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기행] 발더스 게이트는 사실 D&D 도시국가였다
2020.02.28 21:13게임메카 이새벽
28일 새벽 미국 게임쇼, PAX EAST에서 발더스 게이트 3 인트로 시네마틱과 실제 플레이 영상이 공개됐다. 영상을 보면 ‘디비니티: 오리지널 신 2’을 만든 개발사 라리안 스튜디오의 노하우가 더해지며 기존보다 진보한 그래픽과 인물 묘사, 더 전술적인 전투 등을 보여 뭇 RPG 팬들의 기대감을 고조시켰다. 그 중에 관심을 끈 것은 독특한 인트로 시네마틱이었다. 촉수 달린 외계종족이 드래곤 탄 추적자들을 피해 차원 도약하는 촉수 우주선을 모는 박진감 넘치는 내용이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영상에 나온 촉수 달린 우주선은 무엇이고, 촉수 외계인이 주인공 눈에 넣은 유충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리고 발더스 게이트는 원래 이런 내용이었을까? 이번 주에는 발더스 게이트가 어떤 시리즈였고, 충격적인 영상을 보여준 발더스 게이트 3는 무슨 내용을 다룰지에 대해 정리해봤다. 이번 기회에 발더스 게이트 시리즈 줄거리와, 새로 나올 발더스 게이트 3과 관련된 설정에 대해 알아보자.
발더스 게이트는 무대일 뿐, 줄거리는 바알스폰 사가
기본적으로 ‘발더스 게이트’는 TRPG ‘던전 앤 드래곤’ 세계관 중 하나인 ‘포가튼 렐름’에 나온 도시국가의 이름이다. 그렇기에 앞선 내용을 아는 상태에서 발더스 게이트를 처음 시작하는 플레이어는 포가튼 헬름 배경이었던 발더스 게이트 인근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루고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물론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다. 하지만 사실 발더스 게이트라는 곳은 전체 시리즈 중 첫 번째 게임에만 등장하고, 그나마도 게임 무대일 뿐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서사는 따로 있다.
게임 ‘발더스 게이트’는 ‘포가튼 렐름’ 세계관에서 벌어진 사건 중 하나인 타임 오브 트러블을 중요한 소재로 삼고 있다. 사악한 세 명의 신들의 음모로 대부분의 신이 천상에서 지상으로 추락해 일정 기간 동안 불멸성을 잃은 채 서로 전쟁을 벌인 사건이다. 그 결과 타임 오브 트러블이 끝났을 때는 신 중 상당수가 소멸했고, 일부는 다른 신의 힘을 흡수했으며, 소수의 인간은 기회를 틈타 기존 신의 힘을 빼앗고 스스로가 새로운 신이 되기도 했다.
다만 타임 오브 트러블은 1989년에 쓰인 TRPG 설정이자 소설로 진행된 사건으로, 게임 발더스 게이트가 채택한 시기와는 게임 역사상으로 볼 때 다소 차이가 있다. 다만 발더스 게이트는 앞서 설명한 설정에서 비롯된 후속 이야기를 다룬다. 타임 오브 트러블 당시 죽은 사악한 살육의 신 바알이 살해되기 전에 여러 필멸의 종족과 반인반신 자식을 만들었고, 그들에게 본인이 가진 신성을 일부 불어넣어 유사할 때 부활의 씨앗으로 쓰고자 했다는 설정이다.
발더스 게이트는 바알의 신성을 지닌 자손, 이른바 바알스폰들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주인공 압델 애이드리언(기본 이름으로, 게임 시작 시 변경 가능)은 학자들이 세운 요새화된 도서관 캔들킵에서 자신의 정체를 모르고 자라난 바알의 자식이다. 게임은 주인공 압델이 다른 바알스폰의 음모에 휘말리며 시작된다. 즉, 처음부터 바알스폰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되는 셈이다.
게임 시작과 함께 주인공은 양부이자 학자 겸 마법사인 고라이온이 캔들킵은 더 이상 안전하지 않고, 몰래 떠나야 한다는 갑작스러운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이에 압델은 고라이온을 따라 야밤에 캔들킵을 나서지만,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의문의 사내와 용병이 기습하는 바람에 압델만 간신히 피하고 고라이온은 시간을 벌다 사망하고 만다. 이후 압델은 인근 지역을 떠돌며 일종의 용병으로 살아가는데 그 와중 몇 가지 의문스러운 사건과 마주친다.
