재밌는 건 그러다가도 곧바로 일어나서 가차 없이 적을 베고 다닌다는 점이다. 2편에 걸쳐서 라라와 함께 끊임없이 적을 죽여온 플레이어 입장에서 이토록 급격한 감정 변화는 수용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메인 스토리 분량이 지나치게 적은 것도 단점이다. 사이드 퀘스트와 챌린지 모드를 제외하면 주요 스토리만 클리어하는 데는 7시간에서 8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줄거리가 길지 않다 보니 이번 작품의 주 무대가 되는 '정글'을 제대로 탐험할 시간도 없고, 양질의 퍼즐을 즐길 기회도 적다. 여기에 '암살' 시스템이 더해져서 대규모 전투를 경험할 일도 거의 없어졌다. 물론 챌린지 모드나 사이드 퀘스트를 통해 플레이 타임을 길게 가져갈 수는 있으나, 어찌 됐건 주요 콘텐츠인 메인 줄거리가 부실하며, 그로 인해 많은 장점이 퇴색된다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 주요 무대인 '정글'보다 유적을 돌아다니는 일이 더 많고
▲ 마을을 돌아다니는 시간이 유적보다 더 길 때도 있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이 밖에도 전작과 다르지 않은 게임 진행 양상이나, 좋아졌다고 보기 힘든 그래픽 등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특히, 라라가 등반을 하거나 동굴을 기어오르는 모션 등은 이전보다 퇴보했다고 바도 좋을 만큼 어색하다. 기기 성능이 좋지 못한 경우엔 프레임 저하가 자주 일어날 만큼 최적화가 잘 안 돼 있다는 부분도 플레이 시 몰입감을 헤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한 고생한 라라에게 축복을
'섀도 오브 더 툼 레이더'는 라라의 다채로운 모습과 새로운 액션에 신경 쓰다가 정작 시리즈를 마무리하는 입장에서 더욱 고민했어야 할 스토리를 이상적으로 꾸며내지 못했다. 특히 라라의 지나친 감정 기복과 전체 줄거리 개연성 부족은 '다크나이트 라이즈'의 여운 넘치는 마무리나 '반지의 제왕'처럼 영광스런 엔딩을 꿈꿨던 팬들에겐 아쉬움으로 다가올 것이다.
▲ 이 총기가 익숙하다면 당신은 툼 레이더의 진정한 팬이자 영화 광이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전 작품들을 재밌게 플레이했던 사람들이라면 이번 작품을 즐기는 것에도 큰 불만이 있지는 않을 것이다. 실제로 스토리 자체는 어찌 됐건 깔끔하게 마무리됐으며, 라라도 이제 더 이상 고생할 필요 없이 마음껏 천수를 누릴 수 있는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동안 세 편에 걸쳐서 고생한 라라 크로프트에게 만큼은 박수를 쳐주고 싶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 편에 걸쳐서 고생한 라라에게 박수를 보내자 (사진: 게임메카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