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 스트랜딩, 배달 40시간 했는데 전혀 지루하지 않다
2019.11.01 16:01게임메카 이재오 기자
점심시간 팀원들이 다같이 중국집에 갔다. 자유롭게 시키라던 팀장님이 4,000원짜리 짜장면을 시키자 너도나도 짜장면을 먹겠다고 한다. 8,500원짜리 삼선짬뽕이 먹고 싶었지만 그냥 조용히 대세를 따르기로 한다. "저도 짜장면 좋습니다!" '침묵의 나선이론'의 한 사례다. '침묵의 나선이론'이란 다수에게 인정되는 여론은 점차 확장되는 반면, 소수의 의견은 소외되고 무시당한다는 내용이다. 이해가 어렵다면, 선거 종료 후 실제 투표 결과보다 당선자에게 투표했다고 발언하는 사람들이 더 많게 나타나는 경우를 생각하면 된다. 인기가 많은 SNS 게시물에 나도 모르게 '좋아요'를 누르는 것 또한 같은 맥락이다.
이런 일이 발생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고립'을 두려워하며 다수에게 자신의 의견이 받아들여지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교류를 원하고 주변 상황에 관심을 기울이며, 자신의 의견과 일치하는 사회 단면을 좇게 된다. 그 과정에서 우습게도 사람은 고립을 피하다가 또 다른 고립을 형성한다. 의견이 비슷한 사람끼리 모여 집단을 만들고 파편화되는 것이다. 이 역시 이해가 힘들다면 같은 의견을 지닌 사람끼리 모여 만든 특정 커뮤니티를 떠올리면 된다.
처음부터 이렇게 어려운 이야기를 읊은 이유는 '데스 스트랜딩'이 지닌 깊이를 조금이라도 편하고 쉽게 설명하기 위해서다. 데스 스트랜딩은 '고립'에 대한 코지마 히데오의 고찰을 담고 있다. 그는 게임이란 매체를 이용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역량을 담아 이 게임을 만들었다. 사람들의 의견이 극단적으로 파편화된 세상의 참상을 독특한 미적 감각으로 비유했으며, 그 세상을 구원하기 위한 방법을 한 택배 기사의 여정과 감정을 빌려 표현했다. 결과적으로 이 게임을 플레이하고는 확신했다. 이제 코지마 히데오는 확실히 거장의 반열에 올라섰다고.
단순하고 쉬운 택배기사의 여행기
본격적인 리뷰에 앞서 몇 가지 용어를 설명할 필요가 있다. 우선 게임의 제목이기도 한 '데스 스트랜딩'은 초현실적인 이유로 인해 인류가 멸망하게 된 사건을 뜻한다. 사건 이후 생존자는 자신의 쉘터에 숨어들어 다른 사람들과의 교류를 멀리하고 생존만을 영위하고 있다. 트레일러에서 자주 보이던 괴물이나 영혼 같은 존재는 'BT'다. 작중에선 다소 어렵게 설명되지만 승천하지 못하고 구천을 떠도는 귀신으로 이해하면 편하다. BT는 사람들을 저승에 끌고 가려 한다. '타임폴'은 BT가 근처에 있으면 내리는 비로서 닿은 물체의 시간을 빠르게 흐르게 한다. 참고로 주인공 '샘 포터 브릿지스'는 타임폴의 영향을 받지 않으며, BT와 조우해 저승에 가도 다시 현실로 돌아올 수 있다.
이 게임은 한 택배 아저씨의 여정을 그리고 있다. 주인공 샘은 자신의 능력을 십분 활용해 사람들이 밖으로 나오지 않는 위험한 세계에서 배송 업무를 하고 있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 자신의 가족이자 대통령인 아멜리가 미국을 재건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요청한다. 미국 재건의 방법이 무엇인고 하니, 사람들이 지내는 쉘터에 가서 'Q-피드'를 이용해 카이랄 네트워크라는 이름의 인터넷을 연결하는 것이다. 유저는 샘을 조종해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고립된 사람들에게 필요한 물자를 배송하고 인터넷을 연결해 주는 일을 하게 된다. 다소 모호해 보였던 데스 스트랜딩의 기본 서사 구조는 이토록 단순하고 쉽다.
