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기행] 반전과 세뇌에 집착한 '블랙 옵스'
2018.10.04 16:27게임메카 이새벽
▲ 시리즈 최초로 캠페인 모드가 빠진 ‘콜 오브 듀티: 블랙 옵스 4’ (사진출처: 액티비전 공식 홈페이지)
올해 4월, 전세계 FPS 게임 커뮤니티가 한바탕 크게 들썩였다. 그 이유는 바로 당시 공개된 ‘콜 오브 듀티: 블랙 옵스 4’ 때문이었다. 압도적 그래픽과 뛰어난 연출로 탄탄한 팬 층을 만들어온 이 시리즈가 돌연 이번 작품에서는 캠페인 모드의 스토리를 감상할 수 없을 거라는 선언을 했던 것이다.
팬들은 크게 분노했다. 아마 기존에 ‘콜 오브 듀티: 블랙 옵스’를 모르던 게이머라면, 당시 이 게임 팬들이 왜 저렇게나 속상해 하는지 이해하기 조금 힘들었을지 모른다. 어차피 요즘엔 캠페인 모드 없는 패키지 게임이 하나 둘도 아니니 말이다. 심지어 ‘폴아웃’ 같은 전통 있는 프랜차이즈들도 캠페인 없는 멀티플레이 전용 게임을 만들겠다고 하지 않던가?
하지만 사실 ‘콜 오브 듀티: 블랙 옵스’ 팬이 화를 내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처음부터 이 시리즈는 ‘세뇌를 통한 반전’이라는, 영화 ‘메멘토’에 밀리터리를 절묘하게 배합한 특유의 어둡고 자극적인 스토리의 캠페인 모드를 핵심 묘미로 시작됐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제 와서 시리즈의 백미인 캠페인을 없앤다는 것은 팬들 입장에서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일인 셈이다.
그렇다면 ‘콜 오브 듀티: 블랙 옵스’는 얼마나 자극적인 캠페인을 보여주었길래 이렇게 열광적인 팬을 거느리고 있고, 캠페인 모드가 빠진다는 소식에 전세계 FPS 커뮤니티가 흔들릴 정도일까? 이번 주에는 세뇌, 개조, 전향으로 점철된 비릿한 반전 묘미를 내세운 ‘콜 오브 듀티: 블랙 옵스’에 대해 간단히 알아보자.
사이드킥에서 메인 플레이어로, 갈등 속에 기회 잡은 트레이아크
▲ 이 모든 ‘콜 오브 듀티’가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는 것은 아니다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2003년 처음 발매된 ‘콜 오브 듀티’는 오늘날까지 시리즈를 이어오며 수많은 팬들을 거느린 인기 프랜차이즈가 됐다. 덕분에 ‘콜 오브 듀티’ 이름을 달고 나온 작품도 다양해, 2018년 10월 기준 총 16개 작품이 있을 정도다. 그런데 싱글 캠페인을 해본 플레이어들은 알겠지만, 사실 이 수많은 ‘콜 오브 듀티’가 모두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콜 오브 듀티’ 프랜차이즈는 세 개발업체가 각기 독자적 라인으로 개발하고 있으며, 그에 따라 세계관도 나뉜다.
처음 ‘콜 오브 듀티’를 만든 ‘원조’ 개발업체는 인피니티 워드였다. 하지만 첫 작품 ‘콜 오브 듀티’가 450만 장 이상 판매량이라는 훌륭한 성적을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모기업인 액티비전과 인피니티 워드 사이의 관계는 거의 앙숙처럼 보일 정도였다. 애초에 인피니티 워드는 2015라는 개발업체 개발자들이 회사 방침에 불만을 품고 퇴사해 세운 것인데, 액티비전과 손잡은 후에도 자신들의 뜻을 고집하는 과정에서 갈등을 빚은 것이었다.
▲ ‘콜 오브 듀티’의 원조, 인피니티 워드의 로고 (사진출처: 인피니티 워드 공식 홈페이지)
2008년 액티비전과 인피니티 워드 사이 관계는 거의 파탄에 이르렀다. 심지어 일부 갈등은 회사 외부에서도 확연히 파악할 수 있을 정도였다. 예를 들어서 인피니티 워드 커뮤니티 매니저였던 로버트 보울링은 2008년 개인 블로그를 통해 액티비전 ‘콜 오브 듀티’ 프랜차이즈 선임 프로듀서 노아 헬렌을 “개발에 참여하는 건 고사하고 제대로 플레이 해본 적도 없는 주제에 (우리가 만든) 게임을 아는 척 한다”며, “제발 이 인간 인터뷰 좀 그만 해달라”고 적기도 했다.
