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게임광고] 어스토는 전주곡에 불과? 포인세티아
2020.08.24 14:24게임메카 류종화 기자
한국 게임의 성숙기였던 1990년대를 기억하십니까? 잡지에 나온 광고만 봐도 설렜던 그때 그 시절의 추억. '게임챔프'와 'PC챔프', 'PC 파워진', '넷파워' 등으로 여러분과 함께 했던 게임메카가 당시 게임광고를 재조명하는 [90년대 게임광고] 코너를 연재합니다. 타임머신을 타고 90년대 게임 광고의 세계로, 지금 함께 떠나 보시죠.
1994년, 손노리팀이 개발한 어스토니시아 스토리는 국산 RPG 사상 최초로 흥행에 성공했습니다. 이 작품에 자극을 받은 수많은 개발자들이 RPG 제작에 뛰어들었는데, 훗날 '창세기전' 시리즈를 만드는 최연규 역시 어스토니시아 스토리 데모를 보고 창세기전의 모태가 된 RPG '윈드로시아' 개발을 시작했다고 밝힌 바 있죠. 이처럼 어스토니시아 스토리가 국내 게임업계에 가져온 파장은 매우 컸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어스토니시아 스토리 배급사였던 소프트라이는 이러한 흥행 돌풍을 이어가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다만, 제작사인 손노리 팀을 잘 대우해서 차기작을 만드는 것 대신 자신들이 직접 말이죠. 그렇게 나온 게임이 바로 국산 RPG 업계의 괴작이라 불리는 포인세티아 입니다.
제우미디어 게임챔프 1999년 8월호에 실린 포인세티아 광고입니다. '95년 소프트라이 최고의 야심작'이라는 멘트와 함께 '어스토니시아 스토리는 포인세티아의 전주곡에 불과했음을' 이라는 멘트가 보입니다. 사실, 당시 어스토니시아 스토리 흥행에 대한 수입이나 명예는 대부분 배급사인 소프트라이가 가져갔습니다. 일부에서는 소프트라이를 개발사로 소개하기도 했을 정도니까요. 지금처럼 정보 공유가 활발하던 때가 아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그렇기에 광고를 본 일반 게이머들은 '어스토 개발사(?) 소프트라이의 차기작?', '어스토니시아 후속작인가?'라며 기대를 걸었죠.
일단 멘트는 접어두고 광고 내 일러스트만 보면 조금 애매한 느낌입니다. 당시 CG 수준이 그리 좋진 않았던 것을 감안해도, 2면짜리 광고에 실린 일러스트 품질이 굉장히 조악합니다. 누가 선역인지 악당인지도 잘 모르겠고, 게임 세계관이나 주인공도 제대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즉, '어스토니시아는 서막에 불과'라는 멘트 없이는 그다지 좋은 광고라 볼 수 없습니다.
이 게임은 당시 소프트라이가 운영 중이던 게임 교육기관인 게임스쿨에서 제작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게임스쿨 학생들이 만든 것인지, 재직 중이던 강사들이나 별도의 개발팀에서 만든 것인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일단 게임스쿨 연혁에도 실려 있습니다. 위 광고는 당시 소프트라이가 게재한 게임스쿨 광고인데, 자사가 배급만 했던 어스토니시아 스토리가 대표 게임으로 실려 있네요. 배급사였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게임 제작을 가르치는 학원 광고에서 자체 제작한 게임이 아닌 작품을 걸어놓은 것은 도의적 문제가 있습니다.
참고로 당시 손노리는 위와 같은 게임을 개발하고 있었습니다. 손노리는 어스토니시아 스토리의 유례 없는 흥행에도 불구하고 팀 보너스 100만원(개인이 아닌!)으로 입을 씻은 소프트라이를 떠나 데니암으로 적을 옮겼는데요, 여기서 개발한 벨트스트롤 액션 게임이 바로 이 다크사이드 스토리입니다.
이 게임은 베타테스터의 배반으로 출시 전 베타 버전이 유포되면서 흥행에 실패했지만, 어스토-다크사이드에 이르는 라인업을 통해 손노리라는 이름을 알리는 데는 성공했습니다. 제우미디어 게임챔프 1995년 9, 10월호에 각각 실린 광고에서도 어스토니시아 스토리 개발사 손노리팀의 차기작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즉 같은 시기에 두 게임이 어스토니시아 스토리 이름을 빌려 광고한 셈인데, 당연히 정통성은 다크사이드 쪽에 있습니다.
소프트라이는 포인세티아 출시를 앞둔 게임챔프 10월호 잡지에도 광고를 게재했습니다. 역시 오른쪽 아래에 '어스토니시아 스토리에 이어 RPG의 진수를 또 한번 느끼실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을 빼놓지 않았네요. 아래쪽에 빼곡히 게임 스크린샷이 있긴 한데, 크기가 작아 자세히 보이진 않지만 게임 퀄리티는 1년 전 나온 어스토니시아보다 낮았습니다. 같은 툴을 이용해 제작했다고는 하지만, 맵과 캐릭터, 배경 구성에 있어 조잡한 부분이 굉장히 많았죠. 시스템적으로는 어스토니시아와 차별화를 두기 위해 파이널 판타지 시스템을 상당 부분 가져왔는데, 밸런스는 영 좋지 않았습니다.
대략적인 줄거리는 선과 악이 균형을 이루며 공존하길 수만년, 악령의 최고인 '환타로아'가 불사의 마두 '카라인'을 탄생시켜 세상을 악으로 물들이고, 이로 인해 천계 왕자였던 메빌이 천애고아가 되어 한 자루의 검을 의지해 복수의 길로 떠난다는 내용입니다. 전반적으로 판타지 배경 게임인데, 마두라는 무협식 표현을 비롯해 무협 용어들이 굉장히 많이 등장합니다.
PC챔프 1995년 12월호에 실린 마지막 포인세티아 광고입니다. 앞서 두 광고가 용과 기사, 마법사 등 서양 판타지의 기본적 이미지는 갖추고 있었던 반면, 이번 광고에는 흡사 '에이지 오브 코난'을 연상시키는 야만전사와 마귀의 근육근육한 싸움이 묘사돼 있습니다. 3편의 광고를 심었음에도 명확한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네요.
어쨌든, 포인세티아는 당시 기준 어스토니시아 스토리의 후광을 뒤에 업고 나름대로 게이머들 사이에서 화제가 됐지만, 조악한 게임 품질과 도저히 끝까지 진행하기 어려운 밸런스 문제 등으로 인해 금세 사그라들었습니다. 3년 후에는 게임잡지 부록으로 제공됐는데, 메인 게임이 아니라 덤처럼 뒤쪽에 살그머니 끼워져 있을 정도로 푸대접을 받았습니다. 지금은 당시 막 자리잡았던 국산 RPG 시장의 과도기적 망작으로 평가되는 게임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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