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검 버리고 갑옷과 투구로 무장한 '어크 오디세이', 탄탄하다
2018.10.10 17:41게임메카 김헌상 기자
▲ 오픈월드 RPG로 거듭난 '어쌔신 크리드: 오디세이'
유비소프트를 대표하는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는 지난 2017년부터 ‘정체성을 잃었다’는 지적을 받았다. 게임 완성도는 좋았지만, 칼과 방패로 무장한 주인공 ‘바예크’가 암살자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지적은 10월 5일 발매된 최신작 ‘어쌔신 크리드: 오디세이’에서도 이어졌다. 특히 이번 작 주인공은 대대로 암살자의 상징이나 다름없던 암살검조차 없고, 복장도 평범한 투구와 갑옷이라는 점에 실망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어쌔신 크리드: 오디세이’ 해외 평가는 나쁘지 않다. 역대 시리즈 중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꼽히는 ‘어쌔신 크리드 2’에 필적하는 수준이다. 그 이유는 실제로 게임을 해보면 느낄 수 있다. ‘어쌔신 크리드: 오디세이’는 그간 이어졌던 시리즈 정체성을 잃은 것이 아니라, 새로운 정체성을 확립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오픈월드 RPG로서 높은 완성도를 자랑하기 때문이다.
고증 ‘덕후’ 유비소프트가 그리스로 초대한다
‘어쌔신 크리드: 오디세이’는 기원전 431년, 스파르타와 아테네 간 전쟁이 한창 벌어지고 있는 고대 그리스를 배경으로 한다. 플레이어는 남주인공 알렉시오스, 여주인공 카산드라 중 한 명을 선택해 용병으로서 역사에 개입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어쌔신 크리드’를 관통하는 고대 유물 ‘에덴의 조각’과 고대 종족 ‘이수’ 정체를 파헤치고, 세계를 정복하려는 코스모스 교단의 음모를 저지하기 위해 나선다.
▲ 펠로폰네소스 전쟁에도 개입하고 (사진: 게임메카 촬영)
▲ 신비한 고대 문명도 조사하자 (사진: 게임메카 촬영)
역사 교재로 쓰여도 손색이 없는 고증 수준을 보이는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 전통은 이번 작에서도 이어진다. 게임이 시작되는 케팔로니아 섬부터 메가리스, 코린토스, 아티카 등 고대 그리스 지역이 광활한 오픈월드로 구현되었다. 특히 각종 지형을 자유로이 오갈 수 있기 때문에 거대한 조각상과 으리으리한 신전, 깎아지르는 절벽과 울창한 숲까지 속속들이 탐방하는 것이 가능하다. 시리즈 특유의 ‘동기화’를 위해 높은 곳에 올라가 발 아래에 펼쳐 진 세계를 구경하는 즐거움은 이번에도 건재하다. 사진 모드로 풍경화 못지 않은 스크린샷을 남기는 유저도 많다.
▲ 바라만 봐도 장관인 고대 그리스 (사진: 게임메카 촬영)
▲ 아무렇게나 봐도 진풍경 (사진: 게임메카 촬영)
▲ 다른 플레이어의 스크린샷을 보는 재미도 쏠쏠 (사진: 게임메카 촬영)
고증을 향한 유비소프트 집착은 스토리에도 영향을 미쳤다. 게임을 진행하면서 발생하는 여러 사건에 그리스의 실제 위인이 개입하는 것이다. 역사서를 집필한 헤로도토스는 플레이어의 여정에 합류해 각종 역사적인 설명을 더한다. 아테네에서 만나는 철학의 대가 소크라테스는 ‘정치가의 기술이 시민에게 도움이 되느냐’를 주제로 골치 아픈 토론을 벌인다. 이 밖에도 게임을 진행하면서 ‘이 사람도 실제 인물이었어?’라고 놀라기도 했다. 정치가 페리클레스는 알았지만, 연인 아스파시아가 실제로 존재했다는 것은 ‘어쌔신 크리드: 오디세이’를 해보면서 알게 됐다.