그러던 2010년 3월, 계속 마찰을 빚던 액티비전과 당시 인피니티 워드 중진들이 완전히 갈라서게 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액티비전이 인피니티 워드 공동 설립자이자 중역이었던 제이슨 웨스트와 빈스 잠펠라를 해고한 것이었다. 이유는 계약 위반 및 불이행으로, 두 사람이 사익을 위해서 ‘콜 오브 듀티’에 관계된 액티비전의 자산을 도둑질했다는 것이었다. 액티비전은 웨스트와 잠펠라가 회사를 떠나 EA와 새 계약을 맺을 계획이었다고도 주장했다.
▲ 인피니티 워드 설립부터 해고까지 함께 한 두 사람, 제이슨 웨스트(좌)와 빈스 잠펠라(우) (사진출처: 게임인포머)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웨스트와 잠펠라를 따라서 인피니티 워드 직원 40여명이 집단 퇴사한 것이었다. 웨스트와 잠펠라는 해고된 직후 리스폰 엔터테인먼트라는 새 개발업체를 설립했는데, 인피니티 워드를 떠난 직원 대부분은 이 회사로 들어갔다. 이어서 웨스트와 잠펠라는 ‘콜 오브 듀티: 모던 워페어 2’ 저작권에서 발생한 이익을 분배 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액티비전을 고소했고, 자신들이 제작한 ‘콜 오브 듀티’ 시리즈에 대한 권리를 요구하기까지 했다.
이 소송은 이후 인피니티 워드를 퇴사한 직원 38명이 집단으로 액티비전을 고소하고, 액티비전은 웨스트와 잠펠라가 EA와 공모하여 ‘콜 오브 듀티’ 프랜차이즈를 약화시키기 위한 술수를 썼다고 고소하는 등, 물고 물리는 고소의 연쇄를 거치며 2012년 3월까지 계속됐다. 이 사건은 당사자들 사이 합의에 따라 조용히 마무리됐지만, 액티비전은 그 이후 인피니티 워드에 대한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시행하여 로버트 보울링 등 기존 직원들을 정리했다.
▲ 그렇게 인피니티 워드를 떠난 이들이 EA의 도움으로 세운 회사가 바로 ‘타이탄폴’을 만든 리스폰 엔터테인먼트다 (사진출처: ‘타이탄폴’ 공식 홈페이지)
그런데 막상 인피니티 워드 핵심 개발진이 이탈하자, 액티비전 입장에서는 곤란한 상황이 됐다. 게임 제작 스튜디오는 반파된 상황인데, 그렇다고 ‘콜 오브 듀티’라는 황금 알 낳는 프랜차이즈를 방치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고심하던 액티비전은 이전부터 조금씩 일을 맡겨보던 ‘보조 개발업체’에게 ‘콜 오브 듀티’ 프랜차이즈를 위임했다. 이렇듯 위기의 시기 ‘콜 오브 듀티’를 새로 떠맡게 된 것이 바로 트레이아크였다.
본래 트레이아크는 ‘콜 오브 듀티’ 프랜차이즈의 보조 스튜디오 정도였다. 인피니티 워드가 만든 ‘콜 오브 듀티: 모던 워페어’ 시리즈를 Wii 버전으로 이식하거나, 시리즈 사이사이를 채울 외전 및 확장팩을 제작하는 것이 본 업무였다. 그런데 마침 2008년 출시한 트레이아크 작품 ‘콜 오브 듀티: 월드 앳 워’가 예상을 웃도는 성과를 거두자, 액티비전은 아예 트레이아크를 중심으로 한 새 ‘콜 오브 듀티’ 시리즈를 만들어 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판단을 굳히게 됐다.
▲ 피와 살이 튀는 무자비한 전장을 탁월하게 묘사해낸 ‘콜 오브 듀티: 월드 앳 워’ (사진출처: 트레이아크 공식 홈페이지)
그리고 2010년 11월, 이러한 인피니티 워드의 쇠락을 기회로 삼아 탄생한 트레이아크의 역작이 출시됐다. 바로 ‘콜 오브 듀티: 블랙 옵스’였다.
