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편 이상의 잔혹성과 드넓은 오픈월드, 디아블로 4 체험기
2022.12.08 01:00게임메카 이재오 기자
디아블로 4는 지금까지의 디아블로 시리즈들과는 달리 막중한 책임감을 갖고 있는 작품이다. 오랜만에 나오는 넘버링 작품이기도 한 데다가, 3편이나 이모탈, 2 레저렉션 등이 좋은 게임성과 별개로 하나같이 큰 결점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디아블로라는 이름에 함께 잠들어 있던 어둡고 잔혹한 이미지마저 어느새 조금씩 희석되고 있다 보니 4편은 말 그대로 IP의 명운이 걸려있는 넘버링이라 할 수 있다. 팬들도 이번 작품만큼은 시리즈 최고를 넘어 당대의 게임이 될 여건을 잘 갖춰서 나오기만을 바라는 중이다.
게임메카가 한발 먼저 플레이해 본 디아블로 4의 인상은 여러모로 매우 뚜렷했다. 1편과 2편 특유의 잔혹함과 어두운 분위기, 3편의 호쾌한 액션과 편의성, 여기에 시리즈 최초로 도입한 오픈월드의 비선형적 구조가 나름의 존재감을 드러내며 어우러져 있었다. 당대의 게임이라 표현하기엔 아직 테스트 빌드다 보니 부족한 부분이 적진 않았으나, 어울릴 것 같지 않았던 저 요소들을 한데 모아 지금까지의 디아블로에선 볼 수 없는 스케일을 구현한 게임임에는 틀림없었다.
황폐화된 성역을 찾아온 네팔렘의 어머니
디아블로 4는 3편 이후 수십 년이 지난 시점을 그리고 있다. 말티엘의 계략으로 인해 성역 인구의 90%가 사망한 상태이며, 이로 인해 그 어느 때보다도 황폐화된 성역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릴리트가 등장하게 된 배경 또한 이렇게 암울한 세계에서 성역의 창조주를 통해 구원을 얻고자 한 사람들 때문이다. 하지만, 자기가 낳은 자식인 네팔렘(인간)을 이용해 천사와 악마 모두를 없앨 계획을 갖고 있던 릴리트가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진 성역에 도움이 될 리가 없었고, 결국 플레이어는 그녀의 계획을 저지하기 위한 여정을 떠나게 된다.
이번 체험 빌드에서 플레이할 수 있는 캐릭터는 도적과 원소술사, 야만용사까지 총 3명이었다. 강령술사와 드루이드는 출시 단계에서 추가될 예정이다. 정식 출시 단계에서 만렙은 100이지만, 이번 테스트에선 25레벨까지 올릴 수 있었다. 전체 캠페인 4분의 1, 그러니까 딱 1막 정도를 플레이할 수 있었으며, 전체 맵을 기준으로도 25%가 조금 안 되는 곳을 둘러볼 수 있었다.
스토리 외에 체험해볼 수 있는 콘텐츠로는 캐릭터 커스터마이징과 오픈월드 맵 중간 중간에 찾을 수 있는 다양한 던전들과 필드에서 발생하는 여러 이벤트, 그 밖에 여러 부가 퀘스트 등이 있다. 야만용사를 25레벨까지 키우는 와중에 전설 아이템도 발견할 수 있었으며, 대장장이로부터 장비를 업그레이드할 수도 있었다. 스킬 트리 또한 25레벨 상한선 내에서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었지만, 리셋을 위해선 골드를 소모해야 했다.
시리즈 역대 최고로 잔인하고 무섭다
먼저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이번 작품의 분위기다. 디아블로 4는 지금까지 출시된 시리즈를 통틀어 가장 잔혹하고 강렬한 비주얼을 자랑한다. 디아블로 3편에서 다소 순화되고 발랄해졌던 여러 묘사들이 이번 작품에선 그야말로 여과 없이 등장한다. 사지 절단이나 내장은 말할 것도 없으며, 광기 어린 살인 묘사도 볼 수 있다. 심지어는 창조적이라고 볼 수 있을 만큼 독특한 형태의 잔인함도 만나볼 수 있다. 전투나 컷신, 시네마틱 영상 모두 디아블로 2보다 훨씬 더 유혈이 낭자한다. 이 분야에 내성이 없다면 각오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잔혹함과 더불어 이 게임을 지배하고 있는 정서 중 하나는 바로 '암울함'이다. 디아블로 이모탈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는데, 차마 입에 담을 수 없을 만큼 슬픈 사연과 운명을 지닌 인물들이 다수 등장하며, 이를 플레이어도 간접적으로 경험하거나 직접 목도하게 된다. 굳이 이런 부분이 아니더라도 게임 내내 보여지는 분위기 자체가 매우 어둡다. 거의 흑백 영화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맵 전반적으로 채도와 명도가 낮으며, 배경에서도 초록색을 거의 볼 수 없다. 작중 성역이 처한 상황을 생각하면 당연하다.