▲ 소크라테스와의 논쟁은 여전하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또한, 고대 그리스에 기대할 법한 신화적 존재도 빠짐없이 등장한다. 헤라클레스가 사냥했다고 하는 네메아의 사자나 테세우스가 물리친 미노타우르스도 존재한다. 정확히 어디서 등장하는지, 정체가 무엇인지 등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언급하지는 않겠지만, 플레이어가 그리스에 기대할 법한 요소는 전부 갖추고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대장군 크리드? 진정한 암살자로 거듭날 수 있다
‘어쌔신 크리드: 오디세이’가 RPG로서의 완성도를 높인 부분은 캐릭터 육성이 한 몫을 차지한다. 레벨을 올리고 다양한 특수 능력을 개방한다는 구조는 전작과 동일하지만, 스킬 트리부터 장비까지 분화되며 플레이어가 원하는 방식으로 게임을 진행할 수 있도록 선택의 폭을 넓힌 것이다.
▲ '대장군 크리드'라고? 암살도 대폭 강화 (사진: 게임메카 촬영)
▲ 활 기술도 다양하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어쌔신 크리드: 오디세이’에서 스킬은 근접전에 특화된 전사, 원거리 사격을 강화하는 사냥꾼, 그리고 암살과 기습에 능한 암살자 3가지 트리로 나뉜다. 자신이 원하는 플레이 스타일에 맞춰 스킬을 익힐 수 있다. 특히 액티브 스킬 갯수가 늘어나며 액션을 다채롭게 펼칠 수 있다. 전사 스킬 트리에서는 영화 300에서 영감을 얻은 듯한 스파르타 발차기나 돌진 공격을 익힐 수 있고, 사냥꾼에서는 멀리 떨어진 대상을 확대해 약점을 노릴 수 있다. 암살자 트리에서는 잠시 적들에게서 모습을 감추는 등 변칙적인 테크닉을 구사할 수 있다.
▲ 전설템 파밍하러 가세 (사진: 게임메카 촬영)
여기에 장비를 어떻게 세팅하느냐도 커스터마이징의 여지가 있다. 각 장비마다 전사, 사냥꾼, 암살자 피해량 수치가 달리 설정되어 있다. 여기에 전설 등급까지 되면 특별한 능력이나 세트 효과가 부여되어 있다.
이러한 스킬과 장비를 마음에 드는 대로 조합해서 다양한 전투 콘텐츠에 도전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게임 발매 전부터 ‘이번 작 주인공은 암살자가 아닌 전사’라는 볼멘소리가 나왔지만, 실제로 플레이어가 원한다면 적 요새를 암살 기술 만으로 정리하는 것이 가능할 정도로 암살 비중도 높아졌다. 이렇게 다변화된 플레이 스타일은 전투에 생동감을 불어 넣는다. 암살만으로 도적 캠프를 정리했을 때는 진정한 암살자가 된 것 같아 뿌듯했고, 말을 타고 가다 우연찮게 싸움에 휘말려 익숙지 않은 전면전으로 수많은 적을 물리쳐야 하기도 했다. 보험 차원으로 생명력 회복 스킬을 찍어 두지 않았다면 아마 게임 오버 화면을 봤을 것이다.
▲ 암살 만으로도 적 캠프를 정리할 수 있다 (영상: 게임메카 촬영)
▲ 게임을 진행하다 보면 다양한 능력을 활용할 기회가 생긴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의미 없는 수집은 그만, 전투로 채운 콘텐츠
‘어쌔신 크리드: 오디세이’가 기존 시리즈와 다르다는 느낌을 받은 이유는 한 가지 더 있다. 기존 ‘어쌔신 크리드’, 나아가 유비소프트 게임 대부분에 적용된 자질구레한 수집 요소를 거의 들어내고, 대부분의 콘텐츠를 흥미진진한 전투로 꽉꽉 채웠다는 점이다.
게임 속 세계에는 도적 야영지나 적대적인 병사들이 가득한 요새가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각 요새에는 전작과 마찬가지로 지휘관 처치나 보물 수집 등의 ‘구역 목표’가 있다. 앞서 말했듯 액션의 폭이 넓어진 만큼, 해당 요새를 어떻게 공략할지 작전을 짜는 과정이 더욱 다양하다. 독수리 이카루스의 눈을 통해 미리 적의 배치를 파악하고, 빈틈을 찌르며 우위를 점했을 때의 성취감은 높았다.
▲ 퀘스트 목표와 적의 배치를 파악한 뒤 공격 (사진: 게임메카 촬영)
여기에 곳곳에 정체를 숨기고 있는 교단원의 정체를 파헤치고 암살한다거나, 바다 위에서 벌이는 해상전, 나쁜 짓을 했을 때 플레이어를 추적하는 용병까지. 플레이어 도전 욕구를 자극하는 전투 콘텐츠가 가득하다. 또한, 이 모든 콘텐츠를 통해 강력한 무기나 방어구를 주기 때문에 보상도 확실하다. 이전 ‘어쌔신 크리드’처럼 할 일이 정말 많은데, 지겹고 귀찮게 느껴지지 않았을 정도다.
