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스스톤 체험기 '님, 한 턴만 넘겨주시면 양변을 드릴게요'
2013.10.23 21:06게임메카 김득렬 기자
▲ '하스스톤' 공식 트레일러
10년도 더 된 고교시절. 서큐버스 보다 못 생긴 친구의 유혹(?)에 넘어가 카드 게임에 빠졌던 때가 있었다(도박 말고). 수업이 끝나면 야자(야간자율학습)를 몰래 빼먹고 친구와 함께 카드 판매점이자 소환사(유저)들의 아지트였던 허름한 문방구를 늘 즐겨 찾곤 했다. 이곳에는 미래를 고민하는 것보다 더 진지하게 카드를 탐구하는 또래와 형들이 있었는데 이들을 매료시켰던 것은 다름아닌 ‘매직 더 개더링’이다.
‘매직 더 개더링’은 오프라인 TCG의 원류에 가까운 오프라인 카드 게임이다. 기본적인 구성은 흑(어둠), 녹(대지), 청(물), 적(불), 백(빛)의 총 5가지 원소로 되어 있다. 각 원소의 고유 카드를 중심으로 마법물체 등의 특수 카드를 조합하여 하나의 덱을 만드는 게 가장 기본이다. 무엇보다 기존의 방대한 카드에 매년 새로운 카드가 출시되고 있으니 수 많은 카드와 함께 플레이 규칙도 새로운 카드가 나올 때마다 변경되어 웬만한 숙련자라도 끊임없이 공부해야 할 만큼 복잡한 게임이다.
▲ 유명 일러스트 작가들이 그리는 '매직 더 개더링' 일러스트
그래서 사실 TCG에 흥미가 있거나 좋아하는 마니아가 아니라면 쉽게 접근하기가 어렵고, 특히 국내 게이머 성향과는 잘 맞아떨어지지 않아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 마찬가지로 네트워크가 발달하면서 온라인버전의 ‘매직 더 개더링’이 나왔지만 오프라인의 카드처럼 관심을 받지는 못했다.
이런 와중에 블리자드에서 ‘하스스톤: 워크래프트의 영웅들(이하 하스스톤)’을 내놨다. ‘하스스톤’은 온라인 TCG이다. 10월 11일 국내 첫 비공개 테스트를 시작한 이래 지속해서 관심이 증가하고 있으며, 베타키 배포 이벤트에는 수만 명이 몰리며 예상외로 놀라운 관심을 받고 있다.
‘하스스톤’의 이 같은 인기 비결은 무엇일까? 앞에서 언급했듯 분명 TCG는 대중적으로 접근하기가 쉬운 장르는 아니다. 다른 게임도 마찬가지지만 게임을 즐기기 위해 숙지하고 익혀야 할 것이 많다. 특히 TCG는 공부를 해야 할 만큼 파고들수록 복잡하고 어렵다. 하지만 블리자드가 내놓은 ‘하스스톤’은 좀 다르다. 이번 리뷰에서는 온라인 TCG의 대표적인 주춧돌이 될 것으로 보이는 ‘하스스톤’의 특징과 함께 블리자드의 단순화 작업 능력(?)을 짚어 보겠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카드 게임으로 변신? 낯설지 않은 ‘하스스톤’
‘하스스톤’의 첫 인상은 친숙함이다. 국내는 모바일 TCG ‘밀리언아서’가 많이 알려지면서 일반적으로 TCG라고 하면 그래픽, 즉 카드 이미지를 떠올린다. 미소녀와 미소년 카드가 많은지, 카드 이미지의 퀄리티가 좋은지 말이다.
그렇게 보면 ‘하스스톤’의 카드 이미지는 특별히 뛰어나지는 않다. 미소녀도 없다. 다만, ‘와우’와 같은 색감을 사용해 원작에 넣어놔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익숙하고 자연스럽다. 물론, 뛰어난 고화질의 카드 이미지를 수집하는 재미가 TCG의 매력 중 하나이기 때문에 블리자드는 ‘황금 카드’라는 특수 이미지(일렁이는 효과)도 적용했다.
또 하나의 친근감은 배경 설정에서 찾을 수 있다. ‘와우’의 세계관에 등장하는 캐릭터는 수만 명에 이르는 유저들에게 늘 회자되었고, 이렇듯 유명한 캐릭터 제이나 프라우드무어, 가로쉬 헬스크림, 스랄, 안두인 린 등이 각 직업의 대표로 등장했다는 점이다. 결국 ‘하스스톤’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이하 와우)’의 카드 게임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키보드와 마우스가 아닌 카드로 깃발전(PVP)하는 느낌이랄까?
