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월의 종언'이 9년에 걸친 이야기를 끝맺은 방법
2022.05.19 17:50게임메카 신재연 기자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아름다운 이야기였다. 파이널 판타지 14 세계관의 주축에 있는 빛의 상징 ‘하이델린’과 어둠의 상징 ‘조디아크’의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다는 발표를 들었을 때부터 자라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스토리는 꽤 방대했지만, 한 번 추진력을 얻기 시작하면 쉬이 멈출 수 없게 만드는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간 파이널 판타지 14의 모험은 꾸준히 같은 메시지를 말해왔다. 고통 속에서도 ‘희망’을 잊지 말고, 삶의 의지를 놓지 말고, 생각을 멈추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효월의 종언도 비슷한 메시지를 담고 있지만, 유독 지금까지의 그 어떤 확장팩보다 깊은 감동을 줬다. 효월의 종언은 대체 어떤 방법으로 게이머들을 스토리에 이토록 몰입시켰을까? 한 층 더 강화된 게임 내 연출, 스토리 전개를 돕는 NPC 관련 콘텐츠, 게임을 진행한 정도에 따라 다르게 제공하는 선택지까지, 효월의 종언의 섬세한 스토리텔링 기법을 살펴보고자 한다.
※ 이 리뷰는 '효월의 종언'의 전개와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를 일부 포함하고 있으므로, 원치 않으시는 분은 뒤로가기를 눌러주시길 바랍니다.
아침을 지나 밤으로, 그리고 다시 새벽으로
‘효월의 종언’은 아침을 상징하는 ‘신생 에오르제아’, 낮을 상징하는 ‘창천의 이슈가르드’, 노을진 저녁을 상징하는 ‘홍련의 해방자’, 밤을 상징하는 ‘칠흑의 반역자’에 이어 ‘새벽’을 상징하는 확장팩이다.
파이널 판타지 14의 전반적인 스토리는 무명의 모험가가 세상의 혼란을 해결하는 ‘새벽의 혈맹’과 만나며 게임의 배경이 되는 행성 ‘하이델린’에 숨겨진 진실을 찾아나가는 과정이 주가 된다. 모험가는 이 과정에서 다양한 인물과 마주하고, 연대하고, 또 갈등하는 주인공으로서 움직인다. 여기서 ‘효월의 종언’이 가진 차별점은 지금까지의 확장팩처럼 특정한 집단 혹은 개인을 지키거나 대변하는 인물로서 ‘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지금까지 구하고 지켜낸 이들과 ‘함께’ 움직인다고 생각하게끔 만드는 서술 방식에 있다.
특히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시스템, ‘동행’과 ‘미행’은 서술을 강화하는 중요한 요소로 사용된다. 이 시스템으로 플레이어는 NPC와 함께 움직이고 걷고, 자연스럽게 플레이어가 NPC의 행동에 맞춰 환경에 녹아들도록 유도하며 몰입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아름답게 만들어진 신규 도시 ‘올드 샬레이안’과 ‘라자한’을 살필 수 있는 계기가 자연스럽게 제공되며, 배경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설정을 이야기로 풀어내며 대화를 나누는 등 플레이어와 NPC의 교류에 생동감을 더한다.
새벽달과 함께 시작된 종언의 이야기
‘효월의 종언’은 주인공이 다가오는 ‘종언’에 대항하는 방법을 찾는 과정에서 ‘신생 에오르제아’부터 ‘칠흑의 반역자’까지의 발자취를 돌아보는 구성을 채택했다. 플레이어는 진실을 찾는 과정에서 자신이 지나온 도시, 인물, 유적 등을 시간과 공간을 가리지 않고 살피며 잊었던 모험의 추억을 되돌아본다. 이 과정에서 더욱 세밀해진 물체와의 상호작용이나 컷신에서 등장하는 NPC들의 움직임은 보강된 서술 방식과 더해져 긴 컷신을 지루하지 않게 만든다.
이런 강화된 연출로 전개되는 ‘효월의 종언’은 어둠을 상징하는 ‘조디아크’의 진실을 파헤치며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세계 곳곳에 등장한 정체불명의 탑으로 인한 피해를 줄이고, 진실을 알기 위해 모험가와 조디아크를 만들어낸 ‘고대인’을 목도하고, 종언의 원인을 점차 알게 되며, 모험가는 자신이 알지 못했던 조디아크뿐만 아니라 그와 상반된 존재 ‘하이델린’에 대한 진실도 함께 마주한다.
이 과정에서 복잡하게 얽힌 진실을 자신의 템포에 맞춰 진행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트러스트’ 시스템을 더욱 보강했다. 이전 확장팩 ‘칠흑의 반역자’에서 처음으로 도입된 NPC와 함께하는 던전 진행 시스템 ‘트러스트’는 혼자서도 던전을 돌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다른 유저와 도는 것에 비해 비교적 진행 속도는 느린 편이지만, 그 과정에서 지루하지 않도록 다양한 NPC 사이의 대화와 NPC가 가진 직업과 특성에 맞는 독특한 기술을 보여주며 캐릭터성을 살린다.
