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정남] '먹튀'도 많지만... 킥스타터 출신 굿게임 TOP5
2017.04.06 17:49 게임메카 김영훈 기자
※ [순정남]은 매주 이색적인 테마를 선정하고, 이에 맞는 게임을 골라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뭇 게이머에게 애증의 대상으로 통하는 킥스타터. 북미 최대 크라우드 펀딩(Crowd funding, 익명 다수를 통한 모금) 사이트로, 덕분에 거대 자본의 도움 없이도 여러 참신한 게임이 탄생할 수 있었죠. 하지만 그만큼 검증되지 않은 졸작이 나오거나 투자자와 약속을 저버리는 행태가 속출해 적잖은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최근 킥스타터를 통해 성사된 게임 프로젝트가 무려 1만 개를 넘어섰답니다. 2009년 ‘크로스워드 퍼즐’이 2,265달러를 모은 것을 시작으로 이제까지 약 6억 달러(한화 약 6,728억 원) 넘는 투자가 이루어졌어요. 많은 게임이 기대에 부흥한 반면 몇몇은 실망만 남기고 사라져갔죠. 그렇다면 이 가운데 정말 추천할만한 작품은 무엇이 있을까요?
5위 다키스트 던전, 마조히스트를 위한 하드코어 로그라이크
▲ 전혀 영광스럽지 않은 모험 이야기 '다키스트 던전' (출처: 공식 홈페이지)
‘다키스트 던전’은 레드훅 스튜디오가 2014년 2월 모금을 개시한 횡스크롤 로그라이크 게임입니다. ‘가장 어두운 던전’이라는 제목처럼, 파티를 꾸려 치명적인 함정과 괴물이 도사린 던전을 탐험하는 게임이죠. 보다시피 발에 채이는 돌멩이마냥 흔한 설정입니다만, 이 게임의 진면목은 특유의 하드코어함에 있습니다.
아무리 보물이 좋다지만 어둡고 음습한 던전에 들어가고픈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다키스트 던전’은 캐릭터마다 스트레스 수치가 있어서, 공격을 받거나 공포스러운 상황에 직면하면 점차 상승합니다. 이게 100이 넘어가면 절망하거나 돌아버리고 200이 넘으면 높은 확률로 즉사하죠. 물귀신마냥 다른 동료까지 좌절시키는 것은 덤입니다.
▲ 던전에 깊숙이 들어갈수록 꿈이고 희망이고 없다 (출처: 공식 유튜브)
여기서 끝이 아니에요. 자금은 언제나 부족하고 상태이상이 무작위로 발생해 키보드를 때려부수게 만들죠. 심지어 한 번 죽은 캐릭터는 절대 부활하지 않습니다. 세이브랑 로드? 그런 달달한 건 없죠. 이쯤 되면 이걸 누가하나 싶습니다만, 되려 압도적인 난이도가 화제를 모아 목표의 4배가 넘는 30만 달러(한화 약 3억 원)를 투자 받으며 2016년 무사히 출시됐습니다.
4위 셔블 나이트, 슈퍼패미컴 시절 플랫포머의 호쾌한 적통
▲ 고전 플랫포머의 성공적인 복원 '셔블 나이트' (출처: 공식 홈페이지)
‘셔블 나이트’는 요트클럽 게임즈가 2013년 3월부터 모금에 나선 복고풍 플랫포머입니다. ‘록맨’과 ‘슈퍼 마리오’, ‘악마성 드라큘라’ 등 이 방면의 내로라하는 고전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죠. 국내에는 ‘삽질 기사’라는 구수한 별명으로 더 유명한데, 실제로 주인공이 삽자루 하나 꼬나 쥐고 온갖 난관을 헤쳐나갑니다.
게임은 기본적으로 횡스크롤로 진행되며, 스테이지간 이동은 ‘슈퍼 마리오 3’처럼 미니맵을 통합니다. 여기서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새로운 길목이 열리거나 숨어있던 보스가 나타나기도 하죠. 적으로 등장하는 ‘박멸 기사단’은 주인공처럼 저마다 개성적인 외형을 하고 있어 보는 맛이 쏠쏠합니다. 정작 제대로 된 기사는 한 명도 없습니다만.
▲ 그래픽은 16비트지만 게임성만큼은 AAA급 대작이다 (출처: 공식 유튜브)
‘셔블 나이트’가 마니아층의 눈길을 끈 가장 큰 특징은 복고풍 콘셉입니다. 모든 스테이지와 캐릭터가 향수를 자극하는 16비트 그래픽과 흥겨운 전자음으로 꾸며졌죠. 어렵긴 한데 왠지 조금만 더 하면 깰 수 있을 것 같은 아슬아슬한 난이도도 딱 고전 감성이에요. 덕분에 30만 달러(한화 약 3억 원)가 넘는 열띤 모금이 이루어져 2014년 세상에 나올 수 있었습니다.
