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팀서 매우 긍정적 '고디안 퀘스트'가 스토브에 나왔다
2020.09.02 17:16게임메카 서형걸 기자
해외 인디게임 개발사 믹스드 렐름(Mixed Realm)의 첫 게임은 ‘사이버 닌자’가 주인공인 VR 액션게임 ‘사이렌토 VR’이다. 스팀과 PS VR로 나와 비평가와 게이머 모두에게 준수한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이 회사의 차기작은 VR도, 액션도 아닌 턴제전투 기반 RPG 고디안 퀘스트다. ‘잘 하던 거 계속 하지’라는 생각도 들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기대 이상의 높은 완성도로 다재다능한 게임사임을 과시했다.
고디안 퀘스트는 주사위 굴림, 덱 빌딩, 캐릭터 육성, 전략적인 전투 등 언뜻 마구잡이로 뒤섞어 놓은 듯 보이지만, 맛을 음미해 보면 고급 중식집의 잡탕밥 같은 풍미가 느껴진다. 스팀서 ‘매우 긍정적’ 평가를 받으며 앞서 해보기 중인 고디안 퀘스트가 지난 8월 27일, 스토브 패키지 상점에 등록됐다. 심의를 거친 국내 정식 발매 버전이면서, 스마일게이트 스토브와 유명 유저한글화 팀 ‘바람번역단’이 협업한 한국어 자막도 탑재됐다. 국내 게이머들이 보다 게임에 몰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심장 쫄깃한 주사위 굴림, 이게 TRPG의 맛이구나
저주로 인해 망자가 언데드로 부활하고, 도적이 횡행하는 세상을 정상으로 되돌리기 위해 분연히 일어선 용사 7인의 장대한 이야기! 고디안 퀘스트의 스토리는 얼핏 식상해 보이긴 하지만, 플레이어에게는 충분한 동기부여를 선사한다. 스스로 고전 RPG를 자처하는 만큼 군더더기 없는 전형적 스토리가 어울린다는 느낌이다.
이처럼 ‘근본’을 내세우는 고디안 퀘스트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부분은 ‘주사위 굴림’이다. 모든 RPG의 조상님이라 할 수 있는 TRPG의 진행 방식을 필드 및 던전 탐색에 차용한 것이다. 물음표가 표시된 타일로 플레이어 파티를 이동시키면 선택지가 주어지는데, 선택에 따라 주사위를 굴릴 수 있다. 주사위 눈 수가 일정 수 이상 나올 경우 보상을 얻거나, 전투를 유리하게 시작할 수 있다.
주사위 눈 수를 플레이어가 조작할 수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소위 ‘야바위’라 불리는 속임수가 아니라, 캐릭터 능력치와 스킬 카드 사용에 따라 수치 보정을 받을 수 있다. 예를 들어 굳게 닫힌 창문을 열어야 하는 상황일 경우 ‘강제로 열기’와 ‘다른 통로 찾기’라는 선택지가 주어진다. 전자는 ‘힘’ 능력치가 높을수록, 후자는 ‘지능’이 높을수록 주사위 눈 수가 더 많이 가산된다. 반대로 요구하는 능력치가 낮을 경우 역보정을 받기도 한다.
나와야 하는 주사위 눈 수가 높아 캐릭터 능력치 보정만으로 불안하다면, 스킬 카드 하나를 소모해 보너스를 받을 수 있다. 평범한 카드는 +1 정도로 미미하지만, 좋은 카드를 소모할수록 보정 수치가 높아져 +3 또는 +4도 받을 수 있다. 사용한 스킬은 ‘고갈’ 처리돼 휴식을 취하기 전까지 이용할 수 없다.
이렇듯 온갖 노력을 다해도 결국 중요한 것은 운이다. 온갖 수치 보정을 다 받아도 주사위 눈 수가 1이 나와 머리를 쥐어 싸매게 될 수 있으며, 마이너스 보정을 받아도 주사위 눈 수가 매우 높게 나와 쾌재를 부를 수 있다. 심장 쫄깃한 강도 높은 자극에 심취하다 보면, 언데드나 몬스터를 잡으러 다니기 보다, 물음표가 붙은 타일을 찾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자유로운 전략과 캐릭터 육성의 재미
고디안 퀘스트에는 바드, 성직자, 드루이드, 레인저, 무뢰한, 마법사, 검사 등 총 7가지 캐릭터가 등장한다. 게임 시작 시 하나의 캐릭터를 선택할 수 있으며, 게임 진행에 따라 순차적으로 다른 클래스를 영입하게 된다. 한번에 동행할 수 있는 캐릭터는 최대 3인이다.