사실 이런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에는 비주얼뿐만 아니라 사운드도 크게 한몫 한다. 게임 내내 음산한 음악이나 효과음이 재생되며, 지금까지 들었던 OST만 놓고 보면 공포게임이 연상될 정도로 불쾌한 소리를 줄곧 들을 수 있다. 이 밖에도 중간중간 과하지 않은 약간의 점프 스퀘어가 있기도 하고, 예상 못했던 보스가 갑자기 등장하기도 해 플레이어가 긴장감을 놓치지 않도록 해준다. 게임의 톤만 두고 본다면, 벌써 합격점을 내릴 수 있을 정도다.
2편과 3편의 장점만 쏙 빼서 섞은 전투
액션은 2편과 3편을 적절히 섞어 놓은 형태를 지니고 있다. 일단 2편 특유의 캐릭터 설계 방식을 가져와 플레이어가 원하는 대로 스킬을 조합하고 그에 맞춰서 캐릭터를 성장시키는 것이 가능하다. 전투에선 최대 2개의 기본 공격과 4개의 스킬을 사용할 수 있는데, 이 4가지 스킬을 어떻게 구성하고 어떤 방식으로 육성할지에 대해선 순전히 플레이어의 선택에 의해서 결정된다. 3편에선 스킬이 알아서 개방되고 육성의 자유도가 낮아서 디아블로 특유의 육성하는 맛이 사라졌었는데 이게 돌아온 것이다.
그런 와중에도 디아블로 4가 3편에서 참고한 것이 있으니, 수려한 타격감을 자랑하는 여러 핵심 스킬을 초반에 배우고 마스터할 수 있게 배치했다는 점이다. 가령, 야만용사의 대표 기술이라 할 수 있는 소용돌이(훨윈드)를 4레벨부터 배울 수 있으며, 스킬 포인트 5개만 주면 마스터가 가능하다. 심지어는 이런 공격스킬들은 모두 두 가지 방향으로 업그레이드가 가능한데, 소용돌이는 더 많은 대미지를 주거나 적에게 출혈 대미지를 주는 방향으로 성장시킬 수 있다. 다른 캐릭터도 주요 스킬들을 보다 일찍 배우는 대신, 디버프나 군중제어기를 늦게 배우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재밌는 건 스킬을 성장시키는 과정은 디아블로 2처럼 지난하고 매우 섬세한 과정을 요구하지만, 한 번 스탯이나 스킬을 잘못 클릭하면 캐릭터를 버려야 하는 상황까지 직면했던 2편과는 달리 골드만 지불한다면 얼마든지 스킬 트리를 리셋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육성의 자유도는 높이고, 스킬 선택의 부담감과 난이도는 낮추는 역할을 한다. 다만, 성장이 진행될수록 스킬 리셋에 드는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므로, 초반에 여러 빌드를 충분히 즐겨보는 것을 추천하는 편이다.
타격감을 놓고 보자면 디아블로 4는 다양한 형태의 공격방식을 자랑하며, 이를 게임 내에 상당히 세심하게 녹여낸 것이 특징이다. 가령, 야만용사의 경우 둔기로 치는 것과 베는 것, 양손 무기를 사용할 때와 한 손 무기를 사용할 때의 사운드와 피격 모션이 꽤 명확히 구분돼 있다. 특히나 양손 검을 이용해 출혈 효과를 내는 공격을 사용했을 때의 타격감이 일품인데, 그야말로 적을 칼로 양단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다른 오픈월드게임과 비교해도 모자람 없는 넓이와 밀도
사실 지금까지 언급된 부분들은 어찌 보면 디아블로다운 모습들을 근간으로 형성된 특장점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동안의 시리즈에서 없었던 특징이 하나 있으니, 바로 오픈월드라는 점이다. 말만 오픈월드인 게 아니라 비선형적인 진행까지 지원한다. 실제로 디아블로 4는 극 초반을 지나고 나면, 총 세 가지의 메인 퀘스트를 골라서 플레이할 수 있다. 이번 테스트 빌드에선 그중 하나만 플레이할 수 있었지만, 정식 출시 빌드에선 순서 상관없이 플레이가 가능하다. 한 퀘스트를 진행하다가 말고 다른 메인 퀘스트를 미는 것도 가능하다.