서사 구조만큼 게임 진행도 비교적 복잡하지 않은 편이다. 특정 구역에서 배송 의뢰를 받아 다른 구역에 전달해 주고 그곳에 인터넷을 연결해 주는 것이 퀘스트의 기본 골자다. 실제로 본작은 짐을 지고 걷는다는 느낌을 살리기 위해 모든 시스템을 집중했다. 등에 맨 짐이 무거워지고 길이 거칠고 험할수록 걸어가면서 균형을 잡지 못 하는 일이 발생하며, 스태미너 소비도 높아진다. 균형을 잃어 넘어지거나 적의 공격에 의해 짐을 떨어뜨리면 화물에 손상이 생기기 때문에, 타이밍에 맞게 버튼을 눌러주며 균형을 잡고 수시로 지도를 보며 가장 적합한 운송 루트를 체크해야 한다.
미국 최고의 배송업자가 되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
이렇게만 들으면 유로피안 트럭 같은 택배 운송 시뮬레이터와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실제 플레이는 생각보다도 훨씬 다채롭다. 일기예보를 보고 타임폴이 떨어지지 않는 구역을 찾아 설산을 등반하거나 호수를 건너기도 해야 하며, 심한 경우 화물을 탈취하려는 세력이나, 미국 재건을 방해하려는 테러리스트와 전투를 벌여야 한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BT를 상대하거나 피해야 하는 것은 당연지사. 여러 상황에 대비해야 하므로 화물보다도 총기, 수류탄, 방탄복 같은 것들을 더 많이 챙겨야 할 때도 있다.
심지어는 화물의 성격도 매번 다르다. 갓 구운 피자 같은 경우는 세로로 들면 안 되기 때문에 화물 정리 시 모양을 신경써야 하고 운반 제한시간도 있다. 반물질 폭탄은 아주 약간의 충격에도 폭발하기 때문에 절대 떨어뜨리거나 넘어지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간혹 사람이나 시체도 운반하게 되는데, 인체는 무게 중심이 유동적이라 다른 화물에 비해서 중심 잡기가 매우 힘들다. 다양한 화물과 운송 중간중간 만나는 수많은 환경이 맞물려 아주 색다른 재미를 자아낸다.
이 같은 다양성은 유저로 하여금 능동적으로 운송 방법을 고려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준다. 가령 하늘을 찌를 듯이 높게 짐을 쌓았는데 테러리스트 지역을 지나가야 한다면, 근처에 짐을 보관할 수 있는 포스트박스를 제작해 필요 없는 화물을 보관해 둔 뒤 양손에 짐을 들고 잠입 액션을 펼칠 수 있다. 반대로 물자가 충분하고 다소 단단하며 위험도가 낮은 화물을 들고 있다면 BT건 테러리스트건 할 것 없이 먼저 전투를 벌이고 적을 일망타진한 뒤 이동하는 것도 가능하다. 다만, 사망자가 늘어나면 BT 출현 빈도수도 늘어나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이는 적 테러리스트 진영에서 물건을 훔쳐 오거나, 설산 꼭대기에 있는 연구원에게 시간제한 물자를 전해주는 등의 여러 미션과 합쳐져 또 다른 시너지를 낸다.
한 가지 더 재미있는 점은 40시간에 달하는 메인 미션 진행 시간 동안 매번 새로운 스토리와 새로운 환경, 새로운 아이템이 제공된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맨몸으로 설산 꼭대기에 올라가며 미션을 수행하고 나면 다음엔 봉우리 너머 험지에 있는 오두막에 가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유저가 '저기는 또 어떻게 가야 하나'하고 싫증이 날 때쯤 눈밭에서도 미끄러지지 않을 수 있게 도와주는 장비를 제공한다. 유저가 아이템이나 상황을 마주하는 재미와 기쁨을 극대화한 것이다. 단순하지만 좋은 게임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다.
깊고도 다양한 해석의 틀
이렇게 단순하지만 효율적인 방법으로 재미있는 게임플레이를 구성한 것과는 별개로 스토리의 깊이는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심오하다. 기본적으로 데스 스트랜딩은 영화적 연출이 매우 짙게 들어가 있기 때문에 게임을 구성하는 요소 하나하나부터 컷 신에 삽입된 장면 모두가 나름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영상매체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이 모든 것들을 텍스트 분석하듯이 이해하는 것 또한 게임을 즐기는 여러 방법 중 하나다. 특히 게임을 보다 온전하고 깊이 있게 즐기고 싶다면 이 과정은 매우 중요하다.
