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리딩 엣지, 잘 만든 게임을 묻어버리는 모범적 사례
2020.03.30 18:03게임메카 류종화 기자
최근 모바일게임들은 유저를 오래 머물게 하기 위한 여러 부가 장치들이 매우 잘 갖춰져 있다. 체계적으로 마련된 단계별 보상, 강해지고 있음을 수치나 이미지로 나타내 주는 표현법, 내 캐릭터를 뽐내거나 남들에게 자랑할 수 있는 랭킹/커뮤니티 시스템, 지갑을 열게 만드는 각종 꾸미기 요소들, 어떡해서든 시선을 끌려는 자극적 마케팅까지… 그러다 보니 간혹 메인이 되는 게임 플레이는 취약하거나 몰개성적인 경우도 많다. 덕분에 유저 사이에서는 “재밌어서 하는 건 아니지만 계속 잡게 된다”는 반응이 나오곤 한다. 사실상 게임으로선 주객전도에 가깝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24일 전세계 출시된 닌자 시어리 신작 블리딩 엣지는 이와 완벽한 대척점에 서 있는 게임이다. 이미 두 차례에 걸쳐 체험기를 게재했지만, 게임 자체는 굉장히 재미있다. 그러나 유저를 붙잡아 두기 위한 게임 외적 요소들은 거의 낙제점이다. 그로 인해 공들여 잘 만든 액션이 빛을 보지 못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게임 플레이는 분명 재미있다
블리딩 엣지를 한 마디로 설명하면, 파라곤 같은 3인칭 AOS 시스템에 리그 오브 레전드를 연상시키는 스킬 기반 액션을 기반으로, 오버워치와 비슷한 맵/전략을 사용하는 4 대 4 대전 게임이다. 기본적으로 슈팅이 아닌 액션 게임이기에 정밀한 조준이 필요 없고, 대신 팀웍이나 전술, 위치 선정, 스킬 사용 타이밍 등이 중요하다. 정식서비스 시점에서는 총 11명의 캐릭터를 고를 수 있고, 점령전과 전지 탈취전 두 개의 모드를 즐길 수 있다. 자세한 게임 소개는 아래 체험기 두 개를 참고하자.
정식 버전 역시 일단 게임을 플레이 해 보면 완성도가 높다는 것이 한 눈에 느껴진다. 스킬과 공격 스타일 구성도 체계적이며, 타격감도 나쁘지 않다. 근접 공격 캐릭터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한타 상황이 크게 복잡해 보이지 않는 디자인, 딜러, 힐러, 탱커 모두가 나름대로의 희열이 느껴지는 플레이 등은 개발진의 내공을 짐작케 한다. 여기에 위력적으로 연계되는 스킬 연속기, 상황을 이용해 일발역전이 가능하도록 설계된 맵 구성, 어떤 상황에서건 서로 힘을 합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협력 강조 게임 디자인까지. 단언컨대 여태껏 나온 3인칭 시점 멀티플레이 대전 게임 중에서는 최고 수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블리딩 엣지에 대해 총평을 내리자면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들다. 메인이 되는 게임 플레이는 분명히 더없이 잘 만들었지만, 그를 뒷받침해 주는 주변 요소가 너무 빈약하다. 심지어 ‘츄라이! 츄라이!’조차 하지 않고 멍하니 해줄 사람이 오기를 바라만 보고 있는 형편이다.
정을 붙이기 힘든 메인 화면 및 수집/육성 요소
일단 블리딩엣지 메인 화면을 보자. 전투 개시, 트레이닝, 작업장, 프로필, 소셜, 옵션, 관람 구역, 버그 리포트의 여덟 가지 메뉴가 있다. 사실상 중요한 건 전투 개시와 작업장 정도다 .이는 게임을 실행한 모든 유저가 동일하게 보는 화면이다. 100시간을 넘게 즐겼건, 어제 막 시작했건 간에 이 메인화면은 변하지 않는다. 깔끔해도 너무 깔끔하다. 오버워치도 이와 비슷한 깔끔한 메인을 자랑하지만, 적어도 배경과 캐릭터, 스킨 정도는 매번 바뀐다.
굳이 메인 화면을 지적하는 이유는, 내 계정이 무엇을 얼만큼 달성했는지 확인시켜주는 가장 좋은 공간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 있어서 앞서 언급한 모바일게임들은 필요 이상으로 공을 많이 쏟아서 지저분해지기까지 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인화면에 각종 기능들을 몰아넣는 이유는 게임에 대한 소속감이 들게끔 하기 때문이다. 그 정도까지의 정보를 넣으라는 것은 절대 아니지만, 지금의 메인 구성은 아무리 봐도 싱글플레이 게임에나 어울린다.