잘 만든 오픈월드를 평가하는 두 가지 척도는 역시 '넓이'와 '밀도'다. 디아블로 4는 이 두 가지 모두 만족스러운 편이다. 맵의 넓이는 8시간 내내 돌아다녀도 맵의 4분의 1정도 밖에 둘러보지 못했을 만큼 아주 넓다. 제작진은 지금까지의 디아블로 중에서 이번 작품이 가장 넓은 맵을 자랑한다고 한 바 있는데, 디아블로 시리즈가 아니라 다른 오픈월드 게임과 비교해도 모자람이 없을 만큼 방대한 규모를 자랑한다. 이번 테스트 빌드에선 말을 타지 못했는데, 아무래도 후반부에선 탈 것을 이용하는 것이 필수일 것으로 예상된다.
밀도도 출중하다. 퀘스트를 진행하기 위해 맵을 가로질러 이동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이벤트와 여러 던전들을 쉴 새 없이 만날 수 있다. 특히, 던전들은 그냥 자그마한 방 하나 수준의 던전도 있고, 웬만한 메인퀘스트보다 훨씬 길고 방대한 분량과 퍼즐을 지니고 있는 경우도 있다. 이 던전들은 종종 마을의 주민들로부터 부여받는 서브 퀘스트와 연계돼 있기도 하다. 난이도도 메인 퀘스트 못지않게 굉장히 높은 편이며, 때로는 히든 보스를 만날 수도 있기 때문에 단단히 준비하고 돌입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한편, 오픈월드를 차용한 만큼 플레이어 레벨에 맞게 적의 레벨도 함께 오르는 레벨 스케일링 시스템을 차용했으며, 메인퀘스트는 물론 던전과 필드 이벤트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다만 기본적으로 플레이어의 기본 성장치보다 적 성장치가 좀 더 높게 설정돼 있기 때문에, 장비 파밍과 업그레이드, 컨트롤 등도 레벨이 오를수록 더 신경 써야 한다. 한 번 플레이한 던전도 던전 리셋을 통해 다시 즐길 수 있으니 쉬운 던전을 골라서 장비 파밍을 할 수도 있으며, 디아블로 시리즈 답게, 노말, 베테랑, 악몽, 지옥, 불지옥 등 플레이 난이도를 선택할 수도 있어 오픈월드지만 IP의 특성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엿보였다.
완성도만 끌어올린다면 시리즈의 새로운 방향성이 될 것
전반적으로 짜임새는 좋았지만, 역시나 마음에 걸리는 것은 완성도다. 그래픽은 인게임 기준으로는 현시대 게임에 걸맞은 수려한 비주얼을 자랑하지만. 시네마틱 영상의 경우는 한 세대 이전 게임이라고 보일 정도였다. 과거에는 별도로 시네마틱 영상을 만들어 게임에 삽입했던 것과 달리 이번 작품에선 인게임 엔진을 사용했기에 생기는 문제로 추측된다. 덕분에 생기는 장점도 있긴 하다. 플레이어가 커스터마이징한 캐릭터가 시네마틱 영상에 그대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이는 당연히 몰입감을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더불어 레벨 스케일링을 적용했을 때 생기는 단점을 후반부에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도 관건이다. 디아블로 시리즈는 레벨에 오르고 파밍이 진행됨에 따라 플레이어가 강해지는 것을 몸으로 체감할 수 있다는 점이 하나의 재미 요소였는데, 이 장점이 사라진 셈이다. 물론 파밍의 효과를 체감할 수 없는 건 아니었지만, 이전만큼 호쾌한 맛은 확실히 덜해졌다. 제작진의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비록 초반부 1막 정도만 플레이해본 수준에 불과하지만, 디아블로 4는 충분히 기대해 볼 만한 게임이었다. 디아블로 팬들이 그토록 요구했던 요소들을 빼먹지 않고 넣으면서 신작이 마땅히 시도해야 할 새로움도 잘 갖추고 있었다. 마지막까지 집중해서 완성도만 잘 끌어올린다면, 팬들의 바람대로 디아블로 4는 당대의 게임을 넘어 시리즈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해주는 게임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