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롬' 이름만 믿고 플레이 해도 후회 없다, 아머드 코어 6
2023.09.04 18:13게임메카 김형종 기자
프롬 소프트웨어 게임 팬으로서, 아머드 코어 신작이 나온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약간은 불만이 있었다. 기대했던 엘든 링 DLC나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블러드본 PC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또 엘든 링이라는 비교적 대중적인 대작을 낸 후 개발하는 게임이 소수만 즐기는 메카 장르라는 점에서 지나치게 과감한 선택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아머드 코어 시리즈에 대한 추억이 거의 없었던 것도 부정적 첫인상에 한 몫을 했다.
기자가 지금까지 아머드 코어 시리즈를 즐기지 않았던 이유는 워낙 부정적인 이야기를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메카 장르 로망을 충족시켜주는 게임이라는 평도 많았지만, 조작 난이도가 어려워서 패드를 거꾸로 잡아야 한다던가, PvP는 어려우니 포기하라던가 하는 난이도 관련 괴담(?)이 많았다. 이번에 ‘아머드 코어 6: 루비콘의 화염(Armored Core 6 Fires of Rubicon, 이하 아머드 코어 6)’을 플레이 한 이유도 시리즈에 대한 애정은 전혀 없었고, 단지 프롬 소프트웨어가 만들었으니 재미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 때문이었다. 그리고 개발사는 그 믿음에 훌륭한 게임으로 보답했다.
쉬운 조작을 바탕으로 한 빠른 속도의 메카 전투
우선 조작이 생각보다 편하다는 점에 놀랐다. 전작 엘든 링과 비교하면 이해가 빠른데, 엘든 링은 약공격과 강공격에 전투 기술까지 있어 왼손 강공격을 입력하면 전투기술이 사용되는 등 불편한 요소가 있었다. 반면 아머드 코어 6에서는 버튼 네 개로 쉽게 공격이 가능하다. 손과 어깨 양 쪽으로 총 4개 무기를 장착하게 되는데, 일반 공격은 해당 무기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되고 근접 무기 강공격이나 미사일 다중 조준은 버튼을 길게 누르면 된다. 거기에 조준 보정 시스템이 지원되기 때문에 적을 바라보고 공격 버튼만 누르면 적을 맞출 수 있으니 상당히 편리하다. 더 이상 '아머드 코어 그립' 같은 놀림거리는 존재치 않는다.
부스터와 회피, 비행과 점프도 통합되어 이제 점프 버튼을 오래 누르면 자동으로 비행하고, 회피 직후 자동으로 부스터가 작동하며, 어썰트 부스트만 필요에 따라 사용하면 된다. 대신 조작이 편해져 기동성이 좋아진 만큼, 적 움직임도 전반적으로 빨라졌다. 게임이 진행될수록 상위 아머드 코어(아머드 코어 시리즈에서 탑승하는 메카를 지칭하는 용어, 이하 AC)와 보스 속도가 더 빨라져 최종 보스 중요 패턴 중 하나가 시야에서 사라질 정도로 빠르게 비행하는 것일 정도다.
속도가 빨라지고 적 조준이 쉬워진 덕분에 초보 유저도 마치 잘하는 것 같이 느껴져 게임을 계속하는 원동력이 된다. 이는 특히 게임에 익숙하지 않은 초반에 두드러지는데, 적 공격은 다 맞고 내 공격은 하나도 적중시키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적을 공격할 때의 타격감과 레이저, 미사일의 화려한 시각 효과 덕분에 전투에 몰입하게 된다.
나만의 AC를 제작할 수 있는 어셈블리 시스템
아머드 코어 시리즈 특징은 다양하게 준비된 부품과 이를 통해 자기만의 AC를 제작할 수 있다는 점이다. 아머드 코어 6에는 어셈블리라는 시스템으로 필요할 때 부품을 바꾸는 시스템이 지원되어 한층 다채로운 전투가 가능하다.
AC 부품은 외장(팔, 다리, 몸통 등), 내장(부스터 등), 무장(무기), OS 튜닝으로 나뉘는데, 중요 부위는 외장 중 다리 파츠와 무장이다. 다리 파츠는 기체에 실을 수 있는 총 무게와 기체 이동 방식을 결정한다. 2각은 밸런스형, 역관절은 빠르고 가볍지만 가벼운 부품으로 구성해야 하며, 탱크는 튼튼하고 중장비를 견디지만 수직 이동이 제한되는 등 각 파츠마다 게임 플레이 방식을 바꿀 정도로 차이가 크다.