감금, 세뇌, 전향... 자극적인 소재로 무장한 어둠의 프랜차이즈
▲ 주인공 ‘메이슨’을 세뇌하는 ‘드라고비치’ 일당 (사진출처: 게임 내 영상 갈무리)
작품에 따라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기존에 인피니티 워드가 제작한 ‘콜 오브 듀티’는 대체로 영웅이 전쟁을 일으키는 악당을 사냥하는 무용담을 내용으로 삼았다. 반면 트레이아크의 ‘콜 오브 듀티: 블랙 옵스’는 비밀작전이라는 이름처럼 어둡고 자극적 소재로 점철됐다. 이야기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주인공도 세뇌와 기억 변조를 당해 이용 당하는가 하면, 과거 자신이 저지른 우발적 살인으로 앙심을 사 처참한 최후를 맞기까지 하니 말이다.
‘콜 오브 듀티: 블랙 옵스’ 세계관은 트레이아크가 만든 ‘콜 오브 듀티: 월드 앳 워’에서 이어진다.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했던 ‘콜 오브 듀티: 월드 앳 워’는 전장의 광기와 참상을 적나라하게 묘사해 게이머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긴 했지만, 플롯 자체에서 특이한 점은 없었다. 다만 동료 캐릭터 중 배우 게리 올드만이 성우를 맡은 ‘빅토르 레즈노프’가 특유의 발음과 강단 있는 연기로 인기를 얻었는데, 그 탓인지 ‘콜 오브 듀티: 블랙 옵스’ 스토리도 이 ‘레즈노프’로부터 시작된다.
▲ 단 한 번도 주인공이었던 적이 없지만, 비중은 늘 주인공보다 큰 캐릭터 ‘레즈노프’ (사진출처: 게임 내 영상 갈무리)
‘콜 오브 듀티: 블랙 옵스’ 세계관의 스토리는 이러하다. ‘콜 오브 듀티: 월드 앳 워’ 주인공 캐릭터 ‘디미트리 페트렌코’는 동료 ‘레즈노프’와 함께 전공을 인정받아 전쟁 영웅이 된다. 전쟁 후에도 이들은 상관 ‘니키타 드라고비치’의 지시로 나치 전범을 찾아 숙청을 벌였는데, 그 과정에서 독일 과학자 ‘프리드리히 슈타이너’를 포획하고, 그가 개발한 극악한 화학 병기 ‘노바 6’를 확보하라는 임무를 하달 받게 됐다.
그런데 문제는 사실 ‘드라고비치’가 처음부터 ‘슈타이너’를 제거할 생각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는 ‘슈타이너’와 결탁해 ‘노바 6’를 빼돌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에게 늘 반항적으로 굴던 ‘페트렌코’를 ‘노바 6’ 실험체 삼아 잔인하게 살해해버린다. 이 사건에서 ‘레즈노프’는 동료들의 죽음을 뒤로 한 채 홀로 생존해 귀환할 수 있었지만, 그도 악명높은 정치범 수용소 보르쿠타에 수감되는 신세로 전락하고 만다. 이후 ‘레즈노프’는 보르쿠타에서 복수를 위한 기회를 노리기 시작했다.
▲ 자기도 모르는 사이 이중 세뇌를 당한 주인공 ‘메이슨’ (사진출처: 게임 내 영상 갈무리)
’콜 오브 듀티: 블랙 옵스’는 이러한 사건들로 이미 판이 다 짜인 상태에서 시작된다. 본 게임의 주인공 ‘알렉스 메이슨’은 1961년 냉전기에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를 암살하기 위해 보내진 미국 요원이다. 하지만 암살에 실패하고 생포된 그는 카스트로에 의해 ‘드라고비치’에게 보내지고, 당시 ‘드라고비치’가 극비리에 진행 중이던 세뇌 프로젝트 희생양이 되어버린다. 이들의 목표는 바로 정예 요원 ‘메이슨’을 세뇌해 미국 대통령 존 F. 케네디를 암살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이후 어떤 이유로 보르쿠타로 보내진 ‘메이슨’은 ‘레즈노프’를 만나게 됐는데, 여기서 ‘레즈노프’는 ‘메이슨’이 세뇌된 상태임을 깨닫고 그에게 걸린 암시를 조금 바꾸어놓는다. 암살 대상에 자신의 원수인 ‘드라고비치’와 그 부관인 ‘레프 크라프첸코’, 그리고 ‘슈타이너’를 추가한 것이다. 세뇌가 끝나자 ‘레즈노프’는 수감자들을 선동해서 폭동을 일으키고 그 틈을 타 ‘메이슨’을 탈출시키는 데 성공하지만, 자신은 탈출하지 못하고 체포돼 사살되고 만다.