▲ '와우'와 같은 색감으로 제작된 '하스스톤'
하스스톤의 핵심! 쉽고 단순한 규칙
‘하스스톤’의 가장 큰 특징은 단순한 규칙으로 진행되는 간단한 게임 방식이다. 앞에서 언급한 ‘매직 더 개더링’의 진입 장벽은 어렵고 복잡한 방식에 있었다. 인스턴트(instant), 인터럽트(interrupt), 카운터(counter), 인챈트(enchant) 등의 다양한 능력과 이들 사이의 우선 순위(가령 인터럽트는 인스턴트 보다 더 빠르게 작용)를 숙지해야 한다. 여기에 마법물체나 기타 카드를 옆에 두어 매 턴마다 피해나 회복, 특수 능력을 부여하기 때문에 플레이 초반 이후 중후반에는 관리하고 살펴봐야 하는 카드가 많아져 눈 돌아간다.
‘와우’를 경험해 본 유저에게 ‘하스스톤’은 익숙함에 단순함이 더해져 깊게 몰입할 수 있는 게임이다.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은 ‘와우’의 마법사, 드루이드, 전사, 도적, 성기사, 흑마법사, 주술사, 사제, 사냥꾼까지 총 9가지가 있다. 직업을 선택했다면 카드를 살펴볼 수 있는 ‘내 카드’에서 덱을 만들면 된다. 각 직업에는 기본 직업 카드가 있으며 중립 카드를 함께 조합해 총 30장으로 하나의 덱을 만들 수 있다.
▲ '하스스톤'은 총 9가지 직업을 선택할 수 있다
기본 직업 카드는 ‘와우’에서 각 직업의 고유 기술을 카드로 표현한 것이다. 마법사의 대표적인 기술 중 하나인 ‘변이’는 ‘하스스톤’에서도 상대 하수인을 공격력1/생명력1(1/1)의 양으로 변신시킬 수 있다. 심지어 ‘변이’는 전설 등급의 ‘일리단 스톰레이지’나 ‘불의 군주 라그나로스’도 순한 양으로 만들 수 있다. 한 때 끈질긴 생명력으로 ‘바퀴벌레’가 된 성기사의 대표 기술 ‘천상의 보호막’은 ‘와우’와 마찬가지로 피해를 입지 않는다. 하지만, 한번 공격 받으면 보호막이 사라지고, ‘변이’나 즉사 시키는 카드 등의 효과는 고스란히 적용되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런 카드는 연습 메뉴의 인공 지능이나 다른 유저와의 대전, 투기장 등을 통해 경험치를 쌓고 레벨 업을 하면 해당 직업의 카드를 얻을 수 있다. 중립 카드는 매일 추가되는 퀘스트와 숨겨진 업적을 달성하면 주어지는 골드로 카드 팩을 구매하여 뽑을 수 있다. 모든 카드에는 등급이 있으며, 기본-일반(흰색)-희귀(파란색)-영웅(보라색)-전설(주황색)로 카드 중앙에 보석으로 표시 된다. 황금 카드는 별도의 카드가 아닌 모든 카드가 특수 이미지로 보여지는 카드다.
▲ '하스스톤'의 전설 등급 카드, '와우'에 등장하는 유명 캐릭터들이 대부분 전설로 등장한다
수집한 카드를 조합해 덱을 완성했다면, 연습 모드를 통해 인공지능에게 실험(?)할 수 있다. 물론, 다른 유저와 곧 바로 대전할 수 있지만 테스트되지 않은 덱으로 승리하기는 쉽지 않다. 아무리 단순한 규칙으로 진행되는 ‘하스스톤’이라도 나름의 전략과 운용 방법이 있기 때문이다. 자신만의 덱을 만들었다면 나름의 콤보를 활용한 전략을 익히는 게 좋다.
단순하지만, 카드와 카드 사이의 연계가 흥미로워
‘하스스톤’의 카드를 잘 살펴보면 갖가지 콤보로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 많다. 예를 들어 ‘도적’은 ‘와우’와 같이 기본적으로 연계 능력의 카드가 다수 있다. ‘하스스톤’의 연계 능력 앞서 카드를 사용하면 발동되는데 상대 유저가 다수의 하수인을 불러낸 상황에서 잘만 이용하면 아무런 희생 없이 피해를 줄 수 있다. 필요한 카드는 소멸, 그림자 밟기, 연계 능력을 갖춘 하수인 카드 정도. 내 턴에 비용 1의 ‘사악한 일격’ 카드로 상대 유저에게 3점 피해를 입히고 연계 능력을 활성화 시킨다. 이후 연계 능력으로 피해 2점을 주는 비용3의 하수인 ‘SI:7 요원’을 불러낸다. 바로 비용0이 드는 ‘그림자 밟기’로 하수인을 다시 불러들인다. ‘그림자 밟기’는 아군 하수인을 내 손으로 가져오고, 소환 비용2를 감소시켜주는 카드다.