무기는 크게는 폭발, 에너지, 실탄, 근접 무기가 존재하는데, 유효 사거리, 대미지, 무게 등등이 서로 달랐다. 물론 분류가 4개일 뿐 게임에는 60개가 넘는 무기가 준비되어 보스나 미션 마다 장단점을 파악해 어셈블리로 기체를 구성하는 것이 아머드 코어 6의 핵심이다.
어셈블리가 큰 위력을 발휘하는 대표적인 보스가 월벽 미션의 저거노트로, 해당 보스는 전면부가 면역이기 때문에 상부나 후면을 공격해야 한다. 해당 보스를 깰 때 위에서 아래로 내리꽂는 미사일 무장을 구입할 수 있기 때문에, 난이도가 지나치게 높게 느껴진다면 이를 구입해 사용하면 된다.
미션에서도 마찬가지로 어셈블리가 중요한데, 약한 적이 여럿 등장하는 미션은 저위력 연발 총기와 가볍고 빠른 기체를 사용하는 것이 좋지만, 강한 적을 처치해야 하는 미션에서는 짐머만, 송버드와 같이 스태거 수치를 빠르게 쌓을 수 있는 무기를 사용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미션이나 보스전에서 사망하면 어셈블리를 다시 구성할 수 있기 때문에, 진행이 막힐 때마다 어셈블리에 변화를 줄 수 있다.
PvP에 가까운 AC 전투와 강렬한 경험을 전한 거대 보스전
아머드 코어 6의 전투는 다양한 부품과 쉬운 조작, 빠른 게임 템포가 갖춰져 도전적인 전투가 가능하다. 일반적으로 미션은 난이도가 낮고 잡몹을 빠르게 제거하는 무쌍류 전투 쾌감을 체험할 수 있고, 보스전은 프롬 소프트웨어 특유의 멋진 보스 패턴과 도전적인 난이도가 눈과 정신을 즐겁게 했다.
미션은 잡몹 처리와 목표 수행, 적 AC와 전투, 그리고 보스전으로 나뉜다. 적 AC는 사실상 PvP와 유사한데, 적 AC는 플레이어도 쓸 수 있는 장비와 무기를 활용하며, 움직임 빠르고 코어 확장 기능(특수능력)과 회복까지 사용한다. 사실상 패턴이 없어 대응이 어렵지만, 대신 플레이어와 체력이 비슷하게 적어 강력한 공격 몇 번에 전투가 끝나기도 한다.
거대 보스전에서는 상대가 불가능해 보이는 엄청난 기계에 맞서는 웅장한 전투를 체험할 수 있다. 거대 보스는 체력이 많은 대신 움직임이 비교적 굼뜬 편이고, 공격이 강력하지만 대신 정해진 패턴으로 공격했다. AC의 경우 임기응변이 더 중요했다면, 거대 보스는 상대하기 좋은 어셈블리와 패턴을 파악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
다만 다양한 무기가 해금되는 후반부 난이도를 보스 속도 만으로 보완하려 한 점은 문제였다. 오랜 시간이 걸렸던 4챕터 최종 보스 아이비스는 비행 속도가 빠르고 기체가 작아 도저히 공격을 적중시킬 수 없었다. 최종 보스 에어는 이보다 더 빠른데다가 플레이어 뒤로 이동하는 근접 공격 패턴도 있어서, 내 공격을 맞추기 위해서는 위험을 무릅쓰거나 적이 멈춘 찰나의 타이밍을 노려야 해 난이도가 높았다. 반면 이들에 비해 기동력이 낮았던 최종 보스 월터는 양팔 샷건, 벙커 버스터 조합으로 1분만에 파괴할 수 있을 정도로 쉬웠다.
미션 진행 방식으로 스토리텔링 몰입감을 높이고 회차 플레이 목적도 만들다
미션 방식 게임 플레이는 게임을 처음 시작할 때는 단점으로 느껴졌다. 미션으로 진행하니 게임이 끊기는 것 같이 느껴졌고, 내용이 이어지지 않는 느낌도 들었다. 예를 들어 마지막 챕터에서 핸들러 월터가 납치되는데, 어떻게 납치됐는지 전혀 알려주지 않는다. 또한 주인공은 고철 AC를 발견해 지하에서 탈출하고 칼라에게 구조 신호를 보내는데, AC도 구조 신호도 월터가 준비했다고 설명은 해주지만 여러모로 개연성이 부족했다.
또한 미션 방식으로 진행되다 보니 프롬 소프트웨어 게임이 가지는 탐험의 장점도 약화되는 편이다. 미션 중에서는 숨겨진 아이템과 전투 로그를 가진 강한 적, 그리고 문서 자료를 획득하는 탐험 요소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일직선으로 진행되는 미션이 대부분이고, 오픈월드가 아니기 때문에 탐험의 묘미는 다소 떨어진다. 또 미션을 플레이어가 어떻게 끝내냐에 따라 플레이 타임도 상당히 짧아진다.