그 중 하나는 발더스 게이트와 가까운 거대 상업국가 ‘앰’ 영토에서 벌어진 광산 문제였다. 내쉬켈 광산이라는 곳에서 철이 부식된 채로 채굴되거나, 광부가 계속 실종되는 불미스러운 일이 생겼다. 이에 사건 조사를 맡게 된 ‘압델’은 일단의 용병들이 의도적으로 광산에 유독한 물질을 사용해 광맥을 부식시키고 있다는 것을 알아내고, 수집한 단서들이 가리키고 사건 진상을 쫓아 발더스 게이트로 가게 된다.
이후 발더스 게이트 치안을 맡은 플레이밍 피스트 용병에게도 의뢰를 받은 주인공은 사건 배후에 아이언 쓰론이라는 사업체가 있음을 깨닫는다. 철과 무기를 거래하는 이들은 의도적으로 발더스 게이트와 앰 사이에 전쟁 분위기를 조성하고 그 사이에서 이익을 취하기 위해 이러한 음모를 꾸몄던 것이다. 하지만 조사 결과 이들도 진짜 전쟁을 원한 것은 아니었고, 적대적인 분위기만 고조시키는 선에서 끝낼 계획이었다.
즉, 아이언 쓰론도 진정한 흑막은 아니었던 것이다. 다만, 발더스 게이트 귀족이자 아이언 쓰론의 후계자 사레복은 사실 바알의 자식이었다. 자신이 몸담은 아이언 쓰론마저 속인 채 진짜로 앰과 전쟁을 일으킬 생각이었다. 그리고 두 국가간 전쟁에서 벌어질 대규모 학살에서 힘을 얻어, 자기 내면에 잠든 바알의 신성을 깨우고 스스로 새로운 신이 될 야망까지 품었다. 또한 그는 근처에 있는 또 다른 바알스폰인 ‘압델 애이드리언’을 습격하고, 그 과정에서 고라이온을 죽인 원수이기도 했다.
이에 주인공은 발더스 게이트를 전쟁으로 몰아넣을 사레복의 음모를 고발하고, 이후 도망치는 그를 쫓아 도시 지하에 숨겨진 바알 신전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사레복과 대면한 압델은 자기 자신도 바알스폰이라는 것을 그제야 깨닫는다. 압델은 사레복을 쓰러뜨리고 전쟁을 막은 영웅이 되지만, 곧 발더스 게이트 시민들은 주인공 역시 바알스폰이라는 걸 알게 되며 그를 배척한다. 결국 압델은 도시를 떠나고, 게임은 거기서 마무리된다.
이처럼 메인 줄거리에서 도시국가 발더스 게이트는 비중이 크지 않았다. 다만 인근 지역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이야기를 즐길 수 있었다. 여기에 게임을 만든 바이오웨어는 당시 웨이스트랜드의 ‘한 가지 목표를 성취하는 데 여러 개 선택지가 제시된다’는 철학을 반영해 발더스 게이트에서도 수많은 선택지를 제공했으며, 이에 따라 발생하는 스토리 갈래도 다양했다. 이처럼 풍부한 자유도 덕분에 게임 발더스 게이트는 당시 수많은 RPG 팬들의 반향을 일으켰다.
바이오웨어 발표에 따르면 1998년 발매된 발더스 게이트는 2002년까지 220만 장이 판매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당시 게임 시장, 특히 다소 침체되어 있던 RPG 시장 흐름을 감안할 때 상업적으로 상당히 큰 성과였다. 비슷한 시기에 발매돼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당대 RPG 시장 판도를 바꿨다는 평을 듣는 블리자드의 디아블로가 2002년까지 250만 장 판매에 그친 것을 보면, 확실히 엄청난 실적이었다.
발더스 게이트 2로 끝난 바알스폰 사가, 그리고 블랙 하운드 프로젝트
이렇듯 시리즈 첫 게임 발더스 게이트는 도시국가 발더스 게이트를 배경으로 삼았고, 이곳을 둘러싼 음모를 소재로 삼았다. 주된 내용은 그 배후에 도사린 두 바알스폰의 대립이 주된 내용이었으나 게임 배경이 발더스 게이트인만큼 이를 게임 이름으로 쓰는 것도 납득할 수는 있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두 번째 게임 발더스 게이트 2: 섀도우 오브 앰은 발더스 게이트가 무대가 아니다.
발더스 게이트가 기대보다 높은 판매량을 기록하자 바이오웨어는 곧 차기작 제작에 착수했다. 이후 2000년에 출시된 발더스 게이트 2는 게임성 자체는 전작 특징을 그대로 이어가되, 클래스, 주문, 아이템, 콘텐츠 볼륨이 대폭 확장됐다. 그에 따라 스토리도 한층 스케일이 커졌다. 전작 주인공 압델이 살육의 신 바알의 화신으로 변하고 말이다.
