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게임광고] 만득이와 칠득이? 좋지 않은 로컬라이징
2020.02.10 15:06게임메카 류종화 기자
한국 게임의 성숙기였던 1990년대를 기억하십니까? 잡지에 나온 광고만 봐도 설렜던 그때 그 시절의 추억. '게임챔프'와 'PC챔프', 'PC 파워진', '넷파워' 등으로 여러분과 함께 했던 게임메카가 당시 게임광고를 재조명하는 [90년대 게임광고] 코너를 연재합니다. 타임머신을 타고 90년대 게임 광고의 세계로, 지금 함께 떠나 보시죠
80~90년대만 해도 국내 수입되는 만화들은 외국색을 지우고 최대한 많은 요소를 현지화시키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 가운데는 슬램덩크처럼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자연스레 녹아든 사례도 있었지만, 일부는 작품성을 해치는 현지화로 몰입을 방해하는 경우도 있었죠. 2000년대 이후 해외 문물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익숙해지면서 최근에는 일부 저연령층 대상 작품을 제외하면 원작 인물명이나 고유명사를 살리려 노력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게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최근 발매되는 게임들은 대부분 원작명과 캐릭터명을 그대로 살리고 약간의 의역을 곁들이는 정도로 현지화 되고 있지만, 90년대만 해도 아예 원작이 무엇이었는지조차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로 파격적인 현지화를 감행하곤 했습니다. 일명 ‘유통사의 만행’이라 불리는 게임들인데, 파랜드 사가와 파랜드 오딧세이 시리즈를 묶어 ‘파랜드 택틱스’로 발매한 등이 대표적 사례죠. 오늘 소개하는 게임 역시 뭔가 지나친 현지화가 독이 된 작품입니다.
위 이미지는 제우미디어 게임챔프 1997년 8월호에 실린 게임 광고입니다. 게임 제목은 ‘형사 만득이와 칠득이’ 인데요, 당시 유행하던 만득이 유머 시리즈에서 따 온 이름 같습니다. 칠득이야 뭐 그 전부터 유머쪽에서 자주 거론되던 바보 역 이름이고요. 게임 화면 하나 없이 캐릭터 두 명의 그림만으로 표현된 광고나, 얼핏 보면 막 지은 것 같아 보이는 게임명을 보고 있자면 왠지 급조한 게임 같은 느낌이 듭니다.
일단 이 게임의 정체를 알아보기 위해 광고 아랫면을 봅시다. 한국 판매원은 게임통, 제작사는 인터렉티브 스튜디오, 유통사는 BMG 인터렉티브 입니다. 인터렉티브 스튜디오 하면 과거 인기 IP를 바탕으로 가족용 게임을 주로 만들던 해외 개발사로, 인어공주, 스폰지밥 IP를 활용한 게임도 제작한 적이 있습니다. 이 게임 역시 인터렉티브 스튜디오의 초기 작품 중 하나로, 원래 제목은 ‘파이로 & 클라우드(Firo and Klawd)’입니다.
다음 장에는 조금 더 원제에 가까운 이름들이 나오는군요. 광고 중앙에 정식 명칭인 ‘파이로 & 클라우드’가 적혀 있고, 양옆으로 파이로와 클라우드가 각각 서 있습니다. 괜찮은 이름 놔두고 왜 만득이와 칠득이라는 이름을 썼는지는 미스터리인데, 개인적으로 별로 좋지 않은 네이밍 같습니다. 촌스러움은 자처하더라도, ~득이 표현을 겹쳐 써서 둘이 형제 혹은 파트너 관계 형사처럼 보이거든요. 사실 저기 나오는 고릴라 파이로는 형사가 맞는데, 고양이 클라우드는 형사가 아닌 그냥 주연급 조력자입니다. 얼핏 투캅스 같은 이미지를 주려고 한 것 같지만, 원작과는 거리가 생겨버린 아이러니한 상황이죠.
촌스러운 이름은 자처해두고 게임 자체를 살펴봅시다. 다음장 광고를 보면 게임 화면과 설명이 나와 있는데요, 스크린샷만 보면 3D 그래픽이 얼핏 보일 뿐 어떤 게임인지 잘 감이 잡히진 않습니다. 게임 설명 역시 칠득이가 갱단의 돈을 슬쩍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형사 만득이가 함께 싸운다는 배경 스토리만 나와 있어 어떤 게임인지 감을 잡긴 어렵습니다. 참고로 이 게임은 3D로 구현된 플랫포머 액션과 1인칭 레일슈팅 장르를 결합한 것으로, 당초 2편까지 예정돼 있었지만 흥행 실패로 인해 후속작 계획이 묻혀버린 비운의 게임입니다. 그래도 국내에서는 게임성이 아니라 네이밍 때문에 망했다고 얘기할 수 있으니 명예로운 죽음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참고로 광고에 나온 ‘이 면을 펼치면 형사 만득이와 칠득이의 예쁜 캐릭터가 있습니다. 오려두세요!’라는 멘트가 궁금하긴 한데, 위에서 보여드린 가로 이미지가 전부입니다. 뭔가 특전 이미지라도 있을 줄 알았던 독자 입장에서는, 같은 이미지만 세 장에 걸쳐 크기만 다르게 게재한 광고를 보고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