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言] 고전문학 프랑켄슈타인의 재해석, 갈바닉 브라이드
2023.01.14 11:00게임메카 신재연 기자
‘갈바니즘’이라는 이론이 있다. 18세기 루이지 갈바니라는 과학자가 개구리 뒷다리에 전류가 흐르는 금속이 닿으면 근육이 움직인다는 것을 발견하며 생성된 동물전기 이론을 뜻하는 말이다. 이를 실험하기 위해 사형수의 시신을 가져와 전기를 흘려보내 대중 앞에서 근육 움직임을 시연하는 일도 곧잘 이루어졌으니, 당시에는 꽤 주목받은 요소라 할 수 있겠다. 비록 나중에 갈바니즘은 잘못된 이론임을 알게 됐지만, 이를 통해 볼타 전지가 만들어지고 전기의 원리에 대해 알게 됐으니 그 영향을 무시할 수는 없다.
여기서 파생된 대작도 있다. 19세기 고전문학 프랑켄슈타인이 바로 그것이다. 프랑켄슈타인은 의사 겸 과학자 빅터 프랑켄슈타인과 그가 창조한 괴물에 대한 이야기로, 문학사 최초의 SF 작품으로 불리며 영화나 뮤지컬과 같은 다양한 창작물로 재구성됐다. 이는 비단 예술작품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게임 캐릭터의 모티브가 되기도 해, 페이트 시리즈나 브롤스타즈, 몬스터 헌터 라이즈: 선브레이크에서는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창조한 괴물의 비주얼이나 콘셉트를 가진 캐릭터를 만나볼 수도 있다.
이 문학작품은 그 자체가 게임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갈바닉 브라이드도 그런 게임이다. ‘만약 괴물의 신부가 창조되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라는 질문에 게임의 요소가 하나하나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게임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강의를 통해 배웠던 프랑켄슈타인에서 모티브를 얻어 게임을 기획하게 됐다는 IA게임즈의 팀장 스파이키와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고전 영문학의 마이너한 재해석, 갈바닉 브라이드
갈바닉 브라이드의 장르를 정의하자면 ‘2D 탑뷰 갈바니펑크 스텔스 어드벤처’ 정도로 표현할 수 있다. 스파이키 팀장이 가장 자신 있던 세 장르 ‘생존, 어드벤처, 스텔스’를 섞은 다섯 개의 기획안을 각자의 사유로 포기하고 마지막으로 영감을 받아서 쭉 기획안을 써내려 갔는데, 그게 프랑켄슈타인에 등장하는 ‘이름 없는 괴물’에 대한 게임이었다.
이름 없는 괴물을 대신할 나약한 괴물의 신부를 만들고, 캐릭터성에 특징을 더하기 위해 초월적인 존재이지만 프랑켄슈타인에게 능력을 억제당했다는 설정을 더하며 스텔스의 당위성도 함께 확립했다. 여기에 생체 전기에 기반한 프랑켄슈타인의 ‘창조’를 더하고 이와 관련된 각종 기믹을 조합해 우리 게임만의 독특한 시스템을 만들자는 목적으로 게임이 점차 만들어졌다는 것이 스파이키 팀장의 설명이다.
소설 프랑켄슈타인의 부제로 붙어있던 ‘모던 프로메테우스’라는 초안명을 가지고 있던 게임은 갈바닉 브라이드로 변했다. 게임명에 쓰인 ‘갈바닉(Galvanic)’이라는 단어는 세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다. ‘갈바니즘에 관련된, 전류를 발생시키는, 충격적인’이 그 뜻이다. 이 단어를 통해 갈바니즘과 연관된, 전기를 발생시키는 초능력을 사용하는, 충격적인 비밀을 지닌 괴물의 신부 ‘브라이드’라는 캐릭터에 대한 게임임을 확실히 했다.
