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게임광고] 옛날 e스포츠는 ‘비디오테잎’으로 나왔다
2019.10.14 19:06게임메카 서형걸 기자
한국 게임의 성숙기였던 1990년대를 기억하십니까? 잡지에 나온 광고만 봐도 설렜던 그때 그 시절의 추억. '게임챔프'와 'PC챔프', 'PC 파워진', '넷파워' 등으로 여러분과 함께 했던 게임메카가 당시 게임광고를 재조명하는 [90년대 게임광고] 코너를 연재합니다. 타임머신을 타고 90년대 게임 광고의 세계로, 지금 함께 떠나 보시죠
지금은 유튜브나 트위치를 통해 세계 각지에서 열리는 e스포츠 대회 영상을 손 쉽게 볼 수 있습니다. 프로 선수 중에서도 개인 방송을 부업으로 하는 이들이 적지 않으며, 크라우드 펀딩으로 진행되는 온라인 e스포츠 대회 중에선 후원 보상으로 선수 개인 화면을 제공하기도 합니다. ‘게임 고수’들의 플레이를 보며 게임 실력을 쌓는데 어려움이 전혀 없는 세상인 것이죠.
하지만 세기말인 90년대 후반엔 인터넷 속도가 지금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느렸습니다. 이미지 한 장 보려고 해도 몇 분씩 기다려야 했으니까요. 초기 인터넷 포털 사이트 외형이 조촐했던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인데, 영상을 본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죠. 그 시절, 영상물을 보려면 비디오 대여점에서 비디오테이프(혹은 막 보급되던 DVD)를 빌리는 것이 거의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다. 마침 IMF 이후 비디오 대여점이 많이 늘어난 시점이기도 했고요. 오늘 90년대 게임광고는 비디오테이프로 출시된 ‘스타크래프트’ 고수들의 플레이 영상을 소개합니다.
제우미디어 PC파워진 1999년 7월호에 실린 ‘스타크래프트 챔피언쉽’이란 제목의 비디오테이프 광고입니다. ‘프로게이머들의 자존심을 건 한판 승부!’라는 광고 문구로 보아,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들의 실제 경기 영상을 담은 것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경기들이 있는지는 확인할 수가 없네요. 광고 정중앙에 위치한 흔해빠진 캐리건 얼굴이라던가, 하단에 평범하디 평범한 캠페인 이미지로는 구체적으로 어떤 경기가 수록됐는지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고수들의 숨겨진 전략들’이란 문구처럼, 꽁꽁 숨겨져 있습니다.
다만, 경기가 수록된 선수들의 명단을 살펴보면 구매 욕구를 자극하기 충분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신주영, 이기석을 비롯해 김창선, 문상헌, 유두현, 최준영 등 모두 당대 고수로 이름을 날렸던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입니다. 특히 신주영과 이기석은 1세대 프로게이머로 유명하죠. 신주영은 1998년 블리자드가 주최한 세계대회 배틀넷 래더 토너먼트에서 해외 유명 선수를 꺾고 국내 최초 ‘스타크래프트’ 세계 챔피언이란 이름을 얻었고, ‘쌈장’ 이기석은 이듬해 같은 대회 우승을 거머쥐며 공중파 광고까지 찍었습니다. 게임을 모르는 일반인도 ‘쌈장’이란 별명은 알 정도였죠.
비디오테이프에 담긴 영상은 블리자드가 제공했으며, 유통은 당시 대우그룹 계열사로 유명 애니메이션과 영화, 스포츠 강연 영상 비디오테이프를 유통했던 우일영상에서 맡았습니다. 당시 관객 100만 명을 돌파한 ‘타이타닉’과 애니메이션 ‘공룡시대’ 시리즈, 그리고 ‘백상어’ 그렉 노만의 골프 강좌 등 모두 우일영상을 통해 비디오테이프로 국내 출시됐습니다.
다만, 본 비디오테이프는 흥행에 실패한 것으로 보입니다. ‘스타크래프트’ 경기 시간이 짧으면 10분, 길 경우 30분 이상 되는 것을 고려할 때 최대 180분인 비디오테이프에 담을 수 있는 경기 수는 7~8경기를 넘기 어렵습니다. 이 비디오테이프가 흥행에 성공했다면 분명 후속편이 나왔겠지만, 이 시리즈는 단발로 그쳤습니다.
사실 비디오테이프 전성기는 1999년이 마지막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ADSL 이후 초고속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비디오테이프에 대한 수요는 감소했으며, 게임 영상에 대한 수요도 2000년대 들어서는 ‘온게임넷’이나 ‘MBC게임’ 등 게임전문방송국이 충족시켜주면서 굳이 비디오테이프를 빌려가면서까지 프로게이머들의 경기 영상을 볼 필요가 없게 됐죠. 결국 e스포츠 비디오테이프는 당시에만 잠깐 시도된 후 그대로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 덤으로 보는 광고
역사 속으로 사라진 비디오테이프와 달리 게임 공략집은 여전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덤 광고는 제우미디어에서 출판한 ‘스타크래프트: 게임방 주름잡기’란 이름의 공략집입니다. 352쪽이나 되는 상당히 두툼한 두께의 서적임에도 불구하고 8,500원이란 가격이 인상적이네요.
광고 문구를 살펴보면 학습지에나 볼 법한 ‘연관기억술’이 등장합니다. 이러한 학습법에 기반해 배틀넷에서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는 전략, 캠페인 미션 공략, 각종 래더맵, 그리고 맵 만들기 등 ‘스타크래프트’에 대한 모든 공략이 담겨 있습니다. 실력 향상을 갈망하는 초보자와 중급자를 위한 공략집이라고 하는데,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 책에 도움을 받았을지 궁금하네요. 저도 당시 저 책과 비디오를 봤다면 ‘스타크래프트’ 고수가 될 수 있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