내가 이룬 성과를 직접적으로 느끼려면 커스터마이징 메뉴, 일명 ‘작업장’으로 들어가야 한다. 작업장에서 할 수 있는 것은 특정 능력치 강화 카드를 구매하거나 장착하는 ‘개조’, 그리고 스킨이나 보드, 감정 표현 등을 추가로 구매할 수 있는 꾸미기 요소, 마지막으로 캐릭터 배경 스토리를 볼 수 있는 ‘인물 소개’다. 얼핏 봐서는 있을 건 다 있는 느낌이지만, 내용물을 열어보면 역시 빈약하다.
개조는 둘째 치고, 수집 기능인 스킨과 보드, 감정 표현은 너무나도 선택의 여지가 적다. 스킨은 세 개 캐릭터를 제외하면 색 스왑 두어 개 정도가 전부고, 감정 표현도 종류가 서너 개에 불과하다. 게임 캐릭터 대부분이 크건 작건 몸에 기계 장치를 매달고 있음을 감안하면, 이를 통한 개성 표현이 없다는 것이 몹시 아쉽다. 이동 시 타고 다니는 보드를 꾸밀 수 있다는 점은 색다르지만, 11명 캐릭터 중 보드를 안 타고 다니는 캐릭터가 네 명이나 된다. 이들에게는 탈 것 커스터마이징 선택지가 아예 주어지지 않는다. 이제 막 서비스를 시작했음을 감안하더라도, 수집욕을 자극하는 요소가 거의 없다는 것은 정말 아쉬운 부분이다.
레벨 디자인도 애매하다. 게임을 하다 보면 캐릭터/계정 레벨이 오르는데, 이걸 쓰거나 자랑할 데가 거의 없다. 물론 레벨이 오를수록 개조 카드를 더 많이 얻고, 얻은 돈으로 다른 다양한 개조 카드나 스킨 등을 살 수 있긴 하지만, 게임 플레이에 있어 큰 메리트는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내 레벨을 자랑이라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게임 내에서 타 유저의 레벨을 보려면 꽤나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하기에 내 레벨을 보는 사람이 있기나 할까 싶다.
이런 부분이 빈약한 데는 아마도 개발사 닌자 시어리가 멀티플레이 전용 게임에 도전해본 적이 없다시피 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닌자 시어리 전작들을 보면 헤븐리 소드, DmC: 데빌 메이 크라이, 디즈니 인피니티, 헬블레이드: 세누아의 희생 등 싱글 플레이 위주 게임이다. 이들은 메인 콘텐츠만 잘 만든다면 나머지 요소에는 큰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 아마 블리딩 엣지 개발에서도 이와 같은 생각이지 않았나 싶다. 멀티플레이 게임 서비스에 경험이 많은 모회사 MS 측에서 보강해 줬어야 하는 부분이었지만, 그렇지 못한 채 출시되고 말았다.
불친절하고 불편한 게임 소개, 인지도도 바닥
신규 유저들이 블리딩 엣지 같은 완전 신작 멀티플레이 게임을 제대로 즐기려면, 게임을 좀 더 쉽게 접하고, 익히고,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여러 요소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블리딩 엣지는 이러한 면에서도 다소 불친절하다.
먼저 게임을 익히는 부분에서는 조작법을 알려주는 튜토리얼을 제외하면 사실상 거의 방치돼 있다. 트레이닝 룸에 들어가면 튜토리얼 외에 훈련장과 용어 사전 메뉴가 있는데, 이 두 가지는 죄다 낙제점이다. 먼저 훈련장은 양한 스킬을 활용해 볼 수 있는 공간이지만, 적 두 명과 아군 한 명이 멀뚱멀뚱 서 있는 것이 전부다. 움직이지도, 서로 공격을 하지도 않는다. 단순한 공격 스킬은 얼마든지 활용해 볼 수 있지만, 치료나 버프, 디버프 스킬 등은 어떤 것인지 전혀 확인해 볼 수가 없는 구조다. 용어 사전으로 가 보면 더욱 난감하다. 한국어화 과정에서 어떤 오류가 났는지, 아이콘 이름 외에는 글자가 전부 깨져 있다.
캐릭터 활용 가이드는 더욱 찾아보기 힘들다. 이전부터 공개한 캐릭터별 공략 영상들이 인게임에 들어있긴 한데, 별로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관전 구역’ 메뉴로 가야만 나온다. 이마저도 메뉴를 열고 나서 20~30초간 검은 화면으로 표시되고, 이를 기다렸다가 영상을 클릭하면 인게임 재생이 아니라 게임이 잠시 작업 표시줄로 내려간 후 유튜브 웹사이트가 따로 뜬다. 더불어 해당 영상들의 한국어 번역은 제공되지 않는다.