▲ ‘메이슨’은 환각과 망상 속에서 ‘레즈노프’의 원수를 하나씩 죽이게 된다 (사진출처: 게임 내 영상 갈무리)
그러나 이미 ‘드라고비치’와 ‘레즈노프’ 양쪽에 세뇌를 당한 ‘메이슨’은 정신이 온전치 못한 상태로 전세계를 누비며 활동을 시작하는데, 사실 게임이 시작하는 시점에서 그는 이미 스스로 깨닫지 못한 사이 케네디와 ‘슈타이너’까지 죽여버린 상황이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 ‘레즈노프’의 환영을 만들어내 그가 실제 사람인 것처럼 대하고, 친구 ‘레즈노프’가 자신이 말릴 틈도 없이 원수들을 죽인 것으로 믿고 있었다.
게임은 이처럼 세뇌로 인한 환각과 망상에 시달리는 ‘메이슨’이 CIA의 추적을 받으며 진행되고, 끝에는 모든 사건의 원흉 ‘드라고비치’를 잡으러 가기 직전에야 모든 사실을 깨닫게 된다. 여기서 재미있는 점은 사실 플레이어도 이 시점 전까지 플레이 전반이 ‘메이슨’의 망상이었다는 것을 알아채기 힘들다는 것이다. 중간에 계속 복선이 깔리기는 하지만, 워낙 ‘레즈노프’의 존재가 사실처럼 묘사되기에 차마 망상이라고 치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 세뇌 외에도 상당히 잔인한 묘사가 적나라하게 연출된 ‘콜 오브 듀티: 블랙 옵스’ (사진출처: 게임 내 영상 갈무리)
이렇듯 캠페인 내내 주인공과 함께 활약한 동료 ‘레즈노프’가 실은 일찌감치 죽었고, 모든 플레이 내용이 허구였다는 내용은 게임 내 캐릭터만 아니라 게이머에게도 상당한 반전의 충격을 주었다. 지금까지 이입해 있던 주인공 ‘메이슨’이 실은 섬뜩할 정도로 정신이 조작된 사람이며, 친구라고 믿었던 사람에게 이용 당해 복수를 위한 살인기계처럼 쓰이고 있었던 실정이니 말이다. 당시 ‘콜 오브 듀티: 블랙 옵스’의 파격적인 스토리는 수많은 매체들의 찬사를 자아냈다.
세뇌와 반전에 집착한 ‘콜 오브 듀티: 블랙 옵스 3’, 캠페인에 적신호 들어오다
▲ 게임 내용이 전부 상상이었다는 엔딩으로 끝나버린 ‘콜 오브 듀티: 블랙 옵스 3’ (사진출처: 액티비전 공식 홈페이지)
과거 인피니티 워드의 그림자 아래 2군 취급을 받던 트레이아크는 ‘콜 오브 듀티: 블랙 옵스’로 단번에 당당한 ‘콜 오브 듀티’ 프랜차이즈 계승자로 인정받았다. 이에 트레이아크는 2012년 다시 한 번 ‘블랙 옵스’ 세계관을 이은 ‘콜 오브 듀티: 블랙 옵스 2’를 출시했는데, 이 작품 역시 전작 못지 않은 충격적인 스토리와 연출로 화제가 됐다. 악당의 계략으로 전작 주인공과 동료들이 무차별적으로 죽어나가는 데다,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 누가 죽고 살지 결정됐기 때문이다.