여기까지 총 5점 피해를 입혔고, 상대 유저에게는 다수의 하수인들이 나와있는 상황. 이 때 비용6의 소멸을 사용한다. 그럼 상대방 하수인 전부 손으로 되돌아가고, 아무것도 없는 상태가 된다. 이때 방금 전 ‘SI:7 요원’을 내려놓으며 2점 피해를 입혀 총 7점의 피해를 줄 수 있다. 이런 식의 응용은 연계 능력뿐만 아니라 다양한 카드 조합으로도 펼칠 수 있다. 이런 조작법을 인공지능에게 미리 연습해 두면 대전에서 유용하게 쓸 수 있다.
▲ 하수인 능력치 효과와 함께 마법사의 강력한 기술 '불덩이 작렬'이 명중했다
반대로 좀 더 심화된 전략, 가령 앞의 도적이 연계를 쓰는 과정에서 끼어들어 ‘그림자 밟기’나 ‘소멸’ 카드를 무효화 하거나 하수인 카드에 직접 피해를 입히는 식의 플레이는 할 수 없다. 일부 캐릭터는 특정 조건 하에 발동되는 ‘비밀’ 카드를 미리 깔아 둘 수 있지만, 이는 각 상황에 대비한 능동적인 플레이보다는 수동적인 플레이에 가깝다. 왜냐하면 상대가 어떤 카드를 들고 사용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비밀’ 카드는 가장 좋은 효율보다는 순서에 따라 발동되기 때문이다.
쉽게 예를 들면, 성기사의 ‘비밀’ 카드 중 ‘구원’이 있다. ‘와우’와 마찬가지로 사망한 캐릭터를 되살리는 기술로, 내 하수인이 죽으면 1의 생명력과 함께 부활 시켜주는 주문이다. 성기사 유저가 1/1의 하수인과 5/6의 하수인을 두고 있는 상황에서 ‘구원’ 카드를 사용하면 성기사 초상화에는 ‘?’ 아이콘이 생긴다. 상대 유저 턴에서 5/6 하수인을 처리할 수 없어 1/1의 성기사 하수인을 잡는다. 그 순간 비밀이 발동하며 다시 1/1의 하수인이 되살아난다. 이런 성기사 플레이를 게임메카 의 장 모 기자가 직접 보여줬다.
▲ '하스스톤'의 유일한 차단 카드 '비밀'
만약 ‘매직 더 개더링’ 처럼 도중에 끼어들 수 있다면 다른 상황이 연출될 수 있는 부분이다. TCG 마니아나 고도의 전략을 원하는 유저들에게는 이처럼 단순함이 되려 부족함으로 보일 수 있는 부분이다.
투기장, 순발력을 테스트하기에 안성맞춤
인공지능과 일반 대전을 통해 ‘감’을 익혔다면, ‘투기장’에 뛰어들 시기다. ‘투기장’은 무작위 캐릭터와 카드가 주어지며 총 30회에 걸쳐 3장씩 등장하는 카드 중 한 장을 선택해 덱을 구성하게 된다. 운도 따라야 하지만, ‘하스스톤’의 카드를 이해하고 어떤 조합으로 덱을 만들지 고민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3연패 조기 탈락이란 허무한 결과가 눈 앞에 펼쳐질 것이다. ‘투기장’은 어려운 만큼 제작 재료인 신비한 가루와 골드, 카드팩 등 보상이 좋기 때문에 도전해볼 가치가 있다.
여러 상대와 대전을 하다 보면 ‘난 왜 이렇게 못할까’ ‘나도 저 카드를 갖고 싶다’라고 느낄 때가 반드시 온다. 이 때 카드팩을 구매하기 부담스럽거나 무과금을 고집하는 유저라면 제작하기를 통해 원하는 카드를 만들 수 있다. 원하는 카드를 만들기 위해서는 신비한 가루가 필요한데 ‘내 카드’ 메뉴에서 제작하기를 이용해 보유 중인 카드를 분해하여 가루를 얻을 수 있고, 이렇게 모은 신비한 가루로 원하는 카드를 제작하면 된다. 만약 1~2종의 직업만 즐긴다면 과감하게 다른 직업의 카드를 가루로 만들어 버리는 것도 한가지 방법이다.