발더스 게이트 2는 전작에서 이어지는 내용으로, 서서히 각성하기 시작한 압델 애이드리언의 바알스폰으로서의 본성을 주요한 소재로 삼았다. 전작에서 숙적 사레복과 같은 바알스폰임을 알게 된 압델은 발더스 게이트를 떠나 방랑을 떠났지만, 오래 지나지 않아서 일단의 무리에게 납치되고 만다. 그렇게 본의 아니게 가게 된 곳이 전작에서 발더스 게이트와 전쟁이 날 뻔했던 상업국가 앰의 수도 아스카틀라다. 즉 이번 무대는 발더스 게이트가 아닌 셈이다.
납치를 사주한 이는 이레니쿠스라는 마법사로, 그는 압델이 바알스폰이라는 소문을 듣고 음모를 꾸몄다. 압델을 납치한 이레니쿠스는 마법적인 고문과 실험으로 압델에게 내재된 바알의 신성을 강제로 각성시키고, 이를 빼앗아 자신의 힘으로 삼고자 했다. 이에 게임이 시작할 때 주인공 압델은 이미 포획당한 상태며, 전작 동료 중 일부는 이미 함께 납치돼 잔인한 고문 끝에 살해된 후였다.
그 와중 섀도우 시프라는 도둑 및 암살자로 구성된 조직이 이레니쿠스의 던전에 난입하며 압델 은 탈출할 절호의 기회를 얻는다. 이에 압델과 일행은 가까스로 탈출하지만 친구 이모엔이 이레니쿠스와 함께 앰 정부 마법사들에게 구속된다. 도시에서 불법적인 마법을 사용한 것이 그 이유다. 이에 압델은 이모엔을 구하기 위해 불법 마법 사용자들을 가두는 시설 위치를 확보해 그곳으로 향한다.
그런데 알고보니 이레니쿠스는 일부러 체포된 것이었다. 그의 계획은 불법 마법 사용자를 수감한 수용소를 장악해 거대한 함정으로 만든 후, 주인공을 유인해 생포하는 것이었다. 이 계획이 성공하며 압델은 자기 영혼과 바알의 신성 중 상당 부분을 이레니쿠스에게 빼앗긴다. 이후 이레니쿠스는 바알의 신성을 빼앗으면서까지 추구했던 자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떠나고, 간신히 살아남은 압델은 그 뒤를 쫓는다.
수용소에서 탈출하고 이레니쿠스 뒤를 쫓는 과정에서 압델은 친구 이모엔도 바알스폰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또한 이레니쿠스가 사실은 엘프 마법사였다는 사실도 밝혀진다. 엘프 여왕과 긴밀한 사이였던 이레니쿠스는 점점 야심이 커져 신성한 생명의 나무에서 힘을 흡수해 더 강해지고자 했다. 그 결과 저주를 받은 그는 엘프의 영혼과 영생을 모두 잃었고, 언젠가 고향으로 돌아가 복수하겠다고 앙심을 품었던 것이다.
게임 후반부에서 압델에게 빼앗은 바알의 신성으로 막강한 힘을 얻은 이레니쿠스는 다크 엘프와 악마 동맹을 모아서 성스러운 엘프들의 도시를 공습한다. 압델은 바알의 신성과 자기 영혼의 일부까지 빼앗긴 탓에 차츰 죽어가는 와중에도 이레니쿠스 뒤를 쫓아 엘프들의 도시까지 오고, 그곳에서 엘프와 함께 생명의 나무에서 힘을 흡수하던 숙적 이레니쿠스와 다시 한 번 대적하고, 그를 쓰러뜨린다.
하지만 이레니쿠스는 죽는 순간까지도 압델과 영혼이 연결된 상태였다. 그렇기에 이레니쿠스가 죽으며 압델 의식도 함께 지옥으로 떨어지고, 그 곳에서 다시 한 번 이레니쿠스와 싸운다. 여기서도 승리하며 영혼과 바알의 신성을 되찾는 데 성공하지만 지옥에서의 모험과 싸움은 압델이 지닌 바알의 신성이 더 각성하는 결과를 낳고, 이야기는 확장팩 발더스 게이트 2: 쓰론 오브 바알로 이어진다.
