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티 넘버 9, 벡은 ‘록맨’이 아니었다
2016.06.28 15:33 게임메카 이찬중 기자
▲ '마이티 넘버 9' 한국어판이 지난 21일 정식 발매됐다
1987년부터 캡콤의 간판 타이틀로 활약해온 ‘록맨’은 게이머들 기억에 오래 남은 작품 중 하나다. 특히 그 파란색 투구의 로봇 소년을 힘들게 조작해가며, 개성 넘치는 보스를 클리어 해나가는 쾌감은 지금 생각해봐도 비견할만한 게임이 없을 정도다. 이처럼 수많은 팬을 보유했던 ‘록맨’은 아쉽게도 2000년대 이후로 신작의 갑작스러운 취소, ‘록맨’의 아버지 이나후네 케이지 퇴사와 함께 그 명맥이 끊기고 말았다.
이런 가운데, 이나후네 케이지가 킥스타터 크라우드 펀딩으로 ‘록맨’의 정신적 후계작 ‘마이티 넘버 9’을 들고 나타났을 때 팬들이 보여준 열렬한 지지는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실제로 당시 킥스타터 돌입 3일만에 목표액을 달성하고, 나중에는 무려 400만 달러(한화 약 47억 원)모금을 돌파하며, 아직 ‘록맨’ 팬들이 건재함을 알렸다.
그러나, 계속되는 출시 연기와 초기 컨셉아트와 상이한 게임 영상을 두고 점차 팬들도 술렁이기 시작했다. 과연 이 게임이 그토록 기다리던 ‘록맨’의 후계작이 맞을까? 3번의 연기를 해놓고도 왜 아직도 이런 문제점들은 수정되지 않을까? 걱정이 줄을 이었고, 결국 이런 우려는 현실이 되고 말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마이티 넘버 9’은 우리가 기다리던 ‘록맨’이 아니다.
▲ '마이티 넘버 9' 공식 트레일러 (영상출처: 공식 유튜브 채널)
후계자 ‘벡’도 맥 끊기는 단순한 스테이지
‘마이티 넘버 9’은 여러모로 ‘록맨’ 시리즈의 유전자를 담고 있다. 주인공 ‘벡’의 모습부터, 그를 조력하는 박사들, 그리고 로봇이 폭주해버린 세계까지 거의 판박이에 가깝다. 아마 시리즈의 팬이라면, 점프 모션, 공중에서의 대쉬, 손에 장착된 버스터만 보더라도 아마 오랜만에 옛 작품에 대한 향수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차이점이라면, ‘록맨’보다 새로운 주인공 ‘벡’이 조금 더 빠른 플레이를 지향한다는 점이다. 기존작에서 ‘록맨’의 플레이는 신중한 점프와 진행을 필수로 요구했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대쉬’를 중심으로 한 속도감 넘치는 플레이를 강조한다. 실제로 고유한 시스템으로 ‘대쉬 흡수’가 도입되었는데, 이를 이용해 일정량의 체력이 소모된 적을 바로 흡수하면서 지나가버린다.
▲ 오랜만에 만나는 익숙한 '록맨'의 향기...
▲ 그래도 '벡'만의 특징도 확실히 있다 (사진출처: 영상 갈무리)
무엇보다 이런 흡수를 하면 일시적으로 공격력, 방어력, 스피드를 높여주는 효과가 붙으면서, 다음 단계의 난관을 더욱 수월하게 풀어준다. 가령, 평범한 버스터로는 한 명의 적만 타격할 수 있는데 반해, 공격력 부스트가 붙으면 뒤에 있는 적까지 타격할 수 있어 연속해서 ‘대쉬 흡수’를 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든다.
실제로, 이런 ‘대쉬 흡수’에서 오는 즐거움은 색다르다. 이전에는 단순히 버튼을 두들기면서 버스터로 적을 공격하는데 끝났다면, 이번에는 ‘대쉬’를 통해 조금은 세련되게 전투를 할 수 있는 부분이 생긴 셈이다.
▲ 흡수하면 흡수할수록, 진행도 빨라지는 식이다
그러나, 정작 이렇게 새롭게 선보인 빠른 패턴의 플레이 방식은 막상 스테이지에서 올라서면 그 재미가 '확' 꺽인다. 그 이유는 스테이지가 '꽉' 막힌 답답한 구조이기 때문이다.