각각의 캐릭터는 자신의 특기에 맞는 다수의 스킬 카드를 보유한 채로 파티에 합류한다. 레벨업마다 획득하는 스킬 포인트를 소모해 추가 카드를 뽑거나, 장비를 착용해 사용할 수 있는 스킬 카드를 늘릴 수 있다. 스킬 카드 상단 이름 부분 바탕색이 다른데, 붉은색은 힘, 녹색은 민첩, 파란색은 지능 수치에 따라 더 강력한 위력을 발휘한다.
전투는 턴제 기반 전투와 카드게임이 어우러져 있다. 매 턴마다 자신의 덱에 있는 카드 중 무작위로 손에 쥐어진다. 턴 종료 시 미사용 카드는 다시 덱으로 돌아가는데, 재능 강화 또는 아이템에 붙어있는 부가 능력으로 미사용 카드 중 일부를 다음 턴에 활용하도록 가져갈 수 있다.
정해진 스킬을 사용하는 것이 아닌, 덱에 있는 카드 중 일부가 무작위로 나오기에 전황은 시시각각 변한다. 무턱대고 공격을 감행하다, 마지막 한방을 날려야 하는 순간에 방어카드만 줄줄이 나올 경우 당황스럽기 그지없다. 치명타, 취약 등 디버프, 화염, 냉기, 번개, 독 등 속성 효과로 카드에 표시된 대미지보다 더 큰 피해를 입히거나, 입을 수 있기에 전투 중 다양한 변수에 유의해야 한다.
카드게임에 익숙하지 않다면 초반엔 다소 난해하다고 느껴질 만큼 복잡한 시스템이다. 특히 3번째, 4번째 동료를 구하러 가는 도중 만나는 적들은 상당히 난이도가 높기에 좌절감이 느껴질 정도다. 그러나 한 고비를 넘기면, 다양한 캐릭터 육성법과 깊이 있는 전략성이 느껴진다. 소환수 활용에 집중한 드루이드와 포탑 특화 레인저로 타워 디펜스를 연상케 하는 전투를 할 수도 있고, 광역 피해 특화 바드 및 마법사로 다수의 적을 순식간에 전장에서 삭제할 수도 있다. 또는 바드와 검사의 버프 스킬을 무뢰한에 집중해 보스 몬스터에게 소위 ‘죽창’을 꽂는 전략도 가능하다.
모든 콘텐츠에 실력과 운이 반반
고디안 퀘스트는 TRPG, 카드게임, 턴제 기반 전투 등 다양한 장르가 섞였음에도 전혀 위화감이 들지 않는다. 각각의 요소마다 완성도도 높을 뿐더러, 유기적으로 이어져 게임에 몰입감을 더하기 때문이다. 가령 TRPG 요소 필드 또는 던전을 도는 플레이어에게 능동적인 선택을 요구함으로써 지루함을 덜어준다. 상자를 열 경우 일반적인 RPG에서는 그저 함정이 아니길 빌어야 하지만, 고디안 퀘스트에서는 유저의 노력 여하에 따라 충분히 긍정적인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 전투에서는 카드게임의 무작위 요소로 진행이 정형화 되는 것을 방지한다. 매 전투마다, 그리고 매 턴마다 상황에 맞는 전략을 구상해야 한다.
고디안 퀘스트 스토브 정식 한국어판의 장점은 소위 말하는 ‘텍스트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한층 더 정돈된 한국어 번역으로 카드와 스킬 재능의 효과, 플레이어에게 주어진 선택지 등을 보다 쉽게 파악할 수 있어 진입장벽이 낮아지고 보다 더 게임에 몰입할 수 있게 됐다. 카드게임과 고전 RPG의 재미를 동시에 느끼고자 한다면, 고디안 퀘스트는 최상의 선택임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