▲ 투기장은 입장권이 필요하고 어렵지만 보상이 좋다
그러나 TCG의 승률은 높은 등급 카드가 많거나 있더라도 적절한 타이밍에 드로우(카드뽑기)되지 못한다면 의미가 없다. 반대로 낮은 능력치의 카드만으로 구성한 덱은 드로우가 잘 되더라도 현저하게 효율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승률은 카드 덱과 드로우가 반반을 차지한다고 보면 된다. 이 때문에 드로우에 맞춘 자신만의 전략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많은 유저들이 드로우 능력이 있는 하수인이나 주문 카드를 덱에 포함시킨다.
하스스톤, 채팅 없는 건 좋지만…
블리자드는 하스스톤에 채팅 시스템을 삭제했다고 발표했다. 온라인게임에서 중요한 부분인 채팅이 지원되지 않는 다는 점이 놀랍다. 하지만, 게임 특성 상 장점 보다는 단점이 많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적절한 선택이라 할 수 있다. 우선 1:1의 대전으로 경쟁하게 되는 만큼 채팅이 된다면 일부 유저들은 조롱이나 비난, 비아냥거림에 고스란히 노출될 게 뻔하다. 반면 채팅이 없다면 상대의 강력한 덱을 접하거나 카드 운용 방법에 집중할 수 있고, 이용자들이 자신만의 파해법이나 새로운 전략 수립하는 데 도움이 된다.
만약, 상대가 자신의 빈틈 없는 공격을 막기 위해 고민하는 우세한 상황이라면 게임판 주변의 환경을 클릭하며 여유를 부릴 수 있다. 이외에 특정 카드끼리, 영웅 캐릭터와 하수인이 특별한 관계라면 익숙한 대사를 읊조린다거나, 각 카드마다 우스운 배경 설명 등 다양한 잔재미를 즐길 수 있다.
▲ 위 스샷과 아래 스샷의 차이를 알겠는가? 주변 배경을 클릭하면 독특한 효과가 나타난다
반면, 배틀넷 친구끼리의 대전 전적 표시 기능이 없는데 0전 0승 0패와 같은 결과가 보여진다면 좀 더 배틀넷 이용자 간의 교류가 활발해질 것으로 판단된다. 또, 현재 대전 상대가 무작위로 선택되는데 원하는 직업을 대상으로 하는 덱을 테스트하거나 전략을 짜기 위해 특정 직업을 선택할 수 있는 대전 옵션이 추가된다면 좋을 것 같다.
이외에도 잘 짜여진 ‘와우’ 세계관이 있는 만큼 각 영웅 캐릭터의 스토리 모드, 현재 매일 1개씩 주어지는 반복 테스트 외에 좀 더 다양한 퀘스트가, 자신이 달성한 업적과 진행 중인 업적을 살펴볼 수 있는 메뉴 등의 추가 등 덜 다듬어진 부분이 아쉽다. 특히, 대전 도중 강제 종료되거나 네트워크 불안정 등의 문제로 패하게 되는 경우를 대비하는 장치 마련도 중요하다.
온라인 TCG 대중화를 길게 가져가려면…
비록 비공개 테스트임에도 '하스스톤'은 재미있다. 기존 '와우'를 뼈대로 하고 있고, 쉽고 간단한 규칙 만으로 TCG를 설계해 게임 좀 해본 유저라면 금방 적응할 수 있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카드를 모으고 하나씩 살펴보며 능력치를 곱씹어 덱을 만들어 승리를 할 때의 짜릿한 TCG만의 매력까지 충분히 맛 볼 수 있다. 이정도면 충분히 '하스스톤'이 온라인 TCG의 대중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아쉬운 것은 지속성이다. 현재까지는 재미있지만 단조로움은 가면 갈수록 게임을 질리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무엇보다 TCG의 핵심인 카드가 지속 업데이트되어 유저들이 끊임없이 새로운 덱과 전략을 구사할 수 있게 해주는 서비스가 필수다. 또, 블리자드가 공식적으로 밸런스를 파괴하는 오버 파워 카드는 내놓지 않는다고 했지만, 유저 피드백과 카드 능력치를 꾸준히 살피며 조정해 나가야 할 것이다. 현재 '하스스톤'이 비공개 테스트를 진행 중인 만큼 이런 부분들이 보완되어 정식 서비스에서는 더 완성된 모습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