이번 작품에는 총 12개의 스테이지가 존재하는데, 외형적인 모습과 일부 스테이지 기믹을 제외하고는 그 기본 구조는 반복된다. 특히 스테이지마다 꼭 신중하게 움직여야 하는 ‘즉사 구간’이 있어, ‘대쉬’에 여러모로 제동이 걸리게 된다. 실제로 플레이하면서, 적에게 죽기보다는 이런 ‘즉사 구간’에서 참지 못해서 죽는 경우가 허다했다.
특히 ‘대쉬’를 강조한 플레이를 내세우면서, 이런 인내심을 요구하는 스테이지 구조는 상당한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마치 ‘아우디 R8'을 타고 '뻥 뚫린 고속도로'를 달리지 못하고 교차로 마다 '신호등이 즐비한 도심'을 헤매는 느낌이다. 만약 ‘대쉬 흡수’로 귀중한 공격력 버프라도 얻은 상황이라면, 그 답답함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이처럼 속도감 있는 플레이를 내세웠으면서, 정작 단순한 스테이지는 그 플레이를 담아내는데 실패했다.
▲ 장애물들을 돌파하는데 시간이 많이 지체된다
▲ 물론, 무리해서 달리면 자연스럽게 사망으로 이어진다
‘보스전’이 주던 충실한 성취감은 어디에...
사실 이번 ‘마이티 넘버 9’에서 가장 기대한 부분은 바로 ‘보스전’이었다. 과거 ‘록맨’ 시리즈를 접했던 사람이라면, 치열했던 보스전을 기억할 것이다. 변칙적인 공격에 한번이라도 실수하면 여지없이 게임오버에, 나중에 보스를 처치하면 그 고유한 ‘능력’으로 보스간의 상성을 파악해 신나게 약점 공격하던 플레이는 아직도 많은 게이머들 사이에서 회자될 정도다.
‘록맨’의 정신적 후계작답게, 이번 작품에도 이런 보스전의 독특함을 고스란히 계승한다. 스테이지마다 8명의 보스가 있고, 그들은 불, 얼음, 전기 등 각각 다른 고유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 특히 보스를 쓰러뜨린 후에는 ‘벡’이 능력을 흡수해 이를 무기로 사용할 수도 있다. 이렇게 흡수한 능력에는 보스마다 상성이 존재해, 특정 보스에게는 약점 공격을 펼칠 수 있다는 것까지 동일하다.
▲ 천차만별 다른 능력을 지닌 로봇과의 보스전은 '록맨'의 묘미 중 하나였다
▲ '벡'도 능력을 흡수해, 자신의 무기로 활용할 수 있다
이야기만 들어보면 ‘록맨’과 전혀 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직접 해보면 그 만족감의 차이는 예전과 그야말로 천지차이다. 우선, 가장 큰 원인은 보스의 패턴이 상당히 단순하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변칙적인 패턴으로 그야말로 보스를 ‘공포의 존재’로 각인시킬 정도의 난이도였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이런 변칙성이 사라지고 기존 패턴을 그대로 반복하는 모습만 보인다.
실제로 눈썰미만 좋다면, 약점 공격을 하지 않아도 버스터만으로도 모든 보스를 잡을 수 있을 정도다. 정 모르는 사람이라도 공격이 반복되기 때문에 몇 번만 죽어봐도 패턴을 모두 파훼하는 셈이다. 이렇다 보니, 오히려 보스전에서 승리하면 성취감보다는 더 이상 시간 안 끌고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갈 수 있다는 안도감이 더 크다.
▲ 솔직히 조금만 죽어보면, 패턴이 대략적으로 감이 온다
‘록맨’ 시리즈의 장점으로 알려진 ‘약점 공격’도 이번 작품에서는 재미를 반감시키는 요소로 등장한다. 기존 작에서는 다른 보스의 능력으로 ‘약점 공격’하는 게 조금이나마 보스전을 수월하게 해주는 요소였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그야말로 ‘치트’ 병기에 가까운 모습으로 변해버렸다.