‘콜 오브 듀티: 블랙 옵스 2’는 전작에 이어서 여전히 냉전이 계속되는 중인 1980년대와, 가까운 미래인 2025년을 번갈아 가며 진행됐다. 이번 작품의 주인공 ‘데이비드 메이슨’은 전작 주인공인 ‘알렉스 메이슨’의 아들이다. 그는 게임 중 아버지와 악연이 있는 무정부주의자 테러리스트 ‘라울 메넨데즈’를 쫓으며, 그 과정에서 자신이 잊고 있었던 아버지의 운명에 대해서 기억해내게 된다. 마지막에 그는 복수를 택할지, 혹은 대의를 쫓을지를 두고 선택의 기로에 선다.
▲ ‘콜 오브 듀티: 블랙 옵스 2’ 스토리는 나름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순간은 있었지만, 전체 완성도는 전작에 못 미친다는 평가가 주를 이루었다 (사진출처: 게임 내 영상 갈무리)
그러나 ‘콜 오브 듀티: 블랙 옵스 2’는 전작만큼 게이머를 경악하게 하는 반전의 묘미는 갖추지 못했다. 그 탓일까? 메타크리틱 기준으로도 PC 버전 ‘콜 오브 듀티: 블랙 옵스 2’는 전작에 비해 크게 낮은 성적인 74점을 기록했다. 최적화와 멀티플레이는 전작보다 크게 개선됐다는 점은 모두 동의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문제는 캠페인이었다. 헐리우드 스타일로 잘 정제된 흥미진진한 연출은 보여주었지만, 스토리 자체는 다소 단순하고 작위적으로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이처럼 아쉬운 점이야 있었지만, 어쨌든 ‘콜 오브 듀티: 블랙 옵스 2’는 전작 분위기와 캐릭터를 충실히 계승한 작품이었다. 문제는 그 뒤를 이어 2015년 발매된 ‘콜 오브 듀티: 블랙 옵스 3’에서 시작됐다. 더 흥미진진하고 놀라운 스토리를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이 있었기 때문인지, 지나치게 급진적인 설정을 전개한 것이다. ‘콜 오브 듀티: 블랙 옵스 3’는 전작 인물들이 한 명도 등장하지 않는 것은 물론, 아예 플레이 내용이 ‘사실 죽기 직전 주마등인 망상’이라고 설정한 것이다.
▲ ‘콜 오브 듀티: 블랙 옵스 3’ 주인공은 시작하자마자 사지가 몸과 작별하는 위기에 놓인다 (사진출처: 게임 내 영상 갈무리)
‘콜 오브 듀티: 블랙 옵스 3’는 전작 주인공 ‘데이비드 메이슨’이 ‘메넨데즈’를 죽인 데서 비롯된 사건들이 나비 효과를 일으키며 국제정세를 뒤흔들어놓은 2070년 미래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그 변화가 구체적으로 어떤 과정으로 진행됐고, 전작 캐릭터들이 어떠한 역할을 했는지는 언급되지 않는다. 따지고 보면 세계관을 공유한다 뿐이지 기존 ‘콜 오브 듀티: 블랙 옵스’와 스토리 자체가 단절된 별개 작품이다.
‘콜 오브 듀티: 블랙 옵스 3’ 주인공은 비밀임무를 맡은 특수부대 요원으로 시작하나, 첫 임무에서 큰 사고를 당하게 된다. 혼자 고립된 상태에서 로봇의 공격을 받아 사지가 뜯기는 부상을 입고 만다. 이후 주인공은 뒤늦게 도착한 구조대 덕에 간신히 목숨을 건지지만 불구가 되고, 어쩔 수 없이 사이보그 개조 시술을 받는다. 이 시술이 완료되면 주인공은 강화된 기계 신체는 물론이요, 영화 ‘매트릭스’처럼 의식을 가상공간으로 보내거나, 생각만으로 기계를 해킹할 수 있었다.
▲ 원래대로라면 이 직접 신경 인터페이스가 제대로 이식돼 사이보그 특공대가 됐어야 했지만… (사진출처: 게임 내 영상 갈무리)
문제는 사이보그 개조 시술 핵심이 뇌와 기계를 직접 연결하는 ‘직접 신경 인터페이스’라는 장치 이식에 있다는 점이었다. 이 인터페이스는 일단 숙달되고 나면 다양한 종류의 사이버네틱스를 제 몸처럼 사용할 수 있게 해주지만, 몸에서 거부반응을 일으키며 의식을 잃고 사망할 수도 있었다. 이에 주인공은 초반에 ‘존 테일러’라는 선임 요원의 도움으로 ‘직접 신경 인터페이스’ 사용방법을 차근차근 숙달하게 된다.
