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정남] 게임 캐릭터에게 배우는 '투표와 정치'
2016.03.17 11:23 게임메카 김영훈 기자
※ [순위 정하는 남자]는 매주 이색적인 테마를 선정하고, 이에 맞는 게임을 골라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벌써 며칠째 출근길에 깍듯한 인사를 받으니, 새삼 제20대 국회의원선거가 코앞이란 것이 실감됩니다. 흔히 선거를 가리켜 민주주의 꽃이라고 하죠. 만 19세를 넘긴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선거에서 투표를 통해 자신의 대표자를 스스로 선출할 수 있습니다. 세계적인 정치이론가 아담 쉐보르스키는 “자유롭고 경쟁적인 선거가 없다면, 민주주의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죠. 독자 여러분 모두 오는 총선에서 꼭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길 바랍니다.
총선은 각 지역의 대표자를 뽑는 절차일 뿐 아니라, 여야 정당의 세력 판도를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행사입니다. 거대한 정치적 경합에 개인의 욕망과 집단의 이익, 나아가 복잡다단한 이념 갈등이 뒤엉켜있죠. 덕분에 선거철이 되면 유권자도 생각이 많아지기 마련인데, 마침 이럴 때 곱씹어볼 만한 게임 속 명대사가 많이 있답니다. 게임은 곧 현실 사회의 축소판이니, 한번 게임 캐릭터들의 지혜를 빌려보는 것은 어떨까요?
5위 G맨(하프라이프) “잘못된 때에 있는 올바른 사람이 세상에 모든 변화를 가져온답니다”
▲ '하프라이프'의 최대 미스터리 중 하나인 'G맨'
5위는 심도 깊은 시나리오로 잘 알려진 ‘하프라이프’ 속 ‘G맨’의 대사입니다. 그는 외계인 침공의 시발점인 ‘수정’을 가져온 장본인이면서, 종종 위기에 빠진 주인공 ‘고든 프리맨’을 구해주기도 하는 등 목적을 알 수 없는 인물이죠. 시공을 마음대로 넘나들 수 있어 ‘하프라이프’ 1편 엔딩에서 ‘고든’을 이차원에 동면시키기도 합니다.
이후 ‘G맨’은 무려 20년 만에 ‘고든’을 깨우며 “잘못된 때에 있는 올바른 사람이 세상에 모든 변화를 가져온답니다”라고 말하죠. 지구는 이미 20년 전 외계인에게 점령돼 사람들은 노예가 되어 착취당하거나 비인도적 실험에 희생되고 있었습니다. 이에 다시금 세상에 나온 ‘고든’은 옛 동료들과 만나고, 저항군의 일원이 되어 외계인 분쇄에 앞장서죠. 그의 맹활약 덕분에 무기력증에 빠져있던 민중들도 희망을 점차 품게 됩니다.
사회가 각박해질수록, 정치 그 자체에 환멸을 느끼고 ‘투표를 해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허탈감이 엄습해오기도 하죠. 하지만 잘못된 때에 홀연히 나타난 올바른 사람이 모든 변화을 가져온다는 말처럼, 여러분이 선출한 후보가 장차 우리의 ‘고든 프리맨’이 되어줄지 모릅니다. 그만큼 대표자의 책임이 막중하며, 투표의 힘이 큰 것이죠.
4위 조나단 아이언스(콜 오브 듀티: 어드밴스드 워페어) “이념은 누가 옳고 그른지 결정하지 않아. 힘이 누가 옳고 그른지를 결정하지”
▲ 힘이 곧 정의라 믿는 민간군사기업 CEO '조나단 아이언스'
4위는 근미래를 배경으로 한 밀리터리 FPS ‘콜 오브 듀티: 어드밴스드 워페어’ 속 ‘조나단 아이언스’의 대사입니다. 그는 세계 최대 민간군사기업 ‘아틀라스 코퍼레이션’의 CEO로, 명배우 케빈 스페이시가 모션 캡처 및 목소리 연기를 맡아 남다른 무게감을 드러내죠. 거대한 야망과 그에 걸맞은 실력을 지닌 인물답게 테러와의 전쟁을 기회 삼아 UN 안보리 상임위원에까지 오릅니다.
문제는 ‘조나단’이 전세계를 자신의 영향권 아래에 두어 평화를 이룩하겠다는 위험한 발상에 사로잡혀 있었단 것이죠. 게임을 진행하다 보면 그가 테러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음에도 권력을 잡기 위해 일부러 묵인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세계가 공포에 떨도록 내버려둔 뒤 안전을 제공하는 척 하며 실은 모두에게 목줄을 매어버린 거죠. 그러면서 그는 “이념은 누가 옳고 그른지 결정하지 않아. 힘이 누가 옳고 그른지를 결정하지. 나는 힘을 가지고 있어. 그러니 내가 옳아”라고 말합니다.
비록 ‘조나단’의 방식이 크게 엇나가긴 했지만, 그가 남긴 말은 분명 일리가 있습니다. 지금 이시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신념을 품고 남들과 언쟁하지만, 결국 최종적으로 관철되는 것은 힘 있는 자의 정의입니다. 정치인에게 힘이란 곧 국민들이 던진 표의 수일 것이고 정당에게는 확보한 의석수가 되겠죠. 아무리 이상적인 대의를 내세운 정당이라도 국민들이 힘을 실어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해낼 수 없답니다.
3위 파르쑤르낙스(엘더스크롤 5: 스카이림) “선한 천성을 타고 나는 것과 고된 노력으로 악한 천성을 극복하는 것, 어느 쪽이 더 위대한가?”
