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기행] 타이의 대모험, 드퀘 외전에서 당당한 주연으로
2020.07.24 16:41게임메카 이새벽
지난 12월 처음 발표된 타이의 대모험 게임이 꾸준한 관심을 받고 있다. 소년 점프 히트작으로 큰 인기를 누리고 애니메이션도 화제를 모은 데다 국내에서도 높은 인지도를 가지고 있기에 진작 게임으로 나왔어도 이상하지 않은데, 그동안 감감무소식이다 연재 종료 23년 만에 예고 없이 게임화가 발표되니 살짝 의아한 느낌도 든다.
사실, 타이의 대모험은 탄생부터 게임과 깊은 관계를 가진 작품이었다. 애초에 이 만화는 게임 드래곤 퀘스트 만화화 과정에서 나온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게임 원작 미디어믹스로 만들어진 만화가, 다시 게임으로 돌아간 셈이라 볼 수도 있겠다. 이번 주는 90년대 만화 타이의 대모험과 그 뿌리가 되는 드래곤 퀘스트 간의 트리비아를 살펴보자.
JRPG 대부 드래곤 퀘스트와 만화잡지 소년 점프의 인연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타이의 대모험은 드래곤 퀘스트와 깊은 관계를 넘어 스핀오프작에 해당한다. 애초에 만화 원제가 ‘드래곤 퀘스트 -다이의 대모험-(DRAGON QUEST -ダイの大冒険-)’이니까. 타이의 대모험이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의 일환으로 제작된 배경에는 게임 개발자 호리이 유지와 소년 점프 간의 인연이 있다.
호리이 유지는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 디렉터로 유명하지만, 본래는 문학도로 만화가 시나리오 작가를 지망하고 있었다. 그는 대학 졸업 후 만화보다는 평론에 집중해 여러 잡지에 글을 투고했는데, 소년 점프도 그가 글을 투고하던 잡지 중 하나였다. 소년 점프에서 그는 문학계에서 쓰이는 방식의 만화 평론을 내놓으며 프리 라이터로서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1981년, 호리이 유지는 사무 작업을 위해 컴퓨터를 구입하며 디지털 게임을 접하게 됐다. 대학 시절부터 취미로 마작이나 주사위 게임의 규칙을 분석하던 그는 금방 컴퓨터 게임에 빠져, 직접 컴퓨터 언어를 배워 기초적인 게임을 만들기에 이르렀다. 그가 주로 기고하던 소년 점프는 게임 기사도 취급하고 있었는데, 호리이는 기존에 쓰던 만화 평론에 더해 게임 평론에도 발을 내딛었다.
호리이 유지는 컴퓨터 게임을 시작한 이래 개발과 잡지 평론을 병행하며 빠르게 내공을 쌓았다. 그러던 호리이가 전업 게임 개발자로 직종을 전환하게 된 계기 역시 소년 점프를 통해 찾아왔다. 1982년 게임 개발업체 에닉스가 개최한 아마추어 게임 개발 대회를 소년 점프가 독점적으로 취재했는데, 호리이가 마침 취재원으로 행사장에 간 것이다.
호리이 유지는 대회 취재 뿐 아니라, 직접 만든 테니스 게임을 출품해 입상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 과정을 취재해 기사로 실었다. 당시 다른 입상자들은 같이 상을 받은 호리이가 자신들을 취재하는 상황에 다소 당황했다고 전해진다. 어쨌든, 부상으로 호리이는 1983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애플페스트라는 게임 행사에 참가할 수 있게 됐고, 이는 그가 전업 게임 개발자의 길로 들어서는 전환점이 됐다.
당시 애플페스트에 출품된 ‘울티마 3: 엑소더스’와 ‘위저드리 3: 릴가민의 유산’ 등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은 호리이는 에닉스에 입사해 개발자가 됐으며, RPG를 만들겠다는 강한 뜻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입사 후 몇 해가 지나 탄생한 RPG가 바로 드래곤 퀘스트다.
드래곤 퀘스트 개발 및 출시 과정에서도 호리이 유지와 소년 점프와의 인연은 끊이지 않았다. 에닉스 입사 이후에도 그는 정기적으로 소년 점프에 게임 관련 글을 기고했는데, 드래곤 퀘스트 발매 당시에도 자신의 야심작 홍보를 소년 점프에 적극적으로 요청했다. 여기에 역으로 소년 점프 측은 당시 만화 ‘닥터 슬럼프’로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던 만화가 토리야마 아키라를 아트 디자이너로 소개해주기도 했다. 만화업계 인맥이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 정착에 적지 않은 역할을 한 셈이다.
익히 알다시피 드래곤 퀘스트는 파이널 판타지와 함께 일본을 대표하는 양대산맥 RPG로서 어마어마한 인기를 모았다. 이러한 상승가도는 1987년 드래곤 퀘스트 2, 1988년 드래곤 퀘스트 3까지 계속됐다. 시리즈가 연달아 성공을 거두자, 후속작 드래곤 퀘스트 4에 더욱 큰 기대가 걸린 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타이의 대모험은 원래 드래곤 퀘스트 4 지원용 만화였다
드래곤 퀘스트 4 출시 일정이 1990년으로 잡힘에 따라 에닉스는 다양한 미디어믹스로 시장 기대를 더욱 고조시키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 계획의 중심에는 전작부터 홍보에 많은 도움을 제공해 온 소년 점프가 있었다. 이번에도 소년 점프는 드래곤 퀘스트 4 개발 기사에 더해, 아예 드래곤 퀘스트와 세계관을 공유하는 만화를 연재하기로 결정다. 그렇게 단편 연재로 시작한 만화가 바로 타이의 대모험이다.
