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言] 점프킹 못지 않은 악의의 결정체 ‘그래듀에이터’
2022.06.04 10:00게임메카 신재연 기자
“소년이 잘못하면 소년원에 가고, 대학생이 잘못하면 대학원에 간다”는 말이 있다. 그런말이 어디서 나왔느냐 묻는다면 기자는 말 없이 당신의 앞에 ‘그래듀에이터’라는 게임을 하나 내려놓겠다. 이 게임은 힘겨운 수험생활 끝에 원하던 대학에 입학했지만, 이제부터 진짜 공부가 시작인 것을 알게 된 어느 대학생의 여정이다. 그의 목표는 ‘무사히 졸업하기’다. 다만 ‘전동휠’과 함께 말이다.
대학생활 중 ‘빡치는’(이후로도 본 기사에서 등장하는 비속어나 비표준어는 개발자의 게임 소개 및 인터뷰 답변 표기를 우선한다)을 일을 모아 만든 플랫포머 게임 ‘그래듀에이터’는 가뜩이나 화가 많아지는 수강신청, 조별과제, 시험 등이 가득한 대학생활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여기에 ‘점프킹류 콘셉트’라는 분노의 엑기스를 더하고 의도된 ‘XX같은 조작감’ 향신료로 사르르 뿌려두었으니, 가히 악의 결정체라 할 수 있겠다. 이 게임을 처음 봤던 기자는 ‘그래듀에이터를 만든 잘못’으로 대학원에 가야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도대체 이런 악의 결정체를 만든 의도는 무엇일까? 게임메카는 1인 개발사 ‘밤샘게임스튜디오’ 대표 이하윤(블루치즈)에게 그래듀에이터에 담긴 여러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점프킹 + 헬테이커 + RISE + 제작자의 경험 = 그래듀에이터
‘그래듀에이터’는 앞서 말했듯 점프킹류 플랫포머 게임으로, 공중에서는 방향전환조차 되지 않는 ‘전동휠’을 타고 졸업까지 나아가는 과정이 주 골자다. 개발자는 항아리 게임의 제작자 ‘베넷 포디’의 ‘CLOP’, ‘QWOP’ 등에서 등장한 이상한 조작키를 모티브로, ‘ASDF’로 조작키를 정하고, 여기에 1, 2, 3단계로 나뉘는 섬세한 가속 시스템을 더했다. “이런 류의 게임에는 게임 플레이 방식에 컨트롤이 핵심인 만큼 완전히 새로운 조작법을 만들어 봐야겠다”는 개발자의 의도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개발자는 자칫 지루하거나 지쳐 나가떨어지는 상황을 방지하고 게임에 몰입할 수 있도록 ‘스토리’도 추가했다. 2020년 출시된 ‘헬테이커’가 자칫 평범할 수 있는 퍼즐게임에 매력적인 악마를 넣어 게임을 살린 것에 착안해, 자신이 다니던 학교 생활을 떠올려 ‘OT, 수강신청, 수업과 과제’ 등으로 이어지는 ‘대학생라이프’를 녹여냈다.
고난을 포기하지 않고 산을 오르는 모습은 2018년 롤드컵 오프닝 곡이었던 RISE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RISE의 주역, ‘앰비션’ 강찬용이 좌절을 딛고 일어나 정점에 오르는 모습은 이 개발자에게 ‘나도 지금은 망가진 상태지만, 다시 일어나서 치열하게 살 수 있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그래서 게임 내 컷신에 등장하는 몇몇 장면은 제작의 원동력이 되어준 ‘RISE’에 대한 오마주를 담았다고 한다. 주인공이 목표를 위해 떨어져도 포기하지 않고 치열하게 산을 오르는 모습에서 ‘앰비션’의 행보를 떠올리게 된다.
무슨 약을 하셨길래 이런 게임을 만드셨어요?
‘밤샘게임스튜디오’ 대표 이하윤(블루치즈) 개발자는 지스트(광주과학기술원)의 장기 휴학생이다. ‘장기 휴학생’이 된 이유에는 ‘게임’이 있었다. 재수를 포함해 지난 10년 이상 계속 공부하고 시험을 치는 지겨운 삶을 살아왔는데, 이 짓을 또 할 마음이 들지 않아 학점을 내다 버리고 술을 잔뜩 마시며 그 시간을 자신의 목표인 ‘게임 개발’에 쏟았다.
