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런 웨이크 2, 스토리텔링과 최적화 넘으면 명작이 보인다
2023.10.27 09:40게임메카 신재연 기자
추리 소설이나 미스터리 소설에서 독자를 집중시키는 것은 ‘의문’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무엇이 이런 상황을 만들었는지 추측하며 주인공과 함께 나아가다 보면 절로 이 세계관에 몰입하게 된다. 그렇기에 작가도 몰입감을 살리기 위해 소설 곳곳에 단서를 넣어두고, 등장인물들의 성격을 보여주며 왜 이런 방향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지를 납득할 장치를 만든다.
앨런 웨이크 2의 전개 방식은 이와 비슷했다. 13년 간 어둠의 공간에 갇혀 있던 앨런 웨이크와, 이상한 사건으로 브라이트 폴즈에 찾아온 FBI 사가 앤더슨이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를 추적하는 것이 게임의 주 전개방식이다. 다만, 읽기만 하면 진행이 되는 소설과 달리 앨런 웨이크 2는 끊임없이 플레이어를 생각하게 만든다. 곳곳에서 단서와 정황을 던져주고, 이를 연결해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다만 그 과정이 다소 거칠다. 앨런 웨이크의 인식이 불안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사가 앤더슨이 너무 많은 것을 생각해야 하기 때문일까? 혹은 완벽한 비주얼을 위해 하드웨어를 혹사시켜야 해서? 앨런 웨이크 2를 비유하자면, 앨런과 사가가 흘리고 간 아주 맛있는, 하지만 다소 마른 빵 부스러기를 어두운 숲에서 찾아 나가며 다시 빵으로 만들어야 하는 그런 게임이었다.
영화를 연상시키는 연출, 실사와 그래픽의 절묘한 교차
앨런 웨이크 2의 핵심은 ‘예술’이다. 게임 내 대부분의 요소들이 예술 작품을 떠오르게 하는 작법을 충실히 따른다. 컷신에서는 영화를, 대화와 진행 방식에서는 소설의 작법을 많이 반영했기에 이에 대한 배경지식이 많을수록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길 요소가 풍부하다.
게임에서 크게 부각되는 배경이자 요소 중 하나는 중첩계, 영어로는 ‘오버랩(overlap)’이다. 예술 작품에서 오버랩은 혼란스러운 요소나 해당 화면에 어떤 요소가 숨어있음을 보여주는 장치로 작용한다. 게임은 끊임없이 중첩계가 언급돼 빛과 어둠 사이를 오가고, 컷신 및 로딩 연출에서도 끊임없이 오버랩되는 서로 다른 장면은 중첩계에서 벗어나기 위한 앨런 웨이크의 필사적인 모습과,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자신의 역할을 해내기 위한 사가 앤더슨을 조망한다.
게임 내 등장하는 인물들 또한 극적이다. 등장인물의 음성은 입모양에 맞춰 실제로 발화하는 느낌을 주며, 입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동작이나 시선 또한 꾸준히 내가 조작하는 캐릭터를 따라오기에 분명 내가 조작하는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영상 매체를 보는 기분을 준다. 비록 선택지는 좁지만 내가 어떻게 움직이든 위화감 없이 진행되는 게임 속 NPC들의 움직임이나 대화는 몰입감을 살리기에 충분하다. 진행 과정에서 등장하는 실사 영상과 인게임 그래픽의 교차는 상상과 현실을 구분하는 요소가 되어주면서 모호함을 더욱 끌어올린다.
물론, 원활한 게임 진행을 위해 선택한 선형적 진행방식은 다소 호불호가 느껴질 수 있다. 게다가 단서를 하나라도 찾지 못한다면 진행되지 않는 스토리와 그다지 빠르지 않은 이동속도, 어둠의 비중이 큰 배경 등은 다소 답답한 느낌을 준다. 지역과 지역 사이를 이동하는 로딩 과정에서도 결코 게으르지 않다. 로딩이 진행되는 동안 등장하는 인물 간의 대화는 소소하지만 인물의 이해도를 높이는 요소로 작용한다.