▲ 충각 돌격 쾌감 짜릿한 해상전 (사진: 게임메카 촬영)
아직 2% 부족한 자유도
‘어쌔신 크리드: 오디세이’가 오픈월드 RPG로 거듭나기 위해 마지막으로 준비한 요소가 바로 ‘선택의 중요성’이다. 이전 시리즈가 일직선으로 이야기가 이어진다면, 이번에는 퀘스트 도중에 다양한 대화가 발생하고, 어떤 대답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NPC 반응이나 스토리의 흐름이 달라진다. 이를 통해 주인공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플레이어가 직접 게임 속 세계에 몰입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목표.
▲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이야기가 바뀐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이러한 의도는 어느 정도 맞아 떨어진다. 예를 들어 케팔로니아에서 역병에 걸린 가족을 죽일지 살릴지 결정할 수 있는데, 어떤 선택을 내리느냐에 따라 지역의 미래가 확 달라진다. 말로 해결할 수 있는 상황에서 대답을 잘못 고르면 병사들이 몰려와 불필요한 전투를 벌이기도 한다. 플레이어가 어떤 행동을 하느냐에 따라 주변 세계가 시시각각 변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짤막한 대화도 어떤 선택을 할 지 고민하고, 또, 어떻게 이야기가 변화할지 기대감을 품게 만들었다.
▲ 잘만 고르면 전투 없이 해결도 가능 (사진: 게임메카 촬영)
하지만 자유도가 높다고 보기에는 어렵다. 일단 완전히 자유로운 선택은 가능하지 않다. 기본적으로 실제 역사를 바탕으로 하고 있어 위인은 살해할 수 없게끔 설정되어 있다. 즉, ‘악법도 법이다’를 외치며 죽은 소크라테스를 만나자마자 창으로 찌를 수 없다는 것이다.
아테네와 스파르타 사이에서 벌어진 펠로폰네소스 전쟁에 개입하는 방식도 다소 의아하다. 게임 발매 전에는 두 세력 중 하나를 택해 편을 들어 주는 줄 알았지만, 실제로는 마주친 세력을 무조건 무찔러야 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플레이어가 아무리 아테네 편을 들고 싶어도, 아테네 점령지의 지역 목표를 클리어하려면 군수품을 불태워야 한다. 반대로 스파르타의 편을 들어 주는 것이 강제되는 메가리스 지역에서는 장군이 보는 앞에서 스파르타 병사를 전부 죽여도 별 다른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어느 세력에도 속하지 않은 용병이니 양쪽을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잘못은 아니지만, ‘어쌔신 크리드: 오디세이’가 강조한 ‘역할놀이’라는 측면에서는 아쉬움이 남는 것이 사실이다.
▲ 눈앞에서 스파르타 병사를 모두 죽였지만 스토리 진행은 그대로 (사진: 게임메카 촬영)
오픈월드 RPG 새 시대를 열었다
‘어쌔신 크리드: 오리진’이 가능성을 모색하는 수준에 그쳤다면, 이번 ‘어쌔신 크리드: 오디세이’는 완전한 오픈월드 RPG로 탈바꿈하는데 성공했다. 특히 ‘어쌔신 크리드’가 지닌 ‘대체 역사물’이라는 특징은 그대로 유지하고, 오픈월드 RPG에 기대할 법한 콘텐츠를 알차게 담았다. 고대 그리스를 달리며 다양한 임무를 수행하고, 나만의 캐릭터를 육성하는 과정은 충분히 즐거웠다.
사실 ‘어쌔신 크리드’는 어느 순간부터 다소 ‘뻔한 게임’이라고 생각했다. 수집물로 가득한 맵, 그리고 언제나와 같은 액션이 그대로 담길 것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이번 ‘어쌔신 크리드: 오디세이’는 간만에 초반부터 푹 빠질 수 있는 작품이었다. 그리고 앞으로 ‘어쌔신 크리드’가 보여 줄 오픈월드 RPG 세계가 어떤 모습이 될 지, 또 다시 기대하게 만들었다.
▲ 다음 '어쌔신 크리드'도 기대된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