게임 내 등장하는 대부분의 캐릭터는 개발자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관찰해 만들었다. 그 중 이 개발자 자신이 가장 많이 투영된 캐릭터는 주인공과 ‘크렘’이다. 주인공은 정말 절박하게, 악착같이 노력하던 재수생 시절의 모습을, 크렘은 대학에 입학한 뒤 시험과 학점은 내다 버리고 방에 술을 잔뜩 쌓아두고 마시던 모습을 담았다. 개발자가 ‘통통이’라 부르는 그래듀에이터의 주역, 장애물은 고양이 마리오의 ‘킹받는’ 함정을 떠올리며 오래 전에 쓰던 개발자 캐릭터의 표정을 가져다 썼다. 플레이어에게 ‘불시험’을 선물하는 강력한 중간 보스, ‘사인 교수’의 실제 모티브는 지스트 기초교육학부 김동혁 교수라고 한다. 이 개발자는 김 교수에게 기회를 빌어 감사를 전했다.
사실 그래듀에이터가 개발자의 첫 개발작은 아니다. 지난 2020년, 친구들과 게임을 만들어보자며 한 학기를 휴학하고 4달쯤 투자했지만 데모 버전조차 없이 무산됐던 과거가 있다. “입학 이후 이어진 나태함으로 게임은 데모조차 제작되지 못한 채 사라졌다. 스스로 성실하지 않았음을 알아 함께 제작하던 친구와의 갈등에도 적극적으로 반박하지 못하는 자신이 부끄럽고 한심했다. 그래서 ‘개발’이 단순한 도피처가 아니란 걸 스스로 증명하고 싶었다”는 것이 이 개발자의 말이다.
한 차례 실패를 겪은 이 개발자가 ‘그래듀에이터’ 기획에서 가장 중요시 여긴 것은 ‘반드시 완성할 수 있는 게임을 만들자’였다. 초보 개발자가 혼자, 제작비도 거의 없는 악조건에서 개발을 진행했기에 ‘완성’을 위해서는 최대한 단순한 게임을 만들어야 했다. 또, 게임을 통해 돈을 버는 것보다 개발자로서의 명성을 얻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판매 부수가 적더라도 게임 스트리머에게 어필하기 좋은 게임을 생각했다. ‘점프킹류 플랫포머’라는 장르를 채택한 이유도 여기에서 왔다. 그렇게 완성된 그래듀에이터는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바치는 경의의 표현이자, 자신도 다시 그렇게 최선을 다해 살아보고 싶다는 개발자의 의지의 산물이다.
과연 그는 ‘대학원’에 가게 될 것인가
사실 제작자가 게임 소개 영상에 언급한 “게임이 망하면 대학원에 가야 한다는 말”은 진담 반, 농담 반이라고 한다. 제작자가 다니는 학교가 졸업생의 80% 이상이 대학원으로 진학하는 지스트이기에, 가장 무난하고 안정적인 선택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로를 고민하는 이 개발자에게 있어 대학원은 안정적이지만 재미없고 적성에도 안 맞는 선택지인지라, 자신이 좋아하는 게임업계 취직이나 창업을 원하고 있다. 그래서 학교를 오래 휴학하면서까지 게임을 만들었고, ‘그래듀에이터’가 잘 되기를 바란다고.
“그래듀에이터의 패턴에 진노하는 플레이어를 보며 아주 만족스러웠다”는 이 개발자는 현재 게임의 레벨 디자인을 지속적으로 수정 중이다. “초반에는 개발자의 의도대로 떨어지는 모습이 만족스러웠지만, ‘적당히 매운 난이도면서도 맛있게 즐길 수 있는 수준’을 원했지, 대책없이 어렵기만 한 난이도로 만든 것은 명백한 설계미스”라며, 정식 버전을 출시할 때는 난이도를 상식적인 수준까지 낮출 예정이다.
이 개발자는 인터뷰 마무리에 “식상하지만 인디업계에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솔직히 게임의 퀄리티가 보장되지 않는 게 인디게임인 만큼 자신 있게 추천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종종 인기를 끄는 게임들 정도는 해보셔도 좋을 것 같다. 대부분의 경우 롤보다 훨씬 스트레스 덜 받고, 가챠게임보다 훨씬 저렴하다”며, “올 가을 정식 출시와 함께 또 새로운 마케팅도 선보일 계획이니, 많은 기대 바란다”라는 인사말을 남겼다.
“참고로, ‘페이커’님께서 그래듀에이터를 플레이해주시면 성공한 개발자라 스스로 자부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소소한 사심으로 인터뷰를 끝낸 이 개발자가 자신의 산을 올라 이윽고 정상에 도달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
+ 여담으로, 개발자는 현재 재학중인 지스트 학사 기숙사에 있다고 ‘스스로’ 밝혔다. (절대 기자가 협박하지 않았다.) 다만, 국가중요시설로 취급되어 철저한 보안이 유지된다고. 개발자의 ‘등짝’을 때리고 싶은 이들에게는 퍽 아쉬운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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