캐릭터 배경 정보도 알기 힘든 곳에 숨겨져 있다. 캐릭터 배경 스토리는 작업장-캐릭터-인물 소개에 가야 나오는데, 이 세계에서는 대체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캐릭터 간 관계는 어떤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전혀 쓰여 있지 않다. 한국어 설명 역시 번역기를 돌린 듯한 문체로 이해가 어려우며, 정보를 추가적으로 접할 만한 공식 사이트는 그마저도 군데군데 번역이 되다 만 채 방치돼 있다.
마케팅 역시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느낌이다. 게임이 출시된 24일부터 스팀이나 MS스토어 등 메인 화면에서는 블리딩 엣지가 표시되지 않는다. MS가 퍼블리싱을 맡은 작품 치고는 꽤나 초라한 등장이다. 해외 리뷰 종합 사이트인 메타크리틱에는 게임이 출시된 지 일주일 만에 겨우 17개의 리뷰가 올라왔다. 매체 리뷰 수 만으로 마케팅 정도를 판단할 순 없지만, E3 2019에서 대대적으로 소개된 게임 치고 관심을 갖는 매체가 별로 없다는 것은 뭔가 찝찝한 부분이다.
국내 마케팅은 사실상 절멸 상태다. 대다수 국내 게이머들은 아직까지도 이 게임의 존재조차 모른다. 한국이나 아시아 유저들에게 눈도장을 찍을 만한 게임이 아니라는 퍼블리셔 측 판단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광고는 물론 흔한 출시 보도자료 하나 찾아볼 수 없다. 트위치에 한글로 블리딩 엣지를 검색해보면 한 손에 꼽을 만큼의 영상만이 올라와 있다. 심지어 1주일 간 올라온 영상은 고작 두 개다. 영문 카테고리 역시 별로 활성화 돼 있지 않다. 명색이 MS 퍼스트파티 게임이건만, 인지도는 아주 약간 알려진 인디게임 급이다.
블리딩 엣지의 사례로 본 메인 플레이 외 요소들의 중요성
분명 블리딩 엣지의 메인 게임 플레이는 훌륭하다. 기자를 포함해 현재 게임을 즐기고 있는 유저 대다수는 잘 짜여진 4 대 4 대전의 손맛에 몰두하는, 게임 그 자체에 반한 이들이다. 개인적으로는 앞으로도 얼마간 계속 이 게임을 플레이 할 것이다. 그러나 일반 유저들은 그렇게 설득하기 쉬운 존재가 아니다. 잘 만든 게임을 돋보이게 해 줄 부가 요소들이 없다시피 한 이 상황에서, 이 게임의 매력을 이해해 줄 사람은 많지 않다.
고급 레스토랑과 분식집 비유처럼, 블리딩 엣지를 식당에 비유하자면 엄청나게 맛있는 스테이크를 구워 파는 맛집임은 틀림 없다. 다만, 제대로 된 식당이 아니라 인적 드문 골목길 구석에 조그마한 좌판을 열고, 잘 숙성시킨 한우 1++ 꽃등심을 맛깔나게 구워낸 후 대충 잘라 종이컵에 넣고 이쑤시개 하나 꽂아준 채 판매하는 모습이다. 제대로 된 의자도, 접시도, 사이드도, 포크와 나이프도 없다. 심지어 골목길 안쪽에 스테이크집이 있다는 광고판도 없다. 그저 메인요리 맛 하나 믿고 무작정 창업에 뛰어든 실력파 요리사 를 보는 느낌이다. 창업 일주일 째, 소수 단골은 있지만 재료가 돌지 않는 악순환이 벌써부터 시작되고 있다.
만약 이런 식당을 골목식당 백종원 대표가 봤다면, 이런 점들을 지적하고 업그레이드 할 수 있는 방안을 찾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을까 싶다. 블리딩 엣지에서 이러한 역할은 닌자 시어리 모회사인 MS가 맡아야 할 부분이었다. 현 상황은 베테랑 요리사 닌자 시어리가 스테이크를 잘 구워냈지만, 멘토이자 모회사인 MS의 방치 속에 아무도 오지 않는 골목길 구석에서 홀로 식어가고 있는 모습이다.
개인적으로는 너무 많은 정보를 나열한 정신 없는 메인 UI와 필요 이상으로 많은 수집 요소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오히려 심플한 것이 낫다. 다만 블리딩 엣지 사례처럼 메인 전투 하나만 믿고 다른 부가 요소들을 소홀히 한다면, 기껏 잘 만든 게임도 빛을 보지 못한 채 묻혀버릴 수 밖에 없다. 게임에서 메인 콘텐츠 외적인 부분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돼야 하는지에 대한 정답은 없지만, 적어도 블리딩 엣지보다는 높아야 한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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