이후 ‘직접 신경 인터페이스’에 숙달된 주인공은, 이 인터페이스를 매개로 인간 정신을 지배하는 인공지능 바이러스 ‘까마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투입된다. 플레이는 ‘까마귀’가 동료를 하나씩 감염시키고 세뇌해 미치게 만드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주인공이 직접 동료를 하나씩 사살하며 사건의 핵심으로 다가가는 과정을 담았다. 만약 여기에서 끝났다면 썩 나쁘지 않은 사이버펑크풍 시나리오로 정리될 수 있었을 것이다.
▲ 모든 게 다 남의 기억을 바탕으로 한 상상이었다..? (사진출처: 게임 내 영상 갈무리)
그런데 플레이 막바지에 돌연 위 내용이 모두 허구였음이 드러난다. 사실 주인공은 플레이 초반 ‘직접 신경 인터페이스’ 시술 과정 중 예상치 못한 거부반응이 발생해 사망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플레이 내용은 훈련을 돕기 위해 가상공간에서 접촉한 적이 있는 ‘테일러’의 전산화된 기억이 알 수 없는 이유로 재구성돼 재생된 것이었다. 보다 쉽게 말하면, 죽기 직전 찰나의 시간 동안 기기 고장으로 남의 기억이 주마등처럼 보인 셈이다.
이 무슨 ‘깨고 나니 꿈’ 같은 스토리인가 싶지만, 어쨌거나 ‘콜 오브 듀티: 블랙 옵스 3’ 캠페인은 이처럼 허망하게 끝났다. 엔딩이 큰 논란이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혹자는 기계와 인간이 구분될 수 없어진 세계에서 자유의지를 다룬 철학적인 스토리라고 치켜세웠으나, 대부분은 비판적 평가를 보였다. 세뇌라는 소재를 통한 반전에 집착했고, 플레이어가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여지나 입체적인 캐릭터를 보여주는 데는 실패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싱글 캠페인 없앴습니다’
▲ ‘콜 오브 듀티: 블랙 옵스 4’는 과연 어떤 새로운 방식의 스토리텔링을 보여줄까? (사진출처: 액티비전 공식 홈페이지)
이렇듯 ‘콜 오브 듀티: 블랙 옵스 3’은 전작들과의 단절, 흥미로운 주제와 소재를 갖고도 ‘세뇌를 통한 반전’에 집착한 탓에 빈약해진 스토리텔링 등으로 문제가 됐다. 차기작을 만들어야 할 트레이아크 측은 더욱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많은 게이머들은 트레이아크가 더욱 깊은 고민 끝에 한층 개선된 캠페인 모드를 보여줄 거라고 기대했지만, 2018년 4월 정식 공개된 ‘콜 오브 듀티: 블랙 옵스 4’는 예상 외의 강수를 두고 나왔다. 아예 캠페인 모드를 지원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콜 오브 듀티’ 프랜차이즈를 관리하는 책임자 롭 코스티치는 단지 ‘전통적인 캠페인 모드가 없을 뿐’이라며, ‘다른 방식으로 스토리와 내러티브를 전달할 것’이라고 전했다. 영화처럼 스토리를 보여주는 캠페인 모드를 제거했을 뿐 게임 자체의 스토리는 있으며, 다른 모드를 통해 보여줄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다만 게임 내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스토리가 어떻게 제공될 지는 아직 설명한 바가 없다.
트레이아크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해 온 개발사다.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보조 개발업체에서 돌연 ‘콜 오브 듀티: 월드 앳 워’와 ‘콜 오브 듀티: 블랙 옵스’라는 대작을 터뜨리며 지금의 자리에 올랐고, 여러 번 파격적인 스토리와 연출로 싱글 캠페인의 아성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런 트레이아크의 캠페인 모드 포기가 과연 어떤 반전으로 이어질지 궁금하다. 과연 ‘캠페인 모드 없이도 충분히 재미있는 스토리텔링을 보여줄 수 있다’는 반전일까, 아니면 ‘그냥 스토리는 포기했다’는 반전일까?
시리즈 최초로 캠페인 모드를 없앤 ‘콜 오브 듀티: 블랙 옵스 4’는 오는 10월 12일에 출시된다. 과연 트레이아크가 어떤 반전을 보여줄지 기대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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