하지만 게임을 플레이하다 보니, 아머드 코어 6 미션 시스템은 스토리텔링과 잘 어우러져 몰입을 강화하면서, 프롬 소프트웨어 게임 중 가장 훌륭하게 다회차 진행 목적을 만들었다. 아머드 코어 6의 주제는 ‘자유’다. 주인공 621호는 실험체로서 정체성이 없으며, 오퍼레이터 핸들러 월터 지시를 충실하게 수행한다. 주변 인물들도 처음에는 그를 그저 월터의 사냥개라 비하한다.
하지만 게임을 진행하게 되면서 선택권이 늘어나게 되고, 엔딩에 다다르면 루비콘 행성의 미래를 주인공이 결정하게 된다. 주인공은 핸들러 월터의 유언에 따라 코랄이라는 에너지원을 모두 불태울 수 있다. 이 선택을 하면 불안정하고 자가 증식하는 위험한 에너지원을 영원히 제거할 수 있지만, 루비콘 행성은 잿더미가 된다. 반면 그런 월터와 지인들을 공격해 코랄 제거 계획을 막고 행성 주민들을 살리는 선택을 할 수도 있다. 플레이어에기 주어진 선택의 자유는 621호가 월터의 사냥개에서 레이븐으로 나아가는 과정과 맞물려 주제의식과 스토리 몰입을 강화한다.
다만 둘 중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엔딩은 찜찜함을 선사한다. 코랄을 불태우면 행성이 잿더미가 되어 모든 사람이 죽고, 코랄을 살리면 주인공 목숨을 구해준 신더 칼라나 채티, 그리고 월터와 싸우게 된다. 그래서 한쪽 엔딩을 보고 나면, 필연적으로 다른 엔딩을 보기 위해 다음 회차를 진행하게 된다.
그렇게 2회차를 시작하게 되면 특정 미션에서 강력한 AC가 난입해 난이도가 높아지고, 여러 선택 미션이 추가된다. 특히 전까지는 두 기업 의뢰를 주로 수행했다면, 이번에는 루비콘 해방 전선측이 더 다양한 의뢰를 준다. 이는 개발 의도로도 보이는데, 첫 회차에 볼 수 있는 두 엔딩 중 루비콘의 해방자 엔딩이 루비콘 해방 전선과 연관이 깊지만 막상 게임에서는 이들을 지원하는 미션이 적어 1회차 엔딩으로는 월터를 도우라는 뜻이 아닐까 생각된다.
2회차를 클리어하고 3회차에 돌입하면, 올 마인드라는 예상 밖의 존재가 주인공에게 접촉한다. 새로운 미션이 다수 추가되고, 이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기존에 벌어졌던 사건이 사실 올 마인드의 설계였다는 비밀도 파악하게 된다. 최종 보스를 물리치고 나면, 기존 엔딩과는 또 다른 세 번째 결말, 코랄과 공존을 선택할 수 있다.
미션을 추가하는 개념으로 회차 플레이를 다채롭게 한 것은 프롬 소프트웨어 게임으로서 훌륭한 발전이다. 다회차를 지원한 다크 소울 시리즈 등은 적 공격력과 체력이 늘어나거나 반지가 추가되는 것 이외에는 새로운 요소가 적었다(다크소울 2에서는 적 숫자나 암령이 늘어나는 방식을 시도했으나, 이후 작품에서는 사용되지 않았다). 아머드 코어 6에서는 미션 시스템을 게임 주제의식을 전달하고 다회차 요소에까지 활용하는 보여줬다. 이런 점에서 아머드 코어 6를 시도하는 게이머에게는 다회차 플레이를 추천한다. 게임은 분명 더 어려워지지만, 그만큼 다채로운 미션과 스토리로 보답할 것이다.
아머드 코어 6는 마이너한 장르, 높은 난이도라는 진입장벽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게임성을 보여줬다. 전투는 빠른 속도감, 다양한 무기, 도전적인 보스 덕분에 매우 재미있었다. 미션 방식은 플레이 타임이 다소 짧다는 단점은 있었지만, 훌륭한 스토리텔링 수단으로 사용했다는 점과 다회차 플레이를 다채롭게 했다는 장점이 더 강했다. 이번 작품 덕분에 아머드 코어라는 명작 시리즈를 몸소 체험해 볼 수 있었던 것에 감사를 표하며, 앞으로 나올 엘든 링 DLC에 더 큰 기대를 품게 됐다. 더불어 '프롬'이라는 이름만 봐도 믿고 플레이 할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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