‘약점 공격’이 보스를 파훼하는 방식은 어느 정도 납득이 갔지만, 너무나도 강력한 대미지에 그 공략의 묘미는 사라졌을 정도다. 특히 이전의 ‘약점 공격’으로 보스를 얼리거나 주춤하게 만들어 공격할 틈을 주던 것을 생각하면, 이번 작품에서 보여준 모습은 좀 과하게 느껴진다. 치열한 보스전을 기다리던 플레이어 입장에서 단순히 ‘약점 공격’만 쏟아 부으면 끝이니, 그야말로 재미고 뭐고 느낄 새가 없다.
▲ 약점 공격만 있으면, 난이도는 그야말로 급감!
▲ 버스터로 잡나, 약점 공격으로 잡나... 결과적으로 쉽게 잡는 건 매한가지다
더욱 아쉬운 점은 이런 부분이 최종보스까지도 이어져, 결말 이후에도 큰 만족감을 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후반에 즐길 수 있는 ‘보스 러시 모드’와 같은 부가적인 콘텐츠에도 자연스럽게 손이 가지 않고, 그저 일회용 플레이로 끝나버렸다.
그나마 캐릭터 매력은 수준급
그나마 ‘마이티 넘버 9’에서 돋보인 부분은 바로 ‘캐릭터’다. 주인공 ‘록맨’과 라이벌 캐릭터들 외에 별로 부각되지 않았던 이전 시리즈와 달리, 이번 작품에서는 주인공 ‘벡’을 포함해 주요 보스로 등장한 로봇에도 제대로 성격과 스토리가 붙어있다.
실제로 게임에서 보스로 등장하는 ‘마이티 넘버즈’는 모두 ‘벡’의 동료로, 바이러스로 인해 폭주해버렸다는 설정이다. 각각 보유한 능력처럼 성격이 다르며, 쓰러뜨린 이후에는 조력자로 등장해 간간히 스테이지에서 장애물을 제거해주며 든든한 아군으로 활약한다.
▲ 보스전을 하면서도, 자신의 성격을 유감없이 드러낸다
▲ 나중에는 스테이지 곳곳에서 함께 활약한다!
한 예로, 주인공과 약간 라이벌 관계에 있는 ‘브랜디쉬’는 수많은 로봇이 ‘벡’을 덮치기 일보직전에 화면 밖에서 날아와 모두 베어버린 후 사라지고, 강력한 화력을 지닌 ‘바탈리온’은 거대한 드릴을 호쾌하게 파괴하면서 직접 길을 뚫어주기도 한다. 이런 장면들은 플레이어로 하여금 세계관에 빠져들만한 여지를 준다.
이 외에도, 나중에는 잠시 조력자로 등장하는 로봇 ‘콜’도 수동적인 역할이 아닌 직접 플레이어블 캐릭터로 조작해볼 수 있다. 특히 ‘콜’은 ‘벡’과는 다른 무기체계와 능력은 물론, 성격도 확 달라서 게임을 진행하면서 대화문만 봐도 나름 쏠쏠한 재미를 선보인다.
▲ 오퍼레이터 '콜'도 직접 싸움에 뛰어든다
이나후네의 작품이라, 아쉬움이 더욱 크다
이번 ‘마이티 넘버 9’을 플레이하면서, 어째서인지 어디선가 부족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캐릭터 매력과 새로운 ‘대쉬’를 강조한 플레이스타일을 구현했음에도, 그걸 제대로 활용할만한 무대가 없었던 것이 가장 큰 원인이 아닐까 싶다. 실제로 이런 부분은 전반적인 게임성에도 크게 영향을 미쳐, 기존 ‘록맨’ 유전자의 허울만 끼워 맞춘 게임이 탄생하고 말았다.
특히나 이번 작품이 ‘록맨’의 아버지라 불리는 이나후네 케이지가 직접 개발해서 그런지 그 아쉬움은 더욱 크다. 오랜 시간 믿고 기다려왔지만, 그 결과물은 초기에 보여주었던 ‘큰 그림’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마이티 넘버 9’을 기대하는 록맨의 팬이 아직 있다면, 말해주고 싶다. 이 작품은 ‘록맨’의 후계작이 아니라고!
▲ 다음에는 좀 더 좋은 모습으로 만났으면...(사진출처: 공식 웹사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