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言] ‘나이 많은 개발자’의 고전 캐주얼 항해, 사그레스
2022.12.24 11:00게임메카 신재연 기자
1인 개발 인디게임만큼 개발자의 특성이 뚜렷하게 녹아 든 게임은 보기 드물다. 이는 게임의 기틀을 만드는 기획과정에서부터 오롯이 한 사람의 의견만이 배어들기 때문인데, 덕분어 게임을 하다 보면 개발자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시도를 하고자 했는지를 느낄 수 있다. 그래서인지, 게임을 하기 전 소개를 볼 때부터 나름의 재미가 있다.
오늘 소개할 '사그레스' 역시 이런 개발자의 게임관이 선명하게 반영된 게임이다. 시뮬레이션, 턴제 RPG, 퍼즐이라는 캐주얼하고 머리 쓰는 장르가 혼합된 개발자의 취향이 완벽히 녹아 들었다. 여기에 고전 감성을 더해 과거의 게임 경험을 추억하게 만들기도 한다. 비록 모두에게 호평 받지는 못하더라도, 누군가는 개발자 자신이 즐기는 게임관에 공감해 함께 즐겨주지 않을까 하는 메시지가 느껴진다.
물론 막연히 취향만을 고집하지만은 않았다. 최근 게이머들에게 익숙해진 숙련도 시스템이나 UI를 채택하거나, 도트 그래픽에 중세 고증을 하나하나 녹여낸 정성, 15세기 유럽에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조선의 모습을 그려내는 등 흥미와 편의성을 위해 노력한 흔적도 있다. 자신의 취향을 가득 녹여내면서도 트렌드에 맞춰 끊임없이 성장하는 사그레스는 어떤 게임일까? 게임메카는 사그레스 개발자 'ㅐㅐㅋㄷ'와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항해학교에서 시작되는 대발견, 사그레스
항해 시뮬레이션 RPG 사그레스는 15세기 포르투갈을 배경으로, 당대 항해사가 되어 세계를 탐험하며 여러 역사적 발견을 성취하는 게임이다. 개발자는 사그레스를 통해 자신이 학창시절에 받았던 탐험과 발견의 즐거움을 현 세대 게이머들도 느끼게 하고 싶었고, 대항해시대 등 90년대 SRPG를 떠올리게 만드는 비주얼은 이 의도를 전달하기 위한 중요한 장치다.
캐주얼한 게임을 지향하는 개발자의 의도에 맞춰, 게임은 190개 이상의 발견물을 세계 곳곳에 흩어두고 이를 탐색하는 발견 콘텐츠 위주로 구성됐다. 이는 플레이어가 세계 구석구석을 돌아다니고 모든 발견물을 찾기를 바라는 의도로, 탐험의 난이도, 전투의 밸런스, 발견물의 발견 과정 모두 최소한의 허들로 구성하기 위해 노력했다.
게임의 제목이자 시작점인 '사그레스'는 기획 단계에서 포르투갈의 엔리케 왕자가 사그레스 지역에 항해학교를 세우며 많은 항해사들을 길러냈다는 것을 알게 되며 정해졌다. 15세기가 발견의 시대가 된 것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ㅐㅐㅋㄷ는 드넓은 바다에 도전하게 될 항해사들이 길러진 곳이 바로 사그레스였기에 시대를 이끌어갈 주역들이 성장한 곳이라 게임의 시작에도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이런 시공간적 배경 고증을 통해 현실을 담은 점이야말로 사그레스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다. 게임에 등장하는 발견물의 고증은 위키피디아와 박물관 자료, 발견의 시대 관련 서적을 통해 취합하고, 자료를 기반으로 ‘플레이어가 어떤 과정으로 이것을 발견할까?’를 설계하며 실화도 많이 참고했다. 가장 많은 시간이 투자된 요소는 이를 1480년대라는 시대적 기준에 맞게 보일 수 있는 작업이었다.
예를 들어 ‘아부 심벨 대신전’이 있는 지역명 아부 심벨은 그 당시에는 이름이 없는 지역이었다. 지역의 이름이 아부 심벨이 된 이유도 발굴단이 대신전을 찾을 때 함께한 가이드 소년의 이름을 딴 결과물이다. 이런 사실적 고증들을 주인공의 모험에도 반영해 나가는 식으로 풀어냈다.
