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게임광고] 이 캐릭터들이 베이비복스입니다
2020.07.13 16:14게임메카 류종화 기자
한국 게임의 성숙기였던 1990년대를 기억하십니까? 잡지에 나온 광고만 봐도 설렜던 그때 그 시절의 추억. '게임챔프'와 'PC챔프', 'PC 파워진', '넷파워' 등으로 여러분과 함께 했던 게임메카가 당시 게임광고를 재조명하는 [90년대 게임광고] 코너를 연재합니다. 타임머신을 타고 90년대 게임 광고의 세계로, 지금 함께 떠나 보시죠.
90년대 중후반부터 국내 게임시장에 연예인을 소재로 한 게임들이 속속 등장했습니다. 정확히 1996년 출시된 '컴백 태지 보이스' 이후 꽤 다양한 연예인 게임이 나왔습니다. '나의 신부' 엄정화, '핑클의 패스트푸드' 핑클, '보아 인 더 월드' 보아, '젝스키스 키우기' 젝스키스 등이 대표적이었죠. 이 중 몇 가지는 [90년대 게임광고] 코너를 통해 이미 소개해 드린 바 있네요.
그리고 여기, 또 하나의 연예인 소재 게임이 있습니다. 다만, 이 게임은 얼핏 봐서는 무슨 연예인을 대상으로 했는지 잘 모를 정도로 데포르메가 심합니다. 게임 자체도 정식 출시됐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정보가 없기에, 아마 이 게임을 처음 보시는 분도 많을 겁니다.
위 광고에서 확인할 수 있듯, 이 게임은 당시 한국을 넘어 중국에서도 인기를 끌던 걸그룹 베이비복스를 소재로 한 게임입니다. 게임 제목은 '베이비복스의 엔젤+'인데요, 아마도 당시 팬클럽 명칭이 '엔젤'이었던 점을 반영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일단 게임 소개를 보겠습니다. '베이비복스와 함께 위기 일발의 지구를 구하자!'라는 멘트를 볼 때, 베이비복스 캐릭터들을 조작해 뭔가 지구의 위기를 헤쳐나가는 판타지 게임일 것 같습니다. 재미있는 무기와 엽기적 아이템 선정이라는 설명, 광고 맨 아래 그려져 있는 악당(?) 캐릭터들, 온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다는 멘트를 보면 장르는 왠지 횡스크롤 액션 같네요. 그 외 게임에 대한 소개가 없어서 정확히 어떤 게임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게임명이나 개발사명으로 검색해 봐도 아무 정보가 나오지 않는 것으로 보아 정식 출시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 광고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 게임으로 구현된 베이비복스 멤버들의 모습은 아래에 나옵니다. 사실, 최근에야 그래픽 기술 발전과 페이스 스캐닝 등을 통해 실제와 거의 같은 캐릭터를 게임에 구현할 수 있지만, 당시만 해도 실사 기반 게임이 아닌 이상 어느 정도 데포르메나 캐릭터화는 필수였습니다. 결국 관건은 제한된 환경 하에서 얼마나 대상의 매력을 잘 표현하는가인데, 이 게임은 그 부분이 좀 애매합니다. 캐릭터만 봐서는 도저히 베이비복스가 떠오르지 않고, 심지어 알고 봐도 누가 누군지 모르겠네요.
그에 대한 해답은 다음 장에 나옵니다. 각 멤버들 사진과 캐릭터가 나란히 놓여 있는데, 솔직히 저렇게 놓고 봐도 헤어스타일이 비슷한 이희진이나 심은진을 제외하면 누가 누군지 잘 모르겠습니다. 각 멤버들마다 'XX의 천사'라는 식으로 캐릭터가 붙어 있는데, 김이지는 불, 이희진은 얼음, 심은진은 바람, 간미연은 꽃, 윤은혜는 꿈입니다. 윤은혜의 경우 당시 'X맨'에서 소녀장사 이미지가 붙기 전이었는데, 그 후였으면 '힘의 천사'가 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일단 나름대로 캐릭터에 맞는 특성도 배분돼 있습니다. 불의 천사 김이지는 동료들에게 불처럼 강한 파워를 주고, 얼음의 천사 이희진은 적을 얼려서 행동을 둔화시킵니다. 꿈의 천사 윤은혜는 팀원의 분신을 만들어내 환상을 보여주네요. 다만 바람의 천사 심은진 특성은 돌풍으로 적의 공격력을 감소시키고, 꽃의 천사 간미연은 적의 사선에 꽃을 뿌려 위치를 파악할 수 없도록 한다는 등 직관적인 능력은 아닙니다. 참고로 간미연 이름을 자세히 보면 간미'현'이라는 치명적 오타가 있네요.
이 게임이 다른 연예인 게임들처럼 주목받지 못한 이유를 꼽아보자면, 아마도 팬층 파악 실패가 아닐까 합니다. 당시 베이비복스는 20~30대 남성들에게 특히 인기가 많았던 그룹이었는데, 게임은 초등학교 저학년쯤을 공략하는 아동용 스타일로 기획된 것처럼 보입니다. 여기에 기존 멤버들의 모습이 거의 떠오르지 않는 캐릭터들이 전면에 나선다는 점도 팬 게임으로서는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어쨌든, 이 게임을 비롯한 많은 실패사례를 통해 국내에도 팬 게임에 대한 흥행 공식과 기준이 확실해졌고, 보아 인 더 월드나 BTS 월드 등으로 이어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팬 입장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 기반 게임이 나온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환영할 일이지만, 무조건적인 응원을 보내진 않는다는 점은 명심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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