여담이지만, 미디어믹스로 타이의 대모험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국내에서 ‘아벨 탐험대’라는 이름으로 방영됐던 TV 애니메이션 드래곤 퀘스트도 있었다. 스튜디오 코메트에서 제작하고 후지테레비에서 방영한 이 애니메이션 역시 호리이 유지가 방향성을 잡고 토리야마 아키라가 디자인 원안을 맡았다. 여기엔 훗날 출시될 드래곤 퀘스트 4 캐릭터들이 카메오로 등장해 기대를 높이는 데 일조하기도 했다.
아벨 탐험대와 달리, 타이의 대모험은 드래곤 퀘스트와 세계관은 공유하지만, 아예 원작 시리즈와 이어지지 않는 방향을 택했다. 스토리 역시 마왕이 처단된 세계에서 온순해진 몬스터들과 함께 자란 소년 타이가 사부 아방을 만나 세계로 나서고, 여러 가지 모험을 하며 동료들과 함께 세계의 위기를 구한다는 100% 오리지널 스토리를 다룬다. 그렇기에 타이의 대모험은 정식 명칭이 ‘드래곤 퀘스트: 다이의 대모험’ 임에도 불구하고, 게임과는 거의 접점이 없는 만화가 되었다. 사실상 강도 높은 외전 작품이었다.
이는 에닉스 산하 잡지 소년 간간에서 1991년 연재를 시작한 ‘드래곤 퀘스트 열전 로토의 문장’과는 대비되는 특징이었다. 이 만화는 게임 드래곤 퀘스트 3를 바탕으로, 원작 지역 및 캐릭터가 거의 그대로 등장한다. 다만 스토리는 게임과 차이가 난다. 호리이 유지 설명에 따르면 게임과 로토의 문장은 일종의 평행세계로, 원작 세계관과 설정은 그대로 쓰지만 스토리 전개는 게임과 다르게 설정했다. 덕분에 역으로 원작 팬들은 더욱 흥미롭게 볼 수 있었다.
물론 타이의 대모험도 드래곤 퀘스트 세계관을 배경으로 하기에, 몬스터를 보면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에 등장하는 것들이 다수 있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많은 설정이 만화에만 등장하는 오리지널 요소며, 주요 마법 대부분은 게임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드래곤 퀘스트 팬이라면 묘한 향수를 느낄 만한 요소가 분명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한 눈에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라고 알아볼 정도의 연관성은 찾기 힘들었다.
만화 이름에 드래곤 퀘스트를 빼고 ‘타이의 대모험’이라는 이름으로 소개된 국내에서는 특히 오해가 심했다. 일본에서는 그래도 제목에 드래곤 퀘스트가 붙어 있으니 어쨌건 연관성을 인지라도 하고 있었지만, 국내에서는 이 만화가 원작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나 과거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는 한국어화가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라이트 게이머들은 그 존재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게임 홍보를 위해서 기획된 만화였지만, 정작 국내에서는 원작보다 만화 자체만 유명해진 아이러니한 경우다.
이렇듯 타이의 대모험은 원작 게임과 큰 접점이 없었다. 그러나 만화가 큰 인기를 얻으며 장기 연재됨에 따라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원작 게임 시리즈가 타이의 대모험 오리지널 설정을 역수입한 것이다. 예컨대 ‘메드로아’라는 파괴마법은 본래 만화에만 나오는 주문이었지만, 훗날 드래곤 퀘스트 11에 정식 추가된 식이다.
다만, 큰 인기에도 불구하고 타이의 대모험 게임화 시도는 이상하리만치 이루어지지 않았다. 만화와 애니메이션이 한창 인기를 끌던 90년대에는 물론, 2000년대 들어서도 몇몇 점프 캐릭터 작품에 참전하거나 타 게임과 콜라보 한 것을 제외하면 게임과는 연이 없었다. 그러던 2019년 12월, 스퀘어에닉스는 원작 만화 연재 종료 23년 만에 타이의 대모험 게임화를 발표했다. 그것도 동시에 세 개씩이나.
2021년 출시되는 타이의 대모험 게임, 어떤 것들이 있나?
2020년 5월 27일, 소년 점프는 공식 유튜브 채널의 ‘드래곤 퀘스트의 날 특별방송’을 통해 타이의 대모험 게임에 대한 상세한 내용을 공개했다. 그 중 역시 가장 큰 주목을 받는 것은 드래곤 퀘스트의 산실인 스퀘어에닉스에서 직접 제작하는 콘솔게임 ‘드래곤 퀘스트 타이의 대모험: 인피니티 스트랏슈’다.
이 게임은 원작의 화풍을 거의 그대로 3D 그래픽으로 옮긴 캐릭터들이 등장해, 만화에 나왔던 기술들로 마왕군을 물리치는 구성을 갖추고 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원작 대표 기술 ‘아방 스트랏슈’ 등을 통해, 만화 속 결투를 직접 재현할 수 있는 점을 특징으로 내세우고 있다. 그 외에도 대전 카드 아케이드 게임인 ‘드래곤 퀘스트 타이의 대모험: 크로스 블레이드’, 모바일게임 ‘드래곤 퀘스트 타이의 대모험: 혼의 유대’도 제작 중이다.
타이의 대모험은 드래곤 퀘스트에서 파생돼, 일각에서는 게임보다 더 높은 인기를 누린 만화다. 게임화 시기가 이토록 늦어진 이유는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아마도 판권에 두 개 이상의 회사가 얽혀 있는 등 어른의 사정 때문이 아니었나 추측해본다. 이제 본격적으로 게임 정벌에 나선 타이의 새로운 모험이 어떻게 진행될 지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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