독특한 시스템은 생체 전기를 이용하면 전력 발전도 가능하겠다는 가정에서 시작됐다. 그래서 이와 유사한 논리로 작동하는 테마인 스팀펑크라는 장르를 살짝 비틀어 갈바니펑크라는 테마를 만들었다. 기괴하고 음산한 분위기, 전기가 흐르는 소리, 전기를 머금은 개구리의 뒷다리가 움찔거리는 풍경은 이 테마가 반영된 결과다. 여기에 맞춰 브라이드는 자신의 손에 닿은 물체에 전력을 부여하고, 전도체에 닿은 전기가 주변으로 전이되게 하며 다양한 상호작용을 가능케 했다.
게임의 주 메커니즘인 ‘전기의 전이’는 게임 속 다양한 곳에서 만나볼 수 있다. 스파이키 팀장은 히트맨은 물웅덩이에 전선을 넣어 대상을 감전시키는 플레이가 가능하고, 야생의 숨결에서도 전기 요소가 존재한다는 것을 예시로 들었다. 이런 AAA급 게임들에서 볼 수 있는 상호작용을 이 게임에서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 지를 많이 고민했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결국 전기라는 요소에 대한 선택과 집중이 이루어졌고, 여기에 게임의 전반적인 상호작용 요소와 콘셉트를 전기에 연결시키면서, 갈바닉 브라이드만의 시스템을 만들어냈다.
지루함을 느끼지 않도록 전기 소리, 심장 소리 등 사운드 이펙트 활용에도 노력을 더했다. 숨게 될 경우 주변의 모든 소리가 적막해지고, 유독 심장소리가 크게 부각되는 방식이 그렇다. 이는 스텔스라는 장르의 본질적인 단점인 긴 대기 시간을 지루하지 않게 느낄 수 있도록 신경쓴 결과물이다. 유명 스텔스 게임들은 숨어있는 동안 더빙된 대사나 화려한 환경, 혹은 단순히 npc의 모션을 보는 것 만으로도 시간을 보낼 수 있지만, 갈바닉 브라이드의 경우 활용할 수 있는 자원에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스파이키 팀장은 “앞으로도 신규 사운드 시스템이 추가될 에정이고, BGM 등도 변경될 예정이니, 기대해주시면 좋겠다”고 밝혔다.
7인의 ‘스텔스게임 덕후’, IA 게임즈
IA 게임즈는 ‘It’s Alive games’를 줄인 말이다. 고전 영화 프랑켄슈타인의 명장면 대사인 “It’s Alive”라는 대사에서 팀명을 차용했다. 단순히 아이디어에 불과한 생각들을 노력을 통해 살아 숨쉬는 컨텐츠로 개발하고자 하는 의미도 함께 담았다. 배경도, 환경도, 전공도 다르지만 ‘스텔스 게임 덕후 대학생’이라는 공통점으로 구성된 7명의 팀원이 1년째 개발을 진행해오고 있다.
개발의 주요 스탠스는 명작 3D 스텔스 게임에서 체험할 수 있는 경험을 2D 탑뷰로 이식하는 것이었다. 기획을 담당한 스파이키, 알레아, 프로그래밍을 담당한 선, 옥타, 큐브, 아트를 담당한 마린, 사운드를 담당한 카인까지 이 경험을 최대한 전달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스파이키 팀장은 “스텔스라는 장르도 그렇고, 시스템도 그렇고, 게임의 콘셉트도 그렇고, 저희 게임은 독특하다. 독특해지기 위해 노력했고, 실험적인 요소들도 많이 들어갔다. 팀원들을 처음 모집할때도, ‘큰 돈을 벌 수 있는 게임’이 아니라, ‘시장에서 나름의 의의를 점유할 수 있는 게임’을 만들자고 강조했다. 갈바닉 브라이드는 주류나 유행과는 거리가 멀다. 그래서 다른건 몰라도, 우리 게임이 시장에서 ‘독특한 게임’이라는 건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며 게임을 설명했다.