마지막에서 모험가의 여정을 조망케 하는 섬세한 구성
‘신생 에오르제아’와 ‘효월의 종언’의 스토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공통된 키워드는 ‘희망’이며, 차이는 이 이야기를 진행하는 이들의 경험이다. ‘신생 에오르제아’에서 이들이 조망했던 ‘희망’이 이상향에 치우쳐 갈피를 잃었다면, ‘효월의 종언’에서 만나게 되는 이들의 ‘희망’은 한층 견고하고 뚜렷하다.
이는 ‘희망의 등불’을 통해 큰 좌절과 붕괴를 겪었던 이들이 상처를 극복해 이야기의 끝인 ‘효월의 종언’에서는 성장했다는 생각이 들게끔 한다. 그래서 행성 하이델린에 위치한 주요 대도시의 요인들이 한곳에 모여 대의를 논하는 장면은 분명 과거와 비슷함에도 ‘신생 에오르제아’에서 느꼈던 감정과 완벽하게 대비되는 모습을 보여주며 모두의 성장을 체감케 한다.
이는 비단 '신생 에오르제아'만을 조망하게 만들지 않는다. 효월의 종언 안에서는 이전 메인 퀘스트의 컷신에서 등장한 구도와 대사 등을 오마주하며 여정을 곱씹을 수 있는 장치를 끊임없이 설치해뒀다. 퀘스트를 진행하는 동안 모험가의 발자취가 반영된 선택지나 대화를 자연스럽게 추가해 '많은 모험'을 진행한 모험가일수록 경험에 대한 피드백이 풍부해진다.
메인 스토리뿐 아니라 서브 퀘스트에서도 위와 같은 장치들을 여기저기 흩뿌려뒀다. 신생 에오르제아를 시작으로 모험의 과정에서 더는 만날 수 없게 된 동료의 이야기나, 모험가로 인해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곳곳에 배치해 떠난 이들이 남기고 갔거나, 모험가가 구해냈기에 알게 된 ‘희망’을 이야기하며 서사를 보조한다.
연출과 번역 문제로 흩어지는 몰입감은 아쉽다
다만, ‘효월의 종언’이 가진 아쉬운 점도 이 서사에서 시작한다. ‘희망’을 전하기 위해 채택한 방법들이 이전 확장팩과 달리 정신적 고통을 지나치게 세밀하게 묘사해 불안을 자극한다. 특히 이는 특히 스토리가 심화되는 후반부 컷신에서 도드라지는데, 일그러지고 뒤틀리는 방식으로 묘사되는 것은 예사다. 시각적인 공포를 유발하고, 잔혹함을 지나치게 묘사하며, 때로는 갑작스럽게 튀어나오는 등 공포영화에 준할 법한 연출을 사용했다는 점이다.
한국 서버 한정으로 스킬이나 게임 내 주요 키워드, 업적명에 대한 번역이 글로벌판에서 느낄 수 있는 의미를 살리지 못한 것도 아쉽다. 파이널 판타지 14에 등장하는 키워드나 스킬, 업적명은 모두 게임 내에 있는 콘텐츠나 특성을 이해할 수 있도록 은유나 중의적 의미를 담은 단어를 채택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이 의미를 살리지 못한 번역들이 알게 모르게 많아 몰입감을 흩는다. 특히 신규 직업들의 스킬명이 번역 문제로 가장 많이 언급되는 부분인데, 리퍼의 Hell's Ingress/Egress는 지옥 입장/퇴장으로, Grim Swathe는 음산한 할퀴기로 번역됐다. 히포크라테스의 4체액론을 중심으로 구성된 현자의 스킬도 상황은 비슷하다. 4체액의 균형잡힌 상태를 뜻하는 Eukrasia는 정상건강으로, 4체액의 불균형을 뜻하는 Dyskrasia는 위험질환으로, 약의 투여, 투여량을 뜻하는 Dosis는 도시스로 번역하는 등 마땅한 기준 없이 의역, 직역, 음차를 섞은 번역으로 스킬에 대한 이해도를 낮춘다.
그래서 효월의 종언을 ‘하이델린-조디아크 사가의 완벽한 결말’이라 평하기에는 아직 아쉬운 점이 좀 있다. 연출이 가져오는 불쾌감, 전범에 대한 용서, 악에 대한 서사부여와 정당화 등, 감정을 끊임없이 부정적으로 자극하고 극도로 몰아세우는 장치는 플레이어의 스트레스를 자극하는 요소다.
그러나 ‘완전한 결말’을 보여주었다는 말에는 이견이 없다. 지난 확장팩을 통해 풀어둔 서사적 요소나 떡밥을 남김없이 거두어들여, 이야기의 마지막 장으로서는 더없이 좋은 전개를 보여줬다고 할 수 있겠다. 앞으로 새롭게 풀어나갈 또 다른 이야기의 장이 기대되는 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