이와 반대로, 일부 요소는 고증을 일부러 바꿔가며 적당히 수정했다. 이유는 편의성 등 다양하다. 예를 들어 게임 내 등장하는 계측도구 '육분의'는 바다 위에서 항해자의 위치를 알려줘 항해 게임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중요 아이템이다. 그러나 육분의는 1480년도에는 개발되지 않았던 도구이기에 고증에 맞지 않는다. 그러나 항해게임에서 자신의 위치를 모른다면 플레이에 있어 불편한 점이 많기에, ‘테스트 중인 시제품’이라는 느낌으로 게임 내에 구현했다.
개발자는 이처럼 발견물에 대한 고증은 플레이어의 경험으로 녹이고, 게임의 편의성에 장애물이 될 수 있는 고증들은 완화하는 방식으로 세계를 만들어가고 있다. 개발자는 이에 대해 “게임을 하며 겪게 되는 모험의 대부분이 현실의 사건들을 기반으로 한 내용들이니 이를 비교해보는 것도 게임을 즐기는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며 많은 게이머들이 비교를 통해 게임을 한층 더 깊게 즐길 수 있게끔 덧붙였다.
내가 멈추면, 개발도 멈춘다
사그레스를 만든 ㅐㅐㅋㄷ 개발자는 한때 게임회사를 다녔던 개발자였다. 개발자가 되기 전부터 무언가를 만들기 좋아해 여러 콘텐츠 제작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2000년대 초반에는 웹툰, 2010년쯤부터는 보드게임을 만들었으며, 자신만의 게임을 만들기를 오랫동안 바라왔다. 그러다 최근이 되어서야 하나의 디지털 게임을 완성시킬 수 있는 최소한의 실력이 되었다고 판단해 사그레스를 만들기 시작했다고.
물론 원하는 게임을 만드는 일이 마냥 쉬운 일은 아니었다. 특히나 1인 개발의 장벽이 컸다. 가장 크게 느낀 점은 객관적 검증의 어려움이었다. 매일 개발과 테스트를 반복하는 만큼 자신이 만드는 게임에 대해 모두 알고 있어, 게임이 가진 재미와 의외성을 체감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는 아직도 개발자를 고민하게 하는 문제로, 개발자는 이를 “출시하는 날까지 가지고 가야 할 어려움”이라 말했다.
또다른 문제는 개발 속도였다. 1인 개발은 혼자서 모든 업무를 진행하기에, 개발자가 개발을 멈추면 프로젝트 전체가 멈추게 된다. 이에 개발 속도가 늦어지는 경우가 왕왕 있기에, 행사 참여, 가족 행사, 병원 진료, 집안일 등 개발에서 잠시 손을 떼야 할 상황이 발생하면 그때마다 개발 기간이 딜레이되어 모든 일에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하지만 1인 개발에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개발자는 “실제 역사 기반의 게임은 개발자의 지식도 함께 늘려주는 편”이라며, “개발하면서 숙련된 코딩 실력보다, 15세기의 역사와 발견물들에 대한 잡다한 지식들이 더 많이 늘었던 것 같다”는 소감을 밝혔다. 190여 종의 발견물을 직접 찾고 조사한 만큼, 상당한 지식이 쌓였다고. 이는 한 인디게임 행사에서 만난 역사학과 재학 중인 게이머와 대화를 나누며 크게 체감할 수 있었다는데, 그는 “자신의 모르는 분야의 사람들과 동일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된 것이 개발 과정에서 크게 배운 점 중 하나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어릴 적 느낀 탐험과 발견의 즐거움을 돌아보다
개발자는 한 인디게임 행사에서 나이 지긋한 게이머와 만나 “요즘 이런 게임이 잘 안 나오는데 고맙고, 고생이 많으시다”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당시는 칭찬으로 받아들였던 말이었는데, 이것이 최근 다른 방향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나이 많은 개발자가 비주류 장르의 게임을 자신만의 욕심으로 하나하나 쌓아 올려 나가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개발자는 “모쪼록 제가 어릴 때 느꼈던 탐험과 발견의 즐거움이 게이머분들께도 온전히 닿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며 작은 소감을 밝혔다.
“과거의 사람들은 적도에 가면 몸에 불이 붙고, 아프리카가 끝없이 펼쳐진 대륙인 줄 알았다고 합니다. 지금의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들이 설화였고 구전이었던 세계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고자 오늘도 열심히 개발하고 있습니다. 사그레스를 기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는 인사를 남긴 개발자 ㅐㅐㅋㄷ의 다음 게임이 어떤 모습으로, 이번에는 어떤 취향을 담아 나올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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