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여움에 가려진 하드코어 SRPG, 역붕괴: 베이커리 작전
2023.06.21 17:52게임메카 김인호 기자
선본 네트워크, 일명 ‘미카팀’이라고도 불리는 중국 게임 개발사는 소녀전선을 통해 국내외 팬들에게 이름을 알렸다. 귀여운 SD 여성 캐릭터와 총기 조합은 게이머들의 눈길을 끌었고, 2017년 국내 출시 이후에는 가히 ‘소녀전선 붐’이라 할 만큼 엄청난 인기를 자랑했다.
그리고 지난 2020년, 선본 네트워크는 소녀전선 IP를 활용한 4개 신작을 개발 중이라 발표하며 다시 한번 소녀전선 붐을 예고했다. 소녀전선: 뉴럴 클라우드, 소녀전선: 글리치 랜드, 소녀전선 2: 추방과 더불어, 이번 6월 스팀 넥스트 페스트에 체험판을 공개한 ‘역붕괴: 베이커리 작전(이하 역붕괴)’이 여기에 포함된다. 특히 역붕괴는 소녀전선의 시초라 할 수 있는 ‘빵집소녀’의 리메이크작이기도 한 만큼, 많은 팬들의 관심이 몰린 상황이다.
스팀에서 공개된 체험판을 통해 초반부를 플레이해 본 역붕괴는 SRPG 장르가 자랑하는 전략적 재미를 잘 담아낸 게임이었다. 자신의 턴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해 적과 전투하고, 여러 아이템을 활용하며 주어진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은 상당한 성취감을 제공했다. 여기에 선본 네트워크 특유의 캐릭터 디자인이 게임의 맛을 살린다. 소녀전선을 플레이한 적이 없는 사람이라도 충분히 매력적으로 느낄만한 설정과 일러스트는 물론, 조작 시 움직이는 SD 캐릭터의 귀여움이 굉장한 강점으로 느껴졌다.
소녀전선을 몰라도 스토리 이해는 가능
역붕괴는 스토리가 중요한 게임이다. PC 패키지라는 특성도 있지만, 주요 플레이가 각 장 안에 구성된 여러 개의 미션을 차근차근 클리어하며 스토리를 전개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서 하나 다행인 것은, 소녀전선을 아예 안 해봤더라도 스토리 이해에 지장이 없다는 점이다.
다만, 스토리를 파악하는 과정이 그리 쉽지는 않다. 게임을 시작하자마자 곧바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데다가, 대화 중간마다 등장하는 고유명사 수도 상당한 편이다. 스토리를 요약하면 가까운 미래에 전쟁 중인 세계에서 특별한 존재로 불리는 ‘베이커리’에 둘러싸인 비밀을 밝혀낸다는 내용인데, 자세하게 대화문을 읽지 않으면 세부설정을 놓치기 쉬운 구조로 되어있다.
물론 부가적인 옵션으로 고유명사에 대한 부연 설명을 제공하기는 하나, 이를 일일이 찾아봐야 하는 것 자체가 불친절하다고 느껴졌다. 조금 더 가벼운 방식으로 대화문 안에서 설정을 전달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전략 요소가 이렇게 많다고?
게임의 기본적인 진행 방식은 다른 SPRG와 비슷한 느낌이다. 적과 자신의 턴이 순차적으로 돌아가며, 각 캐릭터가 보유한 포인트(AP)를 감안해 이동과 공격 등 여러 행동을 수행해야 한다. 플레이하는 임무들은 모두 승리 목표와 등급을 높이는 추가 목표, 실패 조건이 존재하는데, 특히 추가 목표를 달성하려면 AP 낭비 없이 최대한 효율적으로 자신의 턴을 사용해야 한다. 난이도에 따라 진행 중 저장이 가능하기도 하니, 이를 적극 활용하면 보다 손쉽게 임무를 클리어할 수 있다.
체험판에선 총 2장 4막까지 제공한다. 정식 출시 버전의 총 분량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지만, 당연히 체험판은 초반부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여기까지만 해도 엄청나게 다양한 전략 요소들이 등장한다. 단순히 사용하는 아이템이나 캐릭터 스킬이 많은 것을 넘어, 스킬 강화에 무기 부속품, 아이템 특성 업그레이드까지 다 더하면 수십 개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특히 이 중에서도 15개 가량 되는 아이템 종류가 압권이다. 일정 범위에 공격을 가하는 ‘세열수류탄’과 적 이동을 방해하고 피해를 주는 ‘부비트랩’ 같은 기초적인 아이템에 더해, 일정 범위에 적 이동 시 AP 소모량을 증가시키는 ‘홀로그램 그래블’, 함정을 밝히는 ‘소형 탐지 장치’ 등 전략적으로 활용해야 하는 아이템이 가득하다. 각 아이템은 사용 가능한 범위와 AP 소모량도 다르기 때문에 상당한 집중력을 요한다.
당연하지만 캐릭터 마다 가진 공격 범위와 대미지, 스킬, 범위도 전부 고려해야 한다. 1장까지는 2개 캐릭터만 다루기 때문에 비교적 간단하더라도, 2장 중간부터 캐릭터 숫자가 3개를 넘어가며 난이도가 급격히 오른다. 단순히 전투만이 아닌, 엎드리기(스텔스)를 이용해 상대 시야 허점을 노리고, 엄폐물과 아이템을 적극 사용하며 조건을 달성해야 한다. 다만, 스텔스와 이동만으로 목표 지점에 도달하는 임무에서는 약간 지루함도 느껴져 호불호가 나뉠 것으로 예상된다.
귀여운 SD 캐릭터와 별개로 손맛이 또 탁월하다
역붕괴에서 가장 매력적인 점을 뽑으라 하면 역시 일러스트와 컷신, SD 캐릭터라고 할 수 있다. 설정에 어울리는 매력적인 디자인과 아기자기한 움직임에서 느껴지는 귀여움은 ‘역시 미카팀’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비록 스토리 연출에서 성우 더빙이 거의 없고 간단한 효과음과 대화만으로 상황을 전개해 아쉬움이 들 수 있지만, 깔끔한 인게임 모델링과 그래픽이 이를 잊게 만든다.
여기에 귀여운 디자인과 별개로 캐릭터 공격이 상당한 타격감을 자랑하는 것이 인상 깊다. 특히 주요 캐릭터 ‘제퓨티’가 사용하는 저격소총 손맛이 굉장히 탁월한 편인데, 엄청난 사거리와 높은 대미지, 공격 시마다 들리는 총기 효과음이 겹치며 이러한 손맛을 완성한다. SRPG니까 전략 요소가 다양한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손맛까지는 기대하지 않았던 만큼 기억에 남는 부분이다. 아울러 샷건을 사용하는 ‘아비가일’과 권총을 사용하는 ‘루비’ 또한 뛰어난 타격감을 자랑해 눈길을 끈다.
체험판이라 초반부밖에 경험해볼 수 없었지만, 이것만으로도 역붕괴는 기대하기에 충분한 게임으로 느껴졌다. SRPG에 익숙하지 않은 유저라도 쉽게 적응할 수 있도록 깔끔한 인터페이스와 설명을 제공하면서도, 장르 특유의 하드함을 전략 요소에 담아내 골수 유저도 만족시킨다. 여기에 보는 즐거움을 더하는 소녀전선 특유의 디자인이 역붕괴가 왜 기대작인지 깨닫게 해준다. 일본풍 미소녀 게임을 좋아하는 유저와 SRPG 장르를 좋아하는 유저 모두에게 추천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