쓰론 오브 바알은 세계 각지의 바알스폰이 자기 정체를 깨닫고 신성이 각성하기 시작한 상황에서 막이 오른다. 그 중 특별히 강했던 이들은 사레복처럼 살육을 저지르거나, 다른 바알스폰을 죽이고 신성을 흡수하여 새로운 신이 되고자 했다. 이러한 전쟁에 압델도 어쩔 수 없이 휘말리고, 종국에는 남은 바알스폰과 이 모든 사태를 배후에서 조종한 바알의 대사제를 모두 쓰러뜨린다.
쓰론 오브 바알 결말에서 압델은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 바알의 신성을 모두 흡수해 새로운 신이 되거나, 신성을 포기하고 인간으로 남을 수 있다. 게임에서의 선택은 플레이어 몫이지만, 세계관 상으로는 일단은 후자를 선택하는 것으로 정리된다. 이후로 발더스 게이트 시리즈는 발더스 게이트 3: 블랙 하운드라는 후속작으로 이어질 예정이었으나, 이는 바알스폰과는 무관한 내용이었다. 즉 바알스폰 사가는 쓰론 오브 바알로 끝난 셈이었다.
그 이후로도 발더스 게이트 라이선스를 지닌 인터플레이는 발더스 게이트라는 이름을 계속 쓰고 싶어했다. 2001년과 2004년 출시된 콘솔 게임 발더스 게이트: 다크 얼라이언스는 발더스 게이트 시리즈의 후광을 기대하고 인터플레이 산하 블랙 아일 스튜디오에서 제작한 게임이었다. 그러나 이름만 비슷할 뿐 기존 발더스 게이트와는 스토리도, 게임성도 다른 핵 앤 슬래시 게임이었다.
물론 인터플레이가 발더스 게이트 시리즈를 이어갈 적통을 안 만들 생각은 아니었다. 앞서 언급한 발더스 게이트 3: 블랙 하운드가 바로 그 게임이 될 예정이었다. 당시 발표된 내용에 따르면 발더스 게이트 3: 블랙 하운드는 도시국가 발더스 게이트에 인접한 웨스턴 하트랜드를 배경으로, 잘못된 의식으로 죽은 남편을 되살린 성직자가 만들어낸 영적인 괴물 블랙 하운드와 관계된 어느 모험가의 이야기를 다룰 계획이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발더스 게이트 3: 블랙 하운드는 나오지 못했다. 적자에 처한 인터플레이가 던전 앤 드래곤 제작사 위저드 오브 더 코스트에 PC 게임 라이선스 연장을 못해 프로젝트가 취소되고, 얼마 후 개발을 맡았던 블랙 아일 스튜디오까지 자금난으로 문을 닫아버렸다. 그렇게 발더스 게이트 시리즈는 2003년 발더스 게이트 3: 블랙 하운드 개발이 취소된 후 사실상 동결됐다.
라리안 스튜디오가 만드는 발더스 게이트 3, 촉수가 나오는 이유는?
이후로도 발더스 게이트 시리즈를 잇겠다는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캐나다 게임 개발업체 빔독이 일부 라이선스를 얻어 발더스 게이트 시리즈 개선판을 팔고, 자체적으로 시즈 오브 드래곤스피어라는 신규 확장팩을 내어놓는 등, 프랜차이즈를 부활시키려는 시도가 늘 있어왔다. 그러나 늘 중도에 좌초됐고, 그러는 사이에 발더스 게이트 시리즈를 기억하는 사람도 줄어들었다.
게다가 던전 앤 드래곤 최신판 출시 이벤트 시나리오 ‘발더스 게이트에서의 살인’은 아예 압델 애이드리언의 죽음을 소재로 해 발더스 게이트 팬들에게 씁쓸함을 느끼게 했다. 이 시나리오에서 압델은 마지막 여행 후 은퇴해 발더스 게이트 대공이 되었지만, 최후까지 죽지 않고 버티고 있던 미친 바알스폰의 기습으로 결국 사망한다. 그 결과 모든 바알스폰의 신성이 해방되며 과거에 죽은 살육의 신 바알이 부활한 것은 덤이다.
