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하자드 RE:3, 풀프라이스는 비싸오 40딸라로 합시다
2020.04.09 18:47게임메카 이재오 기자
바이오하자드 RE:2는 고전게임 리메이크의 새로운 기준이라는 평가를 만큼 성공적인 작품이었다. 서바이벌 호러 장르가 갖고 있어야 할 긴장감은 극대화하고, 기존의 게임성은 유지하면서 최신 기술에 기반한 그래픽과 사운드, 연출, 게임플레이를 완벽하게 결합하는 데 성공했다. 실제로 바이오하자드 RE:2는 리메이크 작품임에도 여러 매체에서 GOTY로 선정할 만큼 좋은 평가를 받았다.
바이오하자드 RE:2가 2019년의 포문을 화려하게 열어젖혔으니, 지난 3일에 출시된 '바이오하자드 RE:3'도 그만큼의 완성도를 보여주길 바란 팬들이 많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번 작품은 그만큼의 재미를 선사하지는 못했다. 물론 그래픽이나 사운드, 게임 플레이 자체는 2편 못지않게 뛰어나지만, 게임의 전반적인 볼륨이 7만 원짜리 게임이라고 보기엔 지나치게 작은 것이 화근이었다. 안 그래도 짧았던 원작에서 많은 부분이 잘려 나가면서 플레이 타임이 눈에 띄게 짧아진 것이다.
RE:2와 같은 듯 다른 느낌
바이오하자드 RE:3는 1999년에 출시된 바이오하자드3: 라스트 이스케이프를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질 발렌타인과 또 하나의 주인공 카를로스 올리비에라가 좀비 사태가 벌어진 라쿤시티에서 생존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원작과 마찬가지로 게임 내 시간대는 2편과 거의 동일하며, 사건이 벌어지는 장소도 라쿤시티로 똑같다. 때문에 2편에서 등장하는 인물의 뒷 사정이나 배경 등도 볼 수 있다. 가령 2편 초반에서 주인공을 도와주던 마빈 브래너가 어쩌다 감염이 됐는지, T바이러스가 어디서 연구됐는지 등을 다른 시점에서 목격하게 된다.
전반적인 게임 시스템이나 그래픽 역시 RE:2와 상당히 유사하다. 조작법이나 UI 구성부터 추가 부품이나 화약, 약초를 조합하는 요소가 그대로 들어가 있다. 심지어는 전작에서 큰 호평을 받았던 관절 파괴 시스템과 고어 연출도 그대로 들어가 있다. 총으로 공격하면 할수록 외피가 날아가서 뼈만 남는다던가, 샷건에 맞으면 머리가 통째로 날아가는 것도 여전하다.
물론 전작과 마냥 똑같기만 한 것은 아니다. 가장 큰 차이점으로는 원작 바하3에 있던 긴급회피 시스템이 추가됐다. 여러 액션게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저스트 회피 시스템으로 적이 공격하는 순간에 조준이나 회피 버튼을 누르면 발동한다. 벽에 부딪히면 막히기도 하고 발동 판정도 상당히 까다로운 편이지만, 성공하게 되면 강력한 적의 공격도 안정적이고 효율적으로 피할 수 있다. 조준 버튼을 함께 눌러서 발동되는 불렛타임을 활용하면 적에게 다량의 대미지를 가할 수도 있어 사실상 이번 작품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리메이크 답게 많은 설정이 바뀌었다. 브래드 비커스 같은 조연 캐릭터들의 설정이 일부 변경되었으며, 원작에 없던 구역인 하수도나 T바이러스 연구소가 생기기도 했다. 특히 원작에선 조연 캐릭터에 불과했던 카를로스를 직접 플레이할 수 있게 됐다. 특히 카를로스는 베테랑 용병이란 설정 답게 긴급회피 동작을 통해 적에게 큰 피해를 입힐 수 있으며, 다양한 무기를 다룰 수 있는 강력함을 자랑한다. 전반적으로 생존을 신경 써야 하는 질과는 다른 감각으로 플레이를 할 수 있다.
완벽했던 전작만큼 훌륭한 게임성
RE 엔진을 사용한 만큼 전작 못지않은, 아니 어쩌면 전작보다 더욱 뛰어난 그래픽과 연출을 보여준다. 경찰서 내부 같은 실내에서만 이야기가 진행된 전작에 비해 시가지나 넓은 실험실 등을 배경으로 삼으면서 좀 더 많은 표현이 가능해졌다. 특히 네메시스나 B.O.W와의 추격씬, 마지막 최종보스전에서 등장하는 레일건 장면은 최근 출시된 둠 시리즈 못지 않은 화려함을 보여준다.
음향 연출은 전작보다 더욱 한층 더 진보했다. 당장에 RE:2만 해도 좀비의 뼈가 부러지거나 머리가 터지는 소리, 무기를 사용하는 소리를 공간의 넓이와 모양에 맞춰서 정교하게 표현한 것으로 유명했다. 이번 작에서는 거기서 더욱 많은 음향이 추가되고 시가지나 개활지 등 좀 더 많은 장소가 등장함에 따라 훨씬 더 풍부하고 정교한 질감의 사운드를 즐길 수 있다. 5.1 채널을 지원하는 헤드셋으로 게임을 즐긴다면 가히 ASMR에 맞먹는 세부적인 사운드 디자인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시리즈 특유의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도 칭찬할 만하다. 전작에서 한 번씩 만나본 느릿느릿한 좀비임에도 불구하고 죽었다고 생각한 좀비가 다시 살아나서 습격할 때의 공포는 여전하다. 여기에 네메시스나 헌터 감마, 리커 같은 새로 추가된 괴물들은 강력한 생체 병기의 위엄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 특히 도망칠 곳이 없는 하수구에서 갑작스레 떼거리로 등장하는 헌터 감마의 공룡을 닮은 외형과 4방향으로 벌어지는 이중 턱은 플레이어에게 굉장한 심리적 압박을 전해준다.