▲ 흉폭한 천성을 억누르고 인간을 돕는 고룡 '파르쑤르낙스'
3위는 금세기 최고의 게임으로 평가되는 '엘더스트롤 5: 스카이림' 속 '파르쑤르낙스'의 대사입니다. 그는 세계의 목젖이라 불리는 산꼭대기에 은둔한 현자로, 수천 년 전 용과의 전쟁에서 인간 편을 든 거대한 드래곤이죠. 오랜 세월이 흘러 예언과 같이 최강의 드래곤 '알두인'이 귀환하자, 이에 맞선 용사 '도바킨'에게 나아갈 길을 제시해줍니다.
본래 '파르쑤르낙스'는 '알두인'의 동생이자 2인자로, 성미가 포악하고 사나운 드래곤 중에서도 특히나 위협적인 존재였습니다. 그럼에도 수천 년에 걸친 명상으로 타고난 공격성을 억제하고 대신 앞을 내다 보는 현명함을 얻게 됐죠. 그는 '도바킨'에게 "선한 천성을 타고 나는 것과 고된 노력으로 악한 천성을 극복하는 것, 어느 쪽이 더 위대한가?"라고 묻습니다.
파르쑤르낙스는 지금도 여전히 폭력적인 천성을 발휘하고픈 유혹에 시달린다고 고백합니다. 그럼에도 게임이 끝나도록 주인공의 충실한 조언자로 남아 있죠. 유권자에게 있어 정치인도 이와 유사하다고 봅니다. 과거에 범한 잘못을 절대적인 판단 기준으로 삼기보단, 그 후 얼마나 스스로 나은 정치인이 되려고 노력했는지 꼼꼼히 살펴보고 투표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2위 바스 몬테네그로(파 크라이 3) “광기란 X나 완전히 똑같은 일을 계속, 계속 반복하는 거야. 그 망할 게 변할 거라 믿으면서”
▲ 광기에 찬 해적 집단의 우두머리 '바스 몬테네그로'
2위는 총을 든 '스카이림'이라 불린 '파 크라이 3' 속 '바스 몬테네그로'의 대사입니다. '바스'는 말라카 해협을 거점으로 한 해적 집단의 우두머리로, 게임 역사상 손에 꼽히는 인상적인 악역이죠. 마약과 폭력에 절어있는 인물답게 연신 쏟아내는 광기에 찬 열변이 일품입니다. 주인공 '제이슨'에게는 형을 죽이고 친구들을 납치한 불구대천의 원수이기도 하죠.
게임의 전반부는 철부지 대학생에서 점차 노련한 사냥꾼으로 변모하는 제이슨과, 그런 그를 어떻게든 잡아 죽이려는 바스의 대립을 비춥니다. 바스는 '제이슨'의 연인을 인질 삼아 둘을 함께 불태워 죽이려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계획이 실패하고 말죠. 이후 다시 한번 '제이슨'을 붙잡은 '바스'가 묻습니다. "내가 광기의 정의에 대해 말했던가?"
그는 특유의 거친 말투로 "광기란 X나 완전히 똑같은 일을 계속, 계속 반복하는 거야. 그 망할 게 변할 거라 믿으면서!”라고 소리치죠. 어쩌면 현실의 선거에서도 이러한 '광기'가 작용하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정말로 무언가 바뀌기를 기대한다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같은 행동을 반복하기 보단, '광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선택을 달리해보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겠습니다.
1위 앤드루 라이언(바이오쇼크) “인간은 선택하고, 노예는 복종한다”
▲ 자유의지 낙원을 꿈꾸며 수중도시를 건설한 '앤드루 라이언'
1위는 어느덧 고전의 반열에 오른 '바이오쇼크' 속 '앤드루 라이언'의 대사입니다. 그는 자유의지주의를 신봉하는 사업가로, 두 차례 세계 대전을 겪으며 개개인의 자아 실현을 방해하는 도덕, 법, 종교, 세금 등 모든 구체제에 환멸을 느끼고 바다 속으로 떠났죠. 그곳에서 자신을 따르는 이들과 함께 궁극적인 이상향 ‘수중도시 랩처'를 건설하기에 이릅니다. ‘랩처’ 입구에 걸린 선전문구가 ‘앤드루 라이언’의 사상을 대변하죠. “신도, 왕도 아닌 오직 인간들만”
그러나 불완전한 인간에 불과한 ‘앤드루’가 진정한 이상향을 구현하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하물며 그보다도 한참이나 신념과 수완이 부족한 사람들을 이끌고 ‘의지를 통한 무법’을 주창한 것은 파멸로 가는 지름길이었죠. 복지가 존재하지 않아 빈부 격차를 해소할 방법이 없고, 도덕의 굴레에서 벗어난 반인륜적인 사업과 부패한 인물이 득세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와중에 밀수업자 ‘프랭크 폰테인’이 ‘앤드루’ 적수로 떠오르며 ‘랩처’는 돌이킬 수 없는 혼돈으로 치닫고 말죠.
결국 ‘앤드루’는 ‘프랭크 폰테인’의 교묘한 속임수에 놀아난 주인공 ‘잭’에게 비극적인 최후를 맞습니다. 그러나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인간은 선택하고, 노예는 복종한다”는 진리를 전함으로써, ‘잭’이 스스로의 의지로 오롯이 설 수 있도록 도왔죠. 오늘날 자유민주주의에서 선거는 국민이 그저 권력에 복종하는 노예가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는 ‘인간’임을 증명하는 자리입니다. 끝으로 ‘앤드루 라이언’의 선택에 대한 또 다른 대사로 기사의 마무리 짓고자 합니다. “우리는 모두 선택을 한다. 그러나 결국 그 선택들이 우리를 만들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