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고사보다 공부할 건 많지만 재미는 확실한 '컨트롤'
2019.09.05 18:57게임메카 이재오 기자
세계에 나타나는 괴물이나 변칙적인 물체, 인물들을 확보 및 격리하는 비밀 조직 'SCP 재단'에 대해 들어본 적 있는가? 사람들 사이에서 전해 내려오던 각종 괴담이나 전설 등이 사실 실체가 있고, 이들이 현실에서 나쁜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격리, 보호하는 역할을 자처하는 비밀 시설이다. 물론 실제로 존재하는 기관이 아닌 가상의 비밀 조직으로, 네티즌들이 기괴한 그림이나 사진에 설정을 더해가며 즐기던 놀이가 하나의 그럴싸한 세계관으로 확장된 것이다.
지난 8월 28일에 출시된 '컨트롤'은 이 SCP재단의 세계관과 이야기를 그대로 현실화시킨 게임이다. 각종 도시괴담을 한 데 모아 놓고 숨겨진 설정, 요소, 아이템 들을 찾아내며 놀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물론 미싱 링크나 블록 처리된 문서를 상상력으로 채워 나가며 읽는 것에 익숙치 않은 유저에게는 그저 불친절한 게임으로 다가올 수 있다. 하지만, 그만큼 한 번 게임에 몰입하면 여러 번 반복해서 플레이 할 수 있게 만드는 매력이 충만한 작품이다.
대놓고 불친절하고 너무나 난해한 게임
'컨트롤'은 '앨런 웨이크', '퀀텀 브레이크' 등을 제작한 레메디의 신작으로, 주인공 '제시 페이든'이 어릴 때 연방통제국이라는 비밀 조직에 의해 격리 당한 동생을 찾기 위해 시설 이곳저곳을 탐색하는 게임이다. 유저는 특정한 무기의 선택을 받아 연방통제국의 국장이 된 주인공이 되어, 염력, 부유 능력, 정신 지배 등의 초능력을 사용해 적들을 피해 동생이 갇혀 있는 올디스트 하우스를 돌아다니게 된다.
기본적인 게임 진행은 일반적인 액션 어드벤처 장르의 작법을 답습한다. 전용 무기를 업그레이드 하고 새로운 적을 죽이거나 미션을 클리어해 얻은 자원을 이용해 새로운 능력을 개방할 수 있으며, 정해진 레벨 디자인에 따라서 게임을 진행하게 된다. 중간에 특정 물건을 찾거나 인물을 구하는 등의 각종 서브퀘스트를 클리어 하면 추가 경험치와 자원을 수급할 수 있으며, 시간 안에 클리어 해야 하는 돌발 퀘스트가 등장하는 식이다.
이 게임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부분은 타 게임과는 차원이 다른 불친절함과 난해한 스토리텔링이다. 변성 아이템, 변성 사건, 아스트랄 플레인, 힘이 깃든 물체, 핫라인 등 도통 이해할 수 없는 용어가 설명도 없이 휙휙 튀어나오는 데다가, 게임의 배경이 되는 '올디스트 하우스'는 스스로 변화한다는 설정답게 같은 장소라도 자기도 모르는 새 기묘하게 변해 있다. 배경 설정 및 상황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는 각종 수집 아이템들에는 '데이터 말소'나 곳곳에 블록 처리된 글자들이 많아 알아볼 수가 없다.
심지어 게임이 진행되는 시점 또한 우연찮게 건물에 들어와 이유도 모른 채 국장이 되어 버리는 '제시'에서 시작된다. 그러다 보니 NPC들은 유저를 국장님이라 부르며 이런저런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부르짖는데, 정작 유저는 그게 뭐가 문제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이 계속된다. 진짜 작정하고 파악이 힘들도록 만들었다는 인상마저 주는 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빠져들게 만드는 살풍경한 분위기
여기서 게임을 접는다면, 컨트롤은 그저 불편하고 난해한 게임으로 보일 것이다. 하지만 이 게임의 진가는 바로 분위기에 있다. 게임을 플레이하다 보면 공포게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사람을 소름돋게 하는 상황과 요소들이 곳곳에 넘쳐난다. 기묘한 음악이 들린다거나 이상한 빛깔과 함께 갑자기 공간이 뒤틀리는 등의 요소부터 몸이 꺾인채 공중에 떠있는 사람들까지. 사람을 놀라게 하는 점프스퀘어는 없지만 그 밖의 여러 장치로 도시 스릴러의 느낌을 잘 조성한 셈이다. 심지어는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에서조차 뭔가 숨기고 있는 듯한 직원들도 기묘한 느낌을 연출한다.
비주얼과 사운드가 분위기를 연출했다면, 분위기에 빠져들게 만드는 것은 게임 곳곳에 있는 수집품이다. 유저가 수집할 수 있는 것은 각종 사건이나 변성 아이템과 관련된 설명이 적힌 문서와 음성파일, 다른 차원의 존재(그 중에는 사후 세계도 있는 듯 하다)와 소통할 수 잇는 핫라인 등이 있다. 이 밖에도 연구소를 잠식하고 있는 곰팡이나, 게임 내 중요한 역할을 하는 흑암석 등도 중요한 수집품이다.