7만 9,000원을 받기엔 너무나도 적은 볼륨
게임 자체의 완성도는 나쁘지 않지만, 바이오하자드 RE:3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하나 존재한다. 바로 플레이 타임이 극도로 짧다는 것이다. 전작을 플레이해본 유저가 작정하고 플레이를 진행하면 보통 4~5시간 내로 엔딩을 보는 것이 가능할 정도다. 심지어는 출시 당일 영상 스킵 없이도 2시간 내로 게임을 클리어하는 유저가 꽤 많이 나오기도 했다. PS4 기준 7만 9,000원 게임의 1회차 플레이가 이처럼 잛다는 것을 반길 유저는 많지 않다.
게임 플레이가 이렇게 짧아진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일단 원작에 포함되어 있던 다양한 이벤트나 스토리 분기, 멀티엔딩이 전부 삭제돼 버렸다. 물론 원작의 멀티엔딩 시스템이 모든 유저를 만족시켰냐 하면 그렇진 않다. 그렇기에 많은 팬들이 리메이크에선 좀 더 다듬어진 스토리를 원했다. 하지만, 이번 작품의 시나리오는 원작에 비해서 딱히 뛰어나다고 하기엔 에피소드도 적고 개연성도 떨어진다. 이를테면 작중에서 네메시스는 몇 번이고 질을 죽일 수 있음에도 스토리 진행을 이유로 질을 놓아준다. 카를로스가 연락이 두절된 질을 꾸역꾸역 잘도 찾아내는 것은 덤이다.
스토리가 개편되면서 게임 진행 또한 아주 단순한 선형적 구조로 바뀌었다. 길찾기를 할 필요가 없을 만큼 진행 방향이 정확히 정해져 있으며, 굳이 주변을 들러서 탐색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숨겨진 요소도 전무하다. 원작에선 라쿤시티라는 작지만 명확한 오픈월드를 스스로 돌아다니면서 단서를 찾는 재미를 느낄 수 있었지만, 이번 작품은 인터렉티브 영화를 감상한다는 느낌으로 정해진 구간을 돌파해 컷신을 보고, 보스전을 치른 뒤 컷신을 보는 것의 반복이다. 이런 식이니 게임 플레이 타임이 길어질래야 길어질 수가 없다.
네메시스의 위엄도 전작의 타이런트에 비하면 상당히 약하다. 전작의 타이런트는 게임이 진행되는 중간에 불규칙적으로 등장해 플레이어를 괴롭히고 유저의 게임 진행을 방해했다. 하지만 네메시스는 정해진 구간에만 딱 등장하는 평범한 보스 정도로 전락했다. 네메시스가 등장해도 붙잡히지 않을까 걱정되기 보다는 보스전이 시작된다는 느낌 밖에 들지 않는다. 그마저도 네 번의 보스전 중에서 두 번은 사실상 이벤트 전에 가깝기 때문에 긴장감이 확 떨어진다.
더불어 전반적으로 게임의 진행을 빠르게 만들어주는 요소가 많이 추가된 것도 게임의 공포감을 저해한다. 당장에 긴급회피라는 것이 생기다 보니 좀비를 상대하지 않고도 대부분의 구간을 안전히 지나갈 수 있다. 더불어 카를로스 시점에서 진행하게 되는 경찰서 에피소드는 RE:2에 나왔던 맵을 그대로 사용했으며, 등장하는 좀비나 아이템 배치도 그와 비슷하다 보니 길을 헤매거나 탐색에 시간을 들일 일이 없다. 플레이어 입장에선 한 편의 완성된 게임보다는 2편의 DLC 정도로 느껴지는 것도 과언이 아니다.
아쉽게 끊긴 캡콤의 연타석 홈런
종합해보자면, 바이오하자드 RE:3는 전작의 호평받았던 시스템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만큼 게임성 자체는 굉장히 뛰어나다. 아무리 무섭고 보스전이 어려워도 계속해서 게임을 진행하고 싶었을 만큼 게임 플레이 자체는 상당히 재밌었다. 특히, 중후반쯤에 벌어지는 좀비들의 단체 공격이나, 네메시스와의 2차전은 제한된 자원과 한정된 공간에서 펼치는 바이오하자드 특유의 보스전을 잘 구현해냈다. 재미있는 부분이 많아 더욱 단숨에 게임을 클리어하게 된 것도 있다.
하지만 게임을 모두 클리어하고 나서 드는 생각은 '벌써 끝이야?'였다. 네메시스와의 보스전을 몇 번 거듭하다보니 게임이 끝나버린 느낌이었다. 게임 자체가 굉장히 짧고 탐색할 요소도 적고, 보스전도 비슷한 형식의 연속이라 굳이 반복 플레이를 할 이유도 없었다. 전작의 풍부한 분량과 공포감에 젖어 비싼 돈을 주고 게임을 구매한 유저 입장에선 더할 나위 없이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최근 몇 년간 '바이오하자드 7'을 기점으로 연타석 홈런을 날린 캡콤이기에 '바이오하자드 RE:3'의 부진이 더욱더 아쉽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