실제로도 그렇다. 강함을 추구하고 호쾌한 액션이 주류가 된 최근 게임 시장에 비해, 갈바닉 브라이드는 일관적인 파워밸런스를 유지한다. 캐릭터가 성장하고 더 많은 스킬을 가지고 있어도 본질적으로 적과의 대면에서 승리할 수는 없도록 구성됐다. 하지만 난관을 해결할 더 다양한 방법들을 제공했다. 이는 난이도 또한 마찬가지다.
입문자용 스텔스 게임임을 강조하는 갈바닉 브라이드에 난이도 조절 기능이 도입될 예정인지 묻자 스파이키 팀장은 “현재로서는 없다고 단호히 말씀드릴 수 있다”고 답했다. 갈바닉 브라이드는 스텔스 게임의 기초를 배우고 이를 응용할 수 있는 능력을 얻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스파이키 팀장은 “스텔스는 레벨 디자인이 중요한 장르이기 때문에, 단순히 체력이나 공격력같은 수치적 차이로는 크게 변화를 주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또 되게 쉬운 게임만은 아니다. 스텔스 게임들 중에서는 상대적으로 쉬운 축에 속하지만, 애초에 쉬운 스텔스 게임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스텔스는 쉬워지는 데에 한계가 있다. 너무 쉬워지면 스텔스를 할 이유가 없어진다. 그래서 그 밸런스를 잘 잡으려고 노력하는 중이고, 약자의 입장에서 게임이 처음부터 끝까지 전개되기 때문에, 숙련자 분들께서도 즐기실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또, “처음 하신다면 하나만 명심하시면 된다. 당신은 이 세계에서, 그 누구보다도 약하다. 하지만 당신에게는 다른 능력들이 있다. 그 능력을 최대한으로 활용하면 된다”며 스텔스 게임 입문자들이 갈바닉 브라이드를 할 때 명심하면 요소를 언급했다.
스파이키 팀장은 다음 게임에 대한 질문에는 “다른 문학을 재해석해서 게임을 만들어보고 싶다. 사실 지금까지 게임을 기획함에 있어, ‘디스아너드’의 영향을 받지 않은 경우가 없었다. 제 인생 게임이고, 뭘 해도 거기로 귀결됐다. 이번에도 그렇다. 그래서 ‘디스아너드의 영향을 받은 게임’이라는 나름의 숙원사업이 해소된 시점에서, 어떤 독특한 시도를 할 수 있을지도 기대되는 것 같다. 또 다른 스텔스 게임일수도 있겠고, 저의 다른 선호 장르인 생존이나 카드 계열일수도 있을 것 같다. 많은 경우를 열어두고 있다”고 밝혔다.
“망설이고 고뇌하지만, 생각해서 나아가라”
“갈바닉 브라이드는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게임도 아니고, 시원시원하게 돌파하거나 압도적인 힘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게임도 아니다. 화려한 이펙트와 3D 그래픽도 없다. 하지만 게임을 플레이하는 내내 생각할 거리가 있는 게임을 만들고자 노력했다. 프랑켄슈타인의 대저택에서 브라이드는 망설이고, 고뇌한다. 브라이드는 갑작스레 세상에 던져졌고, 헤매고 있다. 아마 정신없이 살아가는 현대인들 누구나 공감 가능한 심정일 것이라 본다. 끊임없이 생각하고, 당신만의 길을 브라이드와 함께 나아갔으면 좋겠다. 이 게임이 ‘시프’나 ‘디스아너드’ 등 스텔스를 경험해보신 분들께는 향수와 새로움을, 스텔스를 처음 접하는 분들께는 참신한 자극을 줄 수 있기를 바란다”
스파이키 팀장의 말처럼, 갈바닉 브라이드는 메이저한 게임은 아니다. 하지만 비주류에 가까운 만큼 실험적인 시도와 창의력으로 가득하다. 오는 6월 개발을 마무리한다는 IA 게임즈의 갈바닉 브라이드가 이 정신을 끝까지 이어나가, 인디게임의 본질에 걸맞는 자신만의 독창적인 게임을 잘 마무리 지을 수 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