이런 문서나 음성 파일은 한 번에 이해할 수 없게 구성돼 있다. 문장 중간에 빈 칸이 들어가 있거나, 데이터 말소 같은 명목으로 정확한 설명이 안 돼있는 경우가 많다. 음성파일의 경우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청취자가 횡설수설 사연을 이야기하는 형식이거나, 연구원이 상황을 보고하던 중 사고가 터져 끝나는 식이다. 혹은 그저 어느 한 구석에 전시되어 있고, 아무 설명도 없는 경우도 있다. 이는 특히 SCP재단에서 궁금증과 흥미를 유발하기 위해 자주 사용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 문서를 하나하나 모아서 차근차근 읽어가다 보면 게임의 각종 설정 들이 의외로 우리에게 익숙한 이야기에서 가져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를테면 우는 천사에서 모티브를 얻어 눈을 떼면 사람을 공격하는 물체라던가, 스티븐 킹의 단편소설 '1408'에 등장하는 자살을 부르는 호텔, 살아 움직이는 오리 인형 등 실제로 존재할 법 한, 혹은 현실에서 괴담으로 존재하는 이야기들이 궁금증을 유발하는 형식으로 게임에 총망라돼 있다. 심지어는 '틀고 자면 죽는 선풍기'괴담도 한국의 변성 물체로 등록돼 있을 만큼 다루고 있는 괴담 스펙트럼이 넓은 편이다.
이 숨겨진 문서들을 직접 찾아내고 읽어가다 보면 저절로 게임의 세계관에 빠져들게 된다. 중간중간 누락된 빈칸이나 말소된 정보를 상상력으로 채워 넣어가며 스토리 전반에 걸쳐진 설정과 상황을 이해해내다 보면 이 게임이 그리고 있는 세계관이 얼마나 넓고 심오한지 깨달을 수 있다. 그렇게 게임에 빠져든 시점부터는 이 게임이 조성하는 불편하고 공포스러운 분위기가 매력적으로 다가오게 되는 것이다.
세심하고 깊이 있는 연출까지
분위기에 취하고 나면 그 때부터 게임의 세세한 매력을 느낄 수 있게 된다. 특히, 현실과 이상 세계가 연결되어 있음을 효과적으로 표현한 세심한 연출이 상당히 인상 깊다. 게임을 진행하다 보면 '오션뷰 모텔 & 카지노'라는 공간을 거쳐서 이동하는 경우가 있다. 이 공간은 '꿈의 논리'로 작동하는 공간이라, 현실과 연결돼 있지만 별도의 물리 법칙을 지니고 있다. 쉽게 말해 꿈속의 세계로 빠져들었다가 다시 깨어나는 상황인 셈이다. 제작진은 이 꿈속으로 들어갔다 나오는 과정을 '불을 끄고 킨다'는 행동을 통해 효과적으로 비유했으며, 오션뷰 모텔의 독특한 퍼즐 구조로 이 세계와 현실 사이의 연관성을 제시했다.
이 밖에도 뛰어난 그래픽과 그를 이용해 만든 비주얼은 압도적이다. 영화 '인셉션'이나 '닥터 스트레인지'가 생각나는 '재떨이 미로' 시퀀스나, 천체가 연상되는 흑암석 채굴장의 풍경은 가히 환상적이다. 또한 '눈을 뗄 수 없는 냉장고'나 '닻'과의 보스 전에서 등장하는 거대 몬스터의 전투는 거대한 규모로 눈을 즐겁게 해줬다. 여담으로 '눈을 뗄 수 없는 냉장고'에 깃들어 있던 적인 '포머'는 크툴루가 떠오르는 기괴한 외형을 하고 있다. '포머'는 이상 세계에서 주인공에게 명령을 내리는 위원회와 같은 언어를 사용한다고 나오며, 과거에 위원회 소속이었으나 배신했다는 정보를 추후 섭렵하게 된다. 이로 말미암아 유저들은 이 게임도 크툴루 신화에서 일부 모티브를 따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모든 연출과 디자인이 스토리와 연관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총기와 초능력간 밸런스가 적절하게 배분된 전투도 게임의 장점이다. 총기와 초능력 업그레이드는 다른 자원을 사용하고 있으며, 실제 게임 상에서 두 능력은 어느 하나만 주로 사용하기 보다는 골고루 사용할 수 있도록 디자인 돼 있다. 가령 던지기로 적을 견제하다가도 에너지가 떨어져 충전하는 동안에는 총으로 적을 견제해야 한다거나, 약점을 노출하지 않은 보스는 총기를 이용해야만 공격이 가능한 식이다. 물론 그 와중에도 자기 입맛에 맞는 총기와 초능력 위주로 업그레이드가 가능하기 때문에 유저가 원하는 방식으로 전투를 이끌어 나가는 것도 가능하다.
조금 불편해도 매력적인 게임
'컨트롤'은 분명 매력적인 게임이지만, 워낙 도입부분이 불친절해 스토리를 완벽하게 이해하려면 공부하는 마인드로 접근해야 한다는 건 분명한 단점이다. 게임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선 다회차 플레이가 요구되는데, 회차가 늘어난다고 해서 새로운 미션이나 스토리가 해금되는 것은 아니라서 여러 번 플레이 한다고 스토리의 의문점이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다회차 플레이를 유도할 거라면 좀 더 많은 복선이 풀릴 수 있도록 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또한 콘솔 버전 기준으로 프레임 유지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 최적화는 최근 발매된 게임들 중 최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 '컨트롤'은 훌륭한 게임이다. 난해하고 심오한 만큼 파고드는 맛이 매우 뛰어나며, 특유의 분위기와 그 분위기에 몰입시키게 만드는 연출은 기존에 출시된 레메디의 명작들을 상회하는 수준이다. 특히, 게임 내 숨겨진 문서와 공간, 물건들을 찾아가며 도시괴담을 완성해가는 재미는 다른 게임에는 없는 '컨트롤'만의 특징이다. 깊이 있는 게임을 공부하면서 즐기는 재미를 원하는 유저라면 '컨트롤'은 인생작품 중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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