이외에도 전작에 등장했던 인물들이 브라이트 폴즈의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기도 하고, 컨트롤에서 앨런 웨이크의 숨겨진 이야기가 나왔듯 앨런 웨이크에서도 컨트롤에 등장한 요소들이 출현하며 레메디의 세계관을 폭넓게 조망한다. 이와 같은 요소를 통해 전작부터 기다려준 팬들에 대한 감사의 의미를 풍부하게 담은 것도 흥미롭다.
그림자 괴물에게서 살아남는 두 주인공의 방식
앨런 웨이크 2에서 플레이어가 조작하게 되는 두 주요 인물은 앨런 웨이크와 사가 앤더슨이다. 두 사람은 작가와 FBI라는 서로 다른 직업과 배경을 가지고 있는 만큼 플레이 방식에 큰 차이가 있지만 그 구조 자체는 유사하다.
앞서 예술 작품에 영향을 받은 요소가 많다고 언급했듯, 시스템 상에도 이와 같은 요소가 준비돼 있다. 앨런 웨이크 2에서 가장 시선을 끄는 요소는 바로 ‘내면’이다. 두 사람의 내면은 각각 ‘마음의 공간’과 ‘작가의 방’로 구분돼 등장한다. 이 내면은 플레이어가 원할 때마다 언제든 들어설 수 있지만, 들어선다고 하여 게임 내 시간이 멈추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상상을 시각화하는 느낌을 전한다.
플레이어는 사가 앤더슨의 마음의 공간에서 현실 속 사건을 수사하는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사건 보드에서는 게임을 진행하며 얻은 단서를 통해 수사와 정황 파악을 진행할 수 있으며, 프로파일링으로는 등장하는 관계자들의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을 파악해 진행에 도움이 되는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아울러 브라이트 폴즈를 포함한 다양한 곳에 흩어진 원고를 발견해 현재, 혹은 앞으로 벌어질 일을 파악하며 진행에 도움을 얻을 수도 있다. 이와 같은 요소는 다소 막막할 수 있는 진행에 도움을 준다.
반대로 앨런은 자신의 내면을 구체화한 작가의 방에서 소설의 플롯을 확인하고, 이 플롯을 미래에 적용하면서도 독자적인 행동으로 앞으로 벌어질 소설을 치밀하게 만들어나가야 한다. 플롯은 특정한 인물의 정보를 새롭게 써내려가면 그와 같이 인물의 상황이 바뀌고, 특정한 공간을 묘사하면 이에 맞춰 공간 자체가 변화하는 방식으로 기능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새로운 이야기들은 앞으로의 길을 달라지게 해, 소설가로서의 앨런을 보여주는 구조로 작용한다. 앨런은 이외에도 빛을 활용하는 퍼즐을 풀어나가기도 하는데, 이는 빛과 어둠이 가지고 있는 작중의 의미를 조망하는 계기로도 작용한다. 이 내면세계의 경험은 플레이어가 자신이 얻은 단서를 직접 정리하고 찾아나가야 한다는 점에서 두 가지 역할을 하는 것으로 다가왔다.
플레이어는 게임 내에서 만나볼 수 있는 특수한 공간인 관리인의 양동이를 통해 시선을 전환한다. 이와 같은 두 소설의 전환은 게임의 핵심 기능이다. 두 명의 주인공을 내세우면서도 하나의 이야기를 연결하는 장치가 되어 주기도 한다. 아울러 일종의 퍼즐처럼 다가와, 이야기를 더욱 반추하게 만드는 장치로도 쓰였다.
전투 또한 더욱 흥미로워졌다. 이상현상이 인간이 아닌 동물에게까지 작용해 적의 종류가 비교적 다양해졌다. 움직임은 더욱 현실적으로 변해 역동적인 액션을 경험하기는 힘들지만, 이해하기 힘든 이상현상에서 살아남는 생존게임의 감각은 더욱 살아난다. 전투의 난이도는 높지 않지만, 자원 관리에 집중할 필요는 있을 정도로 넉넉한 탄약을 제공하지는 않는다. 대신 특정 자원을 모아 캐릭터의 기술이나 기능을 강화할 수 있기에, 맵 곳곳을 세밀하게 살펴 생존력을 높일 수는 있다.
