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라우드 펀딩으로 국내 출간된 D&D, 품질과 번역 문제로 논란
2019.10.30 15:33게임메카 류종화 기자
22년 만에 국내에 정식으로 선보여진 TRPG ‘던전즈 앤 드래곤즈(이하 D&D)’ 한국어판이 논란이 되고 있다.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구매자를 모은 후 제품이 배송됐지만, 제품 품질 및 번역 문제로 팬들의 비난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D&D는 최초의 TRPG이자 현대 RPG의 아버지로 불리는 작품이다. 국내에서는 1993년부터 1997년까지 커뮤니케이션 그룹에서 한국어판을 출간했으나, IMF 당시 커뮤니케이션 그룹이 도산하며 한국어판 명맥이 끊겼다. 그러던 중 최근 TRPG Club이라는 출판사가 최신 D&D 5판 번역 라이선스를 받았으며, 지난 6월 텀블벅을 통해 D&D 한국어판 출간을 공식 발표했다.
텀블벅 후원을 시작할 당시, TRPG Club은 모든 준비가 끝나 있다며 실질적으로 펀딩이 아니라 예약판매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출판업계에서는 크라우드 펀딩을 하나의 홍보 수단으로 삼아 예약판매를 진행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해당 펀딩은 당시 텀블벅 역대 최고 모금액인 4억 4,000만 원을 모았으며, 그 중 3억 3,000만 원 상당이 33만 원 짜리 최고가 상품 ‘C.DKSA Year 1 프리미엄 세트’에 집중됐다. 이는 D&D를 기다려 온 국내 팬들의 갈증이 컸던 것을 의미한다.
이후 D&D 한국어판은 제작 지연을 이유로 당초 출시 예정일이었던 8월 20일로부터 2개월 후인 10월 24일 배송이 시작됐다. 그러나, 기다림 끝에 제품을 받은 팬들에게서 불만의 목소리가 연달아 쏟아져 나오고 있다.
처음 제기된 불만은 제품 포장 상태다. 앞서 언급했듯 1,000명 이상의 팬들은 33만 원 상당의 한정판을 구매했다. 그러나 한정판 상자가 찢어진 채 배송되는 경우가 다수 보고되고 있으며, 아예 다른 제품 박스를 재활용한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한 트위터 유저는 접착 상태가 불량한 상자 표면을 뜯어보자 '건강하세요'라는 글자가 찍힌 종이가 드러났다며 상자 재활용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자 TRPG Club은 배송 중 파손된 박스는 추가 제작해 재배송 해 줄 것이며, 잘못 제작된 박스 역시 파손된 것과 동일하게 취급해 재배송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제품 구성 일부가 누락돼 있거나 전혀 다른 제품이 배송되는 일도 발생했다. 앞서 언급한 33만 원 상당 프리미엄 세트는 캐릭터의 능력과 마법 주문을 정리한 한정 제작 주문 카드 덱 여덟 개가 포함돼 있다고 공지돼 있다. 그러나 그 중 '엘리멘탈 카드' 덱이 미포함 된 채 발송된 사례가 다수 보고됐다. 이 문제에 판매측은 “원소 마법 카드는 현시점에서 절판된 상태로, 이를 제공하지 못한 것은 명백한 귀책이다. 현 시점에서 카드를 제작하는 것은 권한 밖의 문제로, 향후 자나사 주문 카드를 제작하게 됐을 때 별도로 보내드리겠다. 또한 이로 인한 환불 요청이나 구매 품목 변경은 우리 측에서 부담하겠다”라고 밝혔다.
한편, 일부 구매자는 한국어판이 아닌 독일어판 등 다른 언어로 된 판본을 배송받기도 했다. 이에 공식 창구에서는 문제가 있는 제품을 제대로 된 한국어판으로 교환해 주겠다고 했지만, 한편에서는 환불을 원하면 포장을 뜯지 않아야 하며 반송비를 소비자가 부담하라는 답변을 해 일부 구매자들은 소비자보호원에 고발하겠다는 의사를 비치고 있다.
제대로 된 제품을 받은 이들도 불만을 표하고 있다. 바로 번역 품질 문제다. D&D는 마니아들이 많기 때문에 단어 하나하나의 뉘앙스에도 민감할 수 밖에 없긴 하지만, 누가 봐도 오역인 문장이나 단어가 수두룩하게 발견됐다. 예를 들어 ‘던전 마스터즈 가이드’ 서적 중에는 ‘거주하는 귀족이 거주한다’는 문장이 적혀 있다. 원문은 ‘A resident noble presides'로, 해석하면 (해당 도시의 통치는) '거주하는 귀족이 주재한다’는 뜻이다. presides라는 단어를 잘못 번역한 것이다. 이외에도 같은 용어를 통일하지 않고 제각기 다른 말로 번역하거나, 원래 용어의 뜻을 왜곡시키는 번역이 세 자릿수로 지적되고 있다.
이와 같은 문제들에 대해 구매자들이 텀블벅 커뮤니티와 각종 TRPG 커뮤니티, 1,000통 넘는 이메일과 메시지를 통해 비판을 이어가자, D&D5판 한국어판 번역 및 지원을 맡은 DKSA(D&D Korean edition Supporter Association)는 수 차례에 걸쳐 입장문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상품 배송지연과 품질, 오타 등에 대한 보상은 '프로젝트 지속 가능성을 해칠 정도의 재정적 비용이 들어가지 않는 선'에서 진행된다. 예를 들어 재판 인쇄 시 초판 구매자들에게 수정판을 제공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저작권상 권리를 취득하지 않은 원저작자 위자드 오브 더 코스트 원본을 무단으로 번역하는 것도 어렵다. 이처럼 한계선을 적어 놓은 것과 달리, 현재 보상 가능한 품목이나 수단은 명확히 명시되어 있지 않아 유저 불만은 사그러들지 않고 있다.
번역 문제의 경우 총 1년의 기간 동안 검수했으나 이 같은 문제가 발생한 것에 대해서 역량 부족을 인정했으며, 이번에 인지한 오타 및 편집상 문제, 오역 등을 재판 인쇄에서 수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번역 집단 구성원이나 각 번역자가 맡은 부분은 번역자 보호 차원에서 밝힐 수 없다고 언급했다. 또한 번역 수정 시에는 정오표를 올리고 꾸준히 갱신할 것이라고도 밝혔다.
이후 트위터 소통 등을 통해 추가로 드러난 사실 중 하나는, 번역을 맡은 DKSA 측에 TRPG 전문 번역을 해 본 프로 번역자가 없다는 점이었다. TRPG Club은 D&D 한국어판 번역자 이름과 경력을 공개하지 않고 DKSA라는 기구로만 소개해 왔는데, DKSA 측은 프로 번역 경험이 있는 번역/편집/검수자가 있냐는 질문에는 있다고 답변했으나, 상업적으로 통용되는 TRPG 번역을 한 사람은 없으며 사적으로 통용되는 번역을 한 사람들은 많이 있다고 답변했다.
게임메카는 D&D 한국어판을 둘러싼 문제에 대해 TRPG Club 측과 연락을 시도했지만, 답변이 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