3위 웨이스트랜드 2, 선택에 참된 의미를 부여한 정통 RPG
▲ 27년 만에 부활한 '폴아웃'의 원조 '웨이스트랜드 2' (출처: 공식 홈페이지)
‘웨이스트랜드 2’는 인엑자일이 2012년 3월 첫 선을 보인 포스트 아포칼립스 RPG입니다. ‘폴아웃’의 원조로 잘 알려진 고릿적 명작 ‘웨이스트랜드’를 27년 만에 부활시켰죠. 전작과 마찬가지로 쇄락한 문명에 대한 촘촘한 묘사와 깊이 있는 서사, 자유도 높은 플레이를 강점으로 내세웠어요. 약냄새가 진한 ‘폴아웃’과 달리 자못 진지한 세계관입니다.
인엑자일이 이제와 ‘웨이스트랜드’를 다시 꺼내든 배경에는 RPG 팬덤의 오랜 바람이 있었습니다. 최신 RPG들이 화려한 볼거리와 액션성에만 치중하는 사이 점차 장르 본연의 매력은 희석됐죠. 시나리오는 갈수록 얄팍해지고 선형적인 전개와 의미 없는 선택지만 가득한 가운데 ‘웨이스트랜드 2’가 혜성처럼 등장한 겁니다.
▲ 게이머의 선택이 이후 전개에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온다 (출처: 공식 유튜브)
당초 90만 달러를 목표로 한 ‘웨이스트랜드 2’ 프로젝트는 이름값을 톡톡히 하며 293만 달러(한화 약 33억 원)을 모았습니다. 이후 2014년 출시된 게임에는 약속한 데로 수많은 등장인물과 풍부한 상호작용이 담겼죠. 텍스트 분량이 영어로 60만 단어에 달하는데, 다행히 한국어화 정식 발매돼 언어의 압박은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2위 언더테일, 플레이 자체로 의미를 전하는 이채로운 이야기
▲ '마더 2' 모드 개발자가 만든 인디게임 '언더테일' (출처: 공식 홈페이지)
‘언더테일’은 토비 폭스가 2013년 6월 발표한 퍼즐 RPG입니다. 앞선 네 가지 프로젝트보단 훨씬 소박한 게임이죠. 토비 폭스는 본래 닌텐도의 고전 RPG ‘마더 2’로 모드를 만들던 유저로, ‘언더테일’에도 이러한 감성이 곳곳에 배어있습니다. 그래픽은 패미컴을 기준으로 봐도 좋다고 하긴 어렵지만 게임성은 여느 대작을 능가합니다.
대략적인 배경 설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먼 옛날, 인류는 괴물들을 퇴치하고자 싸움을 벌였습니다. 기나긴 사투 끝에 사람들은 마법의 힘으로 괴물을 모조리 땅 속에 봉인하며 마침내 세상에 평화가 찾아왔죠.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난 어느 날, 줄무늬 셔츠를 입은 한 아이가 지하세계로 떨어지며 본격적인 게임이 시작됩니다.
▲ 부디 어떠한 단서도 없이 직접 부딪히며 즐기길 권한다 (출처: 공식 유튜브)
모든 게임이 그렇긴 하지만 특히나 ‘언더테일’은 자세한 전개를 적어선 안됩니다. 플레이 과정 자체가 게이머에게 중요한 의미를 전하기 때문이죠. 부디 어떠한 단서도 없는 상태에서 천천히 즐겨보기 바랍니다. 불과 5,000달러를 목표 한 ‘언더테일’은 10배인 5만 달러(한화 약 5,620만 원)을 모았으며 2015년 가장 이채로운 인디게임으로 극찬을 받았습니다.
1위 필라스 오브 이터니티, 발더스 게이트의 진정한 후계자
▲ 발더스 게이트의 후계자를 자처한 '필라스 오브 이터니티' (출처: 공식 홈페이지)
‘필라스 오브 이터니티’는 옵시디언이 2012년 9월 킥스타터에 내놓은 판타지 RPG입니다. 정확히는 게임과 엔진 개발을 포함한 이른바 ‘이터니티’ 프로젝트죠. 90년대 후반 ‘발더스 게이트’, ‘플레인스케이프: 토먼트’ 등 여러 명작의 뼈대가 된 인피니티 엔진을 계승하여, 앞으로 RPG 백년대계를 이어갈 툴을 만들겠다는 야심 찬 계획입니다.
즉, 이터니티 엔진으로 만든 첫 작품 ‘필라스 오브 이터니티’는 툴의 완성도를 입증할 견본인 셈이죠. 고전 RPG 중에서도 ‘발더스 게이트’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쿼터뷰 시점과 전술적인 전투 시스템이 흥미롭습니다. 매력적인 동료들과 온갖 크고 작은 퀘스트가 산재해있고, 이런 게임이 대개 그렇듯 난이도가 높기 때문에 지루할 틈이 없습니다.
▲ 매력적인 동료들과 온갖 퀘스트가 게이머를 기다린다 (출처: 공식 유튜브)
인피니티 엔진을 추억하는 많은 이들의 지지를 받아 ‘이터니티’ 프로젝트는 순조롭게 나아갔습니다. 목표한 110만 달러를 훌쩍 넘겨 거의 400만 달러(한화 약 45억 원)을 모았죠. 엔진도 튼튼하게 잘 만들어진데다 2015년 출시된 ‘필라스 오브 이터니티’는 국내에도 한국어화 발매돼 호평을 받았습니다. 최근에는 후속작 ‘데드 파이어’가 공개되기도 했죠.