이렇듯 게임 발더스 게이트 시리즈는 명맥이 끊기고, 전통의 주인공 압델 애이드리언도 세계관 상 죽은 것으로 처리되면서, 후속작이 나올 가능성은 더 희박해졌다. 그런데 2019년, 느닷없이 디비니티 시리즈로 인지도를 얻은 벨기에 게임 개발사 라리안 스튜디오가 발더스 게이트 3를 만든다는 소식이 발표됐다. 디비니티: 오리지널 신 2 성공을 본 위저드 오브 더 코스트가 발더스 게이트 3 제작을 제안했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발더스 게이트 3’은 어떤 내용일까? 우선 세월이 세월인 만큼 엔진과 게임성도 완전히 바뀌지만, 줄거리도 바알스폰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대신 완전 새로운 이야기를 다룬다. 바알스폰 사가에서 이어지는 내용을 기대한 옛 팬이 있다면 조금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일단 발더스 게이트 3은 외계에서 온 사악한 종족 일리시드의 비밀스러운 음모를 기반으로 하는 내용으로 보인다. 일리시드는 최근 PAX에서 공개된 동영상에 나온 촉수 달린 얼굴에, 공중에 떠서 움직이는 종족으로, 물질계가 아닌 다른 먼 세상에서 온 기괴한 존재다. 일리시드는 막강한 초능력으로 타인의 정신을 붕괴시키고 노예로 삼으며, 지성을 지닌 종족의 뇌를 먹어 자기 양분으로 삼는 식성 탓에 마인드 플레이어라고도 불린다.
생식 방식도 사뭇 다르다. 또한 일리시드는 올챙이처럼 생긴 유충을 낳고, 이 올챙이를 인간 혹은 유사한 지성을 지닌 종족의 몸에 집어넣는다. 그러면 올챙이는 숙주의 뇌를 파먹고 자신이 새로운 뇌가 된 후에 육체를 점점 변질시켜 새로운 일리시드가 된다. 영상에서 일리시드가 1인칭 시점 주인공 눈에 괴물 올챙이를 넣는 것은 새로운 동족을 만드는 행위인 것이다. 이 함선에 있는 많은 일리시드 시체로 볼 때 이들은 급히 동족을 만들어야 하는 긴박한 상황에 놓인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여기에 새로운 이들이 난입해 일리시드가 탄 노틸로이드 함선을 공격한다. 레드 드래곤을 탄 외계인(?)이다. 이들은 기스양키로, 아주 오래 전 일리시드 제국 노예로 착취되다 반란을 일으켜 독립한 종족이다. 기스양키 여왕은 사악한 드래곤들의 여왕과 계약을 맺어 레드 드래곤을 막강한 탈 것으로 쓸 수 있는데, 이 레드 드래곤 기수들이 적대관계인 일리시드를 모종의 이유로 추적해온 것이다.
이후 영상에서 일리시드는 노틸로이드 스펠잼머 함선을 기동해서 황급히 숙주로 삼을 발더스 게이트 시민들을 납치한 후 본인을 추적하는 기스양키 레드 드래곤 기수들을 피해 도망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심하게 파손된 노틸로이드 함선은 추락하고, 이미 머리에 올챙이가 든 주인공은 가까스로 생존해 불타는 함성 잔해에서 기어 나온다. 발더스 게이트 3은 탈출한 숙주인 주인공 시점에서 시작한다.
그렇다면 게임 내에서는 어떠한 내용이 이어질까? 아직 공개된 정보가 많아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으나, 그 중 주인공 머리에 든 올챙이가 큰 역할을 할 것은 분명해 보인다. 스팀 페이지에 있는 게임 소개 내용에 따르면 주인공은 마인드 플레이어가 뇌에 심은 기생충으로부터 나오는 신비한 힘을 각성하게 된다. 이후 주인공은 새로운 힘을 악에 대항해 쓸 것인지, 그 자신이 악이 될 것인지, 두 갈래로 갈라지는 선택의 기로에 선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주인공은 일리시드가 동족을 늘리기 위해 심은 올챙이로 인해 변이가 시작됐거나, 이미 뇌를 파 먹히고 올챙이가 스스로 인간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상태일 수 있다. 실제로 던전 앤 드래곤 설정상 일부 일리시드는 각성 초기 숙주가 가진 일부 기억을 자기 것으로 착각하기도 하며, 급히 동족을 늘리느라 미성숙한 올챙이를 넣었다면 변이가 특별히 느리게 진전된다고 볼 수도 있다.
라리안 스튜디오는 발더스 게이트 3가 유괴되고, 감염되고, 자기 자신을 잃은(abducted, infected, lost) 주인공이 괴물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내면의 오염이 커지고 강한 힘을 얻어가는 내용을 다룬다고 언급한 바 있다. 살아남기 위해 플레이어는 이 힘을 사용해야만 하지만, 그럴 때마다 변이가 가속돼 괴물이 된다는 이야기다. 현재까지 공개된 정보와 원작 던전 앤 드래곤 설정에 따르면, 그 끝은 주인공 자신이 완전한 일리시드가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