뛰어난 스토리와 전달력을 감쇄하는 최적화
하지만 이 모든 연출과 스토리는 최적화로 인해 방해를 받는다. 게임에 맞춘 비유를 하자면, 스크래치 씨조차 이렇게까지 앨런 웨이크의 이야기를 방해하지는 않을 수준이다.
우선 PC 최적화 측면에서 문제가 크다. RTX 3070, i5-12500, 32GB의 램으로도 최적화가 잡히지 않아 최대한 문제가 없는 옵션을 찾기 위해 초반에 많은 시간을 헤맸다. 해당 PC의 옵션은 60프레임 기준 권장사양에 해당하는 옵션이다. 혹여 세팅의 문제일지도 몰라 옵션을 크게 낮추는 대신, 30프레임 권장사양에 맞춘 PC로도 플레이해봤다. 그럼에도 여전히 진행에 문제가 있을 정도였다. 프레임문제조차 차치하는 가장 큰 문제는 자막과 영상의 싱크 문제였다.
이는 첫 시작인 튜토리얼부터 발생했다. 당시에는 앞서 언급했던 연출이 떠올라 "앨런 웨이크와 호수에 숨겨진 혼란스러운 비밀로 유저를 이끌기 위해 도입된 연출이 빛을 발한 걸까?"라는 생각이 드는 수준에 그쳤다. 하지만 이후로도 꾸준히 등장한 자막과 음성의 영상 싱크 문제는 간과하기 어려울 수준이었다.
매 로딩 사이에 등장하는 컷신도 마찬가지다. 어떤 사유인지 가늠할 수는 없어도, 영상과 음성, 자막이 모두 뒤엉켜 등장한다. 스토리가 핵심인 게임에 있어 전달에 크게 지장을 주는 요소가 계속해서 등장했기에, 불편함은 자연히 가중됐다. 화자가 전환될 때 등장하는 효과도 지연이 없었다면 좋았겠지만, 5분 가까이 이어지는 비슷한 화면을 보고 있자면 자연히 몰입이 끊어졌다.
이외에도 클라우드 세이브 파일이 사라지는 오류, 트리거 미작동으로 진행이 되지 않는 현상 등도 만나볼 수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그래픽이 지나치게 깨지거나 뒤틀리는 등의 오류는 없었지만, 스토리가 중심인 앨런 웨이크라는 게임에 있어 전달에 영향을 끼치는 위와 같은 오류는 매우 치명적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이 불편함이 상쇄가 아닌 감쇄에서 그친다는 점이다. 적어도 조작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기에, 해당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빠른 조치가 이루어진다면 플레이가 우려될 정도는 아니다.
앨런 웨이크 2는 전작과 마찬가지로 스티븐 킹 감독의 작품에서 느낄 수 있던 감정을 유사하게 이끌어온다. 불안한 정신의 주인공으로부터 발생한 혼란과, 이를 극복하려는 등장인물들이 각자의 단점을 이겨내기 위해 투쟁하는 모습이 흥미롭다. 더해 아티나 아스가르드의 옛 신들 등 앨런 웨이크와 컨트롤을 재미있게 즐긴 사람이라면 반가운 얼굴도 만나볼 수 있고, 전작에 등장한 요소들이 곳곳에 배치돼 있어 시리즈 팬들에 대한 존중도 잊지 않았다.
정식 출시 한 달 후에는 '최종 초안'이라 불리는 뉴 게임+ 기능과 신규 악몽 난이도 등이 나온다. 아울러 미려한 그래픽을 적극 활용하는 사진 모드도 제공된다. 내년 봄에는 첫 DLC 나이트 스프링스에서 가상 TV쇼 나이트 스프링스의 여러 에피소드를 만나볼 수 있을 전망이며, 두 번째 DLC 레이크하우스에서는 독립 정부 기관이 비밀연구를 수행하는 시설을 살펴볼 수 있게 된다.
앨런 웨이크 2에 남은 숙제는 이런 새로운 이야기가 등장하기 전까지 안정적인 스토리텔링을 제공할 수 있게끔 하는 것이다. 적어도 전달력에 지장을 주지 않는 몇몇 오류만 수정된다면 더할나위 없이 좋을 듯하다. 이 아쉬움만 차치한다면, 앨런 웨이크 2는 앞으로 공개될 레메디 세계관의 다음 작품이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해지게 만드는 반가운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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