게임을 보자마자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해석은 핵전쟁의 폐해다. 작중 일종의 초현실적인 현상으로 발생한 것처럼 묘사되는 '데스 스트랜딩'은 사실 핵전쟁이었으며, 그로 인해 오염된 대기에서 인체에 유해한 비가 내린다거나, 희생자의 영혼이 땅에 묶여 BT가 된다는 가설이다. BT에게 잡혀갔을 때 출몰하는 탯줄이 여기저기 달린 고래나 사자는 방사능에 의해 발생한 변이체로 이해할 수 있다. 이 경우 샘의 행위는 결국 사람들을 네트워크의 비호 아래서 자연에 굴복한 삶을 살도록 설득하고 다니는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이 경우 이름답게 장기의 70%를 죽은 사람의 것과 바꾼 '데드맨', 파편화된 현재 사회를 지지하는 과격 분리주의자 '힉스(힉스는 입자에 질량을 부여하는 기본 입자를 지칭하는 단어다)', 카이랄 네트워크를 연결해 주는 장치인 'Q-피드(다분히 그리스 로마신화의 에로스를 염두에 둔 작명이다)' 등 각 캐릭터의 이름과 사연, 오브젝트의 생김새에 내포한 은유를 설명해 주지 못한다. 더불어 게임 내 계속 제시되는 '연결(Stranding)'이라는 키워드도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곱씹을수록 자유로운 해석이 가능한 데스 스트랜딩에서 가장 독특한 지점이면서도 해석의 일관성을 부여해 줄 수 있는 시스템을 찾으라면 역시 '좋아요' 시스템이 있겠다. 게임 중 유저는 다리나, 발전기, 타임폴 대피소 등을 맵 곳곳에 제작할 수 있다. 이는 멀티플레이를 통해 다른 유저들도 사용할 수 있으며, 해당 유저가 재량껏 좋아요를 줄 수 있다. SNS가 연상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다.
이를 참고해 해석하자면, 결국 데스 스트랜딩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결국 정보화 사회에서 지나친 파편화로 각자가 고립된 사회일 지도 모르겠다. 이 경우 작중 발생한 '데스 스트랜딩'은 현대 사회에서 발생하는 집단적 파편화의 말로이며, BT나 테러리스트와 같은 존재는 그중에서도 혐오에 의거한 분리주의를 추구하는 집단처럼 보인다. 게임의 주요 모티브인 '탯줄'은 모체와 아이를 연결하는 생명선인 만큼 사회와 인간을 연결해주는 사회적 신뢰를 의미한다. BT의 모양새가 '고래'나 '사자'와 같은 생태계 최상위 포식자들을 끊어진 탯줄로 뒤덮어 혐오스럽게 디자인한 이유도 혐오 세력이 사회적 신뢰와 동떨어진 집단 권력임을 표현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싶다.
결국 샘이 미국 전역을 인터넷으로 연결해 나가고 '좋아요'를 받으며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은 이런 사회적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여정으로 볼 수 있다. 처음에는 방관자로 임했던 그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인 BB-28과 유대감을 쌓으며 유사 부성애를 느끼는 것 또한 샘이 자신의 임무의 중요성을 스스로 체득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한 장치다. 메즈 미켈슨이 연기한 '클리프'는 물론이며, '데드맨', '마마', '하트맨'과 같은 동료들의 사연도 게임 내에서 샘이 사회적 신뢰에 대한 가치를 이해하는 과정으로 연출되고 있다.
물론 이런 복잡하고 어려운 해석과는 별개로 누구나 자신만의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에 이 해석은 어디까지나 참고용으로 두길 바란다.
산뜻하고 깔끔했던 40시간의 여정
데스 스트랜딩 엔딩을 보기까지 40시간 가까이 걸렸다. 이렇게 많은 메시지와 담론이 담긴 매체를 감상하다 보면 지루할 법도 한데, 이 게임은 2시간 반짜리 영화를 보는 것처럼 말끔하고 군더더기 없었다. 해석의 다양성을 제공해주는 깊이 있는 스토리와 연출, 구성요소 하나하나에 깃든 은유, 흠잡을 데 없는 게임성까지. 플레이하는 내내 여러 의미의 감탄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특히 배송업자라는 다소 뜬금없는 소재로 거대한 담론을 풀어낼 수 있다는 점도 대단했다. 코나미를 뛰쳐나온 코지